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가리왕산3 

등불처럼 환하게 온갖 봄꽃이 피는 날.

선생님은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웠는데도 맑은 얼굴로 수업을 시작했다.

민우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민우는 선생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교정은 무르익은 봄이었다.

창밖에서 새들이 마구 지저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민우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민우야, 아까 면회 시간에 아버지가 널 찾았다.”

“그럼, 완전히 깨어나셨어요?”

“......아버지는 오직 민우 생각밖에 안 하시더라. 이제 회복만 하면 된단다. 천만다행이지.”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민우를 쳐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병실 밖에서 서성대던 보호자들이 병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다. 빨리 면회복으로 갈아입고 아버지를 만나도록 해라. 나는 선생님을 만나야겠다.”

민우는 불안했다. 할머니는 모든 일을 알고 계신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한테 아버지가 그 이상한 아저씨들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민우는 옷을 갈아입고 창 쪽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산소 호흡기는 뺐지만 하루 사이에 십년은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에는 또 물기가 어렸다.

“아버지!”

아버지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민우야.”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나 때문에......”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버지의 야윈 손을 꼭 잡았다. 이상한 불덩어리 같은 것이 목을 치밀고 올라왔지만, 민우는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민우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우는 아버지의 마른 입술에 물을 축여주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를 한참 쳐다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를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이 민우를 불렀다.

“이름이 뭐지?”

“정민우예요.”

“좋은 이름이구나. 이제 민우가 병원에 있을 필요는 없어. 학교에 갔다가 잠시 아버지를 보고 가면 돼. 아버지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넌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민우가 옆에 있으면 아버지도 안정이 안 돼. 이제부터 선생님하고 어른들이 오시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겠지?”

민우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언제 병원을 나가실 수 있어요?”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회복이 빠르니까 곧 퇴원하실 수 있을 거다. 길어야 한 달 정도.”

민우는 병원을 나섰다.

거센 봄바람 때문인지 아까까지 그렇게 맑던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민우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방은 엉망이었다. 민우는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엌 청소도 마쳤다. 마당도 쓸었다. 화분에도 물을 주었다.

민우가 그렇게 청소를 다 끝마쳤을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민우는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민우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엄마일 수도 있고, 재희일 수도 있고, 그리고 또 선생님일 수도 있었다. 사실 그래서 청소를 하였다. 그러나 흙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는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민우의 옷이 젖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민우는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목련잎 위로 물방울들이 또르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재희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이럴 때 같이 있었으면...... 재희가 가리왕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야속했다. 민우는 자꾸만 젖어 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었다. 옷과 몸이 완전히 젖었을 때, 비로소 민우는 방으로 들어왔다.

바로 그 때였다.

흙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민우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문밖에는 뜻밖에도 선생님이 서 있었다. 민우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민우야!”

선생님이 큰소리로 민우를 불렀을 때야 민우는 젖은 몸으로 선생님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선생님과 민우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러나 민우는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마음 놓고 실컷 울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려웠으면 이야기를 했어야지.”

“아버지하고 약속을 했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기로요.”

“선생님은 남이 아니야.”

민우는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 가끔씩 찾아오는 그 이상한 아저씨들, 아버지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산짐승들의 가죽에 대해서도 몽땅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민우의 말을 잘랐다.

“이야기를 할 필요 없다.”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민우의 손을 잡았다.

“민우가 자랑스럽다. 바짝 말랐구나.”

선생님은 자신의 얼굴로 자꾸만 민우의 얼굴을 비볐다.

민우는 목이 메었다. 민우의 홀쭉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민우가 청소한 방이며 부엌을 한 번 더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 아무리 민우가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 선생님의 얼굴.....

“민우가 어디에 있건 선생님은 언제나 민우편이다.”

“.......!”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데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그 빗속을 걸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민우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밤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할머니의 등 뒤에 경찰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민우는 짐작하고 있었다.

“민우는 나하고 정수사에 가 있자.”

할머니가 민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와 동시에 경찰 아저씨들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민우는 경찰 아저씨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또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

민우는 할머니와 정수사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민우의 몸도, 할머니의 몸도 비에 함빡 젖었다. 할머니는 젖은 옷을 벗지도 않고 민우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뚫어지게 민우를 쳐다보았다. 민우는 민망스러워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사실 내가 어제 스님께 전화를 했다. 너도 알지만 나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 그렇다고 이제 너를 돌봐 줄 사람도 없고...... 아버지는 한참 동안 너하고 떨어져 있어야 한단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민우는 눈을 감았다. 수갑을 차고 경찰 아저씨들에게 끌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 가득 밀려왔다. 할머니가 민우의 젖은 몸을 안았다. 민우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할머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건 민우의 진심이었다.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를 괴롭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내가 단 몇 살이라도 젊었다면 널 보내지 않아.”

민우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다짜고짜로 민우를 부둥켜안았다. 할머니의 눈물이 민우의 볼에 엉겼다. 창밖으로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크게보기

그때였다.

부릉! 부릉!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수사 앞마당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놀랍게도 빗속에 재희가 서 있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민우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분명히 재희였다. 재희 옆에 몽연스님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왔구나!”

할머니도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재희야!”

“민우야!”

할머니가 민우와 재희를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세 사람의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민우는 비로소 목을 놓아 울었다. 맘 놓고 실컷 울었다. 소리를 내지 않지만 재희도 할머니와 민우를 따라 흐느끼고 있었다.

“자아, 이제 그만.”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세 사람을 지켜보던 몽연스님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했다. 그제야 셋은 떨어졌다. 가슴까지 닿았던 머리칼을 짧게 깎은 탓인지 잠깐 사이에 재희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한껏 젖은 물기를 닦는 것도 잊고 네 사람은 다시 툇마루에 앉았다. 거센 빗줄기를 따라 반짝이는 먼 인천항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스님이 민우의 손을 잡았다.

“오다가 병원에 들렀다. 아버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민우는 모레 나하고 재희를 따라 가리왕산 불암사로 가는 거다. 선생님하고도, 아버지하고도 이야기를 했다. 알겠지?”

정수사 앞마당에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민우는 보았다. 재희의 눈물 어린 볼에 생긋 웃음이 감도는 것을. 그리고 불암사를 둘러싸고 있는 머나 먼 가리왕산을 떠올렸다. 그러나 수갑을 찬 아버지의 모습이 가리왕산의 모습과 겹쳐졌다.

할머니와 선생님, 그리고 아름다운 강화도,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재희의 커다란 두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방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밀려오는 바닷물을 따라 몰려온 거센 바람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수사 툇마루의 창틀을 흔들었다. 가르릉, 가르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