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 

화개암.

민우는 화개암 앞에 펼쳐진 소나무 숲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hn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언뜻 겨울산을 넘어가는 바람결 위로, 한 떼의 양털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새떼들이, 땅에서는 죽은 갈대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가득한 저물녘이었다. 

 어쩐 일인지 재희가 오지 않았다. 물론 민우도 정수사에 가지 않았다. 민우의 가슴속에는 눈물 고인 재희의 얼굴이 하루 종일 어른거렸다. 민우는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목련 밑에 서 있었다. 마리산의 바람, 마리산의 구름, 그것을 헤아릴 여유는 없었지만 무심히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곤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황혼이 하늘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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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우야, 여기다!”

 정수사 계곡 오른쪽에서 민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얼른 뛰어갔다. 뜻밖에도 몽연 스님이었다. 모자 달린 긴 비옷을 입고, 스님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재희도 있겠지. 민우는 어두운 계곡 쪽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재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눈 덮인 소나무 낙엽 더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너구리가 다쳤다.”

 꼭 복슬복슬한 강아지처럼 생긴 짐승이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왼쪽 발이 덫에 치여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놈이 내가 덫을 빼주려고 하니까 자꾸 발버둥을 쳐서.......”

 민우는 차마 그 비참한 광경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의 소리처럼 스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꼭 잡아라!” 

 민우가 얼른 너구리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의외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녀석이 고개를 돌렸지만 민우는 있는 힘껏 머리를 틀어쥐었다. 

 “그렇다고 너무 힘주지 마라. 사람이 갑자기 잘못 건드리면 죽는 수가 있다.”

 두꺼운 쇠로 만든 덫은 마치 가위처럼 너구리의 발목을 옥죄고 있었다. 스님이 힘겹게 덫을 치웠다. 

 “녹이 슨 덫이라 많이 다쳤어.”

 스님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능숙하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미안하다.”

 스님이 너구리의 머리를 쓸어 주며 말했다.

 “자, 이제 놓아주거라.”

 민우가 손을 놓자, 너구리는 아래위를 살피더니 절뚝거리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괜찮을까요?”

 “사람 손만 타지 않는다면...... 저놈들은 제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있어. 웬만한 큰 상처는 다 낫지. 단지 날씨가 추워서 걱정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데리고 보호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저놈들은 사람하고 있으면 병이 나. 될 수 있으면 접촉을 하지 않아야지.”

 스님은 너구리가 완전히 사라진 숲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밀렵꾼들이 너무 많아.”

 “밀렵꾼요?”

 “남 몰래 산짐승들 마구 잡는 사람들. 고생했다. 이제 들어가거라.”

 “스님은요?”

 “조금 있다가 난 저 위까지 돌아봐야겠어. 이런 덫이 열 개도 더 있을 거다. 갑자기 많아졌어. 분명히 동네 사람들이 한 건 아닌데......”

 “저도 갈게요.”

 “아니다. 난 정수사로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스님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정수사로 내려가고 있었다. 재희는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스님은 굉장히 빨랐다. 금방 민우의 눈에서 멀어졌다. 민우는 스님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은 확실히 다른 사람과 달랐다. 마리산녘에 있는 작은 동물은 물론이고, 절 마당 앞에 있는 나무 하나 풀 하나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  

 민우는 저녁 시간이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방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눈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멀거니 자신을 쳐다보던 재희의 눈망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구리의 서늘한 눈과 스님의 따뜻하던 눈빛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들은 어쩐지 서로 닮아 있었다. 민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이 꿈이라면...... 그러나 엄연히 재희는 스님을 따라 강원도로 갈 것이다. 꼭 비나 눈이 내릴 것 같은 찌푸린 하늘, 바람이 심하게 나뭇가지들을 흔들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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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거미가 거의 내릴 즈음.

 몽연 스님과 재희가 오리나무 길로 나타나서 극락전 앞마당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웬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희도 스님과 똑같이 민우가 있는 방 쪽으로는 아예 눈길을 두지도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가고 있었다. 스님은 간편한 승복 차림이었고, 재희는 작은 바랑을 지고 있었다. 재희는 앞장을 선 스님을 다소곳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모습이 민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처음에 급하게 고개를 돌렸던 민우는 얼른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민우의 발자국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재희는 스님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길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노련한 스님을 따라 재희도 자로 잰 듯이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스님과 재희가 섭섭했다. 쓸쓸했다. 

 민우는 방안으로 돌아와 벌렁 드러누웠다. 

 방밖은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거름 후의 조용함. 

 “민우야!”

 그 조용함을 깬 것은 재희였다.  

 방문이 급하게 열렸다. 

 민우는 일부러 누운 채로 있었다.   

 “가자.”

 “어딜?”

 민우는 일부러 무관심하게 눈을 껌벅거렸다. 

 “스님이 다쳤어.”

  민우가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장사골에 갔다가”

 민우의 손에는 습관처럼 스님이 사 준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민우와 재희는 힘껏 달렸다.

 “밤에 거길 왜 가셨어?”

 민우는 일부러 능청을 덜었다.

 “사람들이 덫을 놨어.”

 “낮에 치우지.”

 “그러면 저녁때 또 놔.”

 “그러면 덫을 놓는 사람들이 마을에 산다는 얘기잖아.”

 “고려산하고 마리산, 혈구산에 열 명도 더 있대.”

 “난 한 번도 보질 못했는데......”

 “밤중에 숲속에는 한 번도 가질 않았을 테니까.”

 처음에는 건성으로 대답하던 민우가 오히려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면 꼭 피리 소리처럼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덫에 걸린 오소리 울음소리.”

 “여기에 오소리도 있어?”

 “없는 줄 알았는데. 많이 있대.”

 “그러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오소리 한두 마리 살리려고 여기까지 올 경찰이 어디 있어. 차라리 총이 낫지.......”

 “그게 무슨 말이야?”

 “총을 쏘지 않고 덫을 놓는단 말이야. 산 채로 잡으려고......”

 “어휴!”

 “이곳이 오소리하고 너구리가 많다는 소문이 나서......”

 “아까 내가 따라갔는데 왜 아는 척도 안 했어?”

 민우가 비로소 볼멘소리를 했다. 재희가 피식 웃었다.

 “스님하고 나는 덫이 어디에 있는 줄 잘 알지만 넌 그렇지가 않잖아. 너 다칠까 봐 그랬어.”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땐 재희가 꼭 누나 같아 보였다. 

 민우와 재희가 따라 숨을 헐떡이며 쑥밭머리에 도착해 보니, 스님은 풀숲에 쓰러져 있었다. 이미 날이 완전하게 어두워져, 민우는 우선 스님의 얼굴에 전등을 비췄다. 

 심한 충격을 받은 탓인지 하얘진 얼굴인데도, 스님이 민우를 보고 싱긋 웃었다. 얼굴에 온통 검버섯이 피었지만, 스님의 눈빛은 언제나 따뜻했다. 스님이 손을 내저었다. 민우는 안심이 되었다. 스님의 눈동자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목이...”

 재희가 안타깝게 말했다.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덫에 치인 것이다. 

 “누가 놨을까?”

 재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빨리 가자.”

 민우가 등을 내밀었다. 의외로 스님의 몸은 가벼웠다. 스님이 오른쪽 어깻죽지를 민우에게 걸쳤다. 재희가 손전등을 들었다. 거의 반 시간 남짓 스님을 부축하여 정수사로 내려올 때까지 재희와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님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고?”

 허리가 꼬부라진 공양주 할머니가 급하게 뛰어나왔다.

 “스님이 다쳤어요.”

 재희가 울먹였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밤에는 올라가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빨리 병원에 연락해라.”

 “난 병원에 안 갑니다.”

 스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할머니는 스님의 고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병원은커녕 약국도 가지 않은 스님이었다. 스님은 모든 약은 산에서 해결했다. 스님의 방엔 말려 놓은 약초들이 꽁꽁 묶여져 있었다.

 재희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갔다.

 “어떠신가요?”

 “좀 많이 다치셨어. 그렇지만 곧 나을 거다.”

 “병원에는?”

 “병원에 갈 분이 아니시지.”

 “그냥 다친 게 아니에요. 누가 일부러.......”

 “그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겠지.” 

 “할머니가 그 사람들을 봤어요?”

 “......”

 “마을 사람은 아니죠?”

 “마을 사람들이 누가 스님을 해쳐?”

 할머니가 싱긋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요 며칠 통 말 없었다. 더구나 스님이 다쳤는데......  처음과 아주 놀랐던 것과는 달리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머니?”

 “왜?”

 역시 할머니는 얼굴에 엷은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민우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가 아주 작게 말했다. 

 “스님이 저렇게 다리를 다치셨으니 당장 강원도로 가지는 않을 것 아니냐.”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해놓고 할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금방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민우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연신 눈물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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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우가 얼른 말을 바꿨다.       

 “재희는요?”

 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약국에 갔지. 아무리 스님이 안 드신다고 해도 발에 부기 빼는 데는 그래도 양약이 최고거든. 스님한테는 비밀로 하기로 하기로 했다. 약초 삶는데 슬쩍 넣으면 스님도 모르시거든. 설령 아셔도 그냥 드시지. 너도 알았지?”

 할머니가 다시 눈을 찡긋거렸다.

 “네.”

 민우도 웃고, 눈에 함초록 눈물을 매단 할머니도 웃었다.

 “할머니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떴어요.”

 “원래 눈이 많이 오고 나면 며칠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지. 그렇지만 별 얘기는 이제 나한테 하지마라.”

 “왜요?”

 “우리 재희가 있잖아.”

 “예?”

 “재희한테 별 얘기를 들어봐. 세상이 바뀌지. 그래서 나도 이제 별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

 “정말요?”

 “별도 이름이 무지하게 많더라. 별 이야기가 나오면 완전 따발총이야.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아. 고 어린 것 머리에 어쩌면 그렇게 많은 별이 들어 있는지. 민우 너도 놀라게 될걸.”

 “거짓말이죠?”

 “별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야. 그 이름으로 보지.” 

 “믿기지 않으면 재희한테 물어봐.”

 언제부터인가 재희의 책상 벽에는 별자리 도판이 붙어 있었다. 오리온자리, 궁수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등 온갖 별들의 이름이 적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