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산으로 가세요.”
“북산?”
 그것이 고향 아닌 고향과의 마지막이었다. 이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옥아의 하얀 얼굴에 범벅이 된 자신의 눈물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주인집 아들이 죽었는지, 아버지가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남은 것은 지워버릴 수 없는 옥아의 얼굴과 목소리였다. 그것만이 늘 그와 함께 있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야말로 유리걸식을 했다. 풀도 먹었고, 흙도 먹었다. 그렇지만 그는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나마 굶어죽지 않은 것은 다행히 아니라 불행이었다. 그는 죽기를 원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 그는 무수히 보았다. 돌림병으로 폐허가 된 마을과 마을, 길바닥에 늘어선 무참한 죽음들, 굶주림에 지쳐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그 모두가 그에게는 부러움이었다.‘나도 저럴 수 있다면.’그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었다. 그는 쓰러질 때까지 걷고, 일어나면 또 걸었다.  
 그렇게 찾아온 개마고원 기슭엔 북산이 없었다. 옥아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는 개마고원 전 지역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런데도 그는 북산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굳이 북산을 찾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었다. 옥아는 그저  당분간 세상을 피하라고 북산으로 가라고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험산 산골짝에서 차라리 산짐승의 밥이 되라고 일러준 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원망이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너무 당연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남은 삶은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백두산 밑에 와 있었다. 다행히 고원에서 만난 어느 포수가 북산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개마국 성터 웅이산이라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옥아는 북산이라고 하였을까?
 웅이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은 이미 겨울에 잉태되어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자라, 가을에 그 징조를 드러냈지만 목숨을 가진 것들에게는 언제나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날 서리가 내렸고, 어느 날 눈송이들이 날렸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이 얼어버렸다.

 

 

 숲속에 오두막이 있었다.
 사방 100리, 인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산속이었다. 언덕 위 평탄하고 넓은 곳, 뭇 풀 무성한 그곳에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묘표가 비바람, 눈보라에 삭고 있었다. 옛날에는 조그만 암자가 있던 자리였지만 화전민에 의해서였는지, 아니면 화적떼들에게 의해서였는지 널따란 평원만이 남아 있었다. 
 오두막 옆 개울이 순식간에 얼기 시작했다. 이제 얼음은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얼음이 얼음을 만들고, 바람이 바람을 만들 것이다. 그는 억지로 웃었다. 이 산속에 언제나 불빛 하나 반짝일 것이고, 그러다가 죽는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애틋하던 식구들에 대한 연민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는 오로지 그 자신만을 찾는데 진력하였다. 자신에게 붙어 있는 온갖 오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맑은 물은 없었다. 그 이후로 그는 목욕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입고 나온 무명 삼베옷 그대로였다. 머리도 그대로였다. 그는 들짐승이었다.
 누구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낮이면 미친 듯 가시나무를 하였고, 밤이면 아주까리 호롱을 켜놓고 앉아 있었다. 울었다. 산이 무너져라 울었다. 하늘이 무너져라 울었다. 그 울음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사람이었으면서도 사람이 아니었고, 그는 짐승이었으면서도 짐승이 아니었다. 그는 우물을 찾고 있었다. 너무 차고 맑아 혓바닥을 들이대면 즉시에 온몸이 얼어버리는 그렇게 차고 시린 샘물을 찾고 있었다. 그곳에 몸을 씻으면, 아버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웅이산 일대를 바람처럼 떠돌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산맥, 그가 다니지 않은 길은 없었다. 그는 한 마리 짐승이었다. 해진 옷, 봉두난발, 오직 눈빛만 반짝였다. 그의 가슴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이구는 책을 보지도 못했고, 그 어떤 수행을 하지도 못했다. 떠오르는 것은 피범벅을 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얼굴, 그는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단지 이승살이보다 저승살이가 두려웠다. 저승, 그곳에 엄연히 자신의 손에 죽은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저 하늘 어디쯤엔가 남평이 있겠지. 적당히 돌아서 나간 강안, 밀가루보다 고운 모랫벌, 산이 산을 감싸고 강이 강을 감싸고 있는 곳, 더구나 그곳엔 옥아가 있었다. 한때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고는 도무지 그 그리운 얼굴조차 온전하게 그려낼 수가 없었다. 하늘을 태울 듯 붉었던 노을, 사시 장철을 일렁이던 마을 끝의 오리나무숲. 그러나 이제 그에게 그건 그리움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그는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남평을 잊기 위해 이를 갈았다.
 그의 오두막 사방엔 이깔나무, 감비나무, 붕비나무, 참나무, 봇나무, 자작나무, 황철나무가 산을 덮고 있었다. 아랫녘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보다 짐승이 많았다. 그는 일부러 화전민이 사는 마을과도 아주 떨어진 곳에 오두막을 지었다.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다시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지 않겠다는 결의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화전민들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유랑민으로, 부패한 관청이나 일본인과 세도가들의 등살을 피해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관청의 눈을 피해 아편을 재배했다. 아편을 재배하는 곳에 잘못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살림살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집 잃은 개나 고양이처럼 웅크리고만 있었다. 백두산, 그곳 정상에 있다는 바다 같은 호수, 그곳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하늘에서 내린 물, 그 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두고 온 마을을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웅이강의 푸른 물결을 보고는 천지의 물을 포기했다.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털어내도 자신에게 묻는 오욕의 먼지는 씻어지지 않을 터였다. 밤낮으로 떠오르는 아버지의 축 늘어진 모습. 그는 죽음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떡가루 같은 싸락눈이 내리는 해거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시나무만 잔뜩 쟁여 넣은 화덕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인기척이 있었다. 그는 짐승을 물리치기 위해 마련해 둔 붕비나무 창을 꼬나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을 사냥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우람한 나무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백색이었다. 그는 허연 입김을 불어냈다.
 어느새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깔나무의 가지들이 쭈우쭉 찢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칼날과 같았다. 그가 이곳을 떠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눈 때문인지도 몰랐다. 세상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것, 그는 그것이 눈이라고 생각했다. 얼음이라고 생각했다. 눈은 언제나 잘 짜여진 세상의 도판을 한꺼번에 바꿔 버렸다. 그는 오두막 옆으로 무너지던 장엄한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그 눈사태의 장관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만 있다면...... 자신도 그렇게 장엄하게 무너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 산중에 사람의 숨소리가 들린 것이다. 남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눈과 귀는 예사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독수리처럼 멀리 보았고, 살쾡이처럼 잘 들었으며, 늑대처럼 냄새를 잘 맡았다.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는 분명하게 사람의 기척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 무릎 위까지 쌓인 눈밭을 헤치고 왕바위가 있는 오두막의 동구까지 갔지만 역시 없었다. 그는 다시 붕비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는 오두막 뒤 곁을 뒤졌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열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을 때 화덕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마른 사내였다. 사내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힐끗 웃음을 보였다.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그는 똑같이 대했다. 조금의 두려움이라도 있었다면 이 산중에 혼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고원까지 오는 동안 숱한 산적들을 만났지만 누구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세상의 뜻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무도한 산적들에게 붙잡혀서도 흔쾌하게 나무를 해주고 바로 빠져나왔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두목의 배려 아닌 배려로 무사하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세상에 뜻이 없음을 두목도 알았던 것이다.
“뉘시요?”
 그러나 사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