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미의 가르침 듣고 출가 결심 

테리까(Therikā)는 웨살리 시의 왕족이자 부호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견고하고 평화로운 몸을 지니고 있어, ‘테리까’라고 불렸다. 성년이 되자 그녀는 출생 가문과 출생 지역이 비슷한, 부모가 정해준 왕족 출신의 한 청년과 결혼했다. 결혼 후 테리까는 충실하게 남편을 봉양하며 살았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웨살리 시에 왔을 때, 열린 법석에서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교법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이날 이후 테리까는 깊은 신심을 내어 삼보(佛法僧)에 귀의하여 재가의 여신도, 즉 우바이가 되었다.  

테리까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마자 곧바로 금강석과 같은 견고한 신심을 낸 데에는 전생부터 쌓아온 큰 공덕이 있었다. 테리까는 과거의 생에, 그러니까 꼬나가마나(Koṇagamana, 구나함불) 부처님 당시에 어떤 훌륭한 가문의 딸로 태어난 적이 있었다. 그때에 그녀의 가족들은 꼬나가마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지극하고 청정한 믿음을 내었고, 정성껏 공양을 올리기 위해 꼬나가마나 부처님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고는 스승을 예로써 맞이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천막 틀을 만들고,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천개(天蓋, 하늘의 해를 가리는 일산)를 장치하고, 향과 꽃 등으로 장엄한 후 공양을 정성껏 준비했다. 준비를 다 마친 후, 테리까의 부모님은 꼬나가마나 부처님을 찾아가 공양 준비를 다 마쳤으니 기꺼이 왕림해 주실 것을 청했다. 초청에 응한 꼬나가마나 부처님은 그녀의 집으로 가 잘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이때 테리까는 가족과 함께 꼬나가마나 부처님께 예경하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공양했다. 꼬나가마나 부처님이 공양을 마친 후 발우에서 손을 떼자, 그녀의 가족은 세 벌의 가사를 선물했다. 꼬나가마나 부처님께서는 테리까와 그녀의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곳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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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녀는 과거 전생 동안 할 수 있는 한 공덕을 쌓다가 수명이 다하자 천상계에 태어나 좋은 세계(천상과 인간계)에서 윤회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깟싸빠(Kassapa) 부처님(과거 24불 가운데 마지막 24번째 부처님)이 출현하시자, 한 장자의 집안에 태어났다. 성년이 되자 그녀는 끝없이 나고 죽어야 하는 윤회의 고통에 외경(畏敬)의 마음을 일으켰고, 부처님의 교법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무려 2만 년 동안 수행녀의 계율을 충족시켰으며 보통 사람으로 죽었다. 이후 그녀는 천상계에 태어나 오랜 기간 동안 좋은 곳을 윤회하면서 최상의 번영과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한 시기에 다시 웨살리 시에서 왕족 출신의 부호 가문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전생 동안 쌓아온 공덕에 힘입어, 테리까는 고따마 부처님 당시에도 불교를 만나는 공덕을 받았고, 우바이로서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며 살았다. 테리까는 훗날 웨살리에서 비구니 승원을 이끌던 최초의 비구니 고따미의 가르침을 듣고는 세속적 욕망에 대해 염오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출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결혼을 해 가정을 가진 여자의 몸으로 출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랜 고민 끝에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으므로, 어느 날 남편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여보, 저는 출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허락해 주세요.”

그러나 남편은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의 허락이 없으면 출가할 수 없는 당시의 사회 현실에서 그녀가 달리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남편으로부터 출가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쉽게 출가 허락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덕성을 쌓았다. 실망 대신에 출가하기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공덕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선업을 지으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렇게 테리까는 세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과 장로니 고따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기 위해 집에서 틈틈이 수행 정진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놀라운 정진에 힘입어 그녀는 성찰의 삶을 통해 물질과 비물질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통찰의 지혜를 얻기 위한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하면서 오직 출가의 인연이 무르익기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릇 타는 소리 듣고 아나함과 증득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테리까가 부엌에서 커리(카레)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큰불을 내고 말았다. 거센 불길이 ‘타타타 탁’ 소리를 내면서 무서운 기세로 접시 등 그릇을 태웠다. 불길에 휩싸인 그릇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각나 산산이 깨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그 순간 무상(無常)의 특징이 일어나는 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가열된 물과 섞인 야채 커리가 물이 있는 동안에는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치치칫 소리를 내지만, 물이 사라지면 고요해지는구나! 나를 괴롭히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도 다르지 않다. 뜨거운 불길에 흩어지는 그릇처럼.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고요해지면 다른 것도 다 고요해지는 법이다.’ 

테리까는 곧이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무상·고(苦)·무아(無我)의 삼법인(三法印)의 진리를 환기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서 통찰의 지혜를 계발되었다. 그녀는 차츰 정진의 단계를 높이며 수행에 온 마음을 기울여,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不環果) 성자, 즉 아나함(Anāgāmī)의 경지에 도달했다. 계의 수혹(修惑)을 완전히 끊은 성자가 되어 색계·무색계의 경지에 이르렀고, 다시는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 불환(不還)의 경지를 성취한 것이다. 

성자의 경지에 이른 그녀에게 세속적 욕망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후로부터 테리까는 일체의 장신구나 치장을 위한 물품을 지니지 않았다. 그런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말끔하게 사라졌고, 다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달라진 행동거지를 이상히 여긴 남편이 어느 날 테리까에게 물었다. 

“여보, 왜 이제 이전처럼 장신구나 치장을 하지 않는 거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이오?” 

남편의 물음을 받는 순간 그녀에게 출가를 허락받을 기회가 찾아왔다는 영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테리까는 간절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남편에게 요청했다. 

“여보, 저에게 세속적 욕망은 다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은 가정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부디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부탁드려요.” 

남편은 그 자리에서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곧바로 거절했겠지만 왠지 그때와는 다른 신이한 기운이 아내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고민해 보겠다’며 일단 대답을 미루었지만, 아내의 의지는 날로 견고해지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확고한 출가 의지를 더는 돌이킬 수 없겠다고 판단한 남편은 마침내 출가를 더 말릴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와 평생을 같이 살고 싶었었지만 거절할 명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남편은 아내의 출가를 허락했다. 

“더는 당신의 출가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테리까, 당신의 출가를 허락하겠습니다.”

기왕에 출가를 허락한 마당에 그는 아내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제공하며 출가를 축하하는 화려한 행사를 열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성대한 출가 축하행사를 마치고는 아내를 직접 인도하여 비구니 승원을 이끌고 있는 장로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를 찾아갔다. 고따미 장로니를 만난 테리까의 남편은 공손하게 예경을 올린 후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뒤 말했다.  

“존귀하신 고따미 장로니시여, 부디 제 아내였던 이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남편의 요청을 들은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흔쾌한 마음으로 테리까의 출가를 허락했다. 고따미는 출가한 그녀에게 구족계를 주고 비구니로서의 삶으로 인도했다. 그러고는 상가 최고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큰 숲의 정사(精舍)로 안내하여 고따마 부처님을 친견하도록 해주었다 

테리까를 만난 부처님은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해 있는 그녀의 경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부처님은 테리까를 위해 대상의 토대,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心]의 6가지 감각기관(六根)을 통해 들어오는 대상을 한 찰라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라고 가르치면서, 게송으로서 그녀의 경지를 인정했다. 

조각천으로 만들어 입었으니,

테리까여, 잘 자라.

옹기 속의 마른 야채처럼,

그대의 탐욕은 실로 지멸(止滅)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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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찬탄게송 듣는 즉시 ‘사무애해’ 성취

부처님의 이 게송은 분소의를 입고 비구니가 된 테리까에게 내리는 커다란 축복이었다. 이미 도덕적으로 견고한 상태에 도달했으니, 그대의 눈가에 생겨나는 감각적 쾌락과 욕망은 평온해졌으며,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늘 행복하다는 일종의 증명이었다. 동시에 무상의 토대 속에서 마른 야채처럼 실체가 없는, 즉 다시 태어나는 것과 연결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오염까지 완전하게 끊어내 최고의 도인 아라한과를 얻으라는 간곡한 당부이기도 했다. 

테리까는 출가 전에 이미 아나함과를 이루었을 만큼 정신적 능력이 성숙되어 있었다. 그녀는 부처님의 격려와 고따미의 탁월한 인도에 힘 입어, 부처님의 게송이 끝나자마자 감각 능력은 성숙함에 이르렀고, 분석적인 통찰(無碍解)과 더불어 최상의 거룩한 경지인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 순간 테리까는 생각했다. 

‘나는 꼬나가마나 부처님을 위해 당(堂)을 지었으며, 세상의 친족이신 부처님께 항상 세 가지 승복을 바쳤다. 나는 지방, 작은 마을, 왕국의 수도로 갈 때마다, 어느 곳에서나 공경을 받았다. 이것은 공덕행의 결실이다. 모든 존재는 어리석다. 나의 번뇌는 불탔다. 나는 코끼리처럼 속박을 자르고 번뇌 없이 산다.’

테리까는 이어 최고 성자의 지위를 얻은 기쁨을 한 편의 시로 읊었다.   

여전히 날뛰던 욕망들은

마치 화덕에 말린 야채들처럼 시들었으니, 

손수 지은 가사를 입고 

긴장을 풀고 단잠을 자며 편히 쉬련다.

                               -전재성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