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가을날 

 노스님과 옹이스님은 달래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단 두 식구, 한수와 달래는 집을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짐이라야 소 달구지에 작은 솥과 이불이 전부였습니다. 달래는 노스님과 옹이스님이 서 있는 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한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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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이스님은 막고 싶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달래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옹이스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하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옹이스님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달래와 한수가 말없이 돌아서 노스님에게 나란히 합장을 하였습니다.

 노스님은 우두커니 그냥 서 있기만 하였습니다.

 드디어 달래와 한수가 달구지에 올랐습니다.

 봄볕 같이 퍼붓는 아침 가을볕.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습니다.

 달래와 한수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좁은 재 너머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달래와 한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마지막 뒤를 한번 돌아보는 달래의 두 눈에 반짝 이슬이 맺혔습니다. 옹이스님은 달래를 향해 멋적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슬펐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주 후련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옹이스님은 긴 숨을 내쉬었습니다. 

 달구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옹이스님은 빙긋 노스님을 보고 웃었습니다. 달래에게는 미안하지만 마을을 위해서 아주 큰일을 하였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한수와 수수밭에서의 약속도 지키고 마을도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노스님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옹이스님은 노스님에게 칭찬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옹이스님의 얼굴엔 찬바람이 돌았습니다.

 “옹이야?”

 “예.”

 “네가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예?”

 “거울로 너의 얼굴을 한번 보아라.”

 “예?”

 “얼굴엔 인정이 하나도 없고, 눈은 양쪽으로 찢어져서 날카롭기 짝이 없다. 이제 너의 친구 누구도  너를 상대하지 않을 게다.”

 “예?”

 옹이스님은 너무도 놀랐습니다.

 “스, 스님!”

 “남을 의심하는 너의 마음이 지금의 너의 얼굴을 만들었다.”

 옹이스님은 멍청하게 노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스님, 저는 마을을 위해서......”

 “너는 정말로 용서할 줄도 모르고, 정말로 약속을 지킬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불쌍한 달래가 저렇게 마을 사람들 몰래 뒷길로 이 마을을 떠나도록 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우냐?”

 “예?”

 노스님이 지그시 옹이스님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빨리 붙잡아라!”

 노스님은 아주 화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얼굴은 처음이었습니다. 

 옹이스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노스님의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노스님?” 

 “뭣하느냐, 빨리 달려가서 붙잡지 않고!”

 옹이스님은 떠나는 달래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달래야!”

 “달래야!”

 달래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가지마.”

 달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옹이스님과 달래는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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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노스님이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노스님은 한수의 어깨를 쓰다듬었습니다.

 “여기가 자네 고향인데 어딜 가.”

 “노스님!”

 한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노스님......”

 “자네 마음 알고 내가 알고 있어.”

 한수는 땅바닥에 엎어져 울었습니다.

 달래와 한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날 저녁에 옹이스님에게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 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 가지고 오너라!”

 노스님은 아주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빌었는데도 끝까지 그 사람을 의심하고 못살게 굴었어. 한수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감시를 했으니..... 엄마 아버지 없이 여동생 달래와 단 둘이 사는 한수가 얼마나 가난한지는 네가 더 잘 알지? 쌀 보리가 다 떨어진 한수는 덜 익은 수수라도 훑어서 달래에게 죽이라도 쑤어주려고 봉출이네 수수밭에 들어갔었다.”

 “노스님!”

 옹이스님은 노스님 앞에 그대로 엎어졌습니다. 옹이스님은 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고개를 들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달래와 한수의 슬픈 얼굴만 떠올랐습니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을 저지르고도 그 잘못을 몰랐다!”

 “노스님.”

 그제야 옹이스님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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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우는 산내암의 밤. 

 옹이스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았습니다.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았습니다. 그러나 옹이스님은 울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가을이 저물어, 겨울로 갈 무렵이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