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찰이 그렇듯 “산신각(山神閣)” 현판이 걸렸지만, 산신뿐 아니라 칠성과 독성을 함께 봉안하였습니다. 한 분씩 모시는 사찰에서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을 따로 세우지만 삼신(三神)을 하나의 전각에 모시는 경우, 대부분은 “삼성각(三聖閣)” 현판을 많이 거는데 말입니다.
동서양 모두 하늘과 땅, 물과 바람으로 인한 자연 재해와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기간에 겪는 힘들고 괴로운 일을 벗어나게 해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믿어왔습니다.
삼신을 믿는 우리 조상님들의 특이함은 산신과 칠성 그리고 독성이 서로 다른 기복의 대상이어서 어울리지 않음에도 어느 한 믿음이 우월하다거나, 어느 하나만 유일하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산신각에는 각 신앙마다 한 점씩, 받드는 분을 그린 탱화를 걸었습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칠성탱은 광무 4년(1900년)에 모셨습니다. 이 탱화로 짐작하건대 조선조 말 고종임금 재위 시에도 ‘이 자리에 정방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라시대 창건될 때의 옛 건물은 언제인가 사라졌지만 깊은 산골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어져 온 것은 불보살의 큰 가피가 있는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칠성탱은 중앙에 치성광여래, 치성광여래 오른쪽에 일광보살과 네 분의 (칠성)여래, 왼쪽에 월광보살과 세 분의 (칠성)여래가 자리하였습니다. 하단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관한다는 칠원성군이 관복에 관모를 쓴 관인차림으로 홀을 들고 섰습니다.

 

 

위쪽에는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처리한다는 삼태육성이 자리하였는데, 그 사이에 정수리가 유난히 올라간 남극노인성이 있습니다. 이 노인(별자리)을 보면 ‘장수하고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전해지는 만큼, 칠성탱을 보실 때에는 이 노인을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화기에는 시주자로 ‘계묘생 이○○(李○○)’와 ‘을묘생 이○용(李○龍)’이 쓰여 있어서, 58세의 할아버지와 6살 된 손자의 무병장수를 발원하면서 시주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성탱은 ‘새로 조성하여 불기 2548년(서기 2004년) 백중에 모셨다’고 쓰였습니다.
독성(獨聖)은 글자의 뜻 그대로 연기법과 세상의 진리를 혼자 깨우쳐 성인이 된 분입니다. 스승의 도움을 받아도 깨우치기 어려운 진리를 홀로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모든 독성은 흰머리는 물론 눈썹까지도 길게 늘어진 모습입니다. 깊은 산과 물 맑은 곳에서 마디마디에 옹이가 박혀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들고 소나무 아래나 암반에 홀로 앉아 쉬고 있거나 명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금수산 명품인 송이버섯을 나타내려함인지 산기슭에 불로초가 그려졌고,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는 자드락길 옆의 능강계곡을 그렸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독성존자는 가사 장삼에 주장자와 불로초를 들고 있는데, 두광을 옅게 표현하여 성인이 된 아라한임을 나타냈습니다. 불을 지펴 차를 다리는 동자와 잘 익은 복숭아를 공양하는 동자가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아전인수 격으로 독성께서 ‘모든 것을 다 깨우쳤으니, 이제 할 일이라고는 말세에 이른 현세의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것뿐이 없다’는 일념으로 정방사로 내려오신 모습을 그린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전통사찰을 가면 이 전각과 저 전각에 들러 불보살님께 절을 합니다. 그런데 산신각에 이르면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게 됩니다. 저처럼 ‘산신은 부처님 가르침과 별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도 제법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많은 전통사찰 중에 산신각이 없는 사찰은 없다’는 사실을 보면 산신신앙은 불교와 떼어놓을 수 없는 듯합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님들께서 산과 들판에 살아오면서 산신(자연)이 주는 큰 힘에 외경심을 품어왔고, 산 속에 자리한 절을 지켜주는 고마움에 감사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신은 ‘대(代)를 꼭 이어야 한다’는 유교 관념이 짙은 우리에게 자식을 점지해 주고, 자식의 건강과 출세를 이루어 준다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이런 전통신앙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유지됐고 ‘예전에 나의 할머님 그리고 어머님도 산신께 진심을 다해 기도를 드렸다’는 생각에 나와 가족이 평안하기를 빌었습니다.
 

금수산 산신은 깎아지른 절벽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배경으로 호랑이 등에 앉았는데, 붉은 장삼에 짙은 남색의 띠로 검은머리를 묶고 간신히 보이는 투명한 탕건을 썼습니다. 턱수염도 길지 않고 검어서 다른 산신보다 젊은 모습이며, 눈썹은 끊긴 듯 이어지며 끄트머리가 말렸는데 상당한 위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젊었지만 신선임은 확실해서 오른손에는 신선들의 상징물인 파초선을, (유난히 긴) 왼손에는 영지를 들었습니다. 호랑이는 민화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얌전히 앉았고, 동자가 산신의 지팡이를 받들고 섰는데 산신의 물건을 감히 맨손으로 잡을 수 있겠느냐며 흰 무명천으로 감싸서 들었습니다.
동자가 허리춤에 찬 호로병에서는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구름 속에서 청룡이 위엄을 보입니다. 금수산을 휘감으며 흐르는 남한강이 청풍호를 이루었으니, 자고 일어나면 보게 되는 강물에 의존하여 생업을 잇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는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용왕에 큰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까닭에 용왕을 산신탱에 등장시켜 물가에서 일어나는 흉한 일을 피하려는 뜻을 담았지 않나싶습니다.

 

정방사 곳곳에는 많은 주련이 걸려있는데, 원통보전 뒤편에 걸린 주련은 멋진 풍경을 보면서 일어난 감회가 담겨있어 불자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깊게 합니다.

 

 

이 주련을 읊으신 분은 ‘보살은 욕심에 집착하지 않으며, 복덕을 기대하지 않고 받지도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시는 분이었을 겁니다. 그런 분이 순간순간 펼쳐지는 금수산 선경에 마음을 빼앗겼으면서도 한없이 즐거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방사입니다. 그리고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시는 보살과 성불마저도 미룬 채 중생을 구제해 주시는 보살 그리고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머나먼 훗날까지도 이곳에 머물면서 큰 신통력으로 중생들의 공양을 더 큰 과보로 돌려주는 나한이 계신 곳입니다. 이러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불자들이 한번은 찾아보아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글이 미디어붓다에 실릴 때쯤, 단풍이 상당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한 달 전 즈음에 본 아름다움을 다 전해드리지 못함이 아쉽고, 다시 또 찾아보고 싶은 절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