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로 인연 맺은 스승과 제자2
-수불스님의 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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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윤경

 큰언니 신도 모습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수불 스님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여신도가 말했습니다.
 “언니, 노스님을 뵈러 왔으니 이제 일어나요.”
 “아니다. 나는 스승님을 만났으니 됐다.”
 수불 스님은 난감했습니다. 스님이 보기에 큰언니 신도에게서 부질없는 아만이 보였습니다. 한 번 고집을 피우면 관철하고야 마는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것을 절집에서는 상(相)이라고 부르지요. 수불스님도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했습니다.
 “보살은 상덩어리가 꽉 차 있어요. 얼른 노스님께 가봐요.”
 “아닙니다. 이제야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저의 스승님이 돼주십시오.”
 “보살님은 자신감이 넘치는 분 같은데 저기 좀 봐요.”
 수불 스님이 가리키는 것은 암자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여신도였습니다. 수불 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지나가는 보살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알아맞혀 봐요. 한 개도 틀리지 말고.”
 “.....”
 “보살이 해온 공부(기도)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오. 참선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바로 알 수 있어요. 그것이 지름길이요.”
 “스님, 참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수불 스님은 큰언니 신도가 완강하게 버티자 일어나버렸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더니 암자를 내려가 사라졌습니다. 할 수 없이 큰언니 신도는 노스님을 뵙는 둥 마는 둥 하고 여신도들과 함께 암자를 내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허탈하기는커녕 스승을 찾았다는 생각에 가슴은 마냥 설렜습니다. 큰언니 신도는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래,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뭔지를 머리카락 한 올 세 듯 환히 꿰뚫어 보는 것이 참된 공부일 거야. 내 소원을 비는 기도란 내 욕망일 뿐이지.’

 큰언니 신도는 며칠 후 다시 내원암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수불 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비질한 마당에 햇살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자락에는 여전히 봄은 와 있지 않았습니다. 마른 낙엽이 어디론가 도망치듯 불어 가는 바람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매화꽃망울도 연둣빛 그대로였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람쥐도 게으른 봄을 탓하는지 굴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큰언니 신도가 수불 스님을 뵙자마자 하소연하듯 말했습니다.
 “스님,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정말 그래요?”
 수불 스님은 큰언니 신도를 암자 뒤로 데리고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시험하기 위해서 데리고 간 셈이었습니다. 암자 법당으로 가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노스님이 계시기 때문에 무례하다는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암자 뒤 풀밭에는 반반한 반석이 방석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지 않은 풀밭은 아직 누런 빛깔이었습니다. 수불 스님은 절을 받기 위해 거뭇거뭇한 반석 앞에 앉았습니다. 스승으로 모시려면 반드시 세 번 큰절을 하는 것이 절집안의 풍습이었습니다. 큰언니 신도는 반석 위에서 큰절을 하려고 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머리는 세모나고 몸뚱이는 검은빛인 독사 한 마리가 큰언니 신도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뱀들은 아직 나오지 않는 날인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독사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큰언니 신도 앞으로 점점 다가왔습니다. 독사는 겨우내 먹이를 먹지 않았는지 독이 잔뜩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머리를 무섭게 쳐들고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큰언니 신도는 망설였습니다. 절하려고 머리를 굽히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달려들 것만 같았습니다. 두려움에 등줄기로 전율이 흘렀습니다.
 ‘머리를 숙이면 저놈이 나를 물지도 몰라.’
 ‘물리면 나는 죽을 거야.’
 수불 스님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위험하니 그만두라고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독사가 큰언니 신도를 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독사는 겨우내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했으므로 눈이 부시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사가 무섭니 징그럽니 하는 것은 사람의 편견일 뿐이었습니다. 독사는 반대로 사람이 무섭고 징그러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눈앞의 독사를 살려고 세상에 나온 한 생명으로 보면 그만이었습니다. 큰언니 신도는 순간 자신의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스승님을 만났으니 독사에 물려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마음을 정리하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예법대로 큰절을 시작했습니다. 독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절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홍련암에서 기도하는 동안 얻었던 힘이 되살아난 듯했습니다.
 세 번 절하고 나니 독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수불 스님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보살님, 나 태어난 해가 뱀의 해라오. 뱀띠지요.”
 “스승님 되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햇살이 암자 뒤뜰에 금싸라기처럼 떨어졌습니다. 독사가 지나간 누런 풀밭이 곧 푸릇푸릇 움이 틀 것만 같았습니다. 훗날 수불 스님은 큰언니 신도에게 무량심이란 법명을 내려주었습니다. 무량심 보살은 참선만 하는 안국선원을 외호하는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안국선원의 큰언니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