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문득 노승의 제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산길을 걷는 노승의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노승이 도착한 곳은 오대산 월정사 위 산골짜기에 있는 관음암이었습니다. 마침 관음암에는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습니다. 노승 뒤로는 노을이 탱화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청년은 노승이 부처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은 노승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저는 옷감을 파는 보따리 장사이옵니다. 그런데 오늘 스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저도 스님처럼 자비로운 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도인이 되고 싶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부자의 얼굴에서도 스님 같은 자비로운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재산이 많은 부자일수록 더욱 불안해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내가 시키는 대로 말없이 하겠느냐?”
 “반드시 하겠습니다.”
 노승은 청년의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청년은 자신이 매고 왔던 보따리를 부처님 앞에 맡기고서는 해진 옷으로 바꿔 입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청년은 노승이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노승은 청년에게 솥을 거는 일만 시켰습니다.
 청년은 일이 서툴렀으므로 솥 하나를 거는 데 하루가 걸렸습니다. 흙에다 썬 짚을 섞어 아궁이를 만드는 일부터 간단치 않았습니다. 솥 거는 일은 이른 아침에 시작해도 저녁 무렵에야 끝나곤 했습니다.
 “스님, 새 아궁이에 솥을 걸었습니다. 불을 지필까요?”
 “아니다. 아궁이 위치가 잘못됐다. 그러니 내일 다시 저쪽에 아궁이를 만들어 걸 거라.”
 다음날 또 아궁이를 만들어 솥을 걸면 노승은 다른 말을 했습니다.
 “솥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니 내일 아궁이를 뜯고 다시 걸도록 해라.”
 그래도 청년은 노승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솥이 기울지 않게 하고서는 부뚜막을 반질반질하게 매흙질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노승은 지팡이로 부뚜막을 허물어뜨려 버렸습니다.
 “이 아궁이는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 뒷방 아궁이를 고쳐 걸도록 해라.”
 청년은 아궁이를 만들고 고쳐 솥 걸기를 아홉 번이나 했습니다. 그제야 노승이 청년의 머리를 깎아주며 법명을 주었습니다. 솥을 아홉 번 걸었다는 뜻으로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을 내렸습니다. 구(九)는 아홉 구이고요, 정(鼎)은 솥 정자지요.
 젊은 구정은 훗날 스승처럼 자비로운 선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도 역시 스승처럼 날마다 이와 벼룩에게 공양을 시켰답니다. 아무리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도 눈밭에 꼼짝 않고 서서 이와 벼룩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던 거지요.
 우리가 징그럽다고 여기는 이와 벼룩에게도 자비심을 베푼 스님이라면 참으로 인자한 스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생명이라고 해서 더 귀하고, 이나 벼룩의 생명이라고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랍니다. 이 세상의 생명은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