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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㊷

이 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7-17 (금) 08:43

아, 꾸시나라!
 
붓다는 자신에게 오직 꾸시나라(Kusinara)까지 갈 수 있을 만큼밖에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난다에게 꾸시나라가 45년 전법 여정의 마지막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붓다의 말을 들은 아난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아난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도 내남없이 깊은 비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 가운데에서 세존의 병이 악화된 것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져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논의가 시작되자 곧 갖가지 억측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들 중 한 제자가 쭌다의 책임을 거론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고통을 겪고 계신 것은 순전히 쭌다의 책임이다. 그는 세존께서 기름진 음식이 우리와 같은 수행자들에게 적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을 때, 세존께도 그 음식을 올리지 말았어야 마땅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가 말했다.
 
“하지만 세존께서는 그 음식을 당신께 공양하라고 쭌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모두 쭌다의 책임일 수 있겠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세존께서는 그 음식으로 인해 아프게 될 것을 아시면서 그걸 드셨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까?”
 
또 다른 제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게 제자들이 모여 앉아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때, 아난다가 나타났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아난다에게 물었다.
 
“아난다여, 우리는 세존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존의 이번 병은 누구 책임입니까? 쭌다입니까? 아니면 세존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까?”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쭌다의 음식을 드심으로써 당신께서 아프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세존께서 그 음식을 거절했더라면 쭌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세존께서는 그 음식을 받으시고, 쭌다를 기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나는 스승께서 당신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행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비로운 스승께서는 당신의 일시적인 불편을 모면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거절할 분이 아니십니다.”
 
한창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붓다가 그 자리로 다가왔다. 한 제자가 서둘러 가사를 접어 만든 자리에 편한 자세로 앉은 붓다가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이야기에 생기가 넘쳐 보이는구나. 이렇게 열띤 토론을 하는 주제가 무엇인가?”
 
그러자 아난다가 솔직히 이야기했다.
 
“스승이시여, 세존께서 이토록 심하게 앓도록 만든 쭌다의 공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들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제자들이여, 누군가 쭌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쭌다, 붓다께서 자네가 올린 공양을 마지막으로 열반에 드셨으니, 자네가 올린 공양은 자네에게 득이 아니라 손실이 될 것일세.’라고. 또한 그런 말로 쭌다에게 심한 죄책감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잘 들으라. 결과에 있어 어떤 것보다 훌륭한 두 가지의 공양이 있다. 그 하나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공양이며, 나머지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는 이것, 즉 정신(名)과 육체(色)로 이루어진 이 모두를 버리고 궁극의 열반(parinibbana)에 들게 하는 공양이다. 쭌다는 실로 오래오래 행복의 씨앗이 될 공양을 올린 것이다.”
 
붓다의 말에 대중 모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붓다가 비구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 가운데 누군가 나에게 질문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질문을 할 아주 좋은 때다. 이생에서의 나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물어보지 않은 것,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으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선뜻 일어나 질문을 던지는 비구들은 없었다. 곧 열반에 드신다는 스승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왠지 불경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한 명의 제자라도 더 궁극의 경지로 이끌고자 하는 붓다의 간절한 연민을 읽은 아난다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성취한 제자들과 세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성취에 관한 한 나와 아라한이 된 제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알라. 궁극의 경지를 성취한 이들은 모두가 동등하다. 그 사이에 있는 유일한 차이라면 과거의 어느 붓다에 의해 성취되었던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길을 나도 발견하고 가르친 것이며, 제자들은 나를 따라 그길로 왔다는 것뿐이다. 즉 나는 잊혀진 옛길을 다시 찾았고, 깨달은 제자들은 내가 찾은 그 길을 통해 목표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래에도 누군가에 의해 그 길은 다시 발견될 것이다.”
 
붓다의 설법에 감동한 아난다가 자신의 기쁨을 게송으로 읊었다.
 
최상의 스승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위없는 인천(人天)의 스승이시여,
내 스승과 견줄 이 온 세상 어디에도 없어라!
 
게송으로 붓다를 찬탄한 아난다는 모든 비구들을 대신하여 붓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어떤 제자도 세존의 가르침에 의심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며, 모든 제자들이 세존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할 것이라며 비구들은 대변하는 아난다를 향해 붓다가 말했다.
 
“아난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대는 대중의 태도와 저들의 이해를 지나치게 믿는 것이 아닌가. 많은 제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의문을 갖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것이다. 스승을 존경하고 위한다는 이유로 정작 중요한 의문을 감추는 것은 결코 현명한 자가 행할 행동은 아닐 것이다.”
 
붓다가 자기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를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 한 비구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묻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수행하는 데 여인은 장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어떻게 여인을 대해야 되겠습니까?”
 
붓다는 여인을 대하는 비구들의 태도는 상가 존속의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여인의 출가 허락을 망설였던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비구들의 수행에 장애가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붓다는 자신이 열반에 든 후 비구들에게 당면 문제가 될 여인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보지 마라.”
“만일 눈에 띄면 어떻게 합니까?”
“말하지 말라.”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늘 깨어 있어라.”
 
며칠 더 머문 후 붓다와 제자 일행은 히란야바티(Hiranyavti) 강을 건너 말라 족의 나라 꾸시나라의 우파바따나에 도착하여 살라(Sala)) 숲에 거처를 정했다. 붓다는 몹시 지쳐있었고,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붓다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아난다야, 나를 위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도록 누울 자리를 준비하라. 아난다, 눕고 싶구나.”
 
붓다의 분부에 따라 아난다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져 있는 커다란 살라 나무 사이에 침상을 마련했다. 두 그루의 살라나무는 뿌리와 가지, 이파리가 서로 이어져 있었다. 붓다는 아난다가 준비한 자리에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오른쪽 발 위에 왼쪽 발을 얹은 채 사자처럼 누웠다. 붓다는 그 상태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알아차림에 집중하며 선정에 들었다. 
붓다가 깊은 선정에 들자, 때에 맞지 않게 살라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해 곧 만개하더니 마치 공양을 올리듯이 완전한 분, 최고의 정각자의 몸을 향해 수많은 꽃송이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마침 안거를 마친 시기라 많은 수행자들이 붓다를 친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곧 열반에 들 붓다를 친견한 그들은 극도로 쇠약해진 스승의 모습을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붓다는 선정에서 나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열반을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아난다의 눈물
 
붓다의 수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직감한 아난다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맥없이 붓다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난다가 조용히 일어나 외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나무에 기댄 채 흐느꼈다. ‘아, 나를 불쌍히 여기던 스승께서 이제 가시려 한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다른 비구들이 흐느끼는 아난다를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아난다, 무슨 일로 울고 계십니까? 세존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나는 세존을 가까이 모셨으면서도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한 범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는 지금 최후의 열반에 드시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슬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때 붓다는 아난다가 곁에 없는 것을 알고 한 제자를 불러 물었다.
 
“아난다는 어디에 있는가? 아난다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구나. 평소에 없던 일이다.”
“스승이시여, 아난다는 숲 한쪽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런가? 어서 아난다를 불러오라.”
 
붓다의 곁으로 다가온 아난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스승님과 함께 수십 년을 지냈습니다. 스승님과 함께 걸어 다녔고, 스승님과 함께 잠들었으며, 스승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고, 스승님의 모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깨달은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이렇게 떠난다고 하시니, 이제 저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아난다에게 붓다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다. 아난다야. 그만 슬퍼하라. 너는 내게 늘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 또한 상가에 대한 큰 봉사가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용기를 가지고 행동할 때다. 내가 거듭해 말하지 않았는가. 가깝고 사랑하는 것에 이별의 슬픔이 있다고. 생겨난 것은 무엇이건 소멸하게 되어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는가. 아난다, 너는 오랫동안 자애롭고 솜씨 있게, 머뭇거리지 않고, 성실하고, 남김 없는 행동으로 나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너의 수행도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계속 정진하라. 그리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통찰과 해탈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붓다는 이어 비구들을 향해 아난다에 대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눈짓만 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곤 하였다.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탁월함이 있다. 비구들은 아난다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였고, 아난다가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면 그들에겐 하나같이 기쁨이 충만해졌다.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은 아난다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였고, 아난다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위해 설법하면 그들에게도 하나같이 기쁨이 충만하였다. 아난다에게는 이렇게 네 가지의 탁월함이 있다.”
 
붓다의 위로에 잠시 눈물을 멈춘 아난다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찬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나는 붓다의 출가를 도왔던 마부로 붓다가 정각을 성취하자, 궁에 머물지 않고 붓다를 따라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찬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후에 자주 사소한 계를 어겨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많은 비구들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했지만 찬나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되레 큰소리를 쳤다.
 
“나의 잘잘못을 말하지 말라. 나는 너희들의 시비를 논할 수 있으나, 너희들은 나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아니었으면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수 없었으며, 출가하여 도를 닦지 않았다면 붓다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거목과 같고, 너희들은 마치 태풍에 한구석에 모인 낙엽과 같다. 알겠는가?”
 
이처럼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는 찬나를 상가에서는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붓다로부터 충고를 받으면 잠잠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붓다의 충고조차 잘 듣지 않았다. 찬나의 이와 같은 방종은 어느덧 상가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아난다는 붓다가 입멸에 들고나면 찬나의 망동이 정도를 더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임종을 앞둔 붓다에게 여쭌 것이었다.
 
“세존이시여, 찬나 장로는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 멸도 하신 이후에는 그 증세가 더 심해질 것이 자명합니다. 찬나 장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멸도한 후 찬나가 여전히 상가의 규율을 따르지 않고 가르침을 받들지 않거든, 상가에 겨우 머물 수 있게 하는 죄로 엄격히 다스리도록 하라. 비구계를 박탈하지는 않지만, 모든 비구들에게 명하여 그와 더불어 말하지 말고, 왕래하지도 말며, 가르치지도 말고, 일을 시키지도 말라.”
 
붓다의 위로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아난다는 붓다의 열반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열반의 장소에 대해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곳 꾸시나라는 아주 작은 고을입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황량하고 작은 고을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웨살리,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와 같은 큰 도시가 있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보다 더 큰 규모의 도시 가운데 적합한 곳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난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작다는 이유로 이 고을을 가벼이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곳은 일찍이 마하수닷사나 왕의 수도 꾸사와띠가 있었던 곳이다. 이 왕도는 동서가 12요자나였고 남북으로 넓이가 7요자나 되는 큰 도시였다. 또 누가 알겠는가? 이 고을이 언젠가 큰 도시가 될 수 있을지를. 또한 지금의 큰 도시가 먼 훗날에 보잘것없는 마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난다, 나는 새벽(五更)에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들 것임을 꾸시나라의 말라 족에게 알리도록 하라.”
 
아난다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멸 후 붓다의 유해를 어떻게 모시면 좋겠느냐고 여쭈었다. 이에 대해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출가자들은 나의 유해를 모시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말라. 너희들은 오직 출가 본래의 목적을 향하여 바른 마음으로 노력하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해야 한다. 아난다야, 나에 대해 각별하게 깊은 숭경의 생각을 품고 있는 현자가 왕족이나 바라문, 자산가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이 나의 유해를 처리하게 될 것이다.”
 
붓다가 말씀하는 동안 아난다의 두 눈에서 멈춤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난다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언젠가 한 지방에서 우기에 정주생활을 하던 비구들이 붓다를 뵙고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모습을 뵙고, 큰마음을 내어 더욱 열심히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께서 열반에 들고나면 비구들은 더 이상 스승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스승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일도 불가능해집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이럴 때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아난다야, 신앙심이 있는 신실한 사람이 실제로 찾아가 보고 감격할 장소로 네 군데가 있다. 그 네 곳이 어디인지 말해주겠다. 수행의 완성자가 태어난 곳, 수행의 완성자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곳, 수행의 완성자가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한 곳, 그리고 수행의 완성자가 번뇌 없는 열반에 든 곳이 그 장소가 될 것이다. 아난다야, 이 네 장소가 신앙심이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찾아가 참배하고 감격할 장소이다. 아난다야, 신앙심이 있는 비구, 비구니, 세속의 남자 신자, 세속의 여자 신자들이 이 네 곳을 찾아 ‘수행의 완성자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수행의 완성자가 여기에서 무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수행의 완성자가 여기에서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수행의 완성자가 여기에서 번뇌가 없는 열반에 드셨다’라고 생각하며 찾아올 것이다. 아난다야, 누구라도 이 네 곳을 순례하고 편력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들은 모두 죽은 뒤 육체가 시드는 사이에 선한 곳, 하늘의 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수밧다, 마지막 비구가 되다
 
말라 족들 사이에 그들의 작은 고을 꾸시나라에 붓다가 도착했으며, 오늘 밤에 붓다가 최후의 열반에 든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사끼야 족 성자에게 마지막 예를 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들 가운데 수밧다(Subhadda)라는 나이 든 방랑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아난다에게 다가와 붓다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안 됩니다. 벗이여. 지금 그분을 괴롭힐 때가 아닙니다. 스승께서는 지금 아주 피로해 있습니다.”
 
아난다가 단호하게 수밧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수밧다는 붓다를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아난다의 거절은 계속되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붓다가 아난다를 불러 말했다.
 
“아난다, 막지 말라. 노 수행자를 이리로 안내하라. 어서 나를 만나게 하라. 그가 어떤 의문을 가졌건 그는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오직 지혜를 위해 물을 것이니라. 이미 수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쉽게 이해할 것이다.”
 
가까스로 허락을 받은 수밧다는 자리에 누워 있는 붓다 앞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세존이시여, 극도로 피곤하신 분께 질문하겠다며 고집을 피운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계속하시오. 수밧다, 무엇이건 묻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나름대로의 수행공동체(상가)와 제자들을 거느린 사문과 브라만들이 있습니다. 뿌라나 까싸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리, 빠꾸다 까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그리고 니간타 나따뿟따 같은 이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자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진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졌다고 보십니까?”
“수밧다여, 나도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알고 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입니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그들 가운데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까?”
 
붓다는 본질의 문제가 아닌 것에 집착하는 수밧다에게 큰 연민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간절하고 순수한 구도심에 차 있어 몇 마디만 일어 주어도 깨달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수밧다여, 어떤 지도자가 자신이 공언하는 진정한 지식을 획득했는지 말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접어 두는 것이 좋다. 그것보다 그대에게 나의 가르침을 말해주겠다. 지금 설명하는 것을 주의해서 잘 들으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생의 마지막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위해 설법을 하는 붓다에게 감동한 수밧다는 절로 고개를 숙여 최상의 예의를 표하며 귀를 기울였다.
 
“수밧다여, 여덟 가지 올바른 길(팔정도)이 있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정이 그것이다. 이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문들, 비구, 비구니들이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첫 번째 단계에 이른 수행자도 있고,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행자도 있으며,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한 수행자도 있고, 네 번째 단계에 도달한 수행자도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이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생사를 한 번 더 되풀이한 다음 깨닫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이 세상에서 죽은 뒤 다시 태어나지 않고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며, 네 번째 단계는 이 세상에서 완전한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수밧다여, 만일 어떤 가르침에 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없다면 거기에는 올바른 수행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겐 사문의 첫 번째 과위도, 두 번째 과위도, 세 번째 과위도, 네 번째 과위도 있을 수가 없다. 수밧다여, 오직 나의 가르침에만 팔정도가 있다. 따라서 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사문들의 첫 번째 과위도, 두 번째 과위도, 세 번째 과위도, 네 번째 과위도 있는 것이다.”
 
설법을 들은 수밧다는 크게 기뻐하며 붓다를 향한 찬탄을 멈추지 못했다. 붓다는 이어 어떤 지도자의 가르침이 진정한 지혜인가를 가리는 기준에 대해서 설법했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들이 따르는 교의와 계율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의 교의와 계율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다름 아닌 제자들의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붓다의 설법을 들은 방랑 수행자 수밧다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실로 놀랍습니다. 어떤 교의와 계율을 제정한 자가 진정한 지식을 가졌는지 아닌지 판별할 능력이 없는 저희가 그 사람의 가르침을 평가하는 최선의 잣대는 제자들의 행동이 될 것입니다.”
 
이어 수밧다는 아난다를 향해 말했다.
 
“붓다를 따르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은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아난다여, 저는 당신 덕분에 세존을 뵙고, 의심하던 것을 여쭐 수 있었습니다. 아난다여, 세존을 뵙고 저는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수밧다가 다시 붓다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세존의 법 가운데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수밧다여, 다른 가르침을 배우던 이들이 나의 법에 귀의해 청정한 행을 닦고자 한다면 4개월 동안 기다려야 한다. 대중이 당신의 행실과 당신의 마음가짐과 당신의 성향을 살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간 역시 그대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일 뿐 꼭 정해진 것은 아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4개월이 아니라 4년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대중의 허락을 얻어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붓다가 수밧다에게 미소를 보였다.
 
“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라고 조금 전 말했다.”
 
수밧다는 열반 직전 붓다로부터 비구계를 받고 붓다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는 애써 노력한 결과 오래지 않아서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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