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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여성수행자들 34
이 학종 2022-02-04 (금) 07:13
경지 오른 후 부친까지 열반으로 이끈 ‘로히니’
로히니(Rohiṇī)는 고따마 부처님이 탄생하기 이전에 출현했던 여러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을 통해 공덕을 쌓았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인 위빳씬(Vipassin) 부처님 당시에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 성년이 되었다. 그녀는 반두마띠(Bandhumatī) 시에서 세존(위빤씬 부처님)께서 탁발하는 것을 보고 발우를 받아 과자를 채워서 세존께 드리고, 기쁨과 희열에 차서 오체투지 큰 절을 올렸다. 그녀는 이 공덕으로 천상계와 인간계를 윤회하다가 점차로 해탈의 자량(資糧)을 키워서 고따마 부처님이 탄생할 무렵에 웨살리 시의 대자산가인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나 로히니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년이 된 어느 날, 그녀는 고따마 부처님이 웨살리 시에 머물고 계실 때에 부처님이 주석하고 있던 정사로 찾아가 가르침을 듣고, 곧바로 성자의 흐름에 든 님(수다원과)이 되었다. 재가의 몸으로 성자의 흐름에 들게 된 로히니는 부모님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부처님의 교법에 청정한 믿음을 내도록 이끌었다. 딸의 설법을 들은 부모가 청정한 믿음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가 로히니에게 물었다.
“딸아, 너는 ‘출가수행자여’라고 잠들고, ‘출가수행자여’라고 잠에서 깬다. 오로지 출가수행자들만 칭찬하는 것을 보니 너도 출가수행녀가 되고 싶은가 보구나. 너는 많은 양의 먹을 것과 마실 음료들을 수행자들에게 보시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딸 로히니야, 그래서 지금 묻겠다. 어떤 까닭으로 너에게 출가수행자가 사랑스러운 것이냐?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일하기 싫어해서 게으르고, 남들이 보시한 것으로 살고, 잔뜩 기대하며 맛있는 것만을 원하는 것 같은데, 왜 네게 출가수행자는 사랑스러운 것이냐?”
“아버지, 제게 오랜만에 출가수행자에 관한 질문을 주셨으니, 그들의 지혜와 계행과 용맹에 대하여 찬양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 어디 들어보자꾸나.”
로히니는 아버지에게 게송으로 출가수행자들을 찬탄했다. 그런데 로히니가 아버지에게 들려준 출가수행자에 대한 찬탄은, 출가수행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전범이기도 했다.
일하기 좋아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상의 일을 하는 자로서
그들은 탐욕과 성냄을 버립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세 가지 악의 뿌리를 제거하고
청정한 행위를 하고
그들은 일체의 악을 여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들의 신체적 행위가 청정하고,
그들의 언어적 행위가 청정하고,
그들의 정신적 행위가 청정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티끌을 여의고 진주모와 같아서
안팎으로 청정하고
밝은 덕성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많이 배우고, 원리를 새기고,
고귀하고, 가르침에 따라 살고,
의취와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많이 배우고 원리를 지니고,
고귀하고 가르침에 따라 살고
마음을 통일하고 새김을 확립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멀리 여의고, 새김을 확립하고,
지혜로운 말을 하고, 들뜨지 않고,
괴로움의 종식을 분명히 압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창고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자신의 소유를 저장하지 않고,
줄 준비된 것만을 구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금화도 받지 않고
금과 은도 받지 않습니다.
생겨나는 것으로 생활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여러 가문에서 출가했고,
여러 나라에서 출가했으나
서로에게 서로가 사랑스럽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지만, 이미 성인의 흐름에 든 딸의 정연하고 확신에 찬 답변에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딸에게서 출가수행자들의 덕성에 대해 듣고, 더 굳게 믿음의 마음을 내고, 출가수행자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진 그는 딸을 칭찬하면서 찬탄의 말을 건넸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호칭도 어느 순간 존귀한 여인, 그대 등으로 달라져 있었다.
“존귀한 여인, 로히니여. 그대는 우리를 위해 이 집안에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과 가르침에 믿음을 지니고 참모임에 확고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 위없는 공덕의 밭에 관하여 그대는 참으로 분명히 알고 있다. 저 수행자들은 우리의 보시를 받을 만하다. 여기 많은 시주물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로히니가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깨달은 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참모임(상가)에 귀의하십시오. 그리고 계행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아버님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바라문이었던 그는 딸이자 성자가 된 로히니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아 삼귀의와 계행을 확립하기로 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어느 날 그는 딸에게 자신의 확고한 다짐과 그 다짐이 가져다준 결과를 게송으로 밝혔다.
깨달은 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참모임에 나는 귀의했다.
그리고 계행을 지켰다.
그것이 나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
청정한 믿음을 내었고, 부처님과 가르침, 상가에 귀의한 부모로부터 출가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을 허락받은 로히니는 스스로 여성출가자들의 참모임에 출가하여, 본격적으로 통찰수행에 매진했다. 그녀는 몸과 감각, 마음, 법(자연현상)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변화와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했다. 앉을 때에나 걸을 때에도, 눕거나 말을 할 때에도 그러한 변화와 현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놓치지도 않았으며, 영향을 받지도 않고 시비분별 없이 또렷하게 알아차리는 사띠(sati)의 강도를 높여갔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래할 쓰라린 윤회의 고통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선한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스승 고따마 부처님이 걸었던 그 길을 올곧이 따라 걸어갔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로히니는 마침내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 아라한이 될 수 있었다.
로히니의 아버지 역시 나중에 외경을 일으켜서 출가해 수행자가 되었다. 그 역시 통찰을 계발하여 정진한 끝에 마침내 거룩한 경지를 얻을 수 있었다. 공경하는 딸이자 자신을 거룩한 길로 이끈 딸 로히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 마침내 열반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때의 감흥을 시구로 읊었다.
예전에는 혈통이 존귀한 자에 머물러 있었으나
오늘 나는 비로소 참되고 존귀한 님이 되었다.
세 가지의 명지를 얻었으며 학식에 밝고 지혜에 정통한 님으로서,
목욕재계한 님이 되었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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