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을 땐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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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 가운데 동방의 문물·제도와 예의의 모든 일을 실천과 경험에 의하여 제정한 방대한 기록인 <예기(禮記)>가 있다. <예기>는 글자 그대로 예를 말한 책이다. <예기> 월령편(月令篇) ‘7월 맹추’에 천자가 무인들을 포상하는 행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7월 맹추인 이 달에는 입추(立秋)가 있다. 입추가 되기 3일 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모일 날은 입추로서, 천지의 성덕이 금위에 있음’을 아뢰면 천자는 재계하고, 입추가 되는 날에 친히 3공·9경·제후들과 대부들을 거느리고 서쪽들에서 소호와 욕수를 제사하고 가을을 맞는다. 곧 돌아와서 군사의 장수와 무인들을 조정에서 포상한다. 천자는 이에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선발하고 병기를 갖추게 한다. 호걸스럽고 준수한 자를 가려서 훈련시키고, 오로지 공이 있는 자에게 맡기도록 한다. 이로써 불의 한 자를 정벌하고 토벌하며, 포악하고 거만한 자를 힐책하고 주벌하며,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분명히 밝혀서, 먼 지방의 나라들을 복종하여 따르게 한다.”

이 글 가운데 ‘이로써 불의 한 자를 정벌하고 토벌하며(以征不義)’라는 구절은 ‘정(征)’자의 의미를 잘 드러내준다. 정(征)에는 ‘치다.’라는 의미와 ‘아랫사람의 무도함을 공격하여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십자군 전쟁은 11~13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크리스트 교도들이 성지 회복이라는 명목하에 일으킨 원정(遠征)을 말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셀주크 투르크가 성지를 장악하고 순례자를 박해하며 비잔틴 제국을 위협한 것이었다. 하지만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나 나머지 원정은 실패하였다. 십자군 원정은 교황권의 쇠퇴와 봉건 제후·기사의 몰락, 봉건체제의 동요에 따른 왕권의 신장을 조장하였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동서 교역의 촉진,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가속화하여 중세 사회의 전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둑에서 잡는 수의 모양으로 축(逐)이라는 것이 있다, 부분적으로는 단수가 되어 있지만 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면 다시 단수가 되고, 이러기를 반복하면 계단을 비스듬히 오르거나 내려가는 모양으로 단수가 계속되어 결국은 반면의 제1선에 닿아 죽게 된다. 즉 ‘죽음의 계단’이 제1선까지 닿아 있는 모양으로, 일단 축에 걸렸다 하면 살아날 수가 없다. 축(逐) 자는 정(征) 자와 상통하는 글자로 ‘물리친다, 제압한다, 죽인다’ 등의 공격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작명을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이름이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작명은 신성한 일로 여겨져 예로부터, 지금은 많이 간소해졌지만, 사주를 뽑는 것은 물론 수리음양과 수리4격 배치, 음령오행의 상생배치, 사주에 적합한 자원오행배치, 그리고 이름에 사용하는 의미 있는 한자 등을 엄선하여 진행해왔다. 성명학자들은 이름이 한 인간 또는 단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인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가 주로 관계로 이루어진 곳임을 감안할 때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관계를 벗어나서 사람이든 단체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에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얼굴만으로 자기를 보여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외려 이름이 정체성을 대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아기의 이름을 짓고, 100일쯤 되는 시기에 사당에 아기의 이름을 고하는 작명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작명례는 아기의 이름이 존중받길 원하는 행위이자 새로운 생명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갖고 있다. 또한 이런 의식을 통해 조상과 가족 그리고 친척들,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 존재의 출현을 정식으로 고하는 의미를 갖는 행사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아기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아기가 입신출세하길 빌며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름 짓기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들판의 꽃도 이름이 없으면 들꽃이지만 이름이 주어지면 의미 있는 꽃이 된다.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존재가치가 달라진다. 사람도, 단체도 다르지 않다. 이름을 가져야 비로소 사회관계망에서 존중받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계에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한 단체가 출범했다. 부처님께서도 상가가 형성되자마자 전도선언을 통해 비구들에게 전법에 나설 것을 명령하신 바 있으니 포교단체의 탄생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각자가 아닌 단체로 전법활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전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체의 명칭에 전쟁 또는 토벌, 제압, 살의 등의 의미가 깃든 정(征) 자가 포함되어 있어 의아하다. 지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