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감사할 줄 알라(kataññutā, 知恩) 

오래전 한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에 한 수행자가 유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춥고 배도 고픈 데다가 눈을 붙일 곳도 없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간청을 들어주지 않았지요. 할 수 없이 이 수행자는 마을 곳곳에 서 있는 매화나무 가운데 한 나무 아래에서 묵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추워서 잠을 이룰 수도 없었지요. 야생동물들은 울음소리에 섬뜩한 두려움이 밀려왔고, 혹시라도 공격해 오지나 않을까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할 한밤중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지요. 이 수행자는 달밤에 펼쳐진 청아한 매화꽃의 아름다운 정경과 향기, 그리고 달 밝은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코끝을 찌르는 향기를 내뿜으며 환하게 피어난 매화꽃들이 둥근 달을 향해 미소 짓는 듯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에 감동한 수행자는 가만히 일어나서 마을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진심으로 마을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큰 절을 올린 것이지요. 마을 분들의 거절이 아니었다면 그는 평범한 지붕 아래서 잠잤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이 멋들어진 축복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개한 매화꽃들, 희미한 달과의 속삭임, 밝은 달밤의 고즈넉함, 그리고 청아한 매화 향기가 주는 감동이라니…. 

이 이야기는 삶에서 모든 것을, 그것이 자신을 향한 박대라고 할지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두루 알다시피 교만하거나 너그럽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면 깊이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정직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솔직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표리부동하지 않고 심성이 투명한 성정을 의미합니다. 

행복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은혜를 알며, 감사할 줄 알고, 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절제할 줄 알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행복이란 욕심을 채움으로가 아니라 욕심을 다스림으로 다가옵니다. 행복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배려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성숙한 성품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망갈라숫따(행복경)>에서 행복해지는 스물다섯 번째 지침으로 ‘감사(感謝, Gratitude)할 줄 알라’를 제시하십니다. 감사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감사’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기독교의 바이블에 나오는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는 구절을 떠올립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알려진 말이기도 합니다. 반면 상당수 불자들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감사할 줄 알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생소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라는 말은 불교와 무관한 말인 줄 아는 불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여러 경전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쌍윳따니까야> 두려움의 품 ‘승냥이의 경[Dutiyasigālasuttta]’에 ‘감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 시에 계셨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새벽녘에 승냥이가 우는소리를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 늙은 승냥이에게 은혜를 느끼고 감사하는 자는 있어도 우리들 가운데 사끼야 족의 아들에게 맹세하여 은혜를 느끼고 감사하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수행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알고 감사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한 작은 일이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이 경에서 언급한 ‘승냥이’는 개창병(옴병)에 걸린 늙은 승냥이로, 한적한 곳이나 나무 밑, 야외를 좋아하지 않는 속성을 가진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속성은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권장한 것과는 정반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개창병 걸린 승냥이를 비유로 들며, 수행승이 승냥이와 같이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압도되고 마음이 현혹되면 결코 한적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야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경책하십니다. 수행자에게 이양(利養)과 명예, 칭송이 얼마나 위험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인지를 일깨우고자 이런 가르침을 내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는 정작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은혜를 느끼고 감사하는 자는 드물다고 개탄하십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다시 이렇게 부연합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이득과 명예와 칭송은 두렵고 자극적이고 거친 것으로, 멍에를 여읜 위없는 안온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우리는 이미 생겨난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버릴 것이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집착하지 않고 지내겠다.’라고 배워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부처님은 또 <앙굿따라니까야> ‘참사람의 경[Sappurisasutta]’에서 “참사람의 성품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 시에 계셨다. 

“수행승들이여, 참사람이 아닌 사람의 성품과 참사람의 성품에 관하여 가르치겠다. 잘 듣고 깊이 새겨라. 내가 설하겠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참사람이 아닌 사람의 성품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들이여, 참사람이 아닌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 수행승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참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특징적인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참사람이 아닌 사람의 성품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사람인 사람의 성품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참사람인 사람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참사람인 사람들에게 특징적인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참사람인 사람의 특징이다.”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은혜를 모름의 경[Akannutasutta]’에서는 네 가지 악행을 설명하며 은혜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밝힙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원리를 갖추면 그 원리가 작용하는 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신체적 악행, 언어적 악행, 정신적 악행,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원리를 갖추면, 그 원리가 작용하는 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원리를 갖추면, 그 원리가 작용하는 대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신체적 선행, 언어적 선행, 정신적 선행,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원리를 갖추면, 그 원리가 작용하는 대로 천상에 태어난다.”  - 이상 전재성님 역

흥미로운 것은 ‘감사’를 대하는 관점이 불교와 기독교가 판이하다는 점입니다. 불교에서의 감사는 자기(인간) 중심적이지만 기독교에서의 감사는 창조주(절대자)를 향한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지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유명한 차라투스투라의 독백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서른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의 세월을 지치지도 않고 정신과 고독을 즐기며 살면서 어느 날 외치는 장면입니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

이 선언은, 위대한 별빛이 있지만 내가 없다면 그 빛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발상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분들은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겐 생명의 근원이 되는 태양도 별빛도 창조주의 작품으로서 감사해야 할 대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대뜸 별빛을 향하여 ‘별빛이여, 그대는 나에게 감사하라’는 식으로 외칩니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존재함을 선언한 것입니다. 니체가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술한 감사에 대한 시각은 불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