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이학종의 ‘망갈라숫따(행복경)’ 이야기 ⑪
이학종 2020-10-30 (금) 08:52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라”
당진 산골마을에 살면서 이 지역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느리다던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충청지역 사람들에 대한 속설은, 몇 해 경험해보니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지배세력이 자주 교체되는 경우를 당했고, 그런 변화무쌍한 환경들이 섣부른 행동과 속내를 감추게 하는 DNA를 키웠을 것으로 추정해보지만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말수가 적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말수가 적은 것은 통상 말 많은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낳습니다.
가급적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은 예로부터 권장되어온 교훈이기도 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오르지 않아도 될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고, 말을 듣는 이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해 말 많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말을 많이 하고 나면, 무엇인가 허탈하고, 왠지 손해 본 것 같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급적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은 예로부터 권장되어온 교훈이기도 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오르지 않아도 될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고, 말을 듣는 이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해 말 많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말을 많이 하고 나면, 무엇인가 허탈하고, 왠지 손해 본 것 같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중에서(사진=염정우)
말수를 논하다 보니, 중학생 시절 한문 시간에 배웠던 한자가 만들어지는 여섯 가지 원리[六書]가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육서 즉, 상형(象形)을 비롯하여,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가운데 ‘회의’를 설명할 때 배웠던 ‘聖(성)’자는 제 삶에서 좌우명처럼 여겨온 한자입니다. 聖의 사전적 의미는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聖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최고의 진리를 수식할 때 등장합니다. 수행에 큰 진전을 이룬 수다원 이상인 수행자를 성인(Ariya)으로 경배하는 것, 불교의 요체를 체계화한 사성제(四聖諦)에 ‘聖’이 포함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聖’자를 해체해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귀(耳)와 입(口)과 왕(王)이 합쳐진 것인데, 이 세 글자의 결합이 어떻게 고결하고 거룩하다는 의미가 되었을까요. ‘聖’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耳’자가 ‘口’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듣고(聽多) 적게 말하는(語少) 것이 왕도(王道)’라는 뜻이지요. 가급적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꼭 필요한 말만 가려서 하는 것이 고결하고 거룩한 언어생활을 하는 길이라는 의미가 ‘聖’자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 가려서 하라는 가르침을 담은 속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도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낮말은 호숫가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신종 격언이 등장했다니 말조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십악업(十惡業) 또는 십선업(十善業)에도 말과 관련된 것이 네 가지, 즉 절반 가까운 40%에 달하는 것을 보면 말의 중요성은 굳이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행복경>에서 부처님이 행복해지는 지침으로 ‘계율을 잘 지키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라’는 당부를 열 번째 지침으로 꼭 집어 강조한 것은 말로 짓는 악업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유익한 언어생활이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 반듯한 말을 하는 것(art speech, pleasant speech)을 말합니다. 이것은 입으로 짓는 4가지 악업을 삼가는 수동적 자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라는 적극적인 주문입니다. 축구 등 스포츠 종목에서 자주 거론하는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논리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선행은 하는 것이 더 좋다.
선행은 행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법구경> ‘지옥품’ 중에서
선행은 행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법구경> ‘지옥품’ 중에서
그래서 십선업에서는 불양설(不兩舌)을 화합어(和合語)로, 불악구(不惡口)를 구절어(駒切語)로, 불기어(不綺語)를 진리어(眞理語)로, 불망어(不妄語)를 정직어(正直語)로 바꾸어 표현합니다. 이간질을 삼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투는 사람을 화합시켜 주고, 같은 이유로 거친 말을 삼가는 것에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을 하며(애어), 꾸며 하는 말을 삼가는 것에서 진실만을 말하고(진실어), 거짓말을 삼가는 것에서 꼭 필요한 말을 하는 것(요익어)으로 유익한 언어생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라’는 행복 지침은 팔정도에서 정어(正語, 바른 말)에 해당합니다. 정어, 즉 바른 말이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직하지 못한 말(妄語), 이간질(兩舌), 거친 말(惡口), 쓸데없이 꾸민 말(綺語)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상호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데 거짓말은 그것과는 상반되는 말이므로 사회적 결속을 해치게 됩니다. 거짓말은 주로 탐욕스러운 마음[貪心]에서 비롯됩니다. 이간질하는 말은 의도적으로 적개심과 분열을 조장하는 말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의 화합을 해치는 말로서 주로 분노하는 마음[瞋心]에서 나옵니다. 거친 말은 화가 나서 내뱉는 말로 듣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하는 말입니다. 욕설이나 독설, 모욕이나 빈정거림으로 나타나는데 그 뿌리는 성내는 마음[瞋心]입니다. 쓸데없는 말은 목적도 깊이도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말이며, 이러한 잡담은 자신과 남들의 마음에 번뇌만 일으키는데, 주로 어리석은 마음[癡心]에서 비롯됩니다. 오늘날 인터넷상 난무하는 산란한 오락물이나 정제되지 않은 댓글, 불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쓸데없는 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고함과 조롱, 오기와 모욕, 억지와 거짓, 악담과 비난, 야유가 온종일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바른 말과 품격 있는 말을 하는 분도 더러 있지만 싸움하려는 듯 비속어를 일삼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들이 구업의 엄중함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의 막말을 뱉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국정감사를 시청하면서 초기불교의 대표적 주석서인 <청정도론> 제1장 ‘계행’ 편의 구업과 관련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그 가운데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집착하여 악을 원하고 욕망에 정복된 자가 행하는 ‘기만’, ‘요설’, ‘암시’, ‘비하’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구업을 단속하는데 주목할 만한 지침입니다. ‘기만(欺瞞)’은 넌지시 말하거나 위의자세를 꾸미거나, 추스르거나, 차리거나 눈썹을 찌푸리거나 얼굴을 찡그리며 사기·협잡·속임수를 일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을 원한다’의 의미는 ‘갖지 않은 덕성을 드러내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요설(饒舌)’은 수다를 떨거나, 장황하게 말하거나, 겉치레로 말하거나, 치켜세우거나, 극찬하거나, 못 박아 말하거나, 꼼짝할 수 없게 만들거나, 함부로 지껄이거나, 귀여워하는 것입니다. ‘암시(暗示)’는 신호를 보내거나 암시하거나, 암시를 보내거나, 넌지시 말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것입니다. ‘비하(卑下)’는 욕설하거나, 얕보거나, 헐뜯거나, 비웃거나, 냉소하거나, 조소하거나,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모독하거나,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등 뒤에서 험담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어떻게 배우고 수지할 것인가를 설하고 있는 <정법염처경>이란 경전이 있습니다. 이 경의 ‘십선업도품(十善業道品)’에서 부처님은 “선업은 마치 부모와 같아서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고, 악업은 마치 큰 원수와 같아서 지옥이나 아귀, 축생 등의 세계로 끌고 간다.”고 가르쳐주십니다. 구업을 쌓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연민의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이유입니다.
정법을 어떻게 배우고 수지할 것인가를 설하고 있는 <정법염처경>이란 경전이 있습니다. 이 경의 ‘십선업도품(十善業道品)’에서 부처님은 “선업은 마치 부모와 같아서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고, 악업은 마치 큰 원수와 같아서 지옥이나 아귀, 축생 등의 세계로 끌고 간다.”고 가르쳐주십니다. 구업을 쌓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연민의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이유입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중에서(사진=염정우)
지혜로운 사람은 나쁜 말 버리고
바른 말을 항상 즐겨 쓰나니
아름다운 말 쓰는 사람은
열반에 가까이 머물며 산다.
바른 말을 항상 즐겨 쓰나니
아름다운 말 쓰는 사람은
열반에 가까이 머물며 산다.
언제나 좋고 아름다운 말을 쓰고
더럽고 나쁜 말은 쓰지 말지니
더럽고 나쁜 말은 그 사람까지 더럽혀
지옥에 이르게 한다.
더럽고 나쁜 말은 쓰지 말지니
더럽고 나쁜 말은 그 사람까지 더럽혀
지옥에 이르게 한다.
더럽고 나쁜 말에 물들면
조금의 선함도 머물 수 없어
사납기가 사자나 뱀과 같으니
그 사람은 천상에 나지 못한다.
조금의 선함도 머물 수 없어
사납기가 사자나 뱀과 같으니
그 사람은 천상에 나지 못한다.
훌륭한 말 쓰는 모든 사람들
그들은 남들의 위안을 받고
모든 세상의 사랑받나니
후생에 가서는 천상에 태어난다.
그들은 남들의 위안을 받고
모든 세상의 사랑받나니
후생에 가서는 천상에 태어난다.
<정법염처경>의 구업과 관련한 게송입니다. 이 게송은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기에 함께 소개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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