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후 임신 사실을 안 ‘꾸마라깟사빠의 어머니’①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 시에 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한 후 좋은 가문의 남자와 결혼한 한 젊은 부인이 살고 있었다. 오랜 전생부터 많은 공덕을 지어온 그녀는 결혼 전부터 아라한과를 성취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따라서 세속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결혼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세속적 욕망에 대해 염오하는 마음이 깊어져 어느덧 세속적 삶에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되었고, 자연스럽게 출가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결혼하기 전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했었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했던 그녀는 혼기가 되자 부모의 주선에 따라 결혼했다. 그녀는 내심 결혼을 한 뒤 남편의 허락을 받아 출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그녀는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매사에 헌신적인 아내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어느 날, 라자가하 시에서 큰 축제가 열렸다. 화려한 장식이 거리에 들어찼고, 축제의 열기로 시민들은 들떠 저마다 치장을 하고 거리로 모여들었다. 거리는 인파들로 가득 찼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녀는 아무런 장신구도 하지 않은 채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치장을 하고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당신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군요.”

“그런가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몸이 32개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몸은 천신이나 범천이 만든 것이 아니고 보석, 황금, 전단향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이 몸은 하얀 연꽃, 붉은 연꽃, 푸른 연꽃 같은 자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어떤 불사(不死)의 수액이 채워진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더러운 곳에서 길러졌고, 죽음을 맞이할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약화되고 닳아 없어질 것이고, 쇠퇴하여 부서지게 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의 운명은 늘어나는 묘지와 같고, 욕망에 몰두한 것이며, 슬픔의 근원이고, 비통함의 늪이며, 병균의 거주처이고, 업력(業力)의 창고이며, 그 내부는 항상 악취가 풍깁니다. 몸은 죽음으로 생명력이 끝나고 결국 납골장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또한 몸은 온갖 벌레들의 거주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몸을 치장해야 하나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은 그 논리 정연한 반론에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나의 신랑이여, 정녕 제가 이 몸에 속기를 바라십니까? 변기를 장식하는 것도 치장이라 해야 합니까?”

아내의 질책 어린 질문에 남편이 난처한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이 그토록 몸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다면 어째서 비구니가 되지 않고 내게로 시집을 온 것이오?”

“그것은 부모님께서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허락을 해준다면 저는 오늘 출가를 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아내로서 또 며느리로서 할 만큼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는 집을 떠나 비구니가 되고 싶다는 아내의 간청에 남편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결혼 전부터 출가수행자가 되고자 했다니, 더 말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미 세속에 염오의 마음을 내고 있는 그녀의 성향을 알고 있었던 남편은 고심 끝에 아내의 출가를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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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부처님의 상가에 큰 공양을 올리고 아내의 출가를 주선해 주었다. 그녀는 남편의 축복 속에 기쁜 마음으로 비구니가 될 수 있었다. 그녀가 들어간 수행처는 라자가하 시의 상가(승단)를 책임지고 있던 데와닷따의 지도 아래 있는 비구니들의 수행처였다. 데와닷따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아난다와 우빨리가 출가할 때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타고난 성정으로 질투심과 함께 야심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막상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으나 바른 수행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구체적인 방법도 알 수 없기에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데와닷따의 지도 아래 수행하며 지내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자신이 출가하기 직전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츰 손발이 붓는 등 임신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임신 사실을 숨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불러와 아이를 가진 것이 명백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니들은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임신을 한 것이 아닌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출가한 이후 결코 음계(婬戒)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출가자로서 부끄럼 없는 도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곤경에 빠진 비구니들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녀를 라자가하 시 상가의 지도자인 데와닷따에게 데리고 가서 자초지종을 보고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스승이시여, 이 비구니는 신심을 가지고 출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임신을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저희는 그녀가 언제 임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엄격한 원칙주의자였던 데와닷따에게 비구니의 난처한 입장은 뒷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기의 명예만을 우선해 생각하는 성정의 소유자였다. ‘음, 나의 가르침을 받는 비구니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혹여 내게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데와닷따가 비구니들에게 말했다. 

“임신을 한 여인은 상가에 머물 수 없다. 이 여인을 나의 상가에서 추방해야 한다. 즉시 이 여인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라.”

그러나 여인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에게 애원해 어렵게 허락을 얻어 출가한 입장에서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돌봐주었던 비구니들에게 자신을 추방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비구니들이 데와닷따의 명을 따르려고 하자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수행녀들이시여, 제발 저를 나락으로 내몰지 말아 주세요. 저는 데와닷따에게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부처님께 출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코 음계를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추방을 하겠다면 차라리 저를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는 꼬살라 국의 수도 사왓티 시의 제따와나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비구니들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출가한 이후 어떠한 파계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함께 수행하면서 지켜본 그들이었다. 비구니들은 그녀를 데리고 라자가하 시를 출발했다. 그들은 무려 45요자나(약 500km)를 걸어서 불교 상가의 최고 스승인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사왓티 시에 도착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 여인으로부터 사정 이야기를 찬찬히 들은 부처님은 이 여인이 출가 전에 임신한 사실을 곧 파악했다. 다만 이교도들에게 비난받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상가회의를 소집해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부처님은 당신께서 이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계율에 밝은 우빨리(Upāli)장로를 대표로 유력한 재가신자인 위사카 부인과 아나타삔디까 장자, 쭐라 아나타삔디까 비구니, 빠세나디 국왕 등에게 이 여인에 대한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처리를 위임했다. 

조사의 총책임자가 된 우빨리 장로는 먼저 위사카 부인을 불러 여인의 임신시기를 밝히도록 요청했다. 위사카 부인은 이 여인을 커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출가를 한 시기와 임신 상태 등을 자세하게 검토해 이 여인이 비구니가 되기 전 세속에서 임신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사카 부인은 이 사실을 우빨리 장로에게 알렸다. 

“출가 이전에 임신한 것으로 출가는 정당하다.” 

우빨리 장로는 왕을 포함한 재판에서 여인에게 죄가 없음을 상가 내외에 선포했다. 부처님은 우빨리 장로를 불러 “쟁사를 잘 해결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 여인은 위사카 등의 보호 아래 열 달을 채우고 황금상과 같은 아들을 출산했다. 여인이 낳은 아들은 부처님의 요청에 따라 꼬살라 국 빠세나디 국왕의 양자로 들어갔다. 빠세나디 왕은 양자의 이름은 ‘왕자 깟사빠’라는 의미를 가진 ‘꾸마라깟사빠(Kumārakassapa)’로 지었다. 

궁 안에서 국왕의 보호 아래 자라던 꾸마라깟사빠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비구니라는 사실을 것을 알게 되었다. 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고민을 거듭한 꾸마라깟사빠는 생모처럼 자신도 부처님께 귀의해 비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빠세나디 왕의 허락을 받은 꾸마라깟사빠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출가의 뜻을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기쁜 마음으로 법문을 베풀고 출가를 허락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