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고 싶은 날2 

 민우는 천천히 엿보기산으로 올라갔다. 재희하고는 거의 매일 왔던 산이었다. 퐁당 수로를 내려다보는 두 개의 큰 봉우리 가운데에 넌지시 숨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민우는 엿보기산을 오르면서 재희를 생각했다. 재희와 함께 돌아다녔던 곳들......

 민우는 인삼밭이 있는 밤나무숲을 지나 약쑥이 많이 자라는 쑥대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없이 살아가는 민우였지만, 여태 지각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민우는 비교적 잣나무가 우거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민우는 자꾸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솔솔 봄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어느새 이름도 모르는 풀꽃들이 조그만 손바닥을 펼치고 있었다. 산은 온갖 봄 냄새로 가득했다. 이곳저곳에서 산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그 새들의 지저귐을 따라 민우는 엿보기산의 가장 높은 장수봉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강화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멀리 바다도 보였다. 학교가 어디쯤인가를 가늠해 보았다. 올망졸망한 산 사이로 성냥갑보다 작은 선원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그렇게 민우가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산 계곡 안쪽에서 나직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틀림없는 정수사 할머니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샘물가에서 언제나 그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가 부르는 단 하나의 노래였다. 

 강화벌 감자꽃은

 철 따라 피건마는 

 떠나가신 그리운 님

 언제나 오시려나

 손 모아 빌어보는 

 감자꽃 아가씨

 “할머니?”

 민우는 아주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였다.

 “오, 민우구나. 그런데 여긴 웬일이냐?”

 할머니가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지금 뭘 하세요?”

 민우는 할머니의 말을 비켜가기 위해 재빠르게 말했다.

 “보면 모르냐? 새집을 만들어주고 있지.”

 “새집을요?”

 그러자 할머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하도 산을 파먹어서 새들이 집을 짓고 살 재료를 얻지 못해. 앞으로 장마철이 되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새는 결국 죽고 말 거야. 그래서 이렇게 집을 만들어주는 거지.”

 “집을 만들어주면 새들이 와요?”

 “아암, 스님이 만든 새집엔 몽땅 새들이 들었는걸, 아마 조금 있으면 새끼들이 태어날 거다. 스님이 안 계시니 이젠 내가 해야지.”

 그러면서 할머니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들었다. 민우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재희가 떠나고 난 다음, 민우는 정수사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싫은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정수사에는 가기 싫었다. ‘절집 아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고, 할머니에게 부담이 되는 것도 싫었다. 재희가 떠나고 난 다음, 정수사는 그야말로 남의 집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웃으면서 민우에게 말을 붙였다.

 “재희만 사람이고, 이 할미는 사람도 아니지?”

 “할머니,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긴, 원 녀석도. 넌 너무 일찍 철이 들었어.”

 할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일부러 민우가 집을 비운 사이 물김치며, 깍두기며, 몰래 두고 가는 할머니였다. 민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은 학교 안 갔어?”

 민우가 뒷머리를 긁었다.

 “아버지도 알어?”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민우를 한참 쳐다봤다.

 “몰라요.”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녀? 재희한테도 전화가 여러 번 왔었는데.”

 “학교 가기가 싫어요.”

 “재희가 없어서는 아니지?”

 민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하고 싸웠니?”

 민우가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학교 가기가 싫어요.”

 “그런 말이 어딨어.”

 “선생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할머니가 햇볕이 내리쬐는 양지바른 곳에 앉았다. 민우도 따라서 그 옆에 앉았다. 할머니는 키가 아주 작았다. 

 “왜 학교 안 갔냐?”

 “그냥이라니까요.”

 “허허, 민우가 그냥 무턱대고 학교를 안 가진 않았을 텐데...... 무슨 까닭이 있겠지?”

 “그러는 할머니는요? 이른 아침에 여길 뭐 하러 오셨어요?”

 그러나 그렇게 물으면서도 민우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재희와 스님이 자주 오던 곳이었다. 산이 오르기 쉽기도 했지만 이곳에 오면 강화의 수로란 수로는 물론이고, 부근의 산이나 저수지가 모두 보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길정 저수지는 그야말로 남해의 다도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재희가 보고 싶어서 왔다, 스님도”

 그렇게 말하면서 할머니는 허공에 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렇지만 민우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재희 생각만 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실 민우가 꾸역꾸역 이곳에 찾아온 것도 할머니처럼 재희가 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짐작했는지 할머니가 민우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이 못살게 굴디?”

 “...... 아니오.”

 “그럼?”

 “선생님이 싫어요.”

 민우는 그렇게 말해 놓고 스스로도 놀랐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엉뚱한 대답이 나왔던 것이다.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자꾸 그려졌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편하지 않지?”

 “4학년 때 선생님이 좋았어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금 선생님은?”

 “자꾸 불러서 뭘 물어요.” 

 할머니는 민우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난 학교를 안 다녀 봐서 모르겠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뭘 물어보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

 민우가 물끄러미 할머니를 바라봤다.

 “......”

 “난 그런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할머니 가요?”

“그래, 몽연스님 같은. 절에 들어오기 전에 난 세상의 고마움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었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난 늘 혼자 있었으니까.”

 “네?”

 민우는 눈을 크게 떴다.

 “우리들 곁에 있는 그 무엇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 하다못해 여기 이렇게 작은 나무 하나도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꼭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 거란다. 민우가 이 할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민우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할머니도 싱긋 웃었다.

 “배고프지?”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가져온 김밥 보따리를 풀었다. 동그란 도시락에는 아주 먹음직스런 김밥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할머니와 민우는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스님이나 재희가 옆에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몰랐지. 그런데 이렇게 혼자 있다 보니까 스님이나 재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았지 뭐냐?”

 민우는 아버지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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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이제 민우에게 내가 아는 새들을 소개시켜줄까?”

 “정말요?”

 “이 엿보기산에 사는 새들은 모두 내 친구니까. 따라오너라.”

 할머니는 일어났다. 그리고 비교적 전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민우도 할머니를 따라 갔다. 할머니는 휘파람을 불었다. 민우는 숨을 죽이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아주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새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건 참새다. 너도 알지?”

 “저도 참새는 알아요.”

 “그렇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가 몰랐던 참새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지.”

 머리는 진한 밤색이고, 등은 밤색 바탕에 검은 점이 흩어져 있고, 턱 밑과 뺨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가슴과 배는 때 묻은 회색이었다. 전선주에나 학교 나뭇가지 위에 있을 때는 그저 무심히 지나쳤는데 참새도 굉장히 아름다운 새였다.

 “저것은 방울새다. 이 엿보기산에 아직 몇 놈이 남아 있지. 참새보다는 훨씬 작고 날개 꼬리에 노란색이 섞여 있지. 저놈들이 왜 방울샌지 알고 있지?”

 “모르겠어요.”

 “노래를 아주 잘 부르거든.”

 그러면서 할머니는 손에 든 곡식을 한 줌 뿌렸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몰려들었다. 할머니는 옆에 찬 주머니에서 연신 모이를 뿌렸다.

 “온몸이 온통 갈색인 저것은 굴뚝새다. 몸체에 비해서 부리가 길지. 송충이 잡아먹는 데는 저놈이 제일이지. 이 엿보기산이 지금보다 더 우거지려면 저놈들이 많아야 돼.”

 정말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새들이 몰려들었다. 동화책에서나 만화에서 보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새들은 민우가 옆에 있는데도 할머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할머니 너무 신기해요.”

 “신기할 거 하나도 없지. 너도 나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와서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놀아줘 봐라. 네 소리가 들리면 틀림없이 저 새들이 달려올 거다.”

 그런데 할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까지는 딱새도 많았는데, 요즈음엔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나마 남아 있던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지. 숲이 줄면 자연히 새들은 이곳을 떠나지. 저놈들도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몰라. 몰려오는 놈들은 거의 참새하고 박새뿐이구나.”

 민우와 할머니는 새들이 모이 쪼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로 왜 학교 안 갔냐?”

 민우는 누구한테든 아버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반 친구하고 싸웠어요.”

 “그래?”

 “그냥 싸운 게 아니고 코피가 났어요.”

 “그건 안 되지.”

 “그래서 안 갔어요.”

 “애걔, 겨우 그것 때문에 학교를 안 갔단 말이냐?”

 “걔네 엄마가 보통이 아니래요.”

 “흐흐, 그렇담 걔네 엄마는 내가 상대해 주마”

 할머니는 일부러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민우는 빙긋 웃었다. 

 사실 민우가 진짜로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된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밀렵꾼이라고 확신을 하는 민우는 도저히 선생님 앞에, 친구들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가 없었다.    “무조건 학교는 가는 거다!.”

 민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언제 또 오세요?‘

 “글쎄다. 내가 산에 올 때 너도 올려구?”

 “네.”

 “그렇지만 난 항상 아침 햇살이 한창 밝을 때만 올라와. 그 시간이면 아마 민우 넌 열심히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거다.”

 민우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학교 가기는 이미 틀렸지?”

 민우는 가만히 학교를 내려다보았다. 일 학년이 끝나는 시간인지 아이들이 점점이 흩어지고 있었다.

 “재희한테 편지라도 보내라.”

 “......”

 “얼마나 너를 걱정하고 있는지 몰라.”

민우는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먼저 갈게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