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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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어제 두 손님이 광주에서 찾아와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갔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엿본다면 우리를 신선이라고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현관 유리창으로 보이는 눈 내리는 풍광은 거대한 대선 따위의 얘기는 시시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풍광은 절망하고 낙심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위로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손님은 사업을 하고, 또 한 손님은 전남대 교수로서 모두 60대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학자였다. 사업을 하는 손님은 때가 되면 인도여행을 할 예정이고, 전대 교수는 최근에 <오래된 미래>를 읽고 학생들과 토론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부탄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여행할 때는 자기도 동행하겠다고 했다.

 이 산중에도 '오래된 미래'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분들이 있다. 나이 드신 농부들인데 나는 그분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분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농사를 즐기신다. 농사를 짓는데 과욕을 부리는 일이 없다. 주어진 땅에서 묵묵히 씨를 뿌리며 알곡을 거둘 뿐이다. 비가 오면 쉬고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듯 봄이 올 때까지 방 안에서 보내거나 마을 사랑방에서 얘기꽃을 피운다.

 그분들이 세상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번 대선 때도 30리 밖의 면소재지로 나가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누가 당선되고 낙선되건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버릴 분들이다. 누군가의 생일날에는 사랑방에 모여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내년에 쓸 새끼를 꼬거나 장에 나가 생필수품을 고른다. 그러고 보면 이 산중 농부들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사는 분들이다. 부처님도 거대한 담론이나 관념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라고 경책하신다. 나에게 주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장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처님의 말씀과 침묵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로 되었는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지, 

화살은 보통 나무로 되었는지, 대로 되었는지를 알아야겠소. 

또 화살 깃이 매털로 되었는지, 독수리털로 되었는지, 

아니면 닭털로 되었는지 먼저 알아야겠소.’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알기도 전에 온몸에 독이 퍼져 죽고 말 것이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는 

이 소견 때문에 나를 따라 수행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은 있다. 

나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와 법에 맞지 않으며, 

수행이 아니므로 지혜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 

열반의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한결같이 말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이다. 

어째서 내가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수행인 동시에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며 열반의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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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당신은 아는 대로 가르쳐 줄 것이오. 

그러면 그는 가르쳐 준 길대로 따라가면 거기에 도달할 것이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른길을 버리고 잘못 길을 들거나 

게으름을 부린다면 끝내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오. 

라자가하가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도 있으며 

그리고 당신은 그 길잡이였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지 못하오?”

“부처님, 저는 그 일에 책임이 없습니다. 

제 가르침을 따른 사람은 도달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소, 나도 또한 책임이 없소.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있어 

나는 길잡이로서 비구들에게 가르치고 훈계하였지만, 

열반을 얻은 이도 있고 얻지 못한 이도 있소. 

그러니 그것은 저마다의 행동에 달린 것이오.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고 그의 행동에 달린 것이오.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고 그의 행동을 보고 

‘마침내 번뇌가 다했다’고 인정할 따름이오.”

수학자 목갈라나는 모든 의심이 풀렸다.

                                               ― 『중아함中阿含 전유경箭喩經』

 갈무리 생각

 고양이 한 마리가 이불재 식구가 되었다. 아래 절에 왔다가 누군가 슬그머니 버리고 간 고양이가 분명하다. 녀석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아주 잘 따른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이불재로 찾아온 고양이를 외면했다. 지난해 겨울철에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가 측은해서 받아들인 적이 있는데, 한 마리가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고양이는 아내와 나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버티기로 일관했다. 나와 아내만 보면 졸졸 따라다녔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짓해도 막무가내였다. 양지바른 툇마루에 올라와 시위하거나, 아내와 내 주위를 필사적으로 맴돌았다. 마치 아내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끈질기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하소연했다. 아내가 먼저 고양이에게 무너졌다.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애완용 강아지 사료를 주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도 요즘은 아침마다 먹이와 물을 챙겨주기에 이르렀다. 이왕 식구가 됐으니 ‘행복’이란 이름도 지어주었다. 이불재 진돗개 이름이 ‘행운’이니 행자 돌림인 셈이다. 바라건대 두 녀석들로 하여금 이불재에 행운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바랄 뿐이다.

 고양이에게 가장 큰 고통과 괴로움은 무엇이었을까? 먹이를 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우리 집식구가 되어 먹이를 해결한 셈이 됐다. 고양이처럼 무언가를 절실하게 구한다면 구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먹이를 구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행복이’는 정말 행복을 하나 얻은 것 같다. 사람도 고통이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상태가 진정한 행복의 순간이리라. 부처님은 그 길을 가리키고 계실 뿐이다. 다만, 가고 가지 않고는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