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할 돌에 새긴 치성광여래 

마애삼존불은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 주변을 깊이 파내서 감실에 모신 불상 형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깨달음과 뜻하는 바를 나타내는 수인 외에는 지물을 지니지 않으시기에, 두 손을 모아서 받든 보주寶珠를 보고 본존불이 치성광여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광여래는 사각형의 얼굴에 육계가 표현되었고, 육계 아래에는 반달 모양의 계주가 장식되었습니다. 법의가 양 어깨를 덮었고, 드러나는 가슴을 가린 군의는 매듭으로 여며졌습니다. 법의의 옷 주름은 큰 곡선으로 흘러내렸고, 오른쪽 발을 올린 반가부좌에서 하반신을 덮은 치마 주름은 발목에서 여울목에 물 흘러내리듯 거침없이 흘러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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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에 협시한 보살의 보관에 둥글게 파여진 흔적이 있는데, 칠성탱화에서 일광 월광보살의 보관에 해와 달이 그려지듯,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보살의 얼굴은 본존불같이 사각형이고, 일광보살은 눈에 살짝 미소를 띤 모양입니다. 두 보살은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오른발을 올린 반가부좌를 취했고, 정면을 보면서 본존불을 향해 합장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살의 좌정한 자세뿐 아니라 두툼한 어깨를 나타낸 선(線)과 법의로 어깨를 덮은 착의 방법 그리고 법의가 흘러내린 모습이며 옷 주름이 똑같습니다.

탱화에 협시하는 불보살은 본존불보다 보다 작게 그려지듯, 마애삼존불도 일광 월광보살이 본존불보다 작게 부조되었습니다. 이런 때문에 두 보살이 연화좌에 앉아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연꽃잎의 모양이 조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본존불도 분명 대좌 위에 좌정한 모습으로 조각되었을 터인데, 그 부분이 가려져서 어떤 모습의 연화좌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무량공덕이 나오는 부처님의 코 

아시겠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길흉화복을 북극성과 북두칠성 등 크고 밝은 별이 주관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 땅에 불교가 유입되자 산신과 칠성에게 기도하는 믿음은 불교와 융화되었고, 칠성신앙은 북극성을 의인화한 치성광여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칠성기도는 지혜와 복덕을 갖춘 아이를 점지하고, 태어난 아이가 오래오래 살면서 흉한 일에 시달리지 않게 한다는 믿음 때문에 칠성각은 항상 노보살님들께서 꼭 참배하는 법당입니다. 

마애삼존불은 그을음으로 까맣게 변색되었는데, 조성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258년 동안 아들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처럼 향초가 타오른 흔적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뒷방으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 아들을 잉태하는 수단으로 부처님의 코를 갈아 마시는 술법(?)은 꽤나 효험이 있었나 봅니다. 이런 때문에 삼존불의 코는 하나같이 닳아져 납작해졌는데, 과학적으로는 효험이 없더라도 삼존불이 한 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칠보전은 계단을 놓아서 지금에야 10여분 만에 걸어올 수 있는 것이지, 그전에는 산길을 이리저리 돌아야 이를 곳이었을 겁니다. 큰 법당으로부터 멀리 떨어졌고 후미진 곳에 칠보전을 둔 이유를 짐작해보았습니다. 

칠보전 바로 앞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습니다. 남녀근석은 우리나라 곳곳 많은 마을의 입구나 뒷산에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남녀근석이 많은 것은 기자신앙이 만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국가를 지켜내는 중요 이념이 유교인 나라 “조선”에서 가문을 유지하고 번창시킴은 남자의 의무였고, 남자아이를 낳아 시댁의 대를 잇게 하는 것은 여자의 임무였으니 동네마다 남녀근석은 꼭 있어야 했을 겁니다. 

삼막사 남녀근석은 다른 곳에 있는 것보다 크기도 하지만 3D 프린터로 출력한 듯 지나치게 똑같아서 사진 찍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때문에 생김새가 근사한 이곳의 남녀근석은 칠보전을 짓기 훨씬 전부터 믿음을 주는 기도처였을 것이고, 바로 옆에 있는 암벽에 귀한 집 자손을 점지해 줄 치성광여래와 협시보살을 모시면 더 큰 효험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큰 법당과 멀리 떨어졌더라도 칠보전을 짓는 최적의 장소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뵐 수 있어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낭랑한 염불소리를 들었습니다. 염불소리를 따라가 닿은 곳은 큰 법당인 육관음전으로, 그곳에서는 스님을 좇아 여러 보살님들의 독송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원효스님의 창건 당시부터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셨는지, 통일신라 말기에 삼막사에서 관음사로 이름을 바꿀 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육관음전이 있어서 ‘여섯 분의 관음보살을 모시는 절이구나’ 고 눈치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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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서는 재계가 경건하게 진행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들어서면서부터 법당 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기웃거릴 것인데, 그런 무례를 범할 수 없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끝나려니 하고 두 시간가량이나 천천히 칠보전까지 다녀왔지만 끝날 낌새를 볼 수 없어 종래 법당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열린 어간문을 통해 상단에 봉안된 여섯 좌의 관세음보살상을 보았습니다. 관세음보살은 괴로움에 빠진 육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의 근기에 따라 32가지 몸으로 바꾸어 나타나시는 보살입니다. 사찰을 방문해 성관음보살상과 십일면관음보살상 그리고 탱화와 법당 외벽에서 버들가지를 든 양류관음 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천의를 두른 백의관음은  볼 수 있지만, 여의륜관음상과 마두관음보살상은 쉽게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내가 물과 불에 빠지게 되어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보살께서 32가지 모습 중 ‘어떤 응신의 모습을 뵙게 될 것인가?’가 궁금했지만 ‘아직 육관음을 가까이에서 뵐 정도의 수행은 이루지 못했나 보다’ 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깨끗해졌다 싶을 때 다시 찾아와서 뵈어야겠다고 미루었습니다.   

바닷가가 아니어도 관세음보살이 머무시는 곳

육관음전 앞에는 망해루(望海樓)가 있습니다. 풀이하자면 ‘멀리 있는 바다를 보는 누각’쯤 되는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멀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낮은 여럿의 산과 그 틈새에 안양 시가지뿐입니다. 글쎄요, 예전에 공기가 맑았던 시절에는 멀리나마 인천 앞바다가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넓게 펼쳐져 있는 산을 파도치는 바다로 비유했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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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여서가 아니라면 ‘관음보살이 현신한 곳’이라 전해지는 유명한 관음성지가 바닷가인 것처럼, 낮은 산들이 잔물결 치듯 펼쳐진 삼성산에 관음보살을 모셨음을 강조하려고 “망해루”라 이름 지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지운영의 꿈에 현몽하셨던 관세음보살이 지금 이곳에 나타나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께서는 부처의 몸, 범천왕의 몸, 장자 또는 거사의 몸, 부인의 몸과 동남  동녀의 몸 등 천상천하 어디에도 나타나실 수 있는 몸인 때문입니다. 그러니 망해루라 이름 지어도 이상할 것 없고, ‘관세음보살이 육도 곳곳을 노니시다가 지금 이곳에서 설법을 하시고 계실지도 모르는 때문입니다.  

명왕전

법당 이름 “명왕전”이 낯설었지만 곧 ‘명부전의 다른 이름이려니’ 라는 생각이 들었고, 명부를 다스리는 시왕(十王)을 모신 전각이니 “명부전”보다 “명왕전”이 더 어울린다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 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이라 부르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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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전에서도 육관음전에서 나오는 낭랑한 염불소리에 맞춰 보살님들의 독송이 이어지고 있어서 바깥만 둘러보았습니다. 명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맞배지붕은 책을 편 것처럼 지붕 폭이 용마루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는데, 명왕전 지붕은 신기하게도 지붕 폭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우진각지붕처럼 넓어졌고 측면에는 풍판이 달렸습니다. 안내판에는 ‘명왕전이 문화재자료(경기도 제60호)로 지정되었으며, 원래 팔작지붕이었던 것을 개수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문화재자료로 지정한 때로부터 36년이나 지났음에도 “추정된다”라는 표현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맞배지붕으로 창건했는지 또는 개수하여 맞배지붕이 되었는지는 종도리와 중도리, 짧은 서까래와 긴 서까래 그리고 추녀를 걸었던 흔적의 유무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지정한 것으로 옛 문화재보호 의무를 다한  듯 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집의 생김을 정확하게 파악해 놓으면 개보수 계획을 잘 세울 수 있고, 개보수도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둥 위에 이익공을 앙서로 올렸고, 양쪽 귀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황룡과 청룡을 깎아 놓았습니다. 두 마리의 용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가려는 듯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는데 풍판에 가로막혀 불쌍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명부에 들기 전까지 살던 세상

법당 바깥은 기둥 사이에 생겨난 칸칸의 분벽(粉壁)에 불보살 또는 불교설화를 그려서 존경심을 일구고, 어려운 경전을 쉽게 깨닫게 합니다. 삼막사 명왕전은 외벽을 회벽으로 마감한 후 벽화로 채우는 여느 법당과 다르게 토담벽 형태를 지녔습니다. 자연석 막돌을 놓으면서 생겨난 사춤은 흰색 삼화토로 채웠는데, 천지사방에 널려있는 돌의 물성과 특유의 질감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현대회화 작품을 보는듯합니다. 그런데 법당 외벽을 여염집같이 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장대석 3벌의 기단 위에 지은 명왕전은 다듬지 않은 막돌을 주춧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덤벙주초를 사용한 것은 벽면의 맨 아래쪽(첫 번째로 놓는 켜) 막돌과 어울리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우주(귀퉁이에 놓인 기둥)를 받친 주춧돌과 줄을 이룬 막돌 아홉 개가 이루어낸 율동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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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창방 아래로 크기와 모양새가 다른 막돌로 아홉 켜를 쌓았는데, 큰 놈과 작은 놈, 둥근 놈과 각진 놈, 붉은 놈이며 누런 놈 등 제각각인 놈들이 어울려 올망졸망 사이좋게 놀고 있는 듯합니다. 그 위에는 통째로 거나 토막 낸 암키와와 수키와가 파도인지 산인지를 연속으로 그려냈습니다. 

명왕전(명부전)은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의 명부세계를 나타낸 법당입니다. 까닭에 염라대왕이 업경대를 비추면서 문초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죄를 자백할 수 있을 만큼, 두려움과 오한이 나도록 어둡고(冥) 무서운 분위기로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역죄를 지은 망자라도 명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인간세상에서 살았을 것이기에, 미장이는 외부까지 어두운 분위기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인간세상과 어두침침한 유명계로 나뉜 세상을 보여주려고, 바깥을 범부들이 도란도란 살아가는 토담 벽으로 꾸민 것이 아닐까 짚어보았습니다.  

삼막사는 두 분의 큰스님이 막을 치고 수도하셨던 곳으로 원효 스님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지었고, 의상 스님은 그 염불 뒤에 “관세음보살”을 덧붙였다고 전해집니다. 지운영은 ‘모든 진리를 깨닫고 싶고, 지혜의 눈을 얻고 싶고, 계를 지키고 선정을 닦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한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을 현몽하고 “삼귀자”를 썼습니다. 이를 보면 삼막사는 관세음보살과 인연이 깊은 절이라는 것이 짐작됩니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멀리 남쪽 바다까지 가지 않아도 관세음보살을 뵐 수 있는 절이 삼막사가 아닌가 합니다. 

육관음전을 들지 못해 말씀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서 볼 수 없고 듣지 못하신 부분은 직접 채우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동시에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해도 관세음보살은 그들의 음성을 듣고 모두를 해탈케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해 보시길 바라며, 탐방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