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결혼 실패 후 수행자가 된 ‘이씨다씨’① 

다른 이의 배우자(아내)와 상간한 과보는 매우 크다. 이런 악업을 저지른 자는 죽어 다시 태어나면 거세(去勢)를 당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배우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과보를 받는다. 여성출가수행자로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세 가지 명지를 얻은 후, 자신의 일곱 전생을 본 이씨다씨(Isidāsĩ)의 삶은 다른 이의 배우자와 저지른 상간의 업보가 얼마나 지중한지를 잘 보여준다. 출가 전 여러 남편으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면을 당한 후, 출가하여 열반을 성취한 뒤 자신의 전생을 확연히 보았다. 이씨다씨는 어느 날 함께 수행하던 장로니 보디로부터 출가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출가 후 아라한이 되어 세 가지의 명지를 성취했고, 그 결과 이숙(異熟)인 나의 일곱 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에게 내가 출가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리니, 잘 들으십시오.”라며 게송으로써 자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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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깟차(도시의 이름) 시에서

나는 부유한 남자 금세공사였는데, 

젊음의 교만으로 미쳐서 

남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러한 나는 거기서 죽어서

오랜 세월 지옥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와서

암원숭이의 모태에 들어갔습니다.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무리의 지도자인 큰 원숭이가 거세했으니, 

그것은 나의 업의 결과로서

남의 아내를 범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내가 쓰러져서

씬다바(씬다바 국의 한 숲) 숲에서 죽어서

애꾸눈에 절름발이인

산양의 모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세당한 채로 나는

십이 년간 새끼들을 (등에 태워) 옮기면서 

벌레에 시달리며 병약해졌으니,

역시 남의 아내를 범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내가 죽어서

가축 장사의 암소의 모태에 들어가 

구릿빛 송아지로 태어났으나

열두 달 만에 거세되었습니다. 

눈멀고, 꼬리도 없이,

서툰 내가 쟁기를 옮기고

수레를 끌었습니다. 

역시 남의 아내를 범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내가 거기서 죽어서

시정의 하녀의 집에 태어났는데,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으니(출생에 의해 중성인 상태), 

역시 남의 아내를 범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삼십 년 만에 나는 죽어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재산가들에게 빚을 많이 진,

수레공의 집안에 딸로 태어났습니다. 

많은 양의 빚더미가 쌓이자

한 카라반의 지도자가 

슬피 우는 나를 집안으로부터 

약탈하여 끌어내었습니다. 

그 후 열여섯 살이 되자

혼기에 도달한 하녀인 나를 보고

‘기리다싸(Giridāsa)’라는 이름의

그의 아들이 처첩으로 삶았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아내가 있었는데

계행이 있고, 덕행이 있고, 명성이 있어

남편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여종처럼 섬겼지만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간 것은 

그러한 내 업의 결과였으나,

나는 마침내 종식을 이루었습니다.

-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이씨다씨는 여종처럼 공경하여 섬긴 이러저러한 남편들이 그녀를 저버리고, 버려버리고, 미련 없이 떠나간 것은 전생에 남의 아내를 범한 것, 남편을 공유한 아내에게 품은 적대감 등 악업의 결과였음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런데 이씨다씨는 악업을 지은 일곱 전생 이전에는 적지 않은 공덕을 지었다. 그녀는 고따마 부처님 이전에 출현했던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에서 남성으로 태어나 삶을 영위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씨다씨는 해탈을 위해 착하고 건전한 것을 쌓으며 살았으나, 최후의 생으로부터 일곱 번째 이전의 생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선(不善) 한 업을 짓고 말았다. 

그는 강간죄를 짓고 몸이 파괴되어 지옥에 태어났으며, 지옥에서 수백 년 동안 온갖 고통을 겪었다. 지옥에서의 과보를 다한 후 그는 다음 생에 한 하녀의 태에 들어 천한 신분의 여성으로 태어났고, 또한 거기서 죽어서 한 가난한 마차꾼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성년이 되자, 한 카라반의 아들 기리다싸의 후처가 되었다. 이씨다씨는 전생부터 이어진 불선업의 악습을 물리치지 못하고 본처를 시기하여 남편이 그녀를 증오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선업보다는 불선업을 지으며 살 만큼 살다가 몸이 파괴된 후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훌륭한 가정의 계행과 품행 등의 덕성을 갖춘 한 자산가의 딸로 태어나, 이씨다씨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씨다씨의 부모는 근방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인색하지 않고 넉넉한 성정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화를 내지 않았으며 사람을 위아래로 구분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했다. 빈궁한 이에게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받으면 언제든 음식과 재물을 광주리에 듬뿍 퍼 담아 건넸다. 계급 혹은 빈부 간의 경계가 송곳처럼 날카롭던 시절, 그들의 이러한 선한 행동은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져 찬사를 받았고, 온 나라로 그 명성이 퍼져나갔다.  

과거 일곱 생의 영향으로 불선업의 흐름을 벗어던지지 못한 이씨다씨였지만, 그래도 오랜 과거 생에 지은 선업의 덕으로 훌륭한 부모의 성품을 흡수하며 잘 성장할 수 있었다. 하인을 아랫사람으로 인식하는 대신에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볼 줄 알았으며, 재물은 움켜쥐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누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운 대로 실행에 옮겼다. 차분하고 속 깊은 성정에 행동은 단정하고 예의가 바른 데다 외모까지 아름다워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씨다씨가 성년이 되자, 아들을 둔 이라면 너나없이 탐낼 만큼 완숙한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집안·용모·나이·재산이 비슷하고 딸과 성정이 비슷한,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던 한 친구의 아들을 골라 결혼시키기로 했다. 드디어 이씨다씨의 결혼식 날, 도시는 들썩였다. 모든 이가 빠짐없이 결혼식에 참석해 둘의 앞날에 진심 어린 축복을 건넸다. 이씨다씨와 남편에겐 앞으로 행복할 일만 가득할 듯했다. 

시집으로 들어간 이씨다씨는 자라면서 보고 배운 그대로 행동했다. 하인을 부리기만 하지 않았으며,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대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을 직접 청소하였고, 하인들과 마주치면 따뜻하게 인사하며 온화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의 부모를 비롯한 식구들은 그런 이씨다씨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정작 이상한 건 남편의 태도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결혼한 지 한 달쯤 지난 시점부터는 이씨다씨를 노골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얼굴만 봐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왜 저러는지 이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예의가 바른 이씨다씨라 하더라도 남편의 그러한 태도를 참고 견디기는 녹록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르면서 그녀가 방에 틀어박혀 우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보다 못한 남편의 부모가 이씨다씨보다 먼저 나섰다. 그들은 아들을 붙잡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남편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글쎄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아내의 얼굴조차 보기가 싫습니다. 언젠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저는 더 이상 저 여자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같이 살라고 강요하신다면 저는 집을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들의 단호한 말에 부모는 아연실색했다. 저토록 어여쁜 며느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들이 집을 나가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단 말인가? 아들의 말마따나 그 이유가 없다면 더욱 난감하고 황당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아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천성이 선한 부모였지만, 그들은 결국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 며느리를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가야. 내 아들이 저리 완강하게 버티니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구나. 아들이 본인조차 네가 싫어진 이유를 모른다고 하니 답답하기가 짝이 없구나. 다만 우리는 너와의 일로 인해 아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막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니 어쩌겠느냐. 아무래도 네가 이 집을 나가줘야겠다. 네겐 정말로 미안하게 되었다. 아가야.”

시부모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씨다씨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억울함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남편의 집에서 나오는 날, 이씨다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느꼈다. 이유도 없이 내쫓긴다는 억울함에 생전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일어났다. 이씨다씨의 마음을 수치심과 분노, 참담함으로 얼룩졌다. 

시집에서도 그랬듯이, 이씨다씨는 친정에 와서도 방에 틀어박혀 서럽게 울기만 했다. 그런 딸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부모는 서둘러 새로운 사윗감을 물색하기로 했다. 두 번 실패를 하지 않도록 이번에는 시원시원하고 쾌활한 성격의 건장한 청년을 골랐다. 버림받았다는 모멸감에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던 이씨다씨는 부모의 뜻을 받아들여 그 청년과 또 한 번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새로운 남편 역시 며칠도 지나지 않아 전 남편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피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두 번째 남편은 자신을 피할 뿐 아니라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대놓고 욕을 쏟아냈다. 

“이런 형편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짜증 나는 당신의 그 얼굴을 내 앞에서 당장 치우시오! 꼴도 보기 싫소!” 

첫 번째 남편은 자신을 피해 다녔지만, 이렇게까지 험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이씨다씨는 지금의 남편이 욕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더 답답한 것은 이번에도 남편이 자신을 미워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남편의 행패에 두려움에 떨다가도 용기를 내어 이유를 물어보면 남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평소처럼 욕지거리를 내뱉곤 했다. 

“젠장 할!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당신이 너무 싫다는 거요. 그런 쓸데없는 질문일랑 하지 말고 내 눈앞에서 썩 꺼지라고.”

이씨다씨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남편의 욕설에 지쳐서 또 한 번 결심을 해야 했다.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는 멍에를 지게 되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알겠어요. 당신의 평화를 위해 제가 집을 나가겠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도대체 왜 날 그토록 미워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뭐 이젠 알아도 소용이 없겠죠. 잘 지내세요.” 

친정집을 향하는 이씨다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첫 번째 남편의 집을 나설 때보다 더 큰 억울함을 좀처럼 참기 힘들었다. 분노에 이어 치욕스러움이 밀려왔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씨다씨를 며느릿감으로 탐냈던 고위 관료들과 거부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씨다씨가 가끔 외출이라도 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흘금거리며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자연히 이씨다씨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점점 줄었다. 집에서도 좀처럼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누구나 반하게 만들던 빛나는 외모와 단아한 성품도 조금씩 스러져 갔다. 

이씨다씨 부모의 얼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애지중지 귀하게 기른 딸이 두 번이나 소박맞았다는 사실, 딸의 빛나던 아름다움이 바라고 있다는 사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두고 수군댄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첫 번째 결혼식 땐 엄청난 지참금을 받았고, 두 번째에는 첫 번째의 절반을 받았지만 지금은 혼담을 나누려는 이조차 없었다. 부모의 좌절감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던 어느 날, 한 수행자가 탁발을 하러 왔다가 집에 눌러앉는 일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이씨다씨 부모의 후덕한 성정 덕에 그녀의 집엔 신세를 지며 생활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이 수행자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기는 했지만 큰 뜻을 품고 있다기보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는 한량에 가까웠다. 부모는 곰곰이 생각해 본 뒤 이 수행자에게 제안을 했다. 

“내 딸이 결혼을 두 번 실패하고 점점 폐인이 되고 있소. 보아하니 사문께서는 수행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내가 큰 집을 마련해 줄 테니 내 딸아이와 결혼을 해주지 않겠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사문으로 사는 것이 지겨웠던 수행자는 내심 ‘옳다구나!’라고 쾌재를 부르며 흔쾌히 승낙했다. 무언가 삶에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이씨다씨도 ‘설마 저 놈팡이까지 날 미워할까?’라고 여기며 부모의 뜻을 말없이 따랐다. 이번엔 결혼식을 올릴 것도 없이 바로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럭저럭 살만했다. 예상대로 세 번째 남편은 일할 생각은 없이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다. 그러나 이씨다씨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다행히 앞선 두 명의 전 남편과 달리 피해 다니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행복하다기보다 불행하진 않은 나날이었다.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잠시 친정 부모를 만나보러 가겠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녀는 별생각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친정 부모에게서 급히 전갈이 왔다. 전해온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씨다씨야. 네 남편이 우리에게 찾아와서는 더 이상 너와 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구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네가 너무 싫을 뿐이라고 말하고는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