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옥아의 생활은 병사들의 이동 상황과 맞물려 돌아갔다. 군인들이 전장에 나가면 한가했지만, 돌아오면 수많은 군인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날은 전장에 나가기 전의 주말이었다. 대개 주말엔 많은 병사들이 몰려와서 아침 9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병사들을 받아내야 했다. 밥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더구나 전장에 나가기 전의 주말엔 병사들이 불개미 끓듯이 들끓었다. 위안소 관리인이 위안부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위안부들이 하루에 받는 병사들의 수에 따라 처벌하거나 보상하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처벌은 구타, 감금이었다. 위안부들은 하루가 끝나면 받은 군인의 수를 세었고, 그 수가 충분치 않을 때는 처벌을 받았다. 반면에 관리인들은 군인들을 더 받은 위안부들에게는 맛있는 사탕과 음식을 주어 특별 대우했다. 그만큼 위안부들이 어렸던 것이다. 그들은 위안부들을 승진시켜 주기도 하였다. 병사들을 받는 양에 따라 점수를 매김으로써 위안부들 사이의 경쟁의식을 부추겼다. 위안부들을 서로 분열시켜 통제한다는 분리 지배의 원칙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안부들도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계급이 매겨졌고, 상급 위안부는 하급 위안부를 처벌할 수도 있었다. 나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먼저 온 여자들에게 무조건 언니라고 불러야 했으며 군대식으로 고참 대접을 해줘야 했다. 일단 배치된 다음에는 그날부터 언니들의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병사들을 어떻게 받아야 되는가, 또한 위안부들 사이에 위계구조를 형성하는 기반은 그들이 상대하는 군인들의 계급이었다.
군인들 사이의 계급구조는 위안부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생산되었다. 각 위안부가 받는 병사나 장교의 계급에 따른 특권과 위계구조가 바로 이들의 지위를 결정했다. 군 위계 구조 내 고위직 장교를 상대한다는 것은 위안부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다.
위계구조 내에서 위안부가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그들이 하루에 몇 명의 병사들을 얼마나 받는가가 결정되었다. 주로 장교를 상대하는 일본 여자들은 다른 조선이나 중국의 여자들처럼 많은 군인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조선 여자들을 서로 분열시키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옥아는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장교고 사병이고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미 육신은 죽은 것이다, 옥아는 말썽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전생의 업보로 지옥에 온 것이다. 옥아는 타의로 불문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이승과 저승을 생각했다. 전생과 내생을 생각했다.
일본군은 처음이라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 여자는 묶어놓고 욕심을 채웠다. 맞아서 죽어나가는 여자가 부지기수였다. 어쩌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관리인은 찬물을 뿌려서 깨운 다음 한동안 가두고 밥도 주지 않았다. 일선에 배치된 조선 여성들은 그야말로 육체적인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1. 본 장병 위안소는 일본 육군 및 군속 외에는 출입을 금함. 입장자는 위안소 출입증을 제시할 것. 2. 입장자는 반드시 접수계에 요금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배급받을 것. 3. 입장료는 부사관, 병사, 군속 각 2엔, 장교 3엔임 4. 입장권의 효력은 당일 당시에 한하며, 입실하지 않을 때는 현금 교환 가능. 단 상대 여자에게 준 후는 현금 반환 불가 5. 입장권을 산 사람은 지정 호실로 들어갈 것. 단 시간은 30분으로 규정함. 6. 입실과 동시에 입장권은 여자에게 제출할 것. 7. 실내에서는 음주를 금함. 8. 규정을 지키지 않는 자와 군대 질서를 지키지 않는 자는 즉시 퇴장을 명하고 처벌함. 9. 이용 시간은 병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사관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군속은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장교는 밤 12시까지임.
옥아는 자신을 거친 병사들이 돈을 얼마나 냈는지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관리인 부부가 다른 여자들보다 옥아를 챙겨주었다. 기껏 챙겨준다는 것이 소독약과 비누를 주는 거였지만.
휴일은 없었다. 일요일도 외출이 금지되어서 나가지 못했으나 가끔 일본 군인들 연회가 있을 때 연회 장소에 따라가 술을 따라주거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기도 하였다. 아주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구먼. 처음 니시하라 중좌에게 잘 보였으면 고생 하나도 안 하는데...... 니시하라는 일본군 사령관 장남이래. 니시하라가 자네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관리인 여자가 혀를 찼다.
옥아는 힐끗 관리인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주 현명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한 조선 여자. 그런데 왜 그녀의 얼굴은 불안하기만 한 걸까? 그녀는 혹여라도 장교들에게 잘못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모든 오관은 오직 일본군 장교들의 얼굴에 가 있었다.
옥아는 틈이 나면 분이 하고 간간 이야기를 나눴다. 위안부들은 수시로 죽어서 나가고, 또 다른 부대를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서로 사귈 겨를도 없었다. 단지 매번 똑같은 운명에 처한 다른 위안부들을 만났다. 그런데 운 좋게도 옥아와 분이는 함께 있었던 것이다. 옥아에게는 그것이 큰 위안이었다. 이따금 전투가 있어 일이 없는 새벽이면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기차는 떠나간다.
검은 연기와 남은 연기가 나를 울린다.
복남아 울지 마라. 고향을 떠나갈 적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 잘 하오니
어머님 작별하고 안심하소서.
아편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도 위안소에서 고통스러운 삶에 대처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위안소에서 음주와 흡연을 시작한 분이는 술과 담배가 없었다면 위안소에서 계속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거기에 더해 아편 중독이 되었다.
위안부들 사이에 그녀의 별명은‘아편 언니’였다. 관리인이나 일본 군부는 위안부들의 아편 중독을 별다르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아편을 권장하기까지 하였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군인들로 인해 기진맥진해서 기절하면 군인이 주사기로 아편을 쿡쿡 놓았던 것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아편을 놓기도 하였다.
“이곳 여자들을 관리하는 군 우두머리도 조선인 장교다. 야마모토. 그놈이 우릴 이곳에 데려왔고, 또 다른 곳으로 보내지. 일본군보다 몇 배나 악랄한 놈이야. 그놈이 오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죽어. 그놈한테 죽은 조선 여자가 스무 명이 넘는다.”
급하게 찾아온 분이의 말을 듣고 옥아는 또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조선 사내들이 없었다면 일본이 이렇게 철저하게 조선을 유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옥아는 그 조선 사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특별하게 한가한 이상한 아침 시간.
여자들이 하나 둘 복도에 모였다. 거의 모두 스무 살 아래의 아이들이었다. 옥아는 11번 방안에 멍청하게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네."
"엄마가 보고 싶어."
옥아는 여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여자들처럼 옥아도 지난밤 엄마 꿈을 꾸었다. 그 사이에도 쾅쾅 대포 소리와 비행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삽화 염정우
그날 밤.
장교 하나가 방문을 열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옥아는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선인이 분명했다. 그건 직감이었다. 그는 옥아의 시선을 피했다. 옥아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야마모토가 분명했다.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들어왔을 터였다.
그런데 짐짓 미안한 척, 아니면 슬픈 척, 그것이 우스웠다. 옥아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태연하게 옷을 벗었다. 장교, 그것도 소좌의 계급을 단 조선인은 처음이었다. 잘생긴 얼굴이었다. 옥아가 옷을 벗자, 그도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똑같았다. 그는 삿꾸를 차고 당당하게 일을 마쳤다.
“미안하군.”
그녀의 직감은 틀림없었다. 세련된 일본 말이었지만 야마모토가 틀림없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옥아는 오히려 더욱 세차게 씻었다. 더러웠다. 그의 눈빛에 어린 슬픔이 싫었다. 차라리 일본군이라면 이런 모멸과 수치는 없을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관리인이 한 박스의 비누를 내밀었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집히는 데가 있었다.
“야마모토 소좌가 주던가요?”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아는 피식 웃었다.
“야마모토 소좌님께 전해주세요. 그걸 그대로 다른 조선인 처녀에게 주라고요.”
“그래?”
관리인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옥아의 성격을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다시 물었다.
“그게 필요해서 나한테 사달라고 하면서?”
“내가 아저씨를 죽이고 싶은데 그럴 수 있나요?”
관리인의 눈이 금방 왕방울만 해졌다.
“필요해도 필요치 않을 때가 있어요.”
관리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옥아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게 별 짓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봐야 너만 죽는다는 뜻이었다. 옥아는 그것을 알면서도 관리인을 향해 웃음을 날렸다. 불쌍한 사람.
야마모토가 선물한 한 박스에는 무려 24개의 비누가 들어있었다. 값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비누였다. 그러나 옥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더러웠다. 개처럼, 아니면, 소나 돼지처럼 일본 놈들에게 끌려온 제 나라 여자들에게 욕심을 풀기 위해 들어온 자가, 동정심이라니... 그녀는 금보다 귀한 특대 비누 박스를 관리인의 손에 곱게 돌려주었다. 관리인이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야마모토가 성난 얼굴로 들이닥쳤다. 방금 전투를 마치고 온 차림새였다.
“무슨 이유지?”
조선말이었다.
옥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냐니까?”
그가 옥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뭘?”
옥아는 대뜸 반말을 했다.
“아니!”
“왜 내 멱살을 잡지. 나하고 하고 싶으면 곱게 하면 되잖아.”
“뭐야?”
“일본군 소좌가 그리 대단한 줄 아나?”
야마모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이름은 강옥아야. 당신 이름은 뭔가?”
야마모토가 칼을 뽑았다.
“흐흐, 일본군한테 배웠다고 꼭 일본군 같은데...... 그렇지만 당신은 조선인이야.”
“내가 조선인이라고 너까지 날 깔보는 거냐?”
그의 눈은 활활 타고 있었다.
옥아는 귀찮았다. 눈을 감았다. 아무런 감정이 있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일을 끝내고 그가 가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옥아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입어라!”
그러나 옥아는 듣지 않았다.
“이 년이!”
그의 주먹이 옥아의 뺨으로 날아왔다. 옥아는 쓰러졌다.
“조선 것들은......”
그 순간 벌떡 일어난 옥아가 야마모토의 뺨을 후려쳤다.
“말조심해!”
그가 자신의 뺨을 훔쳤다.
“죽고 싶구나!”
“옷으로, 말로, 계급으로 아무리 속여도 당신도 못난 조선인이야. 잘난 일본인이 될 수는 없지. 내게 왜 그 비싼 비누를 주는데? 그게 날 위한다고 생각하나? 난 당신 같은 사람 동정받고 싶지 않아. 그런 알량한 마음씨는 당신 집에 가서 쓰시지. 아니면 대일본제국의 천황을 위해 쓰시던가.”
옥아는 옷을 입었다.
“니시하라 중좌님 말씀처럼 널 그냥 여기서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흐흐, 난 이미 죽었다.”
“그래.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걸 보여주지.”
그런데도 옥아에게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쉬는 날이 없었다. 낮의 몇 시간을 제외하면 밤낮으로 병사들을 받아야 했다. 그 비는 틈을 타서 분이가 찾아왔다. 분이의 얼굴은 의외로 좋았다.
“언니?”
“생각을 바꾸었지. 지난번 있던 곳에서는 죽기로 저항했지. 그런데 이곳은 중국이란 말이야. 그것도 조선과 가까운... 탈출할 수 있다. 내 단골이 있거든. 가네야마 소좌. 그놈 성격이 아주 더러워. 툭하면 때리고 칼을 휘두르지. 그런 놈일수록에 잘 다루면 좋아. 그놈만 오면 내가 먼저 웃지. 어떤 때는 그놈하고만 하룻밤을 새워. 이곳에서 탈출만 하면 다시 돌아와서 그놈을 죽일 생각을 하고. 그놈 종자씨까지 말려버릴 작정으로 항상 웃지.”
분이는 이를 갈았다.
“같이 죽자.”
분이의 창백한 얼굴에 작은 봇도랑이 지기 시작했다. 하염없는 눈물이었다. 옥아는 그 얼굴을 보기 싫어 눈을 꼭 감았다. 분이가 떨리는 두 손으로 옥아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언니, 악한 것은 용납할 수 있어도, 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분이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며칠은 달도 없고, 별도 없다.”
옥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총소리가 가까워졌다. 중국군들이 시오리 안에 있어. 빠르게 도망치면 두 시간 안에 중국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만 도착하면 우린 살 수 있어. 내가 중국말을 하거든.”
그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여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는 것은 꼭 일본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설령 도망간다고 해도 전혀 중국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금방 발각이 되어 일본 헌병에게 넘겨졌던 것이다. 중국말만 능통하다면 얼마든지 중국인으로 위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른쪽 등성이만 넘으면 일본군들도 따라오지 못해. 발각되면 같이 죽고.”
옥아가 환하게 웃었다.
“너하고 나하고 내일 병원 가는 접수증 받아 놨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분이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했다. 그 귀한 아편을 피는가 하면,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관리인들도 분이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분이는 일반 사병들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위안소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적은 병사를 받고 있었다.
“병원 가면서 살펴보자.”
삽화 염정우
다음날.
옥아와 분이를 태운 트럭은 벌판을 한참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달랐다. 햇볕이 달랐다. 옥아는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여태 쌓여있던 몸 안의 모든 오물이 다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군의관이란 놈이 거길 만지기만 하면 무조건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러라. 그러면 그놈들은 몰라. 진짜 의사도 아니거든. 더구나 우리는 온몸이 상처라 그냥 믿을 거다.”
얼마쯤 가자 산이 보였다.
총소리가 들렸다. 전투가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놀란 트럭이 지그재그로 돌았다.
“중국군이다.”
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옥아가 되물었다.
“이제 전선이 없어졌어. 일본 놈들이 밀리고 있거든. 조금 있으면 우리가 있는 부대도 옮기게 될 거야. 그전에 탈출해야지.”
트럭이 제자리를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총소리는 더 가깝게 들렸다.
옥아와 분이는 휙휙 옆으로 지나는 길과 산을 눈에 넣고 있었다.
어림잡아 연대본부.
그러나 팻말이 없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병영은 어수선했다. 정리되지 못한 연병장엔 포탄을 맞아 쓰러져 누운 트럭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비교적 말끔하게 정리된 기무라 부대와 달리 흙더미와 돌들이 널려 있었다. 아마도 폭격을 맞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곳에도 한쪽에 긴 흙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대 위안소가 틀림없었다. 기무라 부대보다 몇 배나 컸다. 아니나 다를까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멀거니 트럭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들의 넋 나간 표정.
“정말 더러운 놈들, 이제 곧 죽을 놈들이......”
분이가 혀를 찼다. 트럭은 곧장 의무실로 향했다. 옥아와 분이는 의무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분이가 눈을 찡긋거렸다. 연대본부라고 하지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의무실이 몇 배나 컸다. 부상당한 병사들이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의무병이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이 달랐다. 꼴에 노란 비닐장갑까지 끼고, 마스크를 하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역시 역한 냄새, 그러나 옥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옥아는 군의관이 집게처럼 생긴 이상한 기계를 들이대는 가슴에 들이대는 순간, 의무실이 떠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그 소리에 놀랐는지 의무병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의무병은 옥아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군의관이 조그만 약병에서 하얀 액체를 장갑 낀 손에 붓더니 그녀의 배에 발랐다. 옥아는 참는 시늉을 하며 약간씩 소리를 질렀다. 기억하기로는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기는 처음이었다. 죽더라도 거짓을 하지 말라고 한 회산이었다. 스님,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혹시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다음은 분이 차례. 그런데 분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울고 있었다. 아파서 이를 악문 채로, 물론 거짓이었다. 분이의 양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군의관은 옥아와 분이에게 606호 주사를 놓고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다.
일주일은 휴식이 필요함.(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