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1-09-10 (금) 08:39끈질긴 세속의 유혹 떨쳐낸 ‘위자야’
세속적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출가를 단행한 출가수행자들에게도 이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다. 욕망을 조복 받았다고 확신하다가도 어떤 계기가 닥치면 불쑥불쑥 솟아나는 욕망에 좌절하거나 휘둘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끝내 출가의 삶을 포기하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수행자도 없지 않았다. 비구니 위자야(Vijayā)도 그런 수행자 중의 하나였다.
위자야(Vijayā)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의 셋째 왕비 케마의 친구였다. 그녀 역시 오랜 전생부터 여러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에서 해탈을 하기 위해 착하고 건전한 공덕을 쌓았다. 점차 착하고 건전한 것의 뿌리가 강해져서 천상계와 인간계 등의 선처(善處)를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이 탄생할 무렵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의 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케마 장로니가 출가하기 이전의 시절부터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케마와 우정을 쌓으며 한 가정의 아내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위자야는, 아름다운 미모에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었던 친구 케마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고따마 부처님이 지도하는 상가로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라움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부처님의 상가에 어떤 보물이 있기에 케마는 출가를 한 것일까? 분명 그곳에는 왕비라 하더라도 가질 수 없는 값진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을 갖춘 왕비의 자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케마가 출가할 리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최고의 지위에 있는 여인인 케마 왕비도 출가하는데, 내가 출가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용기를 내어 출가할 결심을 하고는 비구니들의 처소로 장로니 케마를 찾아갔다.
그녀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케마는 윤회에 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교법에 청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설했다. 위자야는 케마 장로니의 가르침을 듣고 외경이 생겨났고,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내 출가를 결심한 그녀는 옛 친구이자 진리의 스승인 케마 장로니에게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케마 장로니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출가시켰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성취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갖은 유혹을 떨치지 못해 위자야는 몇 번이나 머리를 기르고 환속했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머리를 깎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케마는 옛 친구 위자야가 세속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수행자로서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위자야를 어느 날 케마 장로니가 불러 따끔하게 경책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을 것을 격려하면서 그녀의 근기에 맞게 설법했다.
위자야는 옛 친구이자 스승인 케마의 간절한 가르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도 욕망에 대한 완전한 조복을 받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자신은 세세생생 윤회의 굴레에서 괴롭고 비루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위자야는 새롭게 결심을 하고, 수행자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 철저한 계행과 함께 정진력을 키워갔다. 이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새로운 사람처럼 확연하게 달라졌다. 케마 장로니의 지도를 받으며 위자야는 마침내 통찰을 확립하였고, 그 힘을 극대화하는 정진을 시작했다. 육근육경, 즉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들에 의해 나타나는 이 세상 전체, 즉 일체를 의미하는 12처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4성제와, 번뇌를 성도(聖道)로 이끄는 5가지의 힘(五力, 즉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새김의 힘, 집중의 힘, 지혜의 힘.)과, 이치를 말하는 5선근[5根, 즉 믿음(信), 정진(精進), 새김(사띠, 念), 집(定), 지혜(慧)의 능력]과, 깨달음을 얻는 7가지 방법[일곱 가지 깨달음 고리(七覺支), 즉 새김(사띠, 念), 탐구(擇法), 정진(精進), 희열(喜), 안온(輕安), 집중(定), 평정(捨)의 깨달음의 고리]과, 여덟 가지 바른길[팔정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런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환희심과 안락함으로 충만한 나날을 보냈다.
어느덧 인연이 무르익자 위자야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과를 얻었다. 위자야는 천신만고 끝에 자신이 이뤄낸 경지와 그 실천행을 성찰하면서 어느 날 대중 앞에서 감흥 어린 열반의 노래를 발표했다. 대중 앞에 선 그녀의 모습에서 당당함이 묻어 나왔다.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자재를 얻지 못하고
네 번인지 다섯 번인지
나는 승원을 뛰쳐나왔다.
수행녀[케마]를 찾아가서
공손히 여쭈었더니,
인식의 세계[12처]와 감각의 영역[18계]에 대하여
그녀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4성제]와
능력과 힘과 깨달음의 고리와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은
최상의 의취[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녀의 가르침을 듣고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니
나는 밤의 초야에
전생의 삶[숙명통]을 기억하였다.
밤의 중야에
하늘눈이 청정해졌고[천안통]
밤의 후야에
어둠의 다발이 부수어졌다.
그래서 희열과 행복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어둠의 다발이 부수어[누진통]졌으니,
이레 만에 두 발을 폈다.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던 위자야는 고따마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에 머물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사왓티 시로 들어갔다.
사왓티 시에서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돌아와 대낮을 보내기 위해 안다 숲[안다와나, 장님들의 숲]을 찾아갔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 대낮을 보내기에 접합한 한 나무 아래 앉았다.
그런데 악마 빠삐만이 위자야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심을 일으켜서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하려고 위자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빠삐만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거주하면서 욕계 6천을 관장하는 실력자로, 인간계의 수행자들이 선정수행을 통해 자신이 지배하는 욕계를 벗어나 색계나 무색계, 더 나아가 성자의 경지(출세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자 했다. 위자야가 선정에 들어있는 나무까지 가까이 다가온 빠삐만이 시로 말을 걸었다.
“그대는 젊고 아름다우며
나 또한 젊은 청년이니
사랑스러운 이여, 오라.
다섯 악기[북, 드럼, 비파, 관악기, 탬버린과 같은 타악기]로 즐겨보세.”
빠삐만의 유혹을 들은 위자야는 ‘시를 읊는 자가 사람인가, 아닌가? 누가 이 시를 읊조리는가?’라고 생각했다. 이어 그녀에게 ‘이것은 나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심을 일으켜서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하려고 시를 읊조리는 악마 빠삐만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수행을 방해하는 자가 빠삐만임을 확신한 위자야가 시로써 대답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형상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을
나는 그대에게 넘겨주니
악마여, 그것은 내게 필요하지 않네.
이 취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부패하는 몸에 대하여
나는 곤혹하여 참괴하니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갈애는 내게서 근절되었네.
미세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선 뭇 삶[중생]들,
비물질의 세계에서 지내는 자들,
고요한 선정을 성취한 자들에게도
모든 곳에서 그 어둠은 사라졌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
악마 빠삐만은 위자야의 게송을 듣고는 이미 그녀가 무든 무명의 어둠에서 벗어났으며, 여덟 가지 선정의 경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명상을 즐기고, 색계[미세한 물질의 세계]와 무색계[비물질의 세계]를 드나들며 그 세계에 거주하는 하늘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경지에 올랐음을 간파하고,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