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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 김성채의 '문화탐방' 37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 | 2020-10-23 (금) 09:53

불국토 장엄
 
돌계단 끝으로 살짝 내민 모임지붕 처마를 보고 정방사에 도착했음을 실감했습니다. 마지막계단을 오르니 방금 전에 살짝 보였던 처마는 종각이었습니다. 종각은 범종이 눈비를 피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이였고, 터는 종각 밖으로 반걸음도 내딛지 못할 정도로 좁았습니다.
범종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은은한 소리를 냅니다. 종각 터가 넓어야 부처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는 것이 아니고, 지옥이 말라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넓게 조성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범종에 “불기2540년 우란분재일”이라 새겨있어 최초 타종일은 1996년 음력 7월 15일임을 알 수 있고, 종각 터도 그때 조성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각 왼쪽에 있는 높은 산(이름은 모르는) 뒤쪽으로 떠오르는 해에서 뻗쳐 나온 햇살이 검은 산등성이와 대조를 이루는 일출을 보았습니다. 바야흐로 ‘언제 어둠이 있었더냐!’며 기세를 떨치는 새벽의 장관에 일찍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종각에만 머물 수 없기에 몸을 틀어 젖히자 법당 여러 채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는 눈이 커서 한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깎아지른 절벽 자락에 크지 않은 법당들이 한 줄로 늘어섰기 때문입니다. 순간 떠오른 그림은 처마 밑 민민한 벽에 매달린 제비집이 불안하여, 마음씨 좋은 주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좁은 판자를 받쳐놓은 모습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자락에 축대를 쌓아 ‘딱 그만큼’의 터를 조성한 정방사
 
 
절벽에 붙어있는 마당은 다른 곳에서 흙을 가져다 북돋아서 마련한 절터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가파른 돌계단을 깍으며 마련한 한 칸짜리 종각 축대 그리고 법당 앞쪽 좁은 폭의 긴 마당도 축대를 두 번이나 높이 쌓아 돋운 땅인 때문입니다. 어렵게 조성한 땅에 세운 법당을 보면서 제비집을 연상함은 무례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이곳에 서있음은 ‘천상천하 어느 누구도 견줄 이 없는 부처님을 모시고자, 터를 닦아 정방사를 창건한 스님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는 크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이보다 진실한 불국토 장엄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에 도착했으니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드려야함이 우선이겠지만 앞뒤 판단을 못하는 중생인지라, 세상 끝까지 보이는 경치에 순간적으로 넋을 놓아버렸습니다.
 

절 마당에서 보이는 것은 구름바다와 청룡뿐 입니다.
 
 
바다를 이루어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에서 어떻게어떻게 틈을 찾아낸 산들은 큰 섬, 작은 섬이 되어 구름 위로 자기 존재를 나타냈습니다. 새벽마다 물안개로 피어오르다 뭉텅이가 된 구름은 때맞춰 떠오른 아침 해의 붉은 기운에 물들어 옅게 발그스레한 색깔로 곱게 치장했습니다. 구름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이 멋들어진 산수화를 연출하는 아래는 물에 갇혀 섬이 된 산을 이리저리 휘감은 청룡이 보였습니다. 낮은 시력은 저 멀리 힘차게 가로지른 백두대간 능선에 부딪혀 육안의 한계를 보여주는데, 그래도 ‘내가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본 것이 아니냐?’하는 만족감과 황홀감에 빠졌습니다.
산하대지의 웅장함과 기묘한 모습에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면서, 엉뚱하게도 글자만 같을 뿐 원래의 뜻과는 맞지 않게 “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라는 구절이 떠올랐고, ‘이래서는 안 되지’하며 정방사를 찾은 이유가 생각났습니다.
‘부처님께 참배를 드려야지’
 
천년고찰 정방사
 
정방사가 자리한 곳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水山面 綾江里 錦繡山. 비단 능. 비단 금. 수놓을 수)”입니다. 이로 보아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아주 먼 때부터 이 고장은 물과 산이 많고, 앞에는 비단 중에서도 결이 좋은 비단결 같은 강이 흘렀고, 뒤쪽에는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산을 가진 동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淨圓)스님께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이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겠다’는 마음으로 절을 지었고, 자신의 이름 “깨끗할 정”자에 “꽃다울 방”자를 넣어 “정방사(淨芳寺)”라 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당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건물은 요사채로 사용되는 “유운당(留雲堂)”입니다. 구름 속에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지만 승려들이 좌선하며 거처하는 집을 이르는 말입니다. 네 기둥에는 정방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을 읊은 시가 주련으로 걸렸습니다.
 
산중하소유 영상다백운 지가자이열 불감지기군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寄君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이곳에 무엇이 있겠는가? 
있는 것은 봉우리마다 머무는 흰 구름들.
오로지 나 혼자만이 즐길 수 있을 뿐
임금에게도 부쳐드릴 수가 없네.
     정방사 마당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곁에 없어 즐거움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날 터이고, 예나 지금이나 멋진 전경을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것입니다.
 
원통보전
 
정방사의 큰 법당은 원통보전입니다. 따라서 정방사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이라는 것과 관음기도 도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관세음보살은 원력이 크고 깊으셔서 중생들의 모든 소리를 들으시고, 시간과 장소를 가림 없이 출현하시어 중생들의 고통과 액난을 소멸시켜 주시는 대자대비의 화신입니다.
의상대사가 낙산사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제자인 정원스님께서 물이 많은 이곳에 관세음보살을 모셨다는 이야기는 맥이 한줄기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원통보전
 
 
원통보전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화려한 공포를 짜지 않은 일익공의 한옥이어서 저 같은 ‘김씨와 이씨들’이 살고 있는 여염집에 단청을 입힌 느낌입니다.
또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벽자락에 어렵게 마련한 폭이 좁고 기다란 땅 조각이니만큼, 건축물도 정면에 비해 측면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면과 측면 비율이 6칸 : 2칸인 한옥은 이곳 아니면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율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면에 혼용된 둥근기둥과 모기둥, 그 기둥을 받치는 덤벙주초와 다듬은 주춧돌, 뒷면의 도리 생김 등에서 눈치 챌 수 있는데, 이는 중생들이 더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법당을 옆으로 증축하였다는 증표입니다.
 
툇마루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게 반자를 놓고, 비파 대금을 연주하는 천녀와 연꽃을 공양하는 천녀를 그렸습니다. 천상의 음악으로 관음보살의 자비심을 찬탄하는 모습은 공경심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 칸 깊이는 세살문 창호로 관음보살을 모신 방과 툇마루로 나뉘었는데, 툇마루의 한쪽 벽에는 밀적금강역사를 그렸습니다. 금강문에 모시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라도 삿된 무리의 출입을 막아주셨으면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원통보전에 봉안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89년(조선 숙종 15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대세지보살과 함께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로 모시지만, 정방사에서는 주존불로 모셨습니다. 관음보살은 왼손을 올리고 오른손은 내린 자세로 아미타정인의 수인을 취하였는데, 왼손을 올린 자세로 미루어 당초에는 다른 사찰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좌협시를 위해 조성된 불상으로 짐작됩니다.
다른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을 협시하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의 입상을 볼 수 있지만 이곳에는 관세음보살님 홀로 유리상자 안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보살상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목조 법당인 만큼 자연적인 습도 조절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마음과 막힌 곳이 주는 답답함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도난사건이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회수되었기에 다시는 그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는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통보전에는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응함이 있다’ 는 뜻의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또 하나의 편액이 걸렸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일곱 가지 재난과 탐진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통력을 지니셨으니 ‘진실로 믿고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천 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관세음보살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한다거나 기도에 간절함이 없으면 구제해주시지 않는다는 뜻은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야말로 관음기도 도량에 딱 어울리는 편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면 일곱 개의 기둥에 관세음보살을 칭송하는 주련이 걸렸습니다. 
 
정법명왕관세음 영입삼도이유정 형분육도증무식 관음보살대의왕
감로병중법수향 세탁마운생서기 소제열뇌획청량
正法明王觀世音 影入三途利有情 形分六道曾無息 觀音菩薩大醫王
甘露甁中法水香 洗濯魔雲生瑞氣 消除熱惱獲淸凉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온갖 지혜를 갖추신 관세음보살님
지옥 아귀 축생세계의 중생을 이롭게 하시려
육도를 드나듦에 천 개의 몸도 쉼이 없으시네.
중생의 병을 고치시는 의왕 관세음보살님
정병에 담긴 향기로운 감로수로
번뇌를 씻어내고 서기를 뿜어내시니
삼독의 뜨거움은 사라지고 청량함만 가득하다네.
 

왼쪽부터 원통보존에서 못한 협시를 하고자 벽화에 나타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바깥벽에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의 예경을 받는 관음보살, 지옥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고자 육환장과 마니주를 들고 지옥으로 향하는 지장보살, 푸른 사자를 탄 문수동자, 번뇌를 떨궈낸 후 길들여진 흰 소를 타고 돌아가는 목동 등의 그림이 있습니다. 십우도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다”벽화에는 오른쪽 상단 절벽 끝자락에 정방사 터를 알려준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꽂혀있는데, 그림의 뜻과 함께 ‘숨은그림찾기’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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