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혼의 고통 딛고 열반 성취한 ‘빠따짜라’① 

인도에서는 계급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급끼리의 결혼인 내혼제도를 엄격하게 지켰다. 이것을 어겼을 때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代價)를 치러야 했다. 내혼제도에 어긋나는 결혼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상위계급의 남자가 하위계급의 여자와 결혼하는 순모혼(順毛婚)이고, 또 하나는 상위계급의 여자가 하위계급의 남자와 결혼하는 역모혼(逆毛婚)이다. 

고대 인도의 법전 겸 연대기로 기원전 1000년경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누법전>에는 순모혼에 대해서 상반된 주장이 언급되어 있다. 즉 순모혼을 하는 남자는 자기 계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대한 주장과 결혼한 여자의 지위로 계급이 하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순모혼은 인도 사회에서 매우 관대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남성의 계급하락까지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반면 역모혼은 아주 부정한 경우로 여겨져 왔다. 이 경우 여자의 계급하락은 물론 가장 금기시되는 성직자 계급의 여인과 노예계급의 남자가 결혼한 경우 역모혼의 당사자는 천민으로 취급되어 카스트에서 추방되었다. 

빠따짜라(Patācārā)는 사왓티 시에 살던 한 부호의 집안에서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4억 냥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큰 부자였다. 빠따짜라가 열여섯 살이 되어 성년이 되자, 그녀의 부모는 7층 꼭대기에 딸의 방을 마련해 살도록 하고 주위에 경호원을 배치했다. 약한 바람결에도 찰랑찰랑 대는 윤기나는 머리카락, 연꽃처럼 아름다운 얼굴,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탄력 있는 엉덩이와 곧게 뻗은 다리 등 그녀의 미모는 뭇 남성들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이와 같은 철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빠따짜라는 자신의 집안에서 부리는 한 젊은 하인과 눈이 맞아 은밀한 관계를 맺고 말았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차단된 상태에서 그녀는 시중을 드는 젊은 청년 하인에게 그만 마음을 준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빠따짜라의 부모는 딸을 동일한 신분의 청년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혼처를 정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빠따짜라는 자신이 은애하는 하인을 은밀히 불렀다. 그녀는 역모혼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온갖 손해와 장애를 각오할 만큼 젊은 하인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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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나를 어느 가문의 젊은이와 결혼시키려고 해요. 결혼을 해 한 번 시댁에 들어가면 당신이 나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거예요. 당신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얼른 여기서 나를 빼내어 도망칠 궁리를 하세요.”

빠따짜라의 하소연을 들은 젊은 하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내일 아침 일찍 성문에 가서 기다릴 테니 당신은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빠져나와 그곳으로 오시오.”

“알겠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빠따짜라는 흙 묻은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얼굴에는 붉은 분가루를 발랐다. 그리고 경호원을 따돌리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시녀들과 함께 물을 뜨러 가는 것처럼 위장해 집을 빠져나왔다. 탈출에 성공한 후 그녀는 약속 장소로 가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났다. 그녀는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어느 정도 재물도 챙겨서 나왔다. 큰 문을 무사히 빠져나온 그들은 멀리멀리 도망을 치다가 한마을에 정착했다. 

남편은 땅을 경작하고 숲에서 땔감과 나뭇잎을 모았으며, 아내는 물동이로 물을 나르고 음식을 만들며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빠따짜라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태아가 성장하면서 점점 배가 불러 산달이 다가오자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출산이 임박했는데, 여기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부모는 항상 자식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나는 친정으로 가야겠어요. 친정집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요.”

그러나 남편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며 말했다. 

“여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당신 부모가 나를 보면 가만두지 않을 거요. 내가 당신의 친정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그렇다고 당신만 보내는 것도 생각할 수 없소. 나는 한 시도 당신과 떨어져 살 수가 없소. 그러므로 당신이 친정으로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빠따짜라가 거듭 간청했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비웠을 때 그녀는 친정에 갈 채비를 마친 후 이웃집에 가서 말했다. 

“제 남편이 돌아와서 제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면 친정집에 갔다고 전해주세요.”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보이지 않자 이웃집을 찾아가서 물었다. 그들은 남편에게 ‘아내는 친정집으로 갔다.’고 말해주었다. 남편은 ‘나 때문에 이 훌륭한 가문의 규수가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그렇지만 그녀를 설득해서 되돌아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아내의 뒤를 따라가 만삭의 몸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간절히 빌었지만 설득하는데 끝내 실패하고 말했다. 아내를 부축하고 걷던 그들이 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아내에게 산통이 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 산통이 오고 있어요. 아,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빠따짜라는 덤불숲으로 들어가서 땅에 누웠다. 산통을 참으며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아들을 낳았다. 친정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그녀는 친정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아기를 기르며 살아가던 중 그녀가 또 임신을 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그녀는 첫 아이 출산 때처럼 친정에 가서 애를 낳아야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남편은 계속해서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아들을 등에 업고 만삭이 된 배를 움켜잡은 채 친정을 향해 출발했다. 남편이 아내를 좇아가며 제발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하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렇게 길을 가던 중, 우기(雨期)가 아닌데도 돌연 지독한 폭풍이 몰려왔다. 때아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사방이 온통 번갯불로 번쩍였다. 곧이어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진동하더니, 이내 거센 물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하필 이 순간에 산통이 시작됐다. 다급해진 그녀가 남편을 향해 외쳤다. 

“여보, 진통이 오고 있어요. 더는 참을 수 없으니, 비를 피할 곳을 찾아봐주세요.”

남편은 움막이라도 지을 나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쳐다보다가 한 나뭇가지로 덮인 덤불을 보고 거기로 가서 손에 든 도끼로 그 덤불에서 나무를 자르고자 했다. 그는 풀로 덮인 개밋둑의 꼭대기에 솟은 나뭇가지를 잘랐다. 그런데 개밋둑 구멍에서 나온 독사뱀에게 물리고 말았다. 남편은 불행하게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버렸다. 

큰 고통을 겪으면서 남편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빠따짜라는 결국 두 번째 아이를 홀로 낳았다. 두 아이는 몰아치는 비바람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그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두 무릎과 두 손으로 땅을 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온 밤을 지새웠다. 그녀의 표정은 피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이 생기를 잃었고, 몸뚱어리는 마치 시든 낙엽처럼 축 처져 있었다. 

날이 밝자 그녀는 핏덩이를 천 조각의 포대에 싸매 안고, 큰 아이를 손으로 붙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얘야, 이리 와라. 아빠는 이쪽으로 갔단다.’라고 웅얼거리듯 말하고는 남편이 갔던 길을 따라갔다. 덤불 가까이 다가가던 그녀는 남편이 개밋둑에서 숨이 끊어진 채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아, 나 때문에 내 남편이 죽었다!’라고 울부짖으며 비탄에 빠졌다. 단 하나의 의지처였던 남편마저 죽자, 정말로 의지할 곳이 모두 없어진 그녀에게 친정으로 가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밤새도록 내린 비로 사왓티 시 근교에 위치한 아찌라와디 강에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흐려진 인지력과 크게 허약해진 체력으로는 도저히 두 아이를 한꺼번에 데리고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하던 그녀는 큰 아이를 이쪽 언덕에 남겨두고 갓난아이만 안은 채 작은 배에 올라 강을 건넜다. 그녀는 나뭇단을 펴고 그 위에 천으로 된 조각포대를 깔고는 간난 아이를 눕혀놓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큰 아이를 데리러 다시 강을 건너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세찬 비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는 갓난아이가 염려가 된 그녀는 거듭거듭 뒤돌아 바라보면서 강을 건넜다. 

그런데 강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에 매 한 마리가 갓난아이를 발견하고 ‘고깃덩어리’라고 생각하고 허공에서 쏜살같이 하강했다. 그 광경을 본 그녀는 양손을 쳐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매를 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매는 멀리 있었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낚아채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강 건너편 언덕 위에 있던 아이는 엄마가 두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고 자신을 부르는 신호로 알고는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센 물살을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아이는 세찬 물살에 휩쓸려 까마득히 떠내려갔다. 

그녀는 그 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넋을 놓았다. 순식간에 한 아이는 매에 잡혀가고 한 아이는 물에 휩쓸려갔으니,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은 없었다. 

그녀는 ‘한 아이는 매에 잡혀가고 한 아이는 물에 휩쓸려갔으며, 남편은 길가에서 뱀에 물려 죽었다’라고 울면서 비탄해 하면서 친정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친정으로 향하는 도중에 사왓티 시에서 오는 한 남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

“부인, 나는 사왓티 시에 삽니다.”

“아저씨, 이러이러한 길가에 이러이러한 집안이 있는데 당신은 아십니까?”

“부인, 압니다. 그러나 그 집안에 대해서 나에게 묻지 마십시오. 다른 것을 물으십시오.”

“아저씨, 저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저씨 제게 그 집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인,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신은 밤새도록 비가 내린 것을 보았습니까?”

“네, 아저씨, 저는 밤새도록 비를 맞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부호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부인, 지난밤에 부호와 그 부인과 부호의 아들 셋이 무너지는 집에 깔려 죽었습니다. 부인, 그 집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그 집의 주검들은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태워졌습니다. 지금도 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옷이 벗겨져 떨어진 것도 모른 채 주저앉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불행과 슬픔에 넋을 잃었다.  

‘두 아들이 죽었고, 길가에서 내 남편도 죽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까지 한꺼번에 화장되었다.’라고 슬퍼하면서 실성한 상태로 웅얼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한 아들은 독수리가 채가 버렸고

다른 아들은 강물에 휩쓸려 가버렸어.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었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는 압사 당해 화장되었어.

반은 실성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옷다운 천조각도 걸치고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퇴락한 여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녀를 ‘빠따짜라’라고 불렀다. 그녀를 보고서 사람들은 ‘미친 여자여, 가라.’며 경원했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머리에 던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먼지를 던지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흙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