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㉗
이 학종 2021-02-26 (금) 07:47
26. 적절한 때에 법문을 들어라(Kālena dhammasavaṇaṃ)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축구 리그로 평가받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목받는 공격수 콤비로 활약 중인 토트넘 핫스퍼 팀의 ‘손-케 라인’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손흥민과 케인의 절묘한 콤비네이션 플레이가 골(Goal)과 어시스트(Assist) 기록을 연일 갱신하면서 새로운 축구 역사를 써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축구 경기에서 ‘손-케 라인’처럼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빠른 주력, 밀리지 않는 피지컬, 현란한 드리블 기술과 볼 키핑 능력, 킥 능력, 패스 능력 등이 거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들을 고루 갖추고 있더라도, 그 능력이 효과적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타이밍입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곳으로 패스 또는 슈팅을 하는 능력이 없다면 좋은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걸 맞는 성과와 명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수비진의 오프사이드라인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드루패스(Through pass), 반 박자 빠른 슈팅, 자로 잰 듯 정확한 크로스 등은 타이밍, 즉 가장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는 예리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어시스트가 골 득점과 대등한 공격 포인트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적절한 때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부처님은 적절한 때와 관련하여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적절한 때에 진리의 법을 듣고, 적절한 때에 진리 법에 관한 논하며, 적절한 때에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止 ; 三昧], 적절한 때에 지혜를 닦는[觀 ; 慧] 것을 네 가지의 적절한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한 설법이나 실천도 적절한 때를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적절한 때가 어떤 때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은 아닙니다.
<망갈라숫따(행복경)>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적절한 때란 어떤 때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망갈라숫따(행복경)>에서 제시한 행복해지기 위한 체크리스트는 삶을 함께 할 사람에 대한 기준으로부터 시작해, 선행을 통해 선근공덕을 쌓기 위한 기준, 바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준비와 자세, 가족과 친지를 잘 돌보기 위한 기준, 그리고 지계를 통해 건전한 삶을 살아가며, 나아가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위대한 가르침 담마로 다가가는 삶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의 구성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적절한 때란 담마(법)를 들을 수 있는, 또는 들어도 될 만한 조건과 인연이 성숙되었다고 판단되는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건과 인연이 성숙되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최상의 행복으로 가는 걸음을 지체시키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을 뿐이니, 지체 없이 법문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두루 살펴보면 부처님은 ‘적절한 때’에 대해 몇 가지 언급을 하고 계십니다. 초기불교의 율장(律藏) 가운데 빠찟띠야(pācittiya), 즉 사소한 거짓말이나 욕설 등 비교적 가벼운 죄를 수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빠찟띠야를 어긴 비구·비구니는 참회하면 죄가 소멸되지만 참회하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빠찟띠야 가운데 특히 대중식과 관련한 규정에서 언급하고 있는 ‘적절한 때’는 아플 때, 옷을 보시할 때, 가사를 만들 때, 여행할 때, 배를 탈 때, 성대한 행사가 있을 때, 수행자가 음식을 제공할 때를 말합니다. 오직 이때만이 적절한 때라는 것이지요. 이때를 놓치면 특별한 예외규정에 따르지 않는 한 수행자는 음식을 섭취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재가자들이 출가수행자에게 보시하는 적절한 때에 대해 <앙굿따라니까야> ‘바른 시기에 하는 보시 경(kāladāna-sutta)’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계십니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바른 시기에 하는 보시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손님으로 온 자에게 보시하고, 길 떠나는 자에게 보시하고, 병자에게 보시하고, 흉년이 들었을 때 보시하고, 승원에서 첫 번째로 열리는 가장 좋은 과일을 계를 갖춘 자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바른 시기에 하는 보시가 있다. - 대림 스님 옮김
부처님은 <망갈라숫따(행복경)>에서 스물여섯 번째 행복 지침으로 ‘적절한 때에 법문을 듣는 것(the opportune hearing of the Dhamma)’을 제시함으로써,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지혜(三慧, 문혜 사혜 수혜) 가운데 첫 번째 단계인 문혜(聞慧)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문혜(聞慧, śrutamayī prajñā)는 문소성혜(聞所成慧)라고도 하는데, 스승이나 친구로부터 교법을 들음에 따라 생겨나는 뛰어난 지혜[勝慧]를 말합니다. 문혜는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의 근거 또는 바탕이 되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출·재가의 제자들은 물론 하늘 사람들에게조차 문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부분 일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오전에 탁발에서 돌아온 뒤 출가수행자들을 대상으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삼매에 들어 비구(니)들이나 재가 수행자들, 뭇 중생들에게 장애나 괴로움이 있는지를 살피고,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직접 찾아가서 따뜻하고 적절한 조언과 설법으로 도움을 주곤 하셨지요. 오후에는 주로 재가자들의 방문을 받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수기설법을 하셨습니다. 이어 저녁에는 출가비구(니)들의 방문을 받거나 강당 등에 모아 공부를 점검해 주셨습니다. 한밤중에는 찾아온 천신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을 위해 법문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설법을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요. 법문과 법문을 듣는 것의 중요성은 이렇듯 부처님의 하루 일과만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 선불교의 큰 스승들의 일과를 보더라도 법문의 중요성은 잘 드러납니다. 한 수행처의 스승이 되는 큰스님들이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수좌들을 제접하면서 매일 입실 지도를 했다는 것은 여러 어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조선사는 입실 제자만 139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마조뿐 아니라 당·송대의 기라성 같은 선사들 대부분이 하루에 100여 명의 납자들을 입실케 하여 지도했습니다. 이분들은 공히 조참, 마참, 소참법문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법석을 제자들을 대상으로 열었습니다. 선의 황금시대에 선문에서는 다채로운 설법의 향연이 펼쳐졌던 것이지요. 이러한 부처님 상가의 전통은 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게 해 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행법을 익히고, 수행법을 갈고닦는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 법을 가까이하고, 적절한 때에 자주 법문을 듣는 것이야말로 불교 공부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공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설법을 청(請)해 듣는 것의 다섯 가지 이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법한 적이 있습니다.
“자주 설법을 청(請)해 들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공덕인가? 첫째는 아직까지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고(未曾聞者便得聞之), 둘째는 이미 들은 것은 외울 수 있으며(以得聞者重諷誦之), 셋째는 소견이 삿된 곳으로 기울어지지 않고(見不邪傾), 넷째는 여우처럼 의심하던 것이 사라지며(無有狐疑), 다섯째는 깊고 깊은 뜻을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卽解甚深之義).” -<증일아함경> 28권 청법품(聽法品) 제1경
적절한 때에 법문을 듣는 것은 이렇듯 많은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법문으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이 선근공덕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완전하고도 최고의 행복인 닙바나로 인도하는 법문을 듣는 것에 더욱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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