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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空)을 알아야 ‘거짓 나’를 버릴 수 있다   

나와 산책을 가끔 하는 진도 전 부군수 정현인 선생이 

몇 주 전쯤 내게 보내온 글을 읽어본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산책을 못한 날인 듯하다.

범종소리 호흡에 실어 참나를 찾는 밤에

이불재의 다향과 시향의 달콤함에 망상을 피운다

추적추적 빗소리, 님의 발자국인지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님은 보이지 않고 밤은 깊어만 간다.

나는 ‘참나를 무아’로 바꾸면 100점’이란 답을 보낸 바 있다. 

오온이 공한데 실재하는 ‘참나’가 어디 있겠는가. 

논리적 모순에 빠지고 마는 소리이다. 

물론 초심자를 위해 방편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만,  무아를 

‘거짓 나’의 반대인 ‘본래의 나’라고 하면 무방할 것이다.

‘거짓 나’란 무엇일까. 

받아들이는 감각(受)과 분별하는 인식(想)과 의도하는 행위(行)와 

대상을 아는 지식(識)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거짓 나’라고 생각하는데, 조금은 맞지 않을까 싶다. 

색안경을 끼고서 초록색을 갈색이라고 

우기고 사는 것이 ‘거짓 나’이자 허깨비 삶인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부처님도 사리자에게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라고 설하시고 있다. 

감각도 공하고(受卽是空), 인식도 공하고(想卽是空), 

행위도 공하고(行卽是空), 지식도 공하다(識卽是空)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거짓 나’는 공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이 정답인 것처럼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인 나도 나의 글들이 진실이라고 믿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수상행식이 공하다고 깨달았다면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좀 더 미안해하고 겸손해질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추운 겨울밤에 이불이 나를 덮고 있는 것을 모른 채 

내가 이불을 덮고 있다고만 일방적으로 생각했다.   

목사나 신부들은 산중 선사들이 공의 도리를 알아야만 

행복해진다고 법문하면 구름 위를 걷는 

고고한 소리라며 애써 외면하며 발길을 돌려버린다.

“공이라는 것을 알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공을 알면 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까.”

불자들도 듣는 시늉만 한다. 삶이 힘겹고 공이란 것이 

아직 관념에 머물러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은 나도 모호하게 이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우 저편에 꼭꼭 숨어 머리카락 정도만 보이는 

공을 조금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감각과 인식도 공하여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나의 선택과 판단도 결코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자각에 대해서 고마워할 뿐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종종 만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심리치료사 후배는 문제가 얽히면 산중 암자로 간다고 한다. 

지금까지 해온 구상을 놓아버린 채 며칠이고 자신을 

잊어버린 채 기도하다 보면 새로운 해답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해답은 누군가가 내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한 청중이 

자기(self)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당신들 모두’라고 답했던 것일까. 

무량겁의 모든 경험이 저장된 장식(藏識)을 

제8식 혹은 아뢰야식이라고 하는데, 기도를 하면 아뢰야식이 드러나 

기도하는 후배에게 해답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럴 거라고 믿는다. 

21년 전에 낙향해서 밭을 사들여 매화나무 18그루를 심었는데, 

10여 년 전부터는 지인들에게 매실을 따가도록 허락하고 있다. 

꽃과 향기, 열매를 선사하는 이타행을 하는 매화나무다. 

‘당신들 모두’인 우리도 너나없이 매화나무와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