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수순(隨順)하라(sovacassatā).  

현묘재 뜰 앞에 심어놓은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꽃망울 맺은 지 여러 날이 지나도록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아 애간장을 태우더니, 드디어 백매(白梅)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홍매(紅梅)와 청매(靑梅)도 하루 간격으로 꽃잎을 활짝 열었습니다. 샤라랄라랄라라~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막 벌어져 활짝 꽃잎을 펼친 매화꽃에 코를 들이대고 상큼한 향기를 맡아봅니다. 청매향은 청아하고, 백매향은 담백하며, 홍매향은 최고급 향수를 능가하는 향기를 뿜어냅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앞으로 며칠은 매화꽃을 보며 흠뻑 그 향기를 만끽하는 호사를 누릴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맞이하는 즐거움이지만 언제나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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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온화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온화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충고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타당한 조언이나 충고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복종할 줄 압니다. 정당하고 애정 어린 비판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Openness to Criticism),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순(隨順, sovacassatā)이라고 합니다. 수순은 유화(suavity), 즉 부드러운 것이며 온화한 것이며, 예의 바른 것이며, 상냥한 것이며, 선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순응할 줄 아는 것이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행복했을 때 나의 마음은 온화하고 부드러웠습니다. 또 불쾌했을 때 나의 마음은 굳어 있었고 날카로웠습니다. 어느 누구든 이 이치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불쾌하고 날선 마음으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28번째 행복 지침으로 ‘수순하라’를 제시하셨을 것입니다.   

<망갈라숫따>의 구성은 궁극적인 행복인 열반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단계마다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는 형식입니다.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의 단계를 지나 수혜(修慧)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욕 할 줄 아는 것’에 이어 ‘수순하라’는 지침은 수혜의 초입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욕 없이 열반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수혜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작 단계에서는 부처님이나 스승의 가르침에 수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가 왼쪽 골 에어리어, 즉 ‘손흥민 존(zone)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의 왼쪽을 꿰뚫는 골을 자주 성공시키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감독이나 코치들의 기술 지도와 그 지도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반복 훈련이 뒷받침되어 있는 것입니다. ‘감아차기’, ‘휘어차기’, ‘무회전킥’ 등의 슈팅 기술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 지도자들에 의한 수많은 교정과 반복적인 연습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혜의 단계에 막 들어선 시점에서는 부처님이나 먼저 도과를 성취한 스승들의 지도와 훈계, 또는 충고에 열린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수순(순응)을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순명(順命)과 같은 것이거나 비슷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순과 순명은 엄연하게 다릅니다. 순명은 이른바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분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청빈, 순결과 함께 수도자(修道者)의 삼주덕(三主德)으로 일컬어지는 순명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순(순응)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순명은 외부의 대상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수순은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요. 

<앙굿따라니까야> ‘훈계를 잘 받아들임 경2(A7:34) Sovacassatā-sutta’에서 부처님은 수순, 즉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것의 공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간밤에 어떤 천신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나에게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천신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법이 있으면 비구가 쇠퇴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것이 일곱입니까? 스승을 존중함, 법을 존중함, 상가를 존중함, 공부함을 존중함, 삼매를 존중함, 훈계를 잘 받아들임, 선우(善友)를 사귐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면 비구가 쇠퇴하지 않게 됩니다.’

비구들이여, 천신은 이렇게 말하였고 나는 그것에 동의를 하였다. 그때 천신은 ‘스승께서 나의 말에 동의를 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신자 수가 급감하고 승려들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으며, 신규 출가자들도 대폭 줄어 상가의 유지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급기야는 불만을 참지 못하고 부처님을 모신 전각에 방화를 하는 승려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어제오늘의 과보가 아닐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상가가 그동안 상가 안팎에서 제기된 크고 작은 훈계와 경책들을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고 공손한 자세로 수용했더라면, 상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훈계를 잘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즉 수순과 순응이란 비구의 쇠퇴를 막을 정도로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디가니까야> ‘다숫따라숫따(Dasuttarasuttaṃ 十上經)’에도 순응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상수제자 사리뿟따로 하여금 대신 설법을 하게 한 내용을 담은 경전입니다. 비구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묻고 사리뿟따 존자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것이지요. 한 비구가 묻고 사리뿟따 존자가 전체 대중에게 답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퇴보에 빠진 것입니까?” 

“여섯 가지 존중하지 않음입니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첫째,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둘째,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셋째, 상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넷째, 공부함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다섯째,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여섯째, 친절함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이 여섯 가지 법이 퇴보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수승함에 동참하는 것입니까?” 

“여섯 가지 존중함입니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첫째, 스승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둘째, 법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셋째, 상가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넷째, 공부함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다섯째, 불방일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여섯째, 친절함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뭅니다. 이 여섯 가지 법이 수승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디가니까야> 합송경(Saṅgīti sutta) ‘두 가지로 구성된 법들’에서도 수순을 의미하는 ‘유순함’과 유순함과 짝을 이루는 ‘선우를 사귐’이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역시 부처님을 대신하여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알고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두 가지로 구성된 법을 분명하게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합송해야 하며, 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두 가지로 구성된 법입니까?”

“정신과 물질, 무명과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 자기부끄러움(慙) 없음과 남부끄러움(愧) 없음, 자기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불손하게 말함과 삿된 친구를 사귐, 유순함과 선우를 사귐…중략 … 도반들이여, 이것이 아시고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분명하게 설하신 두 가지로 구성된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합송해야 하며, 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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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가니까야>의 가르침에 따르면, 수순(순응)은 수승함에 동참하는 것이며,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수순하라’는 궁극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 인욕과 함께 수순의 자세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수행의 본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