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계곡 

‘중생들이 불국토에 살고 싶었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마애불입니다. 방방곡곡 풍경이 뛰어난 곳에 마애불을 조성한 것은 옛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곳이 불국토’라거나 ‘이곳을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지, 조성하는 첫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된 (앞서 답사한) 천안 태조산 성불사의 마애불이 아쉬워서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영월암을 찾았습니다.

페달을 세차게 밟아도 올라갈 기색이 없어진 곳은 설봉공원을 지나친 설봉서원 입구입니다. 예정했던 대로 자전거를 길 옆 소나무에 매 놓고, 등산로라고 불러야 할 포장도로를 걸어서 극락교에 이르렀습니다. 등산객을 위해 세워진 안내판에는 ‘여래계곡 아래쪽에 극락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 영월암에 가서 지성을 드리면 극락에 간다하여 “여래계곡”이라 이름 붙였다’고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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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들을 극락왕생 시키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고 이뤄내신 부처님이 아미타여래입니다. 아미타여래의 큰 자비심을 받들면서 영월암에 오르도록 “여래계곡”이라 이름 지은 분은 그 큰 공덕으로 극락왕생하였을 것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하품하생” 졸자가 길을 걷는 것만으로 극락세계를 간다니 얼마나 황공스런 일입니까. 

극락왕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선행의 실천, 부처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믿으며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라 합니다. 극락세계는 법장비구가 아미타여래로 성불한 것은 성불을 미루면서 다섯 겁 동안 48대원을 이루고자 수행한 결과입니다.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수행하여 이룩하신 곳을 갈 수 있는데, 힘들어 해서는 안 된다며 가파른 길을 올랐습니다.(얼마나 가파른 길인지는 내려올 때 새삼 알 수 있었는데, 발가락이 운동화 코를 뚫고 튀어나오려 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일주문 

거친 숨을 내쉰 것도 잠시, 등성이로 보이는 곳에 큰 은행나무가 보이더니 범종각이 보였습니다. 일주문이 없는 대신 은행나무가 ‘영월암을 찾은 중생, 여기서 사바세계의 번뇌를 씻어내고 들어오라.’며 서있는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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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꼭 지나야 마음이 맑아지는 것은 아니기에 일주문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월암에 일주문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올라오셨더라도 틀림없이 저 아래 극락교에서 이미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청정심을 냈으리라 생각합니다. 불법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극락교”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에 이르렀을 때 ‘여기서 세속에 찌든 때를 벗어던져야겠다’고 행동에 옮겼을 터입니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

대웅전 앞마당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연등이 넓은 하늘을 가렸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 집입니다. 창건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주춧돌을 보아서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습니다. 주춧돌의 운두는 원형으로 예쁘게 다듬고, 초반은 잔다듬으로 거칠게 마감한 채 놓였는데 부드러움과 강함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옥은 주된 건축자재가 나무여서 세월이 지나면 썩을 수밖에 없는데, 가장 취약한 곳이 기둥 밑둥치입니다. 대웅전 기둥밑동을 하나같이 동바리로 받쳐 놓은 것에서 부처님 집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정성스런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썩은 밑동을 잘라내고 동바리 기둥으로 이었는데, ‘처음부터 이랬다’는 듯 주춧돌에 얌전히 올려져 있습니다. 무거운 집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은 목수들의 마음은 부처님을 빚고 그려내는 불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월암 안내판에 6․25전쟁 전 낡은 한옥의 체목으로 수리작업을 하였다고 쓰였는데, 인방을 걸기 위해 뚫었던 구멍이 메꿔진 기둥은 다른 곳에서 쓰였던 기둥을 가져왔다는 흔적으로 그런 역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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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을 이룬 네 개의 기둥에 부처님을 칭송하는 주련이 걸렸습니다.

불신보변시방중 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 三世如來一切同 

광대원운항부진 廣大願雲恒不盡

왕양각해묘난궁 汪洋覺海渺難窮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부처님은 시방세계 곳곳에 고루고루 나투시는데

이름은 다를지언정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매한가지라네. 

어느 부처님이든 서원의 크기는 이 세상에 비할 게 없고

깨달음 또한 넓고도 넓어 그 끝을 알 수 없다네.  

어느 쪽에서 아미타부처님을 찾아 헤매는가?

남향집 대웅전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은 아미타전이 있습니다. 숫자로 따지면 아미타전이 대웅전보다 3칸이나 넓지만 보이는 크기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넓이의 집인데, 대들보며 도리 등으로 쓰이는 재목의 길고 짧음에 따라서 칸 수가 적어지기도 많아지기도 한다는 것이 한옥을 보는 묘미입니다.   

통상 극락전(아미타전)을 동향집으로 짓는 것은 아미타부처님께서 동쪽을 향해 좌정하시게 하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서쪽에 계신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면서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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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 볼 때 우측(서쪽)에는 종무소로 사용되는 동향집 안심당(安心堂)이, 좌측(동쪽)에는 서향집인 아미타전이 있습니다. 좌측에 있는 집을 아미타전으로 삼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그 해답은 아미타전에 걸린 주련이 아닌가 생각 들었습니다.

아미타불재하방 阿彌陀佛在何方  

착득심두절막망 着得心頭切莫忘  

염도념궁무념처 念到念窮無念處  

육문상방자금광 六門常放紫金光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을 엉뚱한 곳에서 찾지 말고

마음속 깊이깊이 되짚어 보게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멈춰진 자리에 다다르면

눈뿐 아니라 이비설신의(耳 鼻 舌 身 意)로 아미타부처님을 뵙게 된다네.

마애여래입상

대웅전과 아미타전 사이에 난 계단 길은 대한민국 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진 큰 바위로 이어집니다. 영월암(창건 당시는 북악사 北岳寺)가 창건된 이후에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졌는지 아니면 마애여래입상이 먼저 조성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몸이 부처님으로 환생하기를 기원해서 솟아난 듯 서있는 암석은 높이가 10m정도에 이릅니다. 석수는 남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암석 전체를 크게 떼어냄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생김을 유지시킨 채 깊지 않은 부조로 여래입상을 새겼습니다. 

암석 윗부분 생김새가 부처님보다는 맨머리의 스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밑에서 올려보는 까닭에 암석 꼭대기가 보이지 않자 ‘육계(肉髻)는 어떻게 새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했고, 옆으로 암석의 높이까지 올라가 보고는 암석 정상의 둥근 형태를 육계라 하기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계와 함께 불상임을 쉽게 나타낼 수 있는 백호(白毫) 역시 새기지 않았으나 삼도(三道)는 명확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불상과 불화(佛畫)에 광배를 새기고 나타내는 연유는 ‘신체주위에는 광채가 있다’는 부처님의 특징을 나타내려 함인데, 마애여래입상에 광배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에 조성된 마애불상들이 크고 작은 광배를 갖춰 불보살임을 드러내고 있음을 견주어볼 때, 육계와 백호 그리고 얕은 부조로 나타낼 수 있는 광배 등이 새겨지지 않은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은 여래를 조성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자로 기록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영월사가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이야기와 고려말 ‘나옹선사가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 마애불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고승이신 두 분 중에 한 분의 제자들이 스승님을 추모하기 위해 새겼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보물로 지정된 바에 따라 부처님이라 부르겠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