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회령 경찰서.
 여름으로 향해 가는 햇볕이 내리퍼붓고 있었다. 6월의 초입인데도 한여름보다 더운 날씨였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지 않는 하늘, 원망의 태양이 둥실 떠 있었다. 민간복 차림의 옥아는 경찰서 마당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징용으로 끌려가는 남자들은 오른쪽, 모집원들에게 끌려가는 예비 여공들은 왼쪽에 정렬했다. 예비 여공들의 수가 훨씬 적었다. 경찰서 마당에는 굵은 줄로 금줄이 처져 있었다. 울부짖는 가족들과 끌려가는 사람들의 만남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경찰이 금줄 옆에 쭈욱 둘러서 있었다.
 옥아는 고개를 들었다.
 회산과 김처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회산의 얼굴은 너무 창백했다. 옥아도 그냥 회산을 쳐다보기만 했다. 회산은 옥아와 눈이 마주치자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조선 여자들을 향해 저질러지는 인간 사냥. 회산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처사도 멀거니 옥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들으나 마나 한 경찰서장의 훈시가 있었다. 일본 천황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우스운 말을 들으면서도 옥아는 웃지 못했다. 어쩌면 진짜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제 악한 민족을 위해 되지도 않는 말로 목청을 높이는 조선 사내를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같이 슬프고 못난 사내들... 옥아는 어금니를 맞물었다. 그제야 회산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옥아는 회산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 강산 어디에 묻힐꼬를 쓸 것이 아니라, 이 강산 어디에서 살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제 나라 땅에서 제 살 곳을 찾지 못해, 만주로 시베리아로, 일본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 서장 옆에서 전택경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좋았다. 저런 도략이라도 있었더라면......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애정 또한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것은 회산의 말대로 쓸데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위해서 나라 운운하며 목숨을 바칠 것인가. 한 번의 겨울이 지나면 수없이 굶어 죽어나가는 백성들을 보면서도 나라 타령을 하던 사람들이 조선 양반들이었다. 조선이 망한 건 결코 일본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몸에 기생하는 양반이라는 몹쓸 벌레 때문이었다. 
 일본인의 수탈이 있다고 하지만, 기실 그전에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일본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런 마음으로 회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회산이 비로소 눈을 떴다.
 저 맑은 눈, 어쩌면 저 사람은 저리 맑은 눈을 가졌을까? 옥아는 잠시 그것을 생각했다. 자신을 키우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부드럽지 않은 눈으로 대한 적이 없는 저 눈, 옥아의 눈에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절대로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옥아의 머릿속에는 그동안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 이구...... 그는 정말로 북산으로 갔을까? 며칠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아득했다. 세대의 낡은 트럭이 도착했다. 차례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경찰서 앞마당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옥아는 그 울부짖음을 보면서 조금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 눈물도 많은 사람들, 눈물 없이 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남녀가 반반씩 탄 세 번째의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경찰서 앞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을 부르는 남은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경찰이 쳐놓은 금줄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미 떠날 사람들은 떠난 것이다. 옥아는 다시 생각을 했다. 미리 저 선을 무너뜨리지. 일본 경찰들이 빙긋 웃는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속에서 그녀는 회산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으로 그녀는 회산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 눈물을 제게 일찍 보여주시지.

 

 

 

 그날 회산도 명장사를 떠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옥아의 흔적, 눈앞이 캄캄했다. 어디로 갈까? 마당에 깨어진 사발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회산은 사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랑에 집어넣었다. 언제였던가.
 옥아가 오랫동안 천식으로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기침을 많이 하는 자신에게 옮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겨울산에 있었다. 비적처럼, 아니면 들쥐처럼. 천식에 좋은 깨금나무는 인근의 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북산 기슭의 깨금나무 숲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을 갈 수는 없었다. 쌓인 눈 때문에.
 그러나 그는 기어이 깨금나무 숲이 있는 산정에 올랐다. 호미 하나만을 달랑 들고. 그러나 새벽에 떠났는데도 깨금나무를 찾았을 때는 벌써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 천지사방에서 칼자루를 든 12월의 귀신들이 그를 후리고 갔다. 어디선가 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조금도 춥지 않았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맬 사나운 산짐승도 무섭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넘는 눈을 치우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단히 얼어붙은 땅을 호미로는 열 수가 없었다. 손톱만큼도 들어가지 않았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단 깨금나무를 발견한 이상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미 얼어 한껏 곱은 손을 호미로 잘못 찍어 피가 흐르는데도, 그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항용 새끼들을 위해서는 가시나무를 삼켜야 하는 법. 오히려 옥아를 위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 흐뭇했다.
 그는 앙상한 가지들과 낙엽을 모아 불을 놓았다. 하늘이 도왔을까 땅이 조금 녹았다. 그러나 그가 가까스로 한 그루의 깨금나무뿌리를 캤을 때는 훤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곱게 합장을 하였다. 행복했다. 그때는 옥아를 위해 자신이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회산은 옥아가 싫다는 깨금나무뿌리를 형체가 없어지도록 삶아서 지겹도록 먹였다. 그 덕분인지 옥아는 그 날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눈이 보고 싶다는 거였다. 온통 눈 쌓인 세상에 살면서.
“오늘은 하루 종일 눈이 오네요.”
 옥아는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회산은 옥아의 안색을 살폈다. 밖으로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 옥아를 데리고 왔을 때처럼. 그러나 회산은 방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 때문에 풍경이 춤을 추었다. 눈송이들이 얼굴을 때렸다.
“문 닫지 마세요.”
“추워서 안 돼.”
“더워요.”
“거짓말.”
“정말이에요.”
“이불을 세 개씩 덥고도 춥다더니?”
“이제 병이 나을 모양이죠. 복수초가 피려면 아직도 멀었죠?”
 복수초는 눈을 뚫고 제일 먼저 피는 봄꽃이었다. 옥아는 공단 이불 속에서 목을 내밀고 있었고, 회산은 정방형의 툇마루에 앉아 마지막 깨금 약사발을 들고 있었다. 함께 눈 오는 것을 보고 싶어서, 함께 풍경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옥아가 억지를 부린다는 걸 회산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
“이게 마지막이다.”
 회산은 사발을 내밀었다. 한 그루 깨금나무뿌리가 얼마나 되랴. 회산은 안타까웠다. 한 뿌리 더 캐올걸. 그런데 옥아의 말이 걸작이었다. 
“깨금 뿌리 부엌 선반에 많아요. 스님이 밤낮으로 담배를 피워서 지난봄에 제가 많이 구해놨어요.”
“응?”
 그게 어린 옥아였다.

 

 

 

부산까지 온 옥아는 현해탄을 건너 시모노세키에서 기차를 타고 오사카에 내린 다음 기시와다 방적회사에 도착하였다. 그즈음 방적회사는 화려했던 옛 영화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화 초기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다.
 계약서는 제사회사나 방적회사이거나 간에 조선 총독부의 지도하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용은 모두 같았다. 그것은 조선 총독부에서 작성한 모두 같은 견본을 가지고 그 위에 회사명만 기입하였기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의하면 모집인에게 일본까지 데려다주는 비용도 여공들이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여공들의 궁핍한 생활로서는 그 여비를 마련할 수 없어 회사는 가불로써 그 금액을 지출했다. 그 결과 한국인 여공 대부분이 이미 일하기도 전에 회사로부터 빚을 지고 그 빚으로 말미암아 회사의 부속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조선인 여공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계약서에는... 취업시간은 1일 14시간으로 하며, 그 14시간 중에 1시간은 휴식한다. 한 달에 두 번 휴가가 있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그 식사비, 목욕비, 침구, 그 외 일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모두 여공 측에서 부담한다. 그리고 업무상 발생하는 부상, 질병의 치료 등도 모두 여공 측이 부담한다. 본 계약서의 불이행 시에 발생하는 손해는 모두 본 계약자와 서명자가 연대로 책임을 지고 보상한다고 되어 있었다.
 옥아가 기시와다 공장 기숙사를 할당받아 들어갔을 때 한국인 여공은 약 30여 명이었다. 한 방이 4다다미로 되어 있고, 거기에 8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공장은 24시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여공들은 12시간 교대로 일을 하였다. 그런 경우에 4명은 야간근무, 4명은 주간 근무를 하였다.
 기숙사에서 일본인 여공과 조선인 여공은 반드시 다른 건물이었고, 드물게 같은 건물을 쓰더라도 방은 함께 쓰지 않았다. 그런 경우에도 그 건물의 남쪽은 일본인 여공이 쓰고, 북쪽은 조선인 여공에게 배당되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조선인 여공을 배치한 것이다. 공장 주변은 온통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한 그 벽 위에는 도망칠 수 없게 철조망을 설치했다.
 어떤 숙소는 겨우 하늘만 가린 큰 방으로 다다미도, 칸막이도 없는 마구간 같은 곳이었다. 더구나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를 하는 여자들이 한 개의 딱딱한 자리로 잠을 자기 때문에 밤낮 펴 놓는 침구는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이불을 한번 내주고 나면 절대로 다시 바꾸어주지 않았다. 색도 검은색이었기에 때가 묻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불 바탕이 검게 번쩍이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옥아는 첫날, 지독한 냄새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옥아는 명장사의 포근한 이불보다 훨씬 좋았다. 몇 번이나 걷어내고 싶었던 명장사 비단공단의 깨끗한 이불, 이제야 부끄럽지 않았다. 
 밀폐된 방안, 탁한 공기,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부자리, 이름이 기숙사지 돼지우리나 한 가지였다. 그러나 그 더러움보다도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벼룩과 빈대였다. 악취를 견디며 잠자리에 들면 그 다음날 아침, 쌀알을 뿌려놓은 것처럼 이불 위에 빈대가 기어 다녔다. 빈대에 물린 그녀의 팔과 다리는 여기저기 빨갛게 부어올랐다.
 점심시간에 옥아는 작업반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빈대를 잡을 약 좀 주세요?”
“예산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부탁할 수는 없다. 빈대에게 오늘부터 나를 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보는 게 어때?”
 조선인 반장은 싱긋 웃었다. 처음부터 옥아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그렇지만 옥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늘 정말 빈대나 벼룩에게 빌어봐야지. 옥아는 빈대나 벼룩을 퇴치할 새로운 방법을 알고 있는 듯 슬쩍 웃었다.
 “빈대나 벼룩이 내 기도를 들어줄까요?”
 반장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