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이어도 한밤중에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시끄러운 기상 소리 감긴 눈을 깨웠으니
 머리 빗어 올리고서 얼굴을 씻어내고
 부리나케 허둥지둥 식당으로 나가보면
 먹지도 못할 밥에 된장국만 뎅그러니
 밥을 국에 말아먹고 공장에 나가지만
 허리 펴고 살아갈 날 언제나 올 것이냐
 ......

 

 써 있었다. 조선인 여공들이 부르는 노래가 분명히 써 있었다. 단 몇 달 만이었다. 옥아는 눈물을 쏟았다. 태어나서 정말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는 일본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옥아는 감격에 겨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여공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여 자신이 정말로 인간 지옥으로 끌려갈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신나게 야학을 하던 밤, 일본인 작업반장과 경찰이 들이닥쳤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일본 경찰은 옥아가 정든 여공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언니!”
“언니!”
 여공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옥아는 공장에서 빼내졌다. 트럭에 태워졌다. 그리고 배의 맨 밑바닥에 실렸다. 창문 하나도 없는 선실이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뱃멀미를 한 사람들이 토한 오물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옥아는 주위를 살피지도 않았다. 간간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도 밖에서 감시를 하는 병사가 몇 번 선실의 문을 두드리자 금방 멈췄다. 이곳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구타를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참을 있었는데도 선실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희미한 불빛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이었다.

 

 

 하기야 옥아는 무엇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옥아의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배가 조선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옥아의 예감은 적중했다. 어느 이른 아침 옥아는 바로 부산역으로 와서 중국으로 가는 군용열차에 실렸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계획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렴풋 말로만 듣던 위안부 사냥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기차 안은 대부분이 군인이었고. 그녀가 탄 기차의 맨 끝 칸에는 많은 조선여자들이 있었다. 일본에서 타고 왔던 선실처럼 기차도 화물칸이었다. 감시를 하고 있는 일본 병사들도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이상한 냄새가 진동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도 군인들이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했다. 화물칸은 당연히 창문이 없었다. 옥아는 위안부는 대개 적도의 동남아시아로 간다고 들었었다. 우선 배가 아니라 기차를 타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분명 중국으로 갈 것이다. 옥아는 눈을 감고 이구와 회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일본군은 기차 안에서 조선 여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옥아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설령 회산과 이구가 옆에 있어도 그냥 눈을 감고 싶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여공들에게 한글을 다 가르칠 수 있었는데. 옥아는 그것을 분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밥은 하루에 2번 주었는데 간단한 주먹밥이었다. 
 나흘 밤 낮, 마침내 기차는 어느 곳에선가 멈추었고, 내릴 때 그곳 사람들이 봉천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옥아와 함께 온 여자들은 열네 살부터 스물일곱 살 사이였다. 
 한밤중 헌병들이 루핑을 친 트럭의 짐칸으로 옥아를 밀어 넣었다. 얼음보다 찬 바닥, 그러나 그곳에는 먼저 탄 사람들이 있었다. 진한 분 냄새로 그들이 모두 여자임을 짐작했다. 그들은 모두 무릎에다가 머리를 박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여자들은 일곱 명이었다.
“언니는 고향이 어디야?”
 이제 겨우 16살을 넘겼을까?
 옥아는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서울에서 잡혔어요.”
 주먹밥을 입에 넣은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성 종로에서......”
“어쩌다가?”
 옥아가 겨우 입을 뗐다.
“아버지가 막걸리 먹고 싶다고 해서 주전자 들고 나왔다가......”
 옥아는 웃음이 나왔다.
“주전자는?”
“모르지요. 순사 아저씨가 뺏어서 꿀꺽꿀꺽 마시고는......”
 짐작할 수 있는 일. 옥아는 주전자를 생각했다. 주전자. 헛웃음이 나왔다. 어린 딸에게 술심부름을 시킨 아버지란 작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옥아는 그 생각을 하다가 눈시울을 적셨다. 회산은 단 한 번도 옥아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서재를 치우는 일이나, 심지어 함께 마시던 다기를 씻는 일도 모두 회산 자신이 했다. 나무를 하고, 불을 때고, 밥을 짓는 일은 모두 옥아가 성장한 후의 일이었다. 그것도 옥아 마음대로였다.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았다. 회산은 그런 옥아를 보면서 늘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뱅뱅 맴을 돌았다. 
“그럼, 부모님은 모르겠네.”
“상관없어요. 우리 부모는 내가 없어진 걸 좋아할 거예요.”
“정말 그럴까?”
 그 후로 아이는 잠시 입을 닫았다. 옥아는 자신의 주먹밥을 아이에게 주었다. 오늘과 내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옥아가 준 주먹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이름은?”
“김영란.”
“나이는?”
“열 다섯.”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이 아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까? 옥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으로 닥칠 일이 현실처럼 닥쳐왔다. 막막했다. 거의 이틀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몸은 자꾸만 까무러지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보고 싶었다. 회산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는 어디 있을까? 회산의 하얀 얼굴이 자꾸 떠올라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옥아는 꿈속에서처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옥아는 두리번거렸다.
“도망갈 생각 말어.”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 목소리였다.
 그러나 옥아는 트럭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망가다가 죽는 거다. 삶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있을 수 없었다. 꼭 죽을 때 죽어야지. 회산이 늘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옥아는 힘겹게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고 있었다.
“뒤에 트럭 한 대 따라오는 거 안 보여?”
 그녀의 말대로 정말 찢어진 루핑 사이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여기서 내리기만 하면 총탄 세례가 쏟아질 거야.”
“총 무서워 한 적 없어요.”
 옥아가 조용히 말했다.
“니가 여기서 나가면 우리까지 죽어.”
 옥아는 정신을 차렸다. 슬픈 여자들의 모습. 
“어디서 왔어요?”
 옥아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자네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나?”
 할 말이 없었다.
“언제 끌려왔어요?”
“일 년이 넘었지. 이름이 뭔가?”
“강옥아.”
“나는 김분이. 이 여자 둘은 중국 여자들이야.”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전방으로 가겠지. 관동군의 소속 부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만주 지역으로. 그곳엔 씻을 물도 제대로 없지. 그래도 지금 트럭의 방향이 만주로 향하고 있어. 되돌아가고 있는 게지. 조선이 가까운 곳으로. 운이 좋은 편이야.”
 옥아는 또 피식 웃었다. 조선. 그러나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돌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만주로 간다는 말을 듣자 공연히 가슴이 설렜다.
 위안소 여자들의 막장이 전방의 간이 위안소였다. 위생시설도 전혀 없을뿐더러 상대해야 할 병사들 또한 오직 육욕에만 눈먼 짐승들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내일, 아니, 오늘조차 장담할 수 없는 전투 상황에서 병사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더구나 턱없이 모자라는 여자들, 여자 몇몇이 그 많은 병사들을 받아내야 했다.
“전방에 끌려간 여자들은 대부분 걸음도 못 걷다가 죽지. 하룻밤에 스무 명씩 받아봐.”
 그런데 여자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겁 안 나요?”
“겁? 오래전에 끝났지. 지금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야. 혁명을 위해서라면 백 명 아니, 천명도 받아주지. 어쩌더라도 살아남아야지. 난 죽어도 일본 놈들 열은 때려죽이고 죽을 거야. 우리까지 다 죽이고 싶으면 뛰어내려. 나도 원망 안 해. 그렇지만 한 가지만 알아둬. 일본 놈들 얼마 남지 않았어. 일 년, 아니 몇 달을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
 그녀의 목소리에는 믿음이 있었다.
“정말요?”
“전방에서는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해. 그렇지만 탈출하기는 가장 쉽지. 일본군 진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중국군이나 운 좋으면 독립군을 만날 수도 있지.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 독립군도 모두 만주로 모였다는데...... 기회를 보는 거다.”
 저런 생명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옥아는 차츰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여태 본 일본군 감시병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이 아니라도 일본군들의 얼굴에서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초조한 얼굴이었다. 충천한 사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내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처럼 어두운 얼굴이었다. 장황한 연설은 일체 없었다. 틈만 나면 대일본제국 운운하며 입에 거품을 물던 시절이 끝나고 있었다. 
“어쩌다 잡혀왔어요?”
 옥아는 궁금했다. 같은 여자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세상 물정에 밝은 여자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삐라 뿌렸지.”
“삐라?”
“중국 공산당 당원이거든.”
 회산에게서 일본군이 만주에서 활동하는 공산당원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군에게 가장 극렬하게 대항하는 것이 공산당원들이었던 것이다.
 분이가 뭔가를 내밀었다. 삿꾸(콘돔)였다. 옥아도 삿꾸의 효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방적공장 여공원들에게 배운 터였다. 틈만 나면 협화회 사무원이나 일본 관리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그들.
“왜?”
 옥아는 고개를 들었다.
“모르지. 자네에게 주고 싶구만. 이거 없으면 죽어. 여기 군인들, 병 많아. 죽을 때 죽더라도 그건 끼워.”
 옥아는 말없이 삿꾸를 받았다.
  

 

 위안소는 일본군 문서상 군위안소, 군인클럽, 군인 오락소, 혹은 위생적인 공중변소 등으로 불렸다. 그곳으로 끌려간 조선 여성들은 하루 두 끼의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에 보통 15명에서 많으면 100명까지 성관계를 가지는 고문을 받았다. 지하나 은밀한 곳에 성 고문 기기만 사용하는 곳도 따로 있었다. 주로 매독이나 임질 등에 걸리면 발견 즉시 따로 격리되어 매장을 당하거나 처형을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만약 임신을 할 시에는 태아와 자궁을 통째로 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