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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여성수행자들11

이 학종 | | 2021-08-27 (금) 08:25

지혜로 호색한 물리친 ‘쑤바 깜마라디따’ 


부처님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열악한 것이었다. 왕실이나 장자, 부호의 집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대다수 여성들은 남성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저급한 풍토가 가져다주는 폐해는 출가수행자가 된 여성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삭발하고 가사를 걸친 여성 수행자들은, 심지어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여성들이 마주쳐야 되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쑤바 깜마라디따(Subhākammāradhitā)는 오랜 전생 동안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에서 해탈을 위해 착하고 건전한 것의 뿌리를 심었으며, 해탈의 자량을 키우면서 좋은 곳을 윤회하다가 궁극적인 앎이 성숙해지자,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마가다 국 라자가하 시의 금세공사의 딸로 태어났다. 우아함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용모 또한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는 ‘쑤바’라는 이름을 얻었다. 점차 성년이 되어 그녀가 세상의 이치를 알기 시작했을 때, 고따마 부처님이 라자가하 시에 도착해 대중들을 위한 법회를 열었다. 쑤바 깜마라디따도 이날 고따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아주 단단하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났다. 



막 비구계를 받은 비구가 가사와 발우를 들고, 탁발을 위해 수행처를 나서고 있는 모습.(사진=이학종)
 


쑤바 깜마라디따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 예경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은 한눈에 그녀의 정신능력이 충분히 성숙했음을 간파하고, 그녀의 의도에 따라 네 가지 진리[사성제]를 포함한 중요한 가르침을 정성을 다해 설법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천 가지 방법으로 장식된 흐름에 든 경지를 확립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재가에서 생활하는 한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마침내 출가의 마음을 일으켰다. 결심을 굳힌 그녀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를 찾아가 출가를 허락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출가 후 쑤바 깜마라디따는 수행녀로서의 계행을 확립하고 궁극의 높은 길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통제일’ 웁빨라완나의 지도 아래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갑작스러운 출가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친척들은 그녀의 수행처까지 찾아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면서, 많은 돈이나 많은 재물을 보여주며 환속을 재촉했다. 

쑤바 깜마라디따는 자신을 찾아와 환속을 재촉하는 등 수행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망언을 내뱉는 친척들에게 재가의 생활과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위험을 설명하는 게송을 읊으며 꾸짖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중생들이 어리석음으로 인해 허황되거나 반복해서 악업을 짓는 행위들을 결단코 물리치겠다는 단호한 입장 표시였다. 


예전에 가르침을 들을 때

나는 깨끗한 옷을 입은 소녀였다.

방일(放逸) 하지 않은 나에게

진리에 대한 꿰뚫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모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강력한 불쾌를 느끼고

개체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두려움을 보고

오로지 나는 멀리 여읨[출가와 열반]만을 원했다. 


친지의 무리와 하인들과 일꾼들과

부유한 마을들과 밭들,

기쁘고 즐길 만한 것들을 버리고,

적지 않은 재산을 버리고 나는 출가했다.


이처럼 잘 설해진 올바른 가르침에

믿음으로 멀리 여읨을 이루어[고귀한 계율에 출가하여]

금이나 은을 버렸는데,

그것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나에게 옳은 일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은이나 금은 

깨달음이나 적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수행자에게 적당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고귀한 재물 [믿음, 계행, 배움, 보시, 지혜]이 아니다.


그것은 탐욕이고, 광기이고,

우치이고, 티끌[탐진치 세 가지 티끌]의 증장이다.

의혹이고, 커다란 곤경이다.

거기에는 견고가 없고 확립이 없다. 


그것에 탐닉하고, 방일하여

마음이 오염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며

널리 싸움을 일삼는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탐닉하는 자에게는

살해, 포박, 처벌, 상실, 슬픔, 비탄과 같은

많은 불행이 보인다. 


친지들이여, 그대들은 왜 나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일으키도록 충동하는가?

내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두려움을 보고 출가한 것을 그대들도 안다.


금화나 황금으로

번뇌들이 파괴되지 않는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은

적이고, 살인자고, 원수이고

밧줄로 포박하는 자이다.


친지들이여, 그대들은 적들처럼

왜 나를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빠뜨리려 하는가?

내가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출가한 것을 그대들은 알고 있다.


남겨진 음식[탁발음식],

이삭줍기[차례로 집을 도는 것], 그리고 분소의

그것이 나에게 알맞고

출가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위대한 선인들은 천상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렸다.

안온의 상태[욕망·존재·견해·무지의 멍에] 가운데 해탈하였으니,

그것은 동요 없는 지복을 성취했다.


피난처가 없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만나지 않기를 나는 바라니,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적이며 살인자이니,

불의 다발과 같은 괴로움이다.


이러한 탐욕은 장애로 가득하고

공포로 가득하고 고뇌로 가득하고

형극(荊棘)으로 가득하고 

아주 위험스러운 것으로 크나큰 우치(愚癡)의 원인이다. 


                         -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출가 직후 평온하고 고요한 주변 분위기가 좋아 명의(名醫) 지와까의 망고 숲에서 수행하던 비구니 쑤바 깜마라디따(Subhākammāradhitā)가 괴한에게 능욕을 당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심각한 부처님 상가의 현안이기도 했던 비극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쑤바 깜마라디따가 탁발을 마치고 망고 숲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아름답고 단아한 모습에 끌린 한 호색한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멈춰 선 쑤바 깜마라디따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벗이여, 그대는 왜 길을 막고 있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출가한 비구니에게 접근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나의 스승께서는 감각적 쾌락을 금하라는 엄격한 계율을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존중하고 따릅니다. 나는 티 없는 청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나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까? 그대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온합니다. 그대는 왜 길을 막고 있습니까?”


그러자 호색한이 대답했다. 


“그대는 젊고 아름답소. 무슨 나쁜 일을 저질렀기에 황색 가사를 걸치고 사문처럼 나선 것이오? 그 추한 가사를 벗어던지시오. 그대의 아름다운 몸은 그따위 더러운 넝마가 아니라, 까시 산(産) 비단으로 감쌀 만합니다. 그대보다 더 사랑스런 여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오. 자 나와 함께 인생을 즐깁시다. 봄의 첫 새벽, 청춘의 즐거움을 누릴 더 좋은 시기는 없소. 나무들 꽃으로 덮여, 하늘엔 향기가 가득하지 않소. 숲에 혼자 들어가서 무슨 즐거움이 있겠소? 맹수들이 출몰하는 인적이 드문 두려운 숲에 당신은 동행 없이 혼자 들어가려는 것이오? 금빛 인형처럼, 천상 정원의 여신처럼 당신은 걷고 있소.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그대에게 온갖 환락을 누리게 해드리리다. 무엇 때문에 그대는 그 사랑스런 육체를 시들게 하고 있는 것이오? 연못에서 꺾어낸 연꽃처럼 실없이 시들게 하려는 것이오?” 


호색한의 황당한 말에 쑤바 깜마라디따가 반박했다. 

 

“어리석은 이여, 결국은 부서질 이 육신은 시체로 가득 찬 무덤의 묏자리만 하나 더 늘려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이런 육신에게 무슨 가치를 보았기에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까? 그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호색한이 물러서지 않고 다시 말했다. 


“이 세상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극히 드물다오.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의 눈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색하게 하고 있소. 그대의 눈은 어린 사슴과 같고, 산속의 요정과 같습니다. 당신의 눈을 보면 나의 감각적 쾌락은 더욱더 솟아날 뿐이오. 티 없는 금빛 얼굴 위에 당신의 눈은 연꽃 봉우리같이 청초하고 빛나고 있소. 그대가 설령 멀리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소. 그대의 긴 눈썹, 청순한 눈빛, 그대의 눈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오. 누가 그 고운 눈을 보고 잊을 수 있으리! 사랑스런 여인이여, 그 의미 없는 생활을 버리고 그대가 가진 특별한 자연의 선물을 즐깁시다. 내 그대에게 간절히 비나니, 그대를 보고 난 뒤, 나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오.”


호색한의 대답을 들은 쑤바 깜마라디따가 거듭 타일렀다. 


“벗이여, 진전 없는 길을 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대를 망치는 어리석은 행위를 중단하십시오. 부처님의 제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마치 달에게 애원하거나, 장대한 히말라야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천상에서도 이 지구상에서도 나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욕망은 뿌리째 뽑혔습니다. 나는 이미 모든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이 단출한 삶의 기쁨을 택했습니다. 마치 그릇 속의 독이 증발하듯이. 이런 것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대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그대는 전혀 쓸 데 없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대의 행위는 부질없으며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을 유혹한다면 그대는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은 괴로움이나 즐거움, 칭찬이나 비방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림에 머뭅니다. ‘인연 따라 생긴 것을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나는 위대한 스승 부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팔정도를 타고 갑니다. 나에게 번뇌의 화살은 뽑혔습니다. 나는 막대기와 줄로 만든 화려하게 색칠한 춤추는 꼭두각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만일 이 꼭두각시의 막대기나 줄들을 떼어내고 던져 버리면 흩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꼭두각시의 형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까? 어느 것을 꼭두각시라 하겠습니까? 나의 몸도 이와 같습니다. 육신의 특성(현상)을 떠나서 육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특성들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어느 것을 육신이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이여, 그대는 사라진 신기루 같은, 꿈속의 황금나무 같은, 군중 속에서 보여주는 마술과 같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욕에 불타는 이 젊은이는 쑤바 깜마라디따의 간곡한 말에도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범부가 애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쑤바 깜마라디따는 잠시 생각했다. ‘저 어리석은 자가 악의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에게 욕망의 부질없음을 알려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벗이여, 그대가 그토록 찬탄하는 나의 눈은 구멍 속의 작은 구(球)로서 중앙에 거품이 있고 눈물도 나고 눈곱도 낍니다. 다양한 양상들이 눈의 모양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대는 이런 내 눈에 반한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이 두 눈을 뽑아 그대에게 준다면 만족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대는 날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이는 당황했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쑤바 깜마라디따 비구니가 다시 말했다. 


“벗이여, 나는 이 더러운 육체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달려 왔습니다. 나는 이따위 몸뚱이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쾌락은 날선 칼이요, 인간의 매력이란 망나니의 도마와도 같습니다. 나는 거기서 어떤 기쁨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다시 반박했다.


“고행자들의 그따위 말에 속지 마시오. 그들은 온갖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 더 이상 향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정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단 한 번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유일한 향락의 기회를 내던져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에 쑤바 깜마라디따가 대답했다. 


“벗이여, 그대가 말한 대로 나이가 들었을 때야 출가한다고 생각하는 수행자나 바라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행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끼야 족 출신의 성자,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나이 든 사람이 수행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어찌 젊은 사람이라고 그런 행복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쑤바 깜마라디따 비구니와 젊은이의 논박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맛도 보지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감각적 쾌락을 비난할 수 있겠소?”

“젊은이여, 나는 충분히 그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런 쾌락을 탐닉하는 자들이 그 욕망 때문에 결국 어떤 고통을 받는지 똑똑히 보아왔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탐욕과 증오와 미혹의 결과로 끝내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빔비사라 왕이 그와 같은 범죄자를 처형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자기 행위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와 말을 마친 쑤바 깜마라디따는 잠시 침묵한 뒤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그토록 아름다운 자신의 눈을 아무런 애착도 없이 뽑았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란 호색한은 말문이 막힌 듯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그의 당황하는 모습을 살펴본 쑤바 깜마라디따가 말했다.


“어리석은 이여, 여기 이 눈을 가져가시오. 이것이 그토록 그대가 원하던 것이니….”


그리고 그것을 그 남자에게 주었다. 그러자 남자의 욕정은 즉시 사라졌다. 그리고는 쑤바 깜마라디따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아, 아니오. 내가 잘못했소.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그대의 눈이 원래대로 복구되기를 빕니다. 청정한 삶의 여인이여. 이런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오. 그대와 같은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마치 불길을 끌어안는 것과 같음을 알았소. 나는 마치 독사를 움켜쥔 것 같소. 그대의 눈이 원래대로 복구되기를 빕니다. 제발 나를 용서해 주시오.”


쑤바 깜마라디따는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 상가로 돌아와 존귀하신 스승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는 순간 놀랍게도 그녀의 눈은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부처님을 만난 자리에서 쑤바 깜마라디따는 호색한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부처님은 쑤바 깜마라디따의 능력과 용기, 그리고 상황을 처리한 그녀의 방법을 다음의 게송으로 칭찬했다. 


진리에 입각해 있는

이 황금 세공사의 딸 ‘쑤바’를 보라.

부동(不動, 최상의 경지)을 성취하여

나무 아래서 선정에 들어 있다. 


웁빨라완나에게 지도를 받아

출가한 지 오늘로 여드렛날이다.

믿음을 갖추었고 올바른 가르침으로 빛나니,

세 가지 명지(明智, 부처나 아라한이 갖춘 세 가지의 자유자재한 지혜)를 이루었고

죽음의 악마를 물리쳤다. 


이 빚이 없는 자유민,

감각 능력을 닦은 수행녀는

일체의 멍에를 풀어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해 마치고 번뇌를 여의었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사진=이학종)



게송으로써 쑤바 깜마라디따 비구니를 칭찬한 부처님은 이어 외롭게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비구니 제자들이 당면한 위험을 염려하면서, 앞으로 비구니들은 외진 거처에서 머무는 것을 피하라고 당부했다. 

부처님으로부터 해야 할 일을 해 마쳤다는 최고의 찬사를 들은 쑤바 깜마라디따는 자신이 이룬 경계를 이렇게 시구로써 노래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은 

공포스러운 공격과 같고

뱀의 머리와 같으나,

어리석고 눈먼 일반 사람들은 그것들을 즐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라는

진흙탕에 사로잡혔으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다.

삶과 죽음의 끝을 그들은 곧바로 알지 못한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 때문에

나쁜 존재의 길로 나아가며

자신의 질병을 가져다주는 길로

사람들은 다양하게 걸어간다.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적의를 낳는 것, 고뇌를 주는 것, 

오염시키는 것, 세속의 미끼, 

결박시키는 것, 죽음의 속박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광기를 일으키고, 속이고, 마음을 혼란시키는 것으로

중생을 오염시키기 위해 

악마가 펴놓은 그물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끝없는 위험이고, 고통은 많고, 해독은 크고, 

쾌미는 적을뿐, 갈등을 만들고

밝은 덕성을 해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을 원인으로

그처럼 내가 불운을 겪고 나서, 

항상 나는 열반을 기뻐했으니,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청량한 상태를 바라는 자로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전장을 건넜으니,

그 결박이 부수어진 가운데

나는 방일하지 않고 지내리라.


슬픔도 없고, 티끌도 없이

안온한, 여덟 가지 고귀한 길,

위대한 선인께서 건너간

곧바른 그 길을 따르리라.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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