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비밀2 

 갈 곳이 없었다.

 민우는 퐁당 수로를 돌아, 동막 해수욕장, 엿보기산을 헤매다가 산그늘이 내렸을 때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기가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도 민우의 가슴은 떨렸다. 혹시나 그 아저씨들이...... 그러나 아버지라면, 민우는 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민우는 일부러 크게 불러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있었다. 역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민우는 술 마시는 사람이 제일 싫었다. 술을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미웠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하나도 밉지 않았다. 아버지가 방에 있어준 그 자체로 고마웠다.

 “쪼그만 놈이 왜 밤늦게 다녀. 너 오늘 매 좀 맞아야겠다.”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평소 같으면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갈 민우였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아버지의 고함소리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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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민우는 아버지에게 엉겨 붙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민우를 쓸어안았다. 아버지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내 새끼!”

 “아버지!”

 “무서웠지?”

 그 무서운 아저씨들이 온 것을 아는지 아버지가 그렇게 물었다. 민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품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이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다.”

 아버지와 민우는 마주 보고 앉았다. 방 한쪽 구석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먹었어요.”

 “자식...... 내가 저녁상을 차려 놓았다.”

 방 한쪽 구석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버지와 민우는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민우는 아버지를 이부자리 위에 눕혔다. 그제야 민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에 멍 자국이 눈에 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손등에도 어딘가에 긁힌 자국들이 선명했다.

 “아버지?”

 민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버지는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얼굴은 왜 그래요?”

 “일하다가 조금 다쳤지.”

 “무슨 일하는데?”

 “배에 실을 화물을 날랐지.”

 “그렇다고 정수사로 전화 한 통도 못해요?”

 “미안하다. 일이 그렇게 됐어. 원래 뱃일이라는 게......”

 “다리 공사하신다면서요?”

 “그 공사 중단됐어. 그리고 그건 너무 힘이 들어서...... 부두에 나간다.”

 아버지는 인천 연안 부두에서 화물 나르는 일도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얼굴을 다친 적은 없었다.

 “누구하고 싸웠지요?”

 누구라고 얘기는 했지만 민우는 그들의 얼굴을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빙글빙글 웃는 키 큰 아저씨와 매서운 눈매의 키 작은 아저씨.

 “난 이 세상 누구하고도 싸우지 않아. 민우 너도 그건 알잖니?”

 아버지는 누운 채로 계속 코맹맹이 소리를 하였다.

 “아니에요. 아버지는 그 아저씨들하고 싸운 거예요.”

 “그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너한테 나쁜 짓을 한 건 하나도 없잖아. 너를 깨워서 간식비 주어서 학교까지 보냈다던데.”

 민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 아저씨들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 아저씨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우리 방에 들어와서 온갖 것 다 뒤지고, 여기서 벌렁 누워서 잔 것도 얘기해요?”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그 아저씨들 나쁜 사람들은 아니야.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되거든 꼬박꼬박 인사해라.”

 “아버지, 난 죽어도 그 아저씨들 다시 만나기 싫어요. 아버지도 그 아저씨들 만나지 말아요.”

 “아니야!”

 아버지는 손을 내젓다가 말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많은 돈이었다. 

 “너 학교에 가져갈 돈 있지. 그걸 이 아버지가 다 구해왔지. 자 봐라. 쌀도 사고 밑반찬들도 잔뜩 사 왔다. 넌 이제 아무 걱정 할 것 없어. 그저 학교 열심히 다니고 공부 잘하면 돼. 알겠지?”

그러나 아버지의 음성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민우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뺑덕어멈보다 더 나쁜 네 엄마는 기다리지도 말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그러면서 아버지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민우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마다 이웃에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주소를 남기고 왔다.

 “민우야, 우리 이제 정말 엄마는 기다리지 말자.”

 “알았어요. 난 엄마 안 기다려요.”

 그렇게 말하는 민우의 볼에도, 옆으로 고개를 돌린 아버지의 볼에도 눈물이 흘렀다. 민우는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제야 피곤이 몰려왔다. 천근만근의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차려 놓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버지 옆에서 잠을 청했다. 다른 날과 다르게 민우는 금방 꿈속 나라로 찾아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재희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아침에 민우가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어느새 아침상을 마련하고 있었다.

 “어제 마련해뒀던 거다.”

 민우는 아버지와 맛나게 아침을 먹었다.

 “너 축구부 하고 싶다고 했지?”

 “아니오. 이제 그럴 필요 없어요.”

 민우는 재희의 말을 떠올렸다. ‘축구는 우리 학교에서 민우가 제일 잘 해.’ 재희는 다른 친구들에게 늘 그렇게 얘기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언제는 그렇게 축구부에 넣어달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민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 정해지면 고치지 못해요. 축구는 중학교 가서 정식으로 할래요.”

 “허허, 그 참 이상한 일이다. 난 멋진 체육복까지 사주려고 했는데.” 

 민우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웃었다.

 “오늘도 나가야 돼요?”

 “글쎄다. 연락이 오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있을 거다. 내가 전화비도 한꺼번에 냈다.”

 “혹 그 아저씨들이 찾아오면?”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 아저씨들한테 절대로 우리 집엔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재희가 안 보인다?”

 아버지가 재희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목이 막혔다.

 “학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민우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였다. 민우는 일부러 힘차게 학교로 향했다. 아버지만 매일 집에 들어온다면..... 이제 재희 생각은 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체육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던 민우는 개교 개념비 앞에서 소곤대는 아이들의 말을 모두 듣고 말았다. 

 “민우 걔 선생님하고 동상 뒤에서 얘기하는 거, 나 봤다.”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상필이었다.

 “무슨 애길 했는데.”

 “뻔하지.”

 “우리 반에서 걔만 급식비 못 냈잖아.”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선생님이 대신 내주셨겠지.”

 “말하자면 결식아동이라는 게 민우 같은 애를 말하는구나.”

 “그래서 걔는 키도 작잖아.”  

 민우는 운동장으로 뛰어가려다 말고 멈추어 섰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고는 어떻게 체육을 하였는지 자신도 몰랐다. 미친 듯 뛰고, 미친 듯 공을 찼다. 아이들이 무슨 말만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민우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금방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들이 몇 번이나 말을 붙였지만,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답던 학교 운동장이며, 교실이 자꾸 낯설게만 보였다. 학교 도서실에 가는 일도 그만두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어떤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기로 하였다. 아침에 먹었던 마음과는 달리 재희가 생각났다. 가리왕산이라는 곳에 한번 가 볼까? 그러나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 재희.

 생각했던 대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민우가 먹을 저녁상까지 가지런히 차려놓고 나갔다. 그러나 민우는 먹을 수가 없었다. 상필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민우는 언제 기회가 되면 상필이를 그냥 두지 않겠는다는 다짐을 하면서 두 주먹을 쥐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