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구멍집 

정안 스님은 다시 졸참나무숲 포리암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졸참나무숲은 이제 예전의 졸참나무숲이 아니었습니다. 정안 스님에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봄이 오는 들녘, 정안 스님의 가슴은 마구 뛰었습니다. 

 노스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며칠을 끙끙댔습니다. 노스님께 꼭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는 날 저녁.  

“저 학교 가기 싫어요.”

공양을 마치고 정안 스님은 기어이 그렇게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노스님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물끄러미 정안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스님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래에?” 

 정안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학교 다니기가 그렇게 힘드냐?”

"......?"  

“한쪽 눈이 없다고 아이들이 놀리든?”

“......”

정안 스님은 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와락 노스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정안 스님을 품에 안은 노스님의 어깨도 들썩거렸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노스님의 품에 안긴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운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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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노스님은 행장을 차렸습니다.

정안 스님도 말없이 바랑을 졌습니다.

엿보기산을 찾아가는 길.

 정안 스님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까마득히 아랫마을들이 보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을 따라 벌써 여러 번의 전학을 했습니다. 속초에서 불암사로, 불암사에서 포리암으로 그리고 다시 정선으로 오는 길입니다.

“힘들지?”

노스님은 항상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진짜 힘든 건 팔 다리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맑았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물은 옥빛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물은 차가웠습니다. 하얀 자갈 계곡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이 막은 것 같아 다가가면 다시 물길이 이어졌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은 하늘만 빠끔 바라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길은 여기 밖에 없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노스님과 정안 스님은 말없이 걸었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이 가는 완전히 땅거미가 내리고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정말 쟁반 같은 달이었습니다. 사방은 온통 은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습니다. 대낮같이 밝은 밤. 공연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스님은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아직 자갈길 20리를 가야 한다.”

길이 끊어졌습니다.

얕은 물길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무조건 노스님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얼른 쉬고 싶었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절로 가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상관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안 스님은 학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학교는 잠깐 다니고 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천금같이 귀하게 여기지만 우리 몸은 언젠가는 흩어지지. 흐흐흐!"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물길을 한 시간 이상 올랐을 때였습니다. 멀리서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바로 냇가 옆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중국 영화에나 나오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제법 커다란 오동나무가 작은 오두막을 덮고 있었습니다. 물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저기 누가 살아요?”

“모르겠다. 그전에는 나처럼 늙은 스님이 계셨는데..... 아직도 있는지.”

정안 스님은 집을 보자 힘이 났습니다. 불빛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외딴 절이나 외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면 눈앞이 가물거렸습니다. 옛날에 옛날에 잠깐 살던 속초의 절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절의 이름도 잃어버렸습니다. 바닷가에 있던 그 절은 항상 바람이 거셌습니다. 그런데 유독 노스님 방에 있던 커다란 등잔불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스님은 전기를 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등잔이 필요했습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정안 스님은 그 불빛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스님 만나면 삼배하는 거 알지?”

“네.”

정안 스님에게 그건 아주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까치구멍집 앞에 닿았습니다. 

 “다행히 지난 물난리 때 안 떠내려갔구나.”

노스님이 활짝 웃었습니다.  

그런데 노스님과 정안 스님이 물을 건너가자 빨간 스웨터를 입은 꼬마 하나가 쪼르르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스님과 정안 스님을 보고는 다시 쪼르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노스님과 정안 스님이 문 앞에 들어서자 노스님처럼 늙은 스님 한 분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까 그 꼬마는 그 스님 뒤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노스님과 그 스님은 서로 합장하는 것도 잊고 부둥켜안았습니다.

 “아이구 은학당!”

 “별안 자네도 멀쩡하구먼.”

 두 노스님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꼬마 아가씨는 그냥 멀뚱멀뚱 서 있었습니다. 

“아 참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일세.”

“네가 정안이냐?”

“네.”  

정안 스님이 곱게 합장했습니다.

“그런데 저 꼬마 아가씨는?”

“응. 내가 길에서 얻었지.”

별안 노스님이 빙긋 웃었습니다.

“능금아, 인사드려라.” 

꼬마 아가씨 이름이 능금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분명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는데 오히려 씨익 웃었습니다. 은학리를 떠나올 때 이제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도 당당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능금이가 노스님에게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노스님."

모두들 들마루에 앉았습니다. 별안 스님이 부엌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리고 노스님과 별안 스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수한 감자 익는 냄새가 났습니다. 정안 스님의 배가 꼬르륵 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능금이가 씨익 웃었습니다. 아주 예쁜 아이였습니다. 긴 머리에 얼굴이 새카맸습니다. 완전히 산 아이였습니다.

“너희들은 저쪽 가서 놀아.”

정안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가마솥에서 감자 익는 냄새가 코를 질렀습니다. 정안 스님은 침을 삼켰습니다.

능금이가 살며시 가마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감자 하나를 큰 나무젓가락으로 찍어냈습니다. 크고 하얀 감자가 김을 내고 있었습니다. 능금이가 그것을 정안 스님에게 내밀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대뜸 그것을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덜 익었고,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을 데었습니다. 능금이가 또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웃었습니다.

“몇 학년?”

“이제... 4학년.”

“나도.”

능금이의 입이 벌어졌습니다.

정안 스님도 기뻤습니다.

“어디서 왔어?”

“......”

정안 스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왔더라.  

“그런데 난 학교 못 가.”

“왜?”

“그냥.”

정안 스님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도 학교 못 갔어. 학교까지 20리도 넘어. 그전에는 길이 있어서 다녔는데... 이번 여름에 홍수가 나서... 벌써 학교 못 간지 두 달도 넘었어.”

정안 스님은 싱긋 웃었습니다.

“학교 안 가면 좋지.” 

“그렇긴 하지만 여긴 너무 심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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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이는 아주 밝은 아이였습니다. 금방 시무룩했다가도 또 금방 활짝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첫 만남인데도 능금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 노스님하고 같이 사는 거야?”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아원에서 스님 따라왔어.”

그때 밖에서 노스님이 정안 스님을 불렀습니다.

정안 스님은 급하게 뛰어나갔습니다.

“우리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서 살까?”

정안 스님이 노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스님도 정안 스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아니 인석이 꿀을 먹었나. 왜 말이 없어?”

 “고놈 눈이 자넬 닮았네그려.”

별안 노스님이 한껏 웃었습니다.

 “원래 함께 살면 닮는 거여.”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머리를 쓸었습니다. 

밤이 깊어갔습니다. 월곡리에서의 첫 밤. 오두막 단칸방에 네 명이 모두 누워 잠을 잤습니다. 지난 장마로 다른 방 구들장이 모두 내려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잠자리가 바뀌었는데도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그만큼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