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야마모토가 연단에 올랐다.
 옥아와 분이도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연병장에 서 있었다.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그렇지만 기무라 부대엔 이미 100명의 군인이 있지 않았다. 세 명이 손을 들지 않았다. 옥아와 분이, 그리고 경주 아이 무연이었다. 야마모토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지나갔다. 야마모토가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병사가 무연이를 끌어냈다. 연단 옆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저 가마솥은 어디에 쓸까?
 그러다가 문득 옥아는 자신이 저 가마솥에 넣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옥에는 끓는 가마솥이 있지. 그것이 없으면 지옥이 아니지. 옥아는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어차피 이곳은 지옥인 것이다. 
 무연이의 옷은 순식간에 벗겨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무연이의 맨몸은 그 자체로도 눈 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옥아는 침을 삼켰다. 
 다른 병사들이 못 박은 판자를 가져왔다. 아이에게 여섯 명의 병사가 들러붙었다. 병사들은 아이의 머리와 발을 잡아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 판에 너덜거렸다. 이런 상황을 이 세상 누가 믿을 것인가. 손발이 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든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으면 똑같이 해주겠다.”
 옥아는 하얀 손으로 천천히 먹을 갈면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회산의 충혈된 눈동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5백 년 사직이 어쩌고, 임금에 대한 충성이 저쩌고를 밤낮으로 외다가 온 강토를 몽땅 유린당하고도 끝까지 양반의 머리칼이 어쩌고저쩌고를 읊은 그 조선 양반. 자신과 그 자손의 영화에만 눈먼 자여, 그대의 영혼이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다면 이곳에 와서 이 광경을 보라! 이곳에 와서 이 모습을 보라!
 옥아는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옥아는 안간힘을 다해 명장사를, 회산을, 이구를 생각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 중국 여자들이 당할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는 놀라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숨이 막혔다. 한 병사가 못 판위에서 죽은 아이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무연이는 일부러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이 꼭 꿈만 같았다. 여자들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을 연단에서 내려와 직접 본 야마모토가 외쳤다.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 그렇게 해주도록 해라.”
 군인들은 죽은 아이의 머리를 가마솥에 넣었다.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한 병사가 국자를 들었다.
“자아, 일렬종대로 솥 앞을 지난다. 실시!”
 여자들이 시체처럼 솥 앞을 지났다.
“마시지 않으면 역시 죽는다!”
 솥 앞에 칼을 빼든 병사 둘이 서 있었다.
 첫 번째 여자가 병사가 내민 국자에 입을 대자마자 토했다.
“통과!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토해도 안 된다. 만약 한 방울의 오물이라도 입 밖으로 나온다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다음부터 어떤 여자도 토하지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 의식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두 사람, 옥아와 분이 차례였다.
 옥아는 병사가 건네주는 국자를 내동댕이쳤다. 어차피 무연이와 같이 죽을 것이다. 옥아는 야마모토를 쳐다보았다. 정말 연민어린 눈으로. 야마모토가 옥아의 시선을 외면했다.
“너도 같으냐?”
 야마모토가 분이에게 물었다.
 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에 내가 말했지. 죽이지는 않는다고.”
 야마모토는 옥아를 위해 준비한 게 많은 것 같았다. 옥아와 분이는 발가벗겨졌다. 병사들이 옥아와 분이의 발목을 끈으로 묶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았다. 옥아와 분이는 반항하지 않았다. 병사 하나가 굵은 바늘이 수두룩하게 박힌 굵은 몽둥이를 들고 와 옥아와 분이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
“아악!”
 옥아와 분이는 동시에 기절했다.
 찬물이 준비되었다. 병사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부었다. 핏물이 땅에 떨어졌다. 그렇지만 옥아와 분이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늘을 든 병사들이 옥아와 분이에게 다가갔다. 문신이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병사들의 바늘이 몸을 찌를 때마다 옥아와 분이의 몸이 꿈틀거렸다. 가슴과 복부, 그리고 등 아래쪽의 척추를 따라 둥근 반점이 염주처럼 줄줄이 그려졌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낙서 같은 무늬가 뚜렷이 새겨졌다. 병사들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낄낄거렸다.
 축 늘어진 옥아와 분이의 몸은 연병장에 버려졌다.
“탈출하다가 붙잡히면 이렇게 된다. 나는 너희들의 탈출 용기를 아주 가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로 죽이지는 않는다. 누구든 용기가 있으면 탈출해라.”
 그것으로 의식은 끝났다.

 

 

 

 옥아와 분이는 한 달 이상을 그렇게 또다시 의무실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것도 조선인 소좌 야마모토의 배려였다. 비교적 회복이 빠른 옥아와 달리 분이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바늘 몽둥이를 정확하게 허리에 맞은 것이다. 그래도 분이는 옥아의 손을 잡고 희미하게 웃었다. 의무실에 있는 병사는 비교적 옥아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옥아가 일어나서 분이를 간호하는 걸 막지 않았다. 옥아는 하루 종일 분이의 간호만 하였다. 분이는 둘이만 있는 틈틈이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 혹은 조선 공산당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상 옥아는 그런 것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조선이 독립되면 반드시 우리 공산당이 제 일선에 서야 돼. 너는 이곳을 나가면 반드시 조선 공산당을 찾아가.”
 옥아는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하다가 잡히고 나서 꼭 한 달 보름이 되던 날. 야마모토가 의무실로 찾아왔다.
“이름을 강옥아라고 했나?”
 조선말이었다.
 옥아는 눈을 감았다.
“일본 장교가 조선말을 하면 쓰나? 여기서 조선말을 쓰면 총살형이라고 하던데.”
 분이가 나섰다.
“너희들이 아직도 내게 할 말이 남아 있다 이거지?”
“부탁이오. 우리 눈에 띄지 마시오. 당신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나니까?”
 분이의 말은 간절했다.
“오호, 그래도 동족이라고?”
“그게 아니라 당신을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못해서.”
 분이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 죽여줄까?”
“비록 일본의 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낸데 괜한 개망신 당하지 말고 제발 나가주게.”
“나를 생각하는 게 아주 눈물겹구먼.”
 야마모토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분이는 다시 애원했다.
“마지막 부탁이오. 어차피 우리는 죽을 목숨,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마시오. 당신은 그냥 일본의 장교로 지내시오.”
“그게 안 되면?”
 분이가 일어섰다.
“정말 네놈이 여기서 어떤 짓을 했는지. 그걸 다 말해볼까?”
“재미있군.”
 그러나 야마모토의 얼굴은 재미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마 재미없을걸. 이곳 여자들한테 아편 주사를 놓는 것도, 그리고 다른 곳에서 조선 여자를 잡아 오는 것도, 그리고 또 도망치다 잡힌 여자들을 생매장하는 것도 네놈 짓이란 걸 우리 모두가 다 알아. 오늘은 어디서 아편을 구했나? 나 아편쟁인 거 잘 알잖아. 지금 여기 한 대 놓아줘.”
 분이가 자신의 팔뚝을 내밀었다.
 야마모토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편 없인 못 사는 여자들이 있거든.”
“그래, 아편 없인 못 살지. 누가 아편 없이 살지 못하게 했는데. 바로 너 같은 놈이 그랬어. 너의 주인인 일본이 오래갈 것 같은가? 너도 알고 있을걸. 일본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난 미국군과 중국군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있어.”
 야마모토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년이!”
“여길 왜 온 거냐?  설마 나한테 마음 있어서는 아닐 테고, 옥아한테 마음 있어서 왔지. 어디 내가 보는 데서 한번 해보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흐흐, 일본이 망하면 어디로 갈까? 내가 살아있다면 세상 끝까지 너를 쫓아갈 거다.”
“그때 너는 지옥을 헤매고 있을걸. 난 따뜻한 고향 아랫목에 있고.”
 야마모토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러나 분이도 생글생글 웃었다.
“고향?”
“그렇지.”
“그렇게는 안 될걸. 네놈이 운이 좋아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절대로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할 거야. 흐흐.”
“뭐?”
“오한구. 경상북도 청도 절골 마을 아닌가? 서울에서 선교사들이 만든 이상한 학교를 다니다가 자진 입대했지. 오한구. 네놈 애비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이야기할까?”
 순식간에 야마모토의 얼굴이 변했다. 창백했다.
“놀랐나?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 여자들을 다 죽이지 않는다면 숨길 수 없을걸. 내가 다 알려줬지. 하기야 여기 여자들 다 죽여도 소용없어. 벌써 네 놈 이름은 조선 독립군들 사이에도 유명하니까. 일본이 망하면 고향에 한번 가 봐. 아마 고향 사람들이니까 사지를 찢어 죽이지는 않겠지. 그래도 생매장은 할 거야. 네놈 애비가 고향 마을의 여자들을 지금도 일본놈들한테 바치고 있으니까. 부전개전!”
 분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야마모토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곧 쓰러질 것 같았다.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나가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냐?”
“절대로 그냥 죽이지는 않는다.”
 야마모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나갔다.
“언니, 어떻게 알았어?”
“흐흐, 가네야마 소좌를 꼬셨지.”
“대단해.”
“일본이 망하면 저놈은 꼭 죽이고 말 거야.”
 옥아와 분이는 한껏 웃었다.

 

 

 

 그날 저녁. 한 대의 트럭이 여자들을 몰고 왔다. 그리고 또 한 대의 트럭이 연병장에 멈춰 섰다. 모두 짧은 일본식 머리의 조선 여자들이었다. 한꺼번에 소모품을 채우고, 한꺼번에 소모품을 버리는 예외적인 작업이었다. 옥아는 개처럼 끌려 나왔다. 세 명의 헌병이 옥아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트럭이 서 있었다. 옥아는 힐끗 연병장 한쪽 끝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교를 보았다. 야마모토, 아니 오한구였다.
“불쌍한 인간.”
 옥아는 조용히 말했다.
 여자들은 다시 다른 트럭에 태워졌다. 일본군들의 행동은 초조했다. 처음 탄 트럭보다 배나 큰 트럭이었다.
 여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짐짝 같은 처지, 목 한 번, 발 한 번을 움직일 수 없었다. 트럭은 다시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설핏 느낌이 이상했다. 멀리서 대포 소리와 콩 볶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을 찢는 대포 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렸다. 가파른 산길을 얼마쯤 달려왔을까. 트럭은 산 중턱에서 멈췄다.
“빨리 내려!”
 다섯 명의 병사가 총 머리를 들이밀었다.
“우리는 죽는다.”
 분이의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병사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우습게도 아주 환한 달밤이었다. 옥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이곳이 위안소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뻔한 것이다. 숨이 목에 닿을 쯤, 여자들의 앞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동굴이었다.
“들어가!”
 여자들이 앞다투어 동굴로 들어갔다.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연 동굴이 아니고 무언가를 캐내던 금속 광산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였는지 바닥엔 물이 흥건했다. 옥아는 굴 가장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굴 가장 안쪽에 자리 잡기 위해 아우성을 쳤던 것이다.
“옥아,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
 옥아는 분이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나갈 가망성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옥아는 동굴 벽면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짧지 않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함께 놀던 친구들, 그러나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오직 회산의 얼굴만이 밀려왔다. 김처사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구는? 그들이 분명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하기야 그녀 자신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던 야마모토의 얼굴이 그려졌다.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일본군 병사들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옥아는 야마모토처럼 담배 한 모금을 빨고 싶었다.
“언니, 담배 있어요?”
 분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목숨보다도 담배를 아끼는 분이, 옥아는 그녀를 이해했다.
“여기.”
 담배 한 개비가 옥아에게 건네졌다.
“성냥도 여기.”
 분이의 말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하도 급하게 끌려 나오는 바람에 아편을 챙기지 못했어. 그것만 있어도 좋을 텐데.”
 옥아는 분이의 말을 들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 피우는 데도 조금도 맵지 않았다. 옥아는 있는 힘을 다해 폐 깊숙이 연기를 빨아 넣었다. 몽롱했다. 누군가 그 담배 연기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그렇지만 옥아는 다시 힘껏 담배 연기를 동굴 밖으로 뿜어냈다. 야마모토의 얼굴이 점점 크게 그려졌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여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엉엉 우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일본군이 가지고 있는 총과 칼. 슬픈 흐느낌만 있었다.
“동굴에서 꼼짝도 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는 살 수 있다.”
 분명 야마모토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요란하던 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잦아들 무렵 병사 서너 명이 여자들 몰래 동굴 앞에 경기관총을 배치했다. “들어라! 대답은 필요 없다. 점잖게 해치우는 거다. 저것들은 보통 계집들이 아니고 매춘부들이야. 적군이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국가의 수치다. 알았나!” 야마모토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신발 소리를 죽이고 동굴 입구에 다가선 야마모토가 휘파람을 불었다. 동굴 속은 인기척이 없이 죽은 듯 고요했다. 
“자아, 그럼, 신속하게 처리하고 철수한다!”
 그때 굴속에서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울음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하얀 방공수건을 머리에 쓴 십여 명의 여자들이 와르르 입구로 달려 나왔다. 그러자 경기관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옥아, 앞으로 나가서 바닥에 엎드려!”
 분이는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동시에 옥아는 앞으로 나가 엎드렸다.  동시에 앞으로 달려갔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몸을 뒤틀며 포개졌다. 동시에 병사들이 굴 입구로 돌진, 다음 여자가 나오기 전에 캄캄한 동굴을 향해 마구 기관총을 쏘아댔다. 귀를 찢는 듯한 총성에 섞여 비명소리가 처참하게 동굴을 울렸다.   이윽고 미친 듯이 총을 쏴대던 병사가 방아쇠 당기는 것을 중지했을 때, 텅 빈 굴의 내부에는 문자 그대로 죽음의 침묵만이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계속 2~3분간 귀를 기울이고 서 있던 야마모토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몸에 지닌 회중전등으로 동굴 내부를 비춰보았다. 그것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었다. 도마뱀처럼 흙벽에 붙은 채 피투성이가 된 여자들, 그리고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 엉킨 채 죽어 있는 여자들... 여자들은 모두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임무 완료, 총소리를 듣고 적들이 올 것이다. 빨리 돌아가자!”
 야마모토는 병사들을 데리고 재빨리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