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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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열린 새 검찰총장 임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흠흠신서(欽欽信書)>라는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 것을 볼 때 김 후보자가 이 책을 정독한 것 같지는 않았다. <흠흠신서>는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형사사건의 조사·심리·처형 과정을 다루는 관리들을 계몽하기 위해 1822년에 편찬한 법제서이다. 일종의 형법서인 셈이다. 

최 의원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흠흠신서>를 거론한 뜻은 검찰의 형사사건 처리가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해 일깨우려 했던 것으로 읽힌다. 사실 검사들이 <흠흠신서>의 제목이 주는 의미만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조국 전 법무장관의 경우에서 보듯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먼지 털기 식 압수수색과 인디언 기우제 식 과잉 수사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사는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패악을 서슴지 않고, 정치인은 이해가 상충되거나 감정적 대립 등의 충돌상황이 일어나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지 않은 채 고소고발을 남발함으로써 스스로의 명줄을 검·판사들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 국민이 선출한 권력보다 임명직 공직자인 검사와 판사가 권력의 정점에 자리하는 비정상적 체계가 고착화하는 듯하다. 

<흠흠신서>의 서문은 ‘인명계호천(人命繫乎天)’으로 시작한다. 다산은 서문에서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알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지낸다. 더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婦人)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분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가고 삼가는 것(欽欽)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라며 당시 조선 관리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 현상이 <흠흠신서>가 간행된 조선 후기 1822년의 시대상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조선의 관리들이 저질렀던 악행들은 더 간악하고 추악해진 모습으로 횡행하는 중이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선택적으로 남용하고 있고, 걸핏하면 별건 수사를 벌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행보 또한 숱한 문제를 갖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1심과 재심에서 무죄와 유죄가 엇갈리는 판결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선고형량 또한 고무줄이어서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조롱을 듣기 일쑤다. 

다산은 ‘흠흠신서’로 책 이름을 붙인 이유를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이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산은 특히 정치의 최종 목표를 소송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에 두었다. 또 분쟁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법의 집행자들이 먼저 신독(愼獨)한 자세로 도덕성을 갖추라는 것이다.

흠흠하지 않고 도를 넘게 권한을 남발하다가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검찰과 법원의 정상화는 이제 입법기관의 몫으로 남았다. 국회는 다수 국민들로부터 ‘흠흠’ 정신을 망각한 검찰과 법원의 개혁을 위한 입법을 서두르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무려나, 다산은 법의 집행자들이 마땅히 삼가고 또 삼가며, 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먼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는데…, 교단의 변화와 개혁을 외친 이들의 절규를 경청하기는커녕 다만 해악을 끼친 자들로 가려 단죄하려 하고, 법원에서 복직판결 받은 징계 종무원들을 어떻게든 복직시키지 않으려 하는 절집의 법 집행자들 모습은 어떤가? 흠흠한가? 때마침 출범한 ‘화합과혁신위원회’가 보여줄 초기 행보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