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설법제일 ‘담마딘나’⓵ 

최고의 미모와 권력을 자랑하던 마가다 국의 왕비 케마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문이 라자가하는 물론 잠부디빠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부처님이 이끄는 상가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더구나 케마가 출가한지 15일 만에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이 된 것은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케마의 출가를 계기로 라자가하 시에서는 여인들의 출가가 잇따랐다. 그들 가운데 담마딘나(Dhammadinnā, 法施)라는 라자가하 시의 부호 위사카(Visākha)의 아내가 있었다. 

담마딘나는 이번 생에 태어나기까지 오랜 전생에 걸쳐 수많은 공덕을 지었다. 빠두뭇따라(Padumuttara) 부처님 당시에는 항싸바티 시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삶을 살았다. 그때 담마딘나는 모든 마음의 작용이 소멸된 선정상태인 멸진정(滅盡定)에 들었다가 깨어난 높은 경지의 수행자에게 존경과 공경을 표하고 아낌없는 보시를 올린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천상계에 태어났다. 그녀는 그 이후에도 천상계와 인간계를 윤회하다가 풋싸(Phussa) 부처님 당시에는 일꾼의 집에 태어나 살았다. 담마딘나는 그 생에서도 보시행에 관한한 남다른 넉넉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역시 오랜 전생부터 이어져온 공덕행의 결과였다. 그녀는 ‘스승의 두 형제 가운데 한 사람에게 보시를 올리라.’는 주인의 지시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보시를 올리면서 더 많은 공덕을 쌓았다. 공덕 짓기에 관한한 양보를 모르는 선업의 공덕으로 그녀는 깟사빠(Kassapa) 부처님 당시에 까씨(Kasi) 국의 왕 끼끼(Kiki)의 집안에 입태되어 일곱 자매 중의 하나로 태어났으며, 이후 이만 년 동안 청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담마딘나는 수승한 공덕의 힘으로 인해 천상계와 인간계와 같은 좋은 세계에서 윤회하며 살아오다가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라자가하 시의 한 훌륭한 가문에 태어났다. 성년이 되자 그녀는 위사카라는 이름의 라자가하의 부호에게 시집을 갔다. 

크게보기

미얀마의 여성출가수행자 '띨라신(Thilashin)'들이 쉐다공 대탑에서 테라와다 불교의식을 하고 있다. 틸라신은 계(8계 또는 10계)를 지키는 여성 출가수행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사진 이학종) 

그녀의 남편 위사카는 재가의 생활을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하는 재가의 수행자였다. 그는 빔비사라 왕의 초청으로 라자가하에서 열린 부처님의 첫 법석에 참석해 법문을 경청했다. 이 법석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난 후 라자가하에서 큰 법회를 열겠다는 빔비사라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법회에는 빔비사라 왕을 비롯해 왕실과 대신들, 수많은 마가다국의 백성들이 참석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서 첫 법문을 하던 날, 무려 11만 명의 백성들이 예류과(수다원)를 얻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 위사카 역시 이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다원이 되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 위사카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가르침에 따라 수행해 더 높은 단계인 사다함이 되었다. 그런데 사다함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까지 완전하게 극복한 경지는 아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삶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사카의 정진은 물러섬이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약 5년 동안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위사카는 재가 수행자로서의 이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위사카의 수행력은 점차 깊어지고 강력해졌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더 수행에 전념하여 일래(一來, 사다함)과를 뛰어넘어 ‘돌아오지 않는 님(불환과)’의 경지, 즉 아나함과를 성취했다. 그 후 그는 세속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염오(厭惡)의 마음을 일으켰고, 급기야 ‘이제 모든 재산을 아내 담마딘나에게 넘겨주고 한가롭게 여생을 보내야겠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나함이 된 후 위사카 장자의 삶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과 악의가 완전하게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나함과는 계를 완성하고 사마디(삼매)도 완전한 경지에 올랐으며, 통찰지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 즉 유신견과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의심, 감정적 욕망에 대한 유혹과 적의가 모두 사라진 높은 단계의 성자에 해당하는 경지였다. 이 경지에 오른 위사카에게 세속적 삶이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아나함이 된 위사카 장자는 포살일이 되면 사원으로 가서 8계를 수지하고 사원에서 밤을 지새운 후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부처님 당시 사원(수행센터)에서는 살‧도‧음‧망‧주를 금하는 기본 5계와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계, 춤추고 노래하고 치장하지 않는 계, 높은 의자와 화려한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계 등 3가지를 더 보태 모두 8계를 지켰다. 

남편이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처럼 아내 담마딘나는 창문에 서서 귀가하는 남편을 내려다보았고, 남편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어 보이곤 했었다. 그런데 아나함과를 성취한 후부터는 위사카의 행동이 달라졌음을 담마딘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날도 위사카는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아내를 쳐다보지 않은 채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면서 2미터 정도 앞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현관으로 들어와 누각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에도 위사카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길을 발 아래로 던진 채 고요하게 걸음을 옮겼다. 담마딘나는 평소와 달리 눈에 띄게 변한 남편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식사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담마딘나는 식사시간이 되자 평소처럼 남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위사카는 식사를 하면서도 침묵했다. 평소 같았으면 같이 먹자고 권하며 정감 깃든 대화를 나누었을 남편이었지만 눈에 띌 만큼 생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식탁에서의 고요한 태도는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알아차리며 음식을 먹는 수행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위사카는 저녁이 되어도 부부가 같이 사용하는 방으로 오지 않고 혼자서 작은 침상에서 잠을 잤다. 분명하게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담마딘나에게는 약간의 불안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무슨 일어난 것일까? 왜 남편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궁금증에 빠져 있던 담마딘나는 사흘째 되던 날 밤 위사카가 잠든 침실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 남편의 의중을 살피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서 있었다. 담마딘나를 발견한 위사카가 물었다. 

“담마딘나여, 적당한 시간이 아닌 때 무슨 일로 여기에 왔습니까?”

“적당한 시간은 아니지만 이렇게 와야만 하는 사정이 있지요. 여보, 왜 당신은 엊그제 집으로 돌아올 때 나의 손을 붙잡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식사하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혹시 나에게 어떤 잘못이라도 있나요? 설마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담마딘나여, 나는 다른 여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와 당신 사이를 이간질했나요?”

“그런 일은 없소.”

“그러면 저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서 이러시는 겁니까?”

아내의 질문을 듣고 있던 위사카가 말했다. 

“담마딘나여, 당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뒤 나의 미래를 결정할 출세간의 법을 얻었습니다. 내가 법을 깨달은 첫 번째(수다원)와 두 번째(사다함) 경우에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물질적 관계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얻은 세 번째 법(아나함)은 특별한 것이고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있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나는 극도로 청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여자의 몸을 접촉할 수 없고, 기름진 음식을 갈망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러게 하지 않아야 할 원리를 꿰뚫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이 집에서 사십시오. 다만 당신과 나는 남매와 같은 사이로 지냅시다. 이 집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재물을 가지고 당신의 집으로 가도 좋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난데없는 말을 듣자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기 재산을 가지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는 게 정상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담마딘나는 오래 동안 침묵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남편을 향해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오늘부터 나는 세속 일에 관여하지 않고 한적하게 지낼까 합니다.”

돌연한 남편의 태도에 담마딘나는 난감해졌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그럼 나보고 당신이 뱉은 침을 받으라는 것입니까? 당신께서 그렇게 결심하셨다면, 나도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겠어요.”

담마딘나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위사카가 흔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아주 좋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위사카 장자는 한 마디로 아내의 출가를 허락했다. 그는 예서 더 나아가 담마딘나를 황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워서 많은 공양물과 함께 수행녀의 처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때 위사카 장자가 아내 담마딘나의 출가를 위해 사용한 가마는 빔비사라 왕이 왕비 케마가 출가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가마였다. 아내의 출가를 축하해 주기 위해 위사카 장자가 왕궁으로 빔비사라 왕을 찾아가 가마를 빌린 것이었다.

남편의 배려로 여성 수행자의 처소로 들어간 담마딘나는 출가 이후 명상 주제를 붙잡고 며칠간 그곳에서 지내다가,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살기 위해 궤범사와 친교사에게 가서 말했다. 궤범사는 아사리와 같은 말로 계의 스승[戒師]를 의미한다. 규칙·규범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스승이자 바른 행동을 보여주며 제자를 가르치므로 정행(正行)이라고도 불렸다. 친교사는 계를 줄 자격을 갖춘, 수행 기간이 길고 지위나 덕이 높은 수행자다. 그런데 여성 출가자들의 수행처는 여성들의 잇따른 출가자들로 인해 매우 북적였다. 그러자 담마딘나는 좀 더 한적한 장소에서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존귀한 수행녀들이여, 저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보다 조용한 처소로 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수행녀들은 기꺼이 담마딘나가 원하는 장소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담마딘나는 조용한 수행처에 살면서 과거의 형성들을 모두 부수었다. 오랜 전생에 걸쳐 쌓은 바라밀 공덕의 힘으로 그녀는 오래지 않아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사무애해(四無碍解)를 갖춰 거룩한 경지에 이르렀다. 사무애해는 결과에 대한 지혜가 의미를 나타냄에 장애가 없는 분석적인 통찰[義無碍解], 법(Dhamma)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장애가 없는 분석적인 통찰[法無碍解], 법에 대해서 정확한 어법을 구사함에 대한 지혜가 언어학에 대한 장애가 없는 분석적인 통찰[詞無碍解], 지혜들에 대해서 지혜를 말로 표현하는데 장애가 없는 분석적인 통찰[辨無碍解]을 말한다. 통찰수행을 통해 마침내 완전한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최상의 경지를 확립한 담마딘나는 자신이 이룬 경지를 한 편의 시로 읊었다.    

궁극을 지향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정신적으로 충만하여야 하리.

감각적 욕망에 마음이 묶이지 않는 님이

흐름을 거슬러가는 님이라 불리는 법.

크게보기

아라한과를 성취한 담마딘나는 생각했다. ‘나의 마음은 최상의 상태에 이르렀다. 내가 여기서 지내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자가하 시로 돌아가서 스승께 예경하고 많은 나의 가족과 친지들이 좋은 공덕을 짓도록 하겠다.’라고 마음먹은 그녀는 수행처를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담마딘나는 그를 따르는 수행녀들과 함께 라자가하 시로 돌아갔다. 여전히 라자가하에서 재가의 수행자로 살고 있던 옛 남편 위사카는 담마딘나가 최상의 거룩한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라자가하 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담마딘나가 무슨 일로 라자가하로 돌아왔을까?’ 그는 그녀가 그동안 수행을 통해 얻은 바를 직접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담마딘나가 머물고 있는 라자가하의 한 비구니 사원으로 찾아갔다. 출가 전에는 아내였지만 이제는 당당한 출가수행자가 된 담마딘나 비구니에게 위사카는 삼배를 올리며 예를 취한 후, 공손하게 한쪽에 앉았다. 그는 상가의 법도를 생각해서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는 비구니에게 ‘출가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묻는 것은 큰 실례가 될 것이므로 곧바로 본격적인 질문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오온) 등 담마를 주제로 한 질문을 던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