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거울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방 밖으로는 일찍 떨어진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정안아, 날 좀 일으켜 주련?”

정안 스님은 얼른 노스님을 일으켜 앉혔습니다.

노스님은 정안 스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눈과 마주칠 수가 없었습니다. 푸욱 고개를 앞으로 떨구었습니다.

“아버지 만난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지?”

“예?”  

“내가 죽더라도 절대로 아버지에게 알리지 마라.”

“노스님!”

“네 아버지와 내가 그렇게 살았듯이 너도 네 아버지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노스님의 말은 정안 스님이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노스님. 정안 스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 너는 완전히 혼자가 될 거다.”

정안 스님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난 이 세상에 없을 거다.”

정안 스님은 방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노스님의 야윈 손이 정안 스님의 등을 쓸었습니다.

“절대로 아프지 말아라. 커다란 나무처럼 자라야지. 내 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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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깥에는 각자 방으로 간 줄 알았던 능금이와 별안 노스님, 공양주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별이 초롱초롱 뜬 시월의 밤.     

네 사람 누구도 말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방안의 노스님이 네 사람을 불렀습니다.

노스님은 꼿꼿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좁은 방안에는 네 사람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별안, 내가 죽거든 네 사람이 나를 보내줘.”

 별안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네 뜻대로 하지.”

“그리고 내가 재가 되거든 저기 졸참나무숲에 뿌려주고.”

 별안 노스님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큰스님!”

공양주 할머니가 노스님을 부르며 울었습니다.

“보살님, 그동안 나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 능금이 하고 정안이를 부탁하고 갑니다. 나중에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큰스님, 그런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작은 스님하고 능금이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노스님은 힘겹게 능금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꼬?”

“노스님, 가지 마세요.”

능금이는 노스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노스님이 능금이를 밀어냈습니다.

 “자아, 이제 난 누워야겠다.”

노스님이 이부자리 위에 반드시 누웠습니다.

어느새 밤이 지나 동이 터오고 있었다.

 맑게 눈을 뜬 노스님이 세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맞추고는 감았습니다.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별안 노스님이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퍼붓는 햇빛.

포리암은 어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졸참나무숲의 단풍은 햇빛으로 빛났고, 부지런한 산새들은 바쁘게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노스님이 즐겨 쓰시던 지팡이, 호미, 꽃삽은 그대로 법당 앞마당 한켠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법당 옆의 산구절초는 어제와 똑같이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안 스님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천천히 졸참나무숲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열매가 거의 다 떨어진 졸참나무의 가지들, 정안 스님은 땅바닥에 떨어진 몇 개의 도토리를 손에 쥐었습니다. 동글동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도토리를 손에 꼭 쥐고 아랫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에서는 흰 새들이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 새들처럼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다면...... 정안 스님은 아득히 문경 은학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흰 새가 많던 곳, 노스님의 고향, 아니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 그때 보았던 새들이 이곳에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포리암을 바라보았습니다.

 능금이가 죽은 나무처럼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정안 스님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학미산.

  포리암.

  정안 스님은 철로변이 보이는 졸참나무 숲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람에 포리암 풍경이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작은 스님?”

공양주 할머니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뒤에서 두 손으로 정안 스님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작은 스님!”

정안 스님을 부르는 공양주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상했습니다.

할머니가 정안 스님 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정안 스님의 얼굴을 부여잡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겨울나무처럼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뺨은 온통 눈물뿐이었습니다.

“작은 스님, 큰스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정안 스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아니에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울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작은 스님, 큰스님은 작은 스님 친할아버지예요.”

“예?” 

정안 스님은 그제야 모든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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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가을. 

 노스님의 다비식에는 단 네 사람. 

 별안 노스님, 정안 스님, 능금이, 그리고 공양주 할머니만 참석하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많은 다비식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돌아가시면 모두 다 다비를 하였습니다. 다비는 스님의 돌아가신 몸은 물론이고 살아 있을 때 신던 신발 하나, 헌 옷마저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스님과 자신이 쓰던 방으로 돌아온 정안 스님은 안경을 벗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