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스님의 선지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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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가을 가야산 단풍은 일찍 시작됐다. 해인사 입구의 홍류동 단풍은 어느 해보다 더욱 장관을 이루었다. 노스님들이 봄날 답청하듯 시자의 부축을 받아 단풍구경을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해인사로 돌아온 혜암은 산철인데도 선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안거 때처럼 선방에 들어 정진했다. 선방에 남은 한두 명의 수좌들과 자유롭게 참선했다. 선방에는 늘 수좌들의 원력이 충만해 있었다. 

 혜암이 성철을 만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성철은 큰 삿갓을 쓰고 지팡이에 여섯 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육환장을 짚고 나타났다. 당당하게 걸어오는 성철의 모습은 막 계를 받은 혜암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중들도 지대방에서 수군거렸다.

 “장좌불와 하는 철 수좌가 왔다.”

 성철이 해인사에 온 까닭은 서울의 김병용 거사가 기증한 경판들을 실어가기 위해서였다. <신수대장경>과 <선종사서>는 서울에서 바로 봉암사로 보냈고, 대나무 경판들은 청담의 주선으로 해인사 장경각에 임시로 보관해 왔던 것이다.

 훗날 혜암은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해인총림이 가야총림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계를 받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성철스님께서는 그때 육환장을 짚고 큰 삿갓을 쓰고 다른 스님과는 좀 별다른 모양을 하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 스님이 어떤 스님이냐고 물으니, 철 수좌인데 장좌불와를 하신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 저런 스님 같으면 나도 따라가야지 하고 며칠을 살펴봤지요. 철스님이 여기서 언제 떠나느냐고 자꾸 물으니까 한 스님이 장경각에 맡겨두었던 경판들을 모셔갈려고 오셨다 그러더군요.”

 당시 장경각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주지스님만 열쇠를 가지고 출입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누구나 들어가 빨래판처럼 생긴 팔만대장경판을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해인사 경내까지 화물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스님 몇 분이 장경각으로 올라가 성철이 맡긴 대나무 경판들을 궤짝에 넣고 있었다. 

 혜암은 인곡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스님, 성철스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장좌불와를 하는 철스님이라고 하니까 저하고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인곡은 언젠가 혜암에게 선지식을 찾아보라고 당부한 바 있으므로 반대하지 않았다.

 “떠나거라. 철스님에게 의지해 공부하거라.”

 경판이 든 궤짝들을 실은 화물차는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해인사를 떠나려고 시동을 걸었다. 성철과 우봉이 운전수 옆자리에 앉았고, 보안은 경판이 든 궤짝들을 감시하려고 화물차 뒤에 올라탔다. 혜암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고, 잘 됐다!’

 혜암은 화물차 뒤에 올라 보안 옆에 자리를 잡았다. 보안은 혜암이 성철에게 허락을 받은 줄 알고 제지하지 않았다. 보안은 화물차가 비포장도로에서 요동칠 때마다 궤짝을 붙들었다. 혜암도 보안을 도와 밀려나가려고 하는 궤짝을 잡았다. 

 해인사에서 고령까지의 산길은 자갈길이나 마찬가지였다. 화물차가 크게 덜컹거리며 달렸다. 서로 얘기를 하려면 소리쳐야 겨우 들렸다. 혜암이 큰소리로 보안에게 말했다.

 “스님, 왜 밤에 출발합니까.”

 “낸들 알겠소.”

 보안은 불만이 많은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화물차 뒤에 쭈그리고 앉아 궤짝들을 감시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말 귀중한 것이라면 낮에 잘 옮겨야지요.”

 “어디로 가져갑니까.”

 “아니, 그것도 모르고 차를 탔습니까.”

 “모르니까 묻는 겁니다.”

 “봉암사로 갑니다.”

 “아, 봉암사요. 엊그제 청담스님께서 수좌들이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까지도 보안은 혜암이 성철의 지시를 받아 따라온 줄 알고 있었다.

 “성철스님께서 어디로 간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차를 타라고 했단 말입니까.”

 “사실은 화물차를 타라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탔다는 말입니까.”

 “저는 성철스님만 보고 탔습니다. 장좌불와를 하신다는 스님이라고 하니 존경스럽지 않습니까.”

 그제야 보안은 혜암이 화물차에 탄 까닭을 눈치 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화물차가 쉴 때를 기다렸다가 성철스님께 허락을 받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오.”

 “공부에 관한 한, 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 본이 일이 없습니다. 제가 결심하면 그만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장좌불와를 하고 성철스님도 장좌불와를 하시니 가는 길이 같은 것 아닙니까.”

 “성철스님께서 봉암사로 가시는 것은 단순히 동안거 한 철을 나고자 함이 아니라 뜻이 맞는 전국의 도반을 모아 결사를 하기 위해섭니다.”

 “무엇을 하든 저는 성철스님을 선지식 삼아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심해버렸습니다.”

 보안은 혜암이 요지부동으로 대답하자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화물차는 캄캄한 밤길을 달렸다. 이윽고 보안은 졸린 듯 혜암이 말을 걸어도 대꾸를 안했다. 차가 심하게 요동을 치는데도 코를 골며 잠을 잤다. 혜암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궤짝을 붙드느라고 애를 먹었다.

 ‘궤짝이 밖으로 굴러 떨어진다면 박살이 날 것이다. 얼마나 귀중하고 급했으면 화물차까지 빌려서 밤중에 옮기겠는가.’  

 훗날에도 장경이나 선종사서에 대한 성철의 정성은 대단했다. 6.25전쟁 후 안정사 천제굴에 살 때도 방에 불서들을 가득 쌓아두고 살았는데, 봄가을마다 좀이 슬지 못 하도록 햇볕과 바람을 쏘이곤 했다. 

 희귀한 불서일수록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다. 책장은 파손을 염려하여  천천히 넘겼고 절대로 침을 바르지 않았다. 불서를 빌려주는 일도 드물었다. 다만 혜암의 사제인 혜적만은 예외였다. 혜적은 머리가 영특하여 <증도가>나 <신심명> 등 무슨 불서이든 성철에게 빌려가면 하루 이틀 만에 다 외워버렸다. 당시 스님들 사이에서 혜적은 천동(天童)이라 불렸다. 천동이란 하늘의 재주를 받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날도 혜적은 성철에게 일본어로 된 <한산시> 책을 빌려갔다가 들고 왔다. 그런데 성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혜적이 <한산시> 책을 구부려서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성철은 혜적의 손에 든 책을 낚아채듯 빼앗으면서 나무랐다.

 “넌 책 볼 자격이 없다. 책을 구부려서 들고 다니다니, 넌 <한산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뭐 이런 게 있노. 다시는 내게 책 빌릴 생각 마라.”

 성철을 시봉하던 어린 시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큰스님으로 존경받는 분이 책 한 권 가지고 불 같이 화를 내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훗날 그 시자는 성철이 불서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깊은 선교(禪敎)를 통달한 큰스님으로 존경받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화물차는 동이 틀 무렵에야 대구역 광장에 도착했다. 경판이 든 궤짝들을 대구역에서 점촌역으로 보냈다가 봉암사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화물차에서 내리자마자 혜암은 성철에게 다가가 합장했다. 성철도 그제야 혜암이 따라온 줄 알고 물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노.”

 “갈 곳이 있습니다.”

 혜암은 혹시라도 성철이 거절할까봐 목적지를 얼버무렸다. 퇴설당에서 함께 안거를 난 적이 있고 혜암에게 가끔 바른 말을 해준 우봉에게 사정했다.

 “스님, 저도 점촌역까지 가겠습니다. 그러니 함께 기차를 타게 차표를 사주십시오.”

 여비가 없는 혜암은 우봉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봉은 혜암이 왜 사정하는지 알면서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는 점심 대용으로 떡까지 사주어 혜암은 요기를 했다. 성철은 기차를 타고 나서야 햇중 혜암에게 관심의 눈길을 돌렸다.

 “일본에서 불서를 좀 보았다, 이 말이제.”   

 “<선관책진>이나 <고승전집>을 보았습니다.”

 “그런 거 볼 필요 없다. 나도 출가 전에 일본 가서 책도 보고 철학자도 만나 보았지만 실제 도움이 되는 게 없는기라. 그래서 돌아와버렸다.”

 “궁금한 것이 있어 책을 읽었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소용없는 일이다. 깨닫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된데이.”

 점촌역에서 내려 봉암사로 갈 때는 이런 질문도 했다.

 “부모님이 출가를 허락하시던가.”

 “아닙니다. 출가를 여러 방법으로 말리셨지만 뿌리치고 나왔습니다.”

 “잘했어. 공부하는 데는 부모를 죽이고라도 눈 하나 껌벅하지 말아야 돼.”

 혜암은 성철의 말이 폐부를 찌르는 듯하여 이를 악물었다.

 “은혜도 좋지. 허나 은혜 베푼 사람을 중히 여기면 공부하기 어려워지는기라. 앞서 공부한 조사들도 시인(施人)을 불덩어리같이 무섭게 여기라 했어. 불덩어리같이 가까이 하지 말란 말이제.”

 봉암사 입구에서는 이런 당부도 하였다.

 “옛날 도인 스님들은 병신 구하려고 했지 똘똘한 사람 구하려고 한 적이 없다. 공부하려면 병신 노릇하라는기야. 숨어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데이. 사람 없는 데 숨어 사는 것은 작게 숨는 법이고, 사람 많은 데서 병신 노릇하는 것은 크게 숨는 법인기라.”

 “스님, 저는 공부하는 동안 오직 병신같이 살겠습니다.”

 “봉암사에서는 그리 살아보그래이. 그라믄 좋은 일이 있을끼다.”

 이때가 1947년 가을의 일이었다. 혜암이 봉암사에 왔을 때 대중은 예닐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우봉, 청안, 보문, 일도, 자운, 보안 등이었다. 청담은 다음해에 해인사에서 올라와 합류했다. 

 추진력이 강한 청담이 온 뒤로 봉암사 대중은 더욱 불어났다. 울산, 성수, 종수, 응산, 만성, 보경, 법전 등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느 새 대중의 숫자가 이미 와 있던 비구와 비구니 묘엄까지 합하여 30여 명 규모로 커졌다.

 비로소 성철과 청담은 중국 선종의 청규를 참고하여 봉암사 실정에 맞는 규칙, 즉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었다. 청규의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 삼엄한 부처님 계율과 숭고한 조사의 유훈을 부지런히 닦고 힘써 실행하여 구경(究竟)의 큰 결과를 원만히 빨리 이룰 것을 기약한다.

 둘째,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이외의 각자의 사견은 절대 배척한다. 

 셋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은 자주자치(自主自治)의 표지 아래에서 물 긷고, 땔나무 하고, 밭에서 씨 뿌리며 또 탁발하는 등 어떠한 어려운 일도 사양하지 않는다.

 넷째, 소작인의 세조와 신도들의 특별한 보시에 의한 생활은 단연코 청산한다.

 다섯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은 12시를 지나지 않으며 아침은 죽으로 한다.

 여섯째, 앉는 차례는 비구계를 받은 순서로 한다.

 일곱째, 방 안에서는 늘 면벽 좌선하고 서로 잡담을 엄금한다.

 한 마디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청규였다. 보조국사가 <정혜결사>를 선언한 이후 실로 7백 몇 십 년 만의 일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