공주 잃고 출가한 꼬살라국 왕비 ‘웁비리(Ubbiri)’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숭고하다. 먼저 떠난 자식은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평생 멍에를 안고 살아간다. 특히 자식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식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을 실의에 빠져 살거나, 실성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종종 만날 수가 있다. 반면에 그 슬픔의 근원을 올바로 깨달아 더 나은 고귀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흔치는 않지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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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의 눈에 들어 궁으로 들어와 왕의 딸을 낳고 왕비가 되었던 웁비리(Ubbiri)는 공주를 잃은 슬픔을 더없이 훌륭하게 극복한 좋은 예에 해당된다.  

웁비리는 아주 먼 전생부터 수많은 선행을 통해 큰 공덕을 쌓아온 여인이었다. 늘 베풀었고 도덕적인 생활로 건전한 몸과 마음을 닦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을 나고 죽으면서, 한결같은 공덕행으로 언젠가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죽음의 공포를 완전하게 극복하는 경지로 향하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웁비리는 빠두뭇따라(Padumuttara) 부처님 당시에 항싸와띠(Haṃsavatī) 시의 훌륭한 가문에 태어났다. 부유한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성년이 되었을 때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을 때에도 말벗도 없이 혼자 집에 남았을 정도였다. 

어느 날 탁발 시간이 되자 탁발을 하기 위해 번뇌를 다 끊어 이미 성자의 경지에 오른 한 장로 비구가 그녀의 집 대문 앞으로 다가왔다. 장로 비구를 본 웁비리는 공양을 올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대문으로 나아가 합장 인사를 올린 뒤 장로에게 말했다. 

“존자시여, 이곳으로 들어오십시오.”

“고맙습니다.”

웁비리는 존자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오체투지로 예경을 올린 후 양털 방석을 가져다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장로 비구는 준비된 양털 방석에 앉았다. 그녀는 장로로부터 발우를 받아서 탁발 음식을 채운 뒤 다시 장로의 손에 건네주었다. 탁발을 마친 장로는 감사를 표하고 일어나 웁비리의 집을 떠났다. 

이렇게 탁발 온 장로들에게 언제나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웁비리는 서른셋 신들이 사는 하늘나라(도리천)에 태어나 그곳에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리다가 죽었다. 죽은 후에도 그녀는 하늘세계와 인간계 등 선처를 두루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이 탄생할 무렵 사왓티 시의 대자산가인 장자의 집안에 태어나 ‘웁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랜 전생 동안 축적해온 선근공덕으로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단아하기까지 한 빼어난 용모를 타고 태어날 수 있었다. 성년이 되어 출가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의 단아한 용모와 품격 높은 행동거지에 반한 꼬살라 국의 왕 빠세나디가 장자의 허락을 얻어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갔다. 왕궁에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나서 웁비리는 딸을 하나 낳았다. 빠세나디 왕은 딸에게 지완띠(Jivantī)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을 본 왕은 크게 만족하고 기뻐하며 웁비리를 정식 왕비로 삼았다. 

그러나 웁비리에게 다가온 행복과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걸음마를 배우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던, 가장 예쁨을 받을 나이에 공주 지완띠가 그만 병으로 죽어버린 것이었다. 웁비리는 딸의 시신을 안고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실신을 거듭하며 딸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던 그녀에게 더 이상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찌라와띠(Aciravatī) 강가에서 딸의 시신이 태워진 뒤에도 웁비리는 좀처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웁비리는 매일 재가 되어 버려진 딸의 시신이 있는 강가 숲의 묘지로 찾아가서 통곡했다. 

어느 날, 웁비리는 고따마 부처님을 찾아가 예경하고 잠시 앉아 있었다. 망연자실 넋을 놓고 앉아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찌라와띠 강가를 따라 우거진 숲으로 걸어가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덧없이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노라니 슬픔이 더욱 강하게 밀려왔다. 

웁비리의 이런 모습을 신통의 힘으로 지켜보던 고따마 부처님은 기원정사의 향실에 앉은 채로 자신의 몸을 나투어 웁비리가 서 있는 강가로 다가갔다. 웁비리에게 다가간 고따마 부처님이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웁비리여, ‘지바(지완띠의 애칭)’라고 부르며 그대는 숲속에서 울고 있구나. 웁비리여, 자신을 알아라. 팔만사천이나 되는 같은 이름을 가진 ‘지바’가 이 화장터에서 다비 되었으니, 그대는 그들 가운데 누구를 애도하고 있는가?”    

고따마 부처님의 물음에 놀란 웁비리가 눈물을 훔치며 작고 여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죽어 이곳에서 태워져 버려진 제 딸 지바 때문에 웁니다.”

그러자 고따마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수많은 지바들의 무덤 터를 보여주고 다시 말했다. 

“웁비리여, 이 묘지에서 화장된 그대의 딸은 팔만사천 명이나 된다. 그들 가운데 누구를 애도하고 있는가?”

고따마 부처님으로부터 지나친 슬픔이 갖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가르침을 받자 웁비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만들어낸 슬픈 마음의 고통을 보았다. 그 고통은 뽑아내기 어렵고 안으로 찌르는 화살과 같은 슬픔이자 갈애였다. 그녀는 이내 자신을 괴롭히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죽은 딸에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이 일으키고 있는 것임을 간파했다. 그 역시 일종의 탐심이자 어리석음이었다. 

웁비리는 스승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새김) 수행하면서 궁극적인 앎을 향한 정진을 시작했다. 위대한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녀에게 세속의 가치에 대한 미련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더 이상 세속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의지도 되지 못했다.

웁비리는 이후 위대한 스승 고따마 부처님이 가르쳐준 통찰 수행에 더욱 매진했다. 마침내 그녀는 스승의 인도를 통해 사성제의 진리를 철저하게 알고,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최상의 목적지인 거룩한 경지에 다가갈 수 있었다. 

마침내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이 되어 일체의 번뇌를 끊어내고 열반을 성취한 웁비리는 자신이 이룩한 특별한 성취를 설명하면서 두 개의 게송을 읊었다. 

가슴에 박혀 보기 어려운

나의 화살을 뽑아주셨으니,

슬픔에 잠겨있는 나를 위해

딸에 대한 슬픔을 제거해 주었다.  

오늘 나는 화살을 뽑아버리고

욕망을 여의고 완전한 소멸을 성취하였으니,

성자이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한다. 

최상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세속의 삶을 마감하고 수행자로서의 인연이 성숙되었음을 깨달은 웁비리는 남편인 빠세나디 왕의 허락을 받아 일체지자(一切智者)이신 고따마 부처님과, 성자의 흐름에 드는 수다원도와 수다원과에서 시작하여 사다함도 및 사다함과, 아나함도 및 아나함과, 아라한도 및 아라한과를 얻어 마침내 완전한 열반의 성취에 이르는 위대한 가르침과, 고따마 부처님을 따르는 참모임(상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웁비리는 고따마 부처님 재세(在世) 시 잠부디빠[인도]를 지배했던 꼬살라 국의 왕 빠세나디의 왕비 출신으로 출가해 비구니가 된 여성수행자로, 마가다 국의 왕 빔비사라의 셋째 왕비 케마와 함께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왕비 출신 비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