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㊴

이 학종 | | 2021-05-21 (금) 08:13

38. 평온함을 유지하라(khêmaṃ) 


평온함은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일에 부딪쳐서도 고요와 평안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인(ariya)의 삶입니다. 적확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삶을 선가(禪家)에서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 또는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평온함을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저 역시 오늘 아침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아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듣기에 불편한 말, 심기에 거슬리는 말 한마디에 벌컥 화가 일어나는 것을 그만 제어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순(耳順)이 지나면 범부들도 도리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는데, 이른바 수행하며 산다는 사람이 이렇게 걸핏하면 사띠(sati)를 놓치기 일쑤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행은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배우고 그토록 다짐을 했으면서도 순간 솟아나는 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제 마음속 어리석음의 뿌리가 얼마나 견고하고 깊게 박혀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에 말없이 점심 설거지를 했지만 마음까지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사진. 문화재청 제공)
 


사실 중생의 삶은 언제 어떻게 느낌이 바뀔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삶입니다. 그 느낌에는 좋아하는 느낌, 싫어하는 느낌과 하나 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이 있습니다. 무덤덤한 느낌을 평온으로 여길 수 있지만, 평온이라고 다 같은 평온이 아닙니다. 제4선정에서의 사띠가 있는, 그러니까 청정과 함께 하는 사념청정(捨念淸淨)의 평온(upekhāsatipārisuddhi)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띠 없는 평온은 어느 순간 깨질지 모릅니다. 대상에 휘둘려 언제 어떻게 격정과 탐욕에 휩쓸릴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법은 찰나찰나 사띠를 놓치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청정도론(Vism)>에 이와 관련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띠는 

기억을 특징으로 하고,

잊지 않음을 기능으로 하고,

수호를 현상으로 한다.


알아차림(sampajāna)은

어리석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고

판단을 기능으로 하고,

조사를 현상으로 한다.(Vism.4.172)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마음의 평정을 깨뜨렸던 오늘 아침의 일, 되새길수록 부끄러워집니다.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다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보지만, 수행의 힘이 아직 미약하기에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아무려나, 최고의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망갈라숫따(행복경)>의 경구들을 설명하면서 최고의 행복은 열반이라고 반복해 말씀드렸습니다. 열반이란 가장 행복한 경지를 말합니다. 그 경지에 대해 앞에서 ‘팔풍(八風)에 그 마음이 동요치 않고, 슬픔이 없으며, 허물없는 청청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침 하나, 더없이 평온한 경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경지는 유식학(唯識學)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별후득지의 한 내용에 해당할 것입니다. <망갈라숫따(행복경)>의 경구들을 살펴보면서 항상 느낀 것이지만, 부처님의 설법 내용은 얼핏 보면 평범한 가르침처럼 보여도 들여다볼수록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물려 돌아간다는 것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평온에는 고요함, 편안함, 안전함, 행복함 등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평온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열반의 두 가지 요소들[유여열반과 무여열반]과 관련하여 언급한 <쿳따까니까야> ‘잇띠웃따까경(Itivuttakasutta)’의 두 게송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갈애에 휘둘려 잘못된 견해에) 의존하는 바 없으시고,

(즐겁거나 괴로운 감각 대상들에 대하여) 완전한 평온을 유지하시고,

지혜의 눈을 갈고 닦으신,

부처님께서 열반의 두 가지 요소들을 밝혀내시었네. 

그중 한 요소인 유여열반(sa-upadisesanibbana)이란

존재의 밑바닥에 남아있던 오염원들의 멈춤이니,

지금 여기에서 아주 명백히 보인다네.

바로 존재의 족쇄가 끊어졌음을 의미한다네.


​아시다시피 무여열반(Anupadisesa nibbana)은 오직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 이후에만 명백해집니다. 이 요소에서 존재 형성(becoming)의 완전한 파괴가 완료됩니다. 담마의 정수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좋거나 나쁜 모든 감각 대상들에 대해 평온함을 성취했기 때문에 아라한들은 형성(formations)의 소멸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반은 평화(santi)의 요소가 머무르는 경지입니다. 도의 과를 성취한 동안 성인들은 열반을 성취한 기쁨을 이렇게 시로써 표현하곤 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근절되었네. 

슬픔도, 격정도, 위험도 없는 곳. 

참으로 환희로운 것! 


부처님께서는 ‘잇띠웃따까 경’에서 열반이 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해 게송으로 거듭해 강조하십니다.  


형색이 있는 영역[色界]보다 

형색이 없는 영역[無色界]이 더 평화롭고, 

형색이 없는 영역보다 소멸이 더 평화롭다.

형색이 있는 영역에 도달하는 존재[衆生] 들과

형색이 없는 영역에 자리 잡은 이들,

그들이 만약 소멸을 알지 못한다면

미혹한 삶을 되풀이하는 존재로 다시 돌아오네.

형색이 없는 영역에 빠져들지 않고서

형색이 있는 영역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들은

번뇌에서 소멸로 벗어나고

죽음을 저 멀리 버려두고 떠나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집착이 없는 불사(不死)의 경지를 접하고,

그의 때[번뇌]가 모두 떠나 버린

집착의 포기를 체득하였으니,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티끌 없고 슬픔 없는 경지를 이룩했다고 선언하시네.


열반을 성취한 성인들의 삶, 그러니까 “성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인 열 가지 성스러운 삶”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앙굿따라니까야> ‘성스러운 삶 경(Ariyāvāsasutta) 2’에서도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를 버리고,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추고,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고,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지고, 독단적인 진리를 버리고, 갈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사유가 투명하고,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가 고요하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통찰지로써 잘 해탈한다.” -대림 스님 역 


이렇게 제시한 성스러운 삶의 열 가지 항목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시 상세하게 풀어 설명하십니다. 다섯 가지 요소를 버림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 탐욕·성냄·혼침·들뜸·의심)를 벗어남을,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춤은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으로 대상을 대할 때 마음이 즐겁거나 괴롭지 않고 평온하고 사띠를 놓치지 않으며 머무는 것을,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짐은 숙고한 뒤에 수용하고, 감내하고, 피하고, 제거하는 것을, 독단적인 진리를 버림은 ‘세상은 영원하다’ 등의 열 가지(十事) 논쟁거리를 버리는 것을, 갈망을 완전히 포기함은 감각적 욕망과 존재와 청정범행에 대한 갈망을 버리는 것을, 사유가 투명함은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해코지에 대한 사유를 제거함을, 몸의 의도적 행위가 고요함은 제4선에 들어 머무는 것을, 마음이 잘 해탈함은 마음이 탐욕·성냄·어리석음으로부터 잘 해탈하는 것을, 통찰지로써 잘 해탈함은 ‘나의 탐욕은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다’라고 꿰뚫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이 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누구든지 과거에 성스러운 삶을 살았던, 미래에 성스러운 삶을 살, 그리고 지금 성스러운 삶을 사는 성인들은 모두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이 열 가지는 불교가 추구하는 성스러운 삶, 성자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인 것이지요.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부분(국보 제201호)(사진. 문화재청 제공)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궁극의 행복으로 가는, 또한 궁극의 행복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를 일러주는, 부처님께서 제시한 마지막 행복지침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38가지의 가르침들을 ‘불교의 38가지 행복 체크리스트’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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