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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님의 역사 속의 불교여행 47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20-08-31 (월) 09:10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 이야기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교인들은 주어사와 천진암을 찾아와서 서학을 공부하였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서양의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중국과 일본은 서학과 서교를 구분하여 서학을 받아들이는 방편으로 서교를 허용하였다. 서학은 서양학문과 서양문명이고 서교는 서양 종교를 말한다.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조선의 선비들은 주어사와 천진암을 찾아왔고 스님들은 기꺼이 산문을 열어 강학을 도와주었다.
 

천진암 방을 빌려 서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그린 상상화
 
 
18세기 후반 성호학파 권 철신은 자신이 이끌던 녹암계의 신진학자들과 매년 사찰에 모여 강학을 가졌다. 이때 서학을 연구하고 토론한 학자들이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승훈의 세레와 신앙공동체의 설립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권철신이 이끄는 강학에 함께한 이들은 이벽,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이승훈 등이다. 이때 이벽은 불교 가사 회심곡풍으로 천주공경가를 짓고 정약전은 십계명가를 지어 불렀다.
성리학을 받드는 조선의 선비들이 불교의 사찰에 모여 스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천주학을 연찬한 일은 종교 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선 정부의 천주교 탄압으로 신유박해 때 천진암 스님들도 처형당하고 천진암도 불태워졌다. 천진암 터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져있었다. 기록을 찾아 60년대에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를 성지화하는 과정에서 대웅전 터는 권철신, 이벽, 정약종, 권일신, 이승훈 등의 무덤으로 바뀌고 30만 평 부지에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백 년에 걸친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는 모습이다.

 
천진암 백 년 성당은 오는 2079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300주년에 맞추어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천진암 터가 천주교 발상지 성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찰의 흔적은 사라지고 천진암 스님들의 도움으로 강학이 이루어졌던 아름다운 인연은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고 있어 불교도들의 아쉬움을 갖게 한다.
천진암 성지화 과정에서 해운당 대사비는 절두산 천주교 성당으로 옮겨지고 부도탑은 여주 시청으로 옮겨졌다.
 

천진암 대웅전 터가 이승훈. 권철신. 이벽. 정약종. 권일신의 무덤으로 변한 모습이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 종교간 아름다운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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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길손 2020-09-01 17: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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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앞잡이 노릇하는 현장중아
너 출가전에 천주교인이고 지금도 천주교 앞잡이 노릇하는데
천주교에 천진암 유물을 다 모아 천진암의 원래 장소로 환원해라고 한 번
요구해봐라.
이 땡중아.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독실한 천주교인 전두환이를 이용해
천진암이 저렇게 큰 것이다.전두환이가 권좌에서 물러나 힘이 없어지니
일본군 장교 출신 김수환추기경이 전두환이를  파문시키고.
한국종교사에 천진암사건은 불행한 천주교사로 기록될 것이다.
조디만 평화를 논하는 한국 천주교.
5공의 실세인 전두환을 이용해 교세확장에 성공한 한국천주교.
역사는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
길손 2020-09-01 17:44:05
답변 삭제  
천진암에 있는 불교유물을 제자리에 두고
역사를 바로 기록하는 천주교도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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