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스님의 선지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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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암은 범어사 일주문을 세 번째 들어서고 있었다. 한 번은 선지식 동산 회상에서 정진했고 또 한 번은 보살계를 받고자 찾아왔던 것이다. 동산은 늘 참선하는 수좌를 우대하고 반겼다. 6.25 전쟁 중에도 참선하는 수좌들이 범어사 선방으로 모이는 이유는 동산의 그런 가풍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동산이 오로지 참선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불학이나 계율에 정통한 강백이나 율사를 범어사로 불러 강설하도록 했다. 전쟁 중에 범어사에 머무른 강백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운허였던 것이다. 해인사와 통도사에 머물던 율사 자운도 가끔 범어사를 들렀다 가곤 했다. 대처승으로 남아 묻힐 뻔했던 운허를 범어사로 가도록 하여 청정비구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도 바로 자운이었다.

 혜암은 단숨에 산길을 올라 범어사 일주문 그늘에 앉아 땀을 들였다. 적십자기를 단 군용 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경내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곤 했다. 혜암이 땀을 들이고 있는데, 일주문 저편에서 군인이 다가왔다.

 “도민증 좀 봅시다.”

 “중이 무슨 신분증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스님을 포항으로 보내야겠습니다.”

 “포항에 무슨 절이 있다고 그러오.”

 “포항으로 가면 제주도 훈련소로 가는 배가 있소.”

 군인은 스님들 중에서 나이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징병하고 있었다. 포항에는 장정들을 실어 나르는 군용 화물선이 있는 모양이었다. 혜암은 범어사 선방을 왔다가 군인으로 차출될 위기를 당했다. 

 “이보시오. 나는 출가한 중이라는 말이오.”

 경비를 보고 있던 군인은 막무가내였다. 혜암은 임시 군막으로 따라갔다. 임시 군막 밖에는 나무 그늘 아래 장정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그때 범어사 스님이 달려와 혜암을 보더니 합장했다.

 “이 스님은 재작년에 우리 절에서 보살계를 받은 분입니다.”

 “승려증이라도 보여주시오.”

 혜암은 걸망에서 승려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제야 군인이 임시 군막으로 혜암을 불러들여 사과를 했다.

 “스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군대 가지 않으려고 승복 입고 다니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의심한 것이니 용서하십시오.”

 “중이라도 나라에서 부르면 가야지요.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소.”

 “스님은 동안이십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군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혜암은 30대 초반이었다. 혜암은 임시 군막을 나와 범어사 스님과 경내로 올라갔다. 경내에도 군용 차량들이 군데군데 주차해 있었다.

 “법당은 물론이고 요사채까지도 전사자 유골들이 보관되어 있어 스님들이 거처할 곳이 불편합니다. 조실스님께서 곧 국방부장관을 만나 조속히 유골들을 치워달라고 건의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시인데 말을 듣겠습니까.”

 “조실스님께서 무슨 방도가 있겠지요.”

 혜암은 유골이 들어차 비좁아진 법당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뒤 바로 조실채로 갔다. 동산은 혜암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환하게 맞이했다. 조실 방이라고는 하지만 초라했다. 벽에는 여기저기 빈대 똥이 누렇게 묻어 있었고, 벽지는 오래되어 찢어진 채 흙이 드러나 있었다. 군인들에게 시달린 탓인지 동산의 안색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혜암은 삼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조실스님, 방부를 들이려 왔습니다.”

 “혜암수좌 같은 공부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네. 지지난 해던가, 그때도 혜암수좌 혼자만 안거증을 받지 않았던가. 기억하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걸망을 풀게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어서 가보게.”

 그러나 혜암은 곧장 물러서지 않고 망설였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가.”

 “저어, 범어사에 언제까지 군인들이 주둔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군인들이 들락거리니 수행하는 데 방해가 크지. 더구나 전사자 유골들이 법당마다 가득 차 있으니 말일세.”

 혜암은 좀 전에 만났던 스님이 한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조실스님께 무슨 방도가 있으신지요. 범어사 스님들도 조실스님이 어떻게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눈칩니다.”

 동산은 눈을 잠시 감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혜암은 더욱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조실스님, 밝히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전사자 유골들을 안치했다가 연고자가 나타나 매장하는 것은 유교식이지. 그런데 말일세, 우리 불교식으로 하면 간단해. 천도재를 지내주어 전사자의 영가들이 왕생극락하게 되면 그만이지 않은가. 뼈를 장작더미처럼 쌓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야 알 것도 같습니다.”

 “천도재, 그러니까 위령제를 지낼 생각이네. 이승만 대통령을 부르면 국방장관도 올 것이네. 그때 국방장관을 설득해서 전사자 유골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할 것이네.”

 “조실스님,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는 방법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생각한 방편이 아니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얻은 것일세.”

 혜암은 원주스님이 배정한 요사채 골방으로 갔다. 골방에는 이미 한 스님이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해인사 스님이었다. 혜암은 안면이 낯설지 않았다.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스님이 된 월현(月現)이었다. 월현도 전쟁 중이지만 참선을 하기 위해 범어사 선방을 찾아온 수좌였다.

 그날 밤 혜암은 월현에게 자신이 해인사에서 속가로 갔다가 범어사로 돌아온 얘기를 했다. 그러자 월현은 다음날부터 혜암과 마주치게 되면 자신의 집안 친족들이 하나 둘 출가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혜암은 일가친척 41명이 출가한 월현의 얘기를 부럽게 들었다.

 “우리 친족들이 출가의 불연을 맺게 된 것은 외증조할머니인 평등월 보살의 영향이 컸어요. 7일 장례 기간 동안 내내 방광(放光)의 이적을 보였어요. 밤이 되면 불이  난 것처럼 훤했다고 그래요. 이적을 본 큰 외삼촌이 맨 먼저 출가했는데 그분이 바로 해인사 백련암에 계셨던 법안(法眼)스님이에요. 두 번째로 출가한 분은 나의 외할아버지인 추금(秋琴)스님이지요. 세 번째는 막내 외삼촌인 진우(震宇)스님이고요.”

 월현은 혜암과 한자리에 있을 때마다 자신의 속가 친족들이 출가한 사연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곁들였다. 이를테면 법안스님은 4형제 중 맏이였는데 부인과 외아들을 남겨 둔 채 천진도인 혜월 선사의 제자가 되었고, 추금스님은 어머니의 방광과 아들이 출가한 이후 수년 동안 거사 신분으로 금강산 마하연, 지리산 칠불암, 송광사 삼일암 선방에서 정진하다가 늘그막에 출가하였고, 진우스님은 일본 명치대학교에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통도사 고경 강백의 제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월현의 얘기는 그해 동안거 기간까지 이어졌다. 혜암은 다른 잡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월현의 일가친척이 출가한 사연을 듣고서는 늘 신심이 났다. 눈이 잘 쌓이지 않는 범어사에 오랜만에 서설이 내렸을 때였다. 월현과 혜암은 어수선한 전쟁 분위기 속에서도 어렵게 차를 구해 우려 놓고 다담을 나누었다. 

 “백마지기가 넘는 농사를 지었던 셋째 외삼촌도 속가 큰형님인 법안스님을 해인사 백련암으로 찾아갔다가 한 달 만에 출가하고 말았지요. 자운스님을 은사로 보경이란 법명을 받았어요. 물론 외할머니를 비롯해 셋째 외삼촌 식구들도 이어서 해인사로 출가하고, 마지막으로 둘째 외삼촌도 한량 생활을 접고 외가의 머슴들과 남은 가족 6명을 데리고 해인사로 향하여 영천스님이 되었지요. 외가에서 모두 35명이 출가한 셈이지요.”

 “월현스님, 친가에서는 몇 명이나 출가했습니까.”

 “모두 6명입니다. 어머니는 추금스님의 맏딸이었는데 아버지를 만나 맏딸 경희, 나, 사의, 명희를 두었지요. 모두 출가했습니다. 누나가 가장 먼저 금강산 법기암으로 출가했고, 나는 외할아버지인 추금스님께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공부하면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어 해인사로 출가했고, 그다음으로 어머니가 막냇동생을 데리고 윤필암으로 출가했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수덕사에 계시는 만공스님을 찾아가 법진스님이 됐고, 동생 사의는 추금스님을 따라서 통도사로 가 고경스님의 제자 일타스님이 되었지요.”

 혜암도 자신의 속가 식구들을 반드시 출가시키리라고 다짐했다. 

 그해 여름이 되자, 월현의 속가 동생 일타가 진양 응석사에서 단식기도를 마치고 범어사로 왔다. 일타는 월현보다 언설 언변이 더 뛰어났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월현보다 흥미롭고 맛깔스럽게 했다. 더구나 전쟁 중에도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을 만큼 독서를 많이 하여 박학다식했다. 불경(佛經)과 외서(外書)까지 그의 독서 편력은 넓고도 깊었다. 솔직히 혜암은 그런 일타의 탐구력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혜암은 대문장가 같은 일타에게 자신이 앞설 수 있는 능력은 참선정진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안거 기간에 동산은 보제루에서 능엄경 법회를 열었다. 능엄경을 강의할 스님은 운허 강백이었다. 일타가 혜암에게 귀띔을 했다.

 “운허스님이 이번에 능엄경 강설을 한답니다. 운허스님은 대문호 춘원 이광수 선생과 인척간 인데 이광수 선생이 운허스님의 속가 사랑방에서 한때 식객으로 있었다고 해요.”

 “선원 대중도 보제루에서 강의를 듣는다고 합디까.”

 혜암이 시큰둥하게 되묻자 일타가 머쓱해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해 들으면 여래장에 저축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대강백의 강설이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난 듣지 않겠습니다. 수좌에게 면벽참선 이상의 공부가 어디 있겠소.”

 “학인은 물론이고 선방 대중도 모두 참석할 것이라고 합니다.”

 혜암이 단호하게 말하자 일타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일타의 얼굴은 해맑았다. 응석사 법당에서 7일 동안 밤낮으로 단식기도를 하고 난 뒤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일타는 혜암의 수좌 다운 칼칼한 태도가 부러웠다. 자신은 혜암에 비해 강철 같은 근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도 혜암과 일타는 범어사에서 한 철을 나는 동안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탁마의 도반이 됐다.

 “이번 철에 참으로 공부한 수좌는 혜암이다.”

 동산은 하안거를 해제하는 날 혜암에게 안거증을 주면서 격려했다. 그때 일타는 혜암과 같이 자신도 ‘일일일식, 장좌불와 수행을 해야지’ 하고 서원을 세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