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우리집 

어느새 9월.

노스님은 점점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적어졌습니다. 얼굴색도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습니다. 다른 가족들, 정안 스님과 별안 노스님, 그리고 공양주 할머니와 능금이의 마음은 밝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아무리 푸르러도 포리암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내 걱정은 할 것 없다.”

노스님이 그렇게 말하면 더더욱 노스님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학교생활은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건성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별안 노스님도 언제나 노스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화장실 가는 데도 따라갔습니다. 노스님은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전보다 훨씬 더 밝게 웃었습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정안 스님의 마음은 더욱 아팠습니다.

이 세상 끝에 가면 죽지 않는 약이 있다던데.

겨울에 꽃이 피는 산삼을 캐면 무슨 병도 고칠 수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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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은 노스님과 함께 잠자리에 들면 별의별 생각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꼭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일매일 부처님께 노스님의 별을 낫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포리암으로 다시 돌아온 후로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한 번도 아침 예불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스님이 걱정되어도 학교를 가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역시 학교를 가면 노스님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얀 포리 초등학교는 그전보다 훨씬 맑고 깨끗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학교 구석구석을 능금이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얼마 다니지 않은 포리 초등학교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너무 편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 학교 앞 동구 밖을 떠다니는 갈매기들, 그리고 학미산의 소나무들. 떼 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정말 좋은 곳이다.”

“그럼.”

능금이는 연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항상 산골의 학교만 다닌 능금이는 바닷가 학교가 처음이었습니다. 포리 초등학교에서 정안 스님을 제일 반긴 아이는 역시 희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희진이와 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반갑기는 했지만 어쩐지 서먹서먹했습니다. 희진이만 보면 자꾸 희진이 이모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그전과 달랐습니다.

누구와 만나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능금이가 말한 '눈이 좀 나빠서 검은 안경을 썼어.'라고 한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더 이상 정안 스님을 놀리지 못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정안 스님은 능금이와 함께 포리암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론 하굣길에는 늘 졸참나무숲에 앉아 머언 염전과 갯벌을 바라보았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졸참나무에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 않았어.”

정안 스님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럼, 올해도 풍년 들겠다. 농사가 흉년인 해만 졸참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했잖아.”

능금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니야. 올해는 도토리도 많이 안 열리고, 농사도 풍년이 아니야. 노스님이 그러시는데 꼭 그렇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야. 올해는 이상해. 매일 비만 오고.”

 정안 스님의 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능금이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노스님께서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머릿속에는 늘 노스님밖에 없었습니다.

 “노스님이 돌아가시면 어떡할 거야?”

“얘기했잖아.”

“몰라.”

“난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거야.”

정안 스님은 입술을 앙다물었습니다. 

 “나도 여기 있을 수 있지. 언제까지나?”

능금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정말이지?”

정안 스님은 능금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른 하중리 벌판 위로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절로 돌아왔을 때 방안에 누워 있는 노스님 곁에 별안 노스님과 공양주 할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노스님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빙긋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노스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정안아, 내가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예?”

“일주일만 더 이렇게 누워 있다가 갈란다.”

“노스님?”

"이곳에서 참 오래 살았지."

"쓸데없는 말."

별안 노스님이 눈을 흘겼습니다.

 "정안아, 그리고 능금아. 알겠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이 세상 무엇이든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다. 시간은 다르겠지만 너희도 나처럼 죽게 되어 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단 한 사람, 부처님을 만나서 평생을 즐겁게 살아왔다. 정안이 너도 나처럼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능금이 너는 이 포리암의 주인이다. 절 주변을 항상 깨끗이 하고, 특히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해라. 풀과 나무는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이지 않아. 능금아, 알았지?"

 "예."

굵은 눈물방울이 능금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바깥에서 귀뚜라미가 울었습니다.

바람도 산들산들 불었습니다.

노스님의 표정은 너무 밝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미웠지? 지금부터 정안이는 나하고 같이 안 자도 좋다."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능금이가 훌쩍거리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노스님과 같이 방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없다. 이제 모든 것은 네 몫이다. 어머니가 어디 살며, 아버지가 어디 사는지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 그냥 사는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월이 가지."

노스님이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너희들은 나가 있도록 해라."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별이 총총한 절 마당.

정안 스님은 멀리 개펄을 바라보았습니다.

점점이 떠 있는 소금집의 불빛들.

 "정말 노스님께서 돌아가실까?"

 능금이가 울먹였습니다.

 정안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스님이 안 계시다면...... 당장 혼자 방을 쓸 것이고, 혼날 일도 없을 것이고,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공양주 할머니와 별안 노스님이 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노스님과는 달랐습니다.

 능금이가 자꾸 정안 스님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바람이 아주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자!" 

능금이가 정안 스님의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너 먼저 들어가."

"난 이 세상에서 너하고 제일 친한 친구야."

능금이가 다시 팔을 잡았습니다.

 "오늘은 나 혼자 있을래."

 능금이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노스님방에서는 계속해서 이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입니다.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다음날부터 정안 스님은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능금이만 학교에 보냈습니다.

 정안 스님은 하루 종일 노스님 곁에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어쩐 일인지 노스님은 그저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학교 안 가니까 좋겠구나."

"예."

정안 스님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여태껏 학교가 좋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래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까 간 것이지, 학교에서 별로 배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번거로울 뿐이었습니다. 학교가 없는 곳에서 살 수 있다면 그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는 다녀야 한다."

어떻게 정안 스님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노스님이 오금을 박았습니다.

"자기가 편한 쪽으로만 사는 것은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은 때로는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지.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이 우리들에게는 이롭지."

 "전 그냥 산에서 살고 싶어요."

"넌 어차피 산에서 살게 될 거다."

그런데 마른 노스님의 야윈 뺨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노스님?"

"산에서 살려면 많은 것을 버려야 해."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말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몇 배나 더 힘들게 살아야 할거다. 그것이 걱정이야."

그 사이 맑은 가을 햇볕이 방문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정안아, 저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내가 정안이 너만 할 때 우리 고향집 방문을 뚫고 들어온 저 빛이 가장 아름다웠어. 방문을 열어봐라."

 정안 스님이 살며시 문을 열었습니다.

눈부신 햇볕.

높고 파란 하늘.

뭉게뭉게 떠가는 구름.

노스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모습을 절대로 잊지 마라. 그리고 나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두어야 한다. 그것이 곧 부처님 말씀이거든."

그제야 정안 스님의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노스님, 가지 마세요."

"내가 없으면 별안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내 말 알겠지?"

  정안 스님은 야윈 노스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어린 너한테 내가 못할 짓 많이 했다. 운이 좋으면 다음에 만날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앞으로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 거다."

"노스님!"

정안 스님은 노스님에게 엎어져 울었습니다.

"울지 말라고 했지. 이제 내일이나 모레면 난 말하지 못하게 될 거다."

"전 어떡해요?"

"넌 언제나 부처님이 지켜주실 게다. 부처님은 바로 너 같은 어린이를 좋아하시거든."

정안 스님의 울음소리를 듣고 온 별안 노스님과 할머니가 방밖에 서 있었습니다.

 "어린애 데리고 무슨 짓이야?"

별안 노스님이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별안 노스님의 말에도 눈물이 묻어 있었습니다.

 "별안 자네는 언제나 나의 거울이었어. 미안 하이. 먼저 떠나서."

 "괜스레 능청 떨지 말고 쉬어."

결국 별안 노스님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정안이가 학교 가기 싫다면 보내지 않아도 되네."

 별안 노스님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가 울었습니다.

귀뚜라미도 울었습니다.

능금이도, 별안 노스님도, 공양주 할머니도 모두 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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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에는 노스님과 정안 스님 둘만이 남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눈을 감은 노스님 곁에 꼬박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가늘게 뜬 두 눈만 깜빡거릴 뿐 말이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열이 오른 노스님의 이마에 물수건을 축여주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었습니다.

“힘들지?”

노스님이 간신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남자는 단 두 번 울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정안 스님은 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두 눈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미웠던 노스님, 부처님께 제발 같이 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노스님, 이제 그런 마음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제발 우리 노스님 좀 살려주세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