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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㊵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7-03 (금) 09:18

최후의 여정에 오르다
 
붓다는 80세의 노쇠한 몸을 이끌고 라자가하를 떠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정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여정을 통해 붓다는 출가한 제자들, 즉 비구들과 각지에서 만나는 재가의 제자들, 즉 우바새와 우바이들에게 평생을 걸쳐 설법해온 법의 요체를 다시금 정리해 강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곳 라자가하에서는 머물 만큼 충분히 머물렀던 차였다. 떠날 채비가 마무리되자 붓다는 많은 비구들을 이끌고 북쪽의 웨살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 붓다는 많은 도시와 마을을 들르게 될 것이었다.
 
“아난다야. 암발라티까(Ambalaṭṭhikā)의 정원으로 가자.”
“세존이시여, 알겠습니다.”
 
붓다는 많은 제자들과 함게 암발라티까의 정원으로 향했다. 붓다는 암발라티까의 정원에 있는 ‘왕의 별장’에 머물렀다. 붓다는 왕의 별장에서 수행승들을 위해 많은 법문을 했다. 그동안 제자들을 향해 펼쳤던 주요 교설에 대한 법문이었다. 주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관련된 것이 법문의 주제로 올랐다. 삼학은 불교 전체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실천 형태이니 붓다 교설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비구들이여. 계가 실천되었을 때, 정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정이 실천되었을 때 혜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혜가 실천되었을 때 마음은 번뇌, 즉 욕루, 유루, 견루, 무명루로부터 해탈하게 된다.”
 
노쇠한 스승의 간절한 법문에 비구들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더욱 형형했다. 암발라티까의 정원에서 흡족할 만큼 머문 다음 붓다는 아난다에게 다음 행선지로 떠날 채비를 하라고 말했다.
 
“아난다야, 빠딸리(Pāṭali) 촌으로 가자.”
 
빠딸리는 강가(갠지스) 강과 손(Son)강, 간다끼(Gandaki) 강의 합류 지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곳에는 마가다국 아자따삿뚜 왕의 대신들인 왓사까라와 수니다가 파견되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두 대신과 빠딸리의 백성들은 붓다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게 환대하며 붓다와 비구들 앞으로 모여들었다.
 
“존귀한 분이시여, 우리의 휴식처에서 쉬십시오.”
 
붓다는 침묵으로 승낙했다. 빠딸리 촌의 신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가 머무실 휴식처로 달려가 바닥에 깔개를 깔고 자리를 준비하고 물병을 놓았으며, 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붓다를 모시러 갔다.
 
“존귀한 분이시여, 저희들이 정성껏 머무실 휴식처를 마련해놓았습니다. 지금이 휴식을 취할 적당한 때라고 생각하시면 그곳으로 가서 편안히 쉬십시오.”
 
붓다는 내의를 입고, 윗옷과 바리때를 손에 들고 제자들과 함께 휴식처로 자리를 옮겼다. 붓다는 두 발을 씻고 휴식처로 들어가 중앙 기둥 근처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제자들도 두 발을 씻고 휴식처로 들어가 서쪽 벽 근처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붓다를 앞에 두고 앉았다. 빠딸리 촌의 신자들 또한 두 발을 씻고 휴식처로 들어가 동쪽 벽 근처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붓다를 앞에 두고 앉았다. 이윽고 붓다가 빠딸리 촌의 재가자들에게 말했다.
 
“빠딸리의 자산가들이여, 계율을 어겨서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섯 가지 재앙이 있습니다.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이겠습니까?”
 
빠딸리 촌 사람들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빠딸리의 자산가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은 소홀함 때문에 큰 재산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또한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에게는 나쁜 평판이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에게 일어나는 두 번째 재앙입니다. 자산가들이여,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은 어떤 집회에 참석을 해도, 그것이 왕족의 집회든, 브라흐만의 집회든, 자산가들의 집회든, 수행 승려들의 집회든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행실이 나쁘고 계율을 어긴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 번째 재앙입니다. 네 번째 재앙은 죽을 때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재앙은 죽은 뒤에 악하고 고통스러운 지옥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붓다의 설법을 계속 이어졌다.
 
“자산가들이여, 반면 계율을 지킨 품성이 좋은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의 훌륭한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재산이 크게 불어나며, 좋은 평판이 따르게 되고, 어떤 집회에 참석하더라도 태연하고 불안한 마음이 없으며, 죽을 때 정신이 어지럽지 않고, 몸이 쓰러져 죽은 뒤에 선한 하늘의 세계에 태어나게 됩니다.”
 
밤늦도록 빠딸리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고 격려해준 붓다가 다음 날 빠딸리 촌을 떠날 때, 이곳의 백성들은 나루까지 따라와 아쉬움 속에 붓다를 배웅했다. 그들은 붓다가 나선 빠딸리의 성문을 ‘고따마의 문’이라고 명명하고, 강가 강의 나루를 ‘고따마의 나루’라고 부르며 붓다의 방문을 기념했다.
붓다와 제자 일행은 한껏 불어난 강가 강을 건넜다.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야, 꼬띠(Kotigama) 촌으로 가자.”
 
붓다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꼬띠 촌으로 향했다. 붓다는 이곳에 머물며 제자들에게 네 가지의 훌륭한 진리(사성제)에 대해 설법했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의 훌륭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도 너희들도 이처럼 유전(流轉)하고 윤회했다. 과연 그 네 가지가 무엇이겠는가? 비구들이여, 고통과 고통을 일으키는 근원이라는 존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도 너희들도 이처럼 유전하고 윤회했다. 또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존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도 너희들도 이처럼 유전하고 윤회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고통과 고통의 근원과,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훌륭한 진리를 깨우치고 통달했다. 생존에 대한 집착은 이미 끊어졌다. 생존으로 이끄는 집착은 이미 사라지고 이제 다시는 미혹(迷惑)의 삶을 받을 일은 없다.”
 
붓다는 꼬띠 촌에 머물며 비구들에게 법에 대한 강의를 이어갔다.
 
“비구들이여, 계율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선정이란 이런 것이다. 위대한 과보는 이와 같은 것이다. 지혜는 이와 같은 것이다. 계율과 함께 이룩한 선정은 위대한 과보를 가져오고 큰 공덕을 짓는다. 선정과 함께 발현된 지혜는 위대한 과보를 가져오고 큰 공덕을 짓는다. 지혜와 더불어 성취한 경계는 여러 더러움, 즉 욕망의 더러움, 삶의 더러움, 견해의 더러움, 무명의 더러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
 
붓다는 꼬띠 마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많은 제자들과 함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아난다야, 나디까(Nadika) 족이 있는 곳으로 가자.”
 
붓다 일행은 나디까 족의 마을에 도착해 연와당(煉瓦堂, 붉은벽돌회관)에 머물렀다. 나디까에 머물던 어느 날, 아난다가 붓다 앞으로 나아가 예배한 후 물었다.
 
“세존이시여, 사루하라는 이름의 수행자가 나디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갈 곳은 어디입니까?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존귀한 스승이시여, 또 난다라는 이름을 가진 비구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갈 곳은 어디입니까?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존귀하신 이여, 스자따라는 이름을 가진 여신자가 나디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갈 곳은 어딥니까?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존귀한 이여, 까꾸다라는 이름의 신자가 나디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갈 곳은 어디입니까?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난다야, 수행승인 사루하는 많은 더러움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이미 현세에서 더러움이 없는 ‘마음의 해탈’, ‘지혜에 의한 해탈’을 스스로 알고 체득해서 구현했다. 비구니 난다는 사람을 하계(욕계)와 연결시키는 다섯 가지 속박을 없앴기 때문에 혼자서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돌아올 일이 없다. 신자인 스자따는 세 개의 속박을 없애서 욕정과 분노와 미망이 점차 박약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돌아오는 사람’이 되어 단 한 번 이 욕계의 삶으로 돌아와 고통을 소멸시킬 것이다. 또한 까꾸다는 사람을 하계와 연결시키는 다섯 개의 속박을 없애서 혼자서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계로 돌아올 일이 없다.”
 
붓다는 이렇게 대답한 후 아난다에게 훈계하듯 말을 이었다.
 
“아난다야, 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정등정각자에게는 그리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을 일일이 여래의 처소에 와서 묻는 것은 매우 번거롭다. 이런 이유로 아난다야, 이제부터 나는 진리의 거울(法鏡)이라는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이 가르침을 잘 이해한다면 나의 성스러운 제자들은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뿐 경계에 떨어질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않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드는 꽃’ 암바빨리의 깨달음
 
나디까 촌에서 머물만큼 머문 다음 붓다는 아난다에게 웨살리로 갈 것을 당부했다. 웨살리는 지난날 까삘라왓투로부터 라자가하로 돌아오는 길에 머물렀던 릿차위 족의 수도였다. 붓다와 제자들은 유명한 기녀 암바빨리의 망고 숲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붓다는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수행자가 ‘스스로 염원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에 대해 설법했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염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가? 수행자는 몸을 잘 관찰하고, 열심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을 잘 관찰하고, 열심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여러 사상을 잘 관찰하고 열심히 성심을 다해 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자가 바르게 염원하는 것이다.”
 
이어 붓다는 수행자가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것에 대해 설법했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앞을 볼 때나 뒤를 볼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팔을 굽힐 때나 팔을 뻗을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대의나 의발을 집을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씹고 맛을 볼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갈 때나 올 때, 앉을 때, 잘 때, 깨어 있을 때, 말할 때, 침묵할 때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수행자는 이처럼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염원하고 이처럼 정신을 바짝 차려라. 이것이 너희에게 들려주는 나의 가르침이다.”
 
한편 붓다와 제자들이 웨살리에 도착해 자기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암바빨리는 몇 명의 중년 여인들과 함께 화려하게 치장한 탈 것들을 준비해서 각각 정해진 탈 것에 타고 서둘러 자신의 망고 숲으로 향했다. 그녀들은 탈 것을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다음 탈 것에서 내려 걸어서 붓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붓다는 그녀의 시종들의 모습이 모두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붓다가 물었다.
 
“암바빨리, 그대가 가는 곳 어디에나 따라오던 호남아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사막에 남은 고랑처럼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파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회색으로 변했다. 머리에 꽂은 꽃들도 이제 아름다움을 더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눈은 우물처럼 쑥 들어가 있었다. 지난날 그토록 균형이 잘 잡혀 있던 팔다리도 이제 마른 대나무처럼 볼품없게 되었다. 잠시 후, 그녀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제 더 이상 경호원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암바빨리여.”
“이제 누구 하나 제 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훔치려는 자가 없으니 지킬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암바빨리. 사람들은 늘 그대를 쫓아다니며 기웃거렸고, 그대는 주변에 지키는 사람을 세워둠으로써 사람들의 애를 태우지 않았습니까?”
 
암바빨리는 침묵했다. 세존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붓다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법문을 이어갔다.
 
“암바빨리, 그대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대 자신의 문제에 스스로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부터 감각적 쾌락을 받았고, 그대 또한 그렇습니다. 만일 그대가 그런 식으로 부추기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대의 환심을 사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제자 쑤바 비구니를 보십시오. 그녀는 실로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녀가 홀로 숲속에 살 때조차도 감히 누구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겪고 있는 좌절과 우울을 저 수바 비구니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과 견주어 보십시오.”
“스승이시여, 무상한 세월의 힘에도 파괴되지 않는 보배는 무엇입니까? 그날이 찾아왔을 때 나를 지켜주고, 위로할 참다운 보배는 무엇입니까?”
“암바빨리여, 참다운 법에 따라 수행한 공덕은 세월의 힘이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는 내 곁을 떠나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은 꼭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처럼 곁에 머물지도 떠나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바른 법만큼은 나의 뜻대로 영원히 곁에 머물며 큰 위안과 기쁨이 되어줍니다. 암바빨리여,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무엇인가에 의지한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둘도 없는 그들도 나의 뜻대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보호해주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그들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이처럼 여자의 몸에는 남자보다 더 큰 제약과 구속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가진 미모와 재력 역시 고통을 초래하는 덫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스승이시여, 언젠가 세존을 만났을 때 제가 보였던 무지와 오만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부디 제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암바빨리.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찾는 것은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암바빨리는 붓다의 제자들을 다음 날의 점심공양에 초청했다. 그녀는 붓다에게 예를 올리고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에 그녀는 붓다를 찾아오는 일단의 릿차위 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암바빨리에게 물었다.
 
“암바빨리여, 붓다를 만났소?”
“그렇소. 벗들이여. 난생처음 붓다를 보았다오.”
 
암바빨리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암바빨리의 대답에 어리둥절해졌다. 과거에 그녀가 붓다를 유혹하려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비밀이었던 것이다.
 
“암바빨리, 무슨 소린가? 예전에 붓다께서 웨살리에 오셨을 때, 우리는 암바빨리 그대가 붓다를 개종시키고 그분의 인생길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난생처음 붓다를 보다니!”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붓다를 보았다오. 세존께서는 내일 내 공양을 받으시기로 했소. 벗들이여!”
 
암바빨리는 서둘러 갈 길을 재촉했다. 릿차위 인들은 자기네가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젊고 아름다운 암바빨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이제 붓다도 늙었군. 암바빨리의 공양청을 수락하다니. 이제 그분의 인격도 힘이 빠진 게야.’ 의아한 마음을 갖고 붓다를 찾아온 그들은 붓다에게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은 뒤 말했다.
 
“세존께서 다시 이곳 웨살리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웨살리의 모든 릿차위 사람들은 세존과 제자들을 공양에 초청하여 환영하고자 합니다. 부디 저희들의 내일 점심공양 초청을 받아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이여,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내일 초청은 수락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암바빨리의 공양을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몹시 흥분했다. 그들을 인솔해 온 사람이 생각했다. ‘또 그 망고지기에게 당했군! 그렇더라도 어쩌면 붓다의 결정을 번복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암바빨리는 비열하며 믿을 수 없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웨살리의 젊은이들을 잃고, 사람들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그녀를 만났는데, 우리에게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세존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미 오래 전에 세존을 만난 적이 있으며, 세존을 유혹하려 했던 것은 우리도 다 아는 일입니다. 아마 그녀는 예전에 매정하게 거절당한 데 대해 보복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공양을 취소시켜 주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이여, 그녀가 나를 처음 만났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실입니다. 지난날 그녀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나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릿차위 사람들이여, 내가 발견하고 설명한 세계의 실상을 보는 자는 나를 봅니다. 곧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는 것입니다. 암바빨리는 내 제자가 되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놀랐다.
 
“스승이시여, 우리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처럼 야비하고 교활한 여자가 어떻게 심오한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암바빨리는 그녀 자신 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대들 또한 그녀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젊었을 때, 그대들은 그녀를 찬미하고 그녀와 사귀고자 했습니다. 그대들은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그토록 찬탄하며 갈망해 마지않던 것을 거부하고 비난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릿차위 사람들은 할 말을 잊었다. 그들은 묵묵부답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암바빨리는 바로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는 무상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고의 권력에도, 아름다움의 절정에도, 그리고 최상의 쾌락에도 반드시 종말이 오고, 무력해지며, 추해지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릿차위 사람들이여, 지금이야말로 이것이 인생의 실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암바빨리만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무지와 오만을 참회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었습니다. 암바빨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대들은 손실과 질투와 증오로 괴로워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왓지 연합을 위대하게 만든 전통과 관습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악한 세력이 그대를 짓밟고 억누르게 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위대한 왓지 연합의 일원인 릿차위 사람들은 붓다의 설법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붓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는 즉시 암바빨리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녀에게 간청했다.
 
“암바빨리, 내일 있을 공양에 우리도 참여하게 해주시오. 그대가 앞장서시오. 온 릿차위 사람들이 함께 세존과 그의 상가에 공양하는 기회로 만듭시다.”
“좋습니다. 벗들이여.”
 
암바빨리가 흔쾌히 동의했다. 암바빨리는 그날 밤을 새워 붓다와 비구들에게 공양할 음식을 마련한 후 다음 날 공양시간에 푸짐한 음식을 공양했다. 이 자리에는 릿차위 사람들도 함께 했다. 암바빨리는 붓다와 비구들이 공양을 마치자 발우와 손을 씻도록 물과 천을 올렸다. 잠시 후 암바빨리가 낮은 자리를 만들어 앉고 붓다에게 예배한 후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원림(園林)을 붓다를 위시한 수행승들의 수행장소로 바치겠습니다.”
 
얼마 후 암바빨리는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병들고 가난한 릿차위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남겨두고, 고따마 붓다의 출가제자가 되었다. 이후 열심히 정진에 전념한 그녀는 곧 현자들이 찾아 나섰던 그 목표의 정상에 올랐다. 암바빨리가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은 그와 빔비사라 왕 사이에 태어난 마가다 국의 왕자로 일찍이 출가해 아라한과를 이룬 위말라 꼰단냐 존자의 도움이 컸다. 이렇게 욕망에 젖어 보낸 젊은 날을 참회하고 출가하여 마침내 이룰 것을 다 이루어 마친 장로니 암바빨리는 자신의 경지를, 스승 세존을 찬탄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검은 색으로 말벌의 색깔 같은
나의 모발은 끝이 말려있었으나,  
늙어서 대마의 껍질과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좋은 향을 담은 상자와 같은
나의 머리는 꽃으로 덮여 있었으나,
늙어서 토끼털처럼 냄새가 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잘 심어져 수풀처럼 무성하고
빗과 핀으로 나뉜 머리끝이 아름답게 장식되었으나,
늙어서 드문드문 희박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유연하고 향내나고 금으로 치장된
땋은 머리가 장식으로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대머리가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화가가 잘 그려낸 그림처럼
예전에 나의 아름다운 눈썹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보석처럼 빛나고 반짝였던
나의 두 눈은 감청색으로 커다랬으나,
늙어서 흐리멍덩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부드러운 산봉우리처럼,
젊음이 한창일 때에 나의 코는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식물줄기와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잘 만들어지고 잘 마감된 팔찌처럼
참으로 나의 귓불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파초의 돋아난 새싹의 색깔과 같아
예전의 나의 이빨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부서지고 검게 변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숲속 우거진 덤불을 날아다니는
뻐꾸기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지녔었으나,
늙어서 여기 저기 더듬거리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둥근 빗장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팔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빠딸리 꽃나무처럼 허약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섬세한 반지와 금으로 단장했으니
예전에 나의 두 손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뿌리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잘 연마된 황금의 기둥처럼
예전에 나의 몸통은 아름다웠지만,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덮였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코끼리의 코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허벅지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대나무의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섬세한 발찌를 차고 금으로 장식해서
예전에 나의 두 정강이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참깨의 마른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솜으로 가득 찬 것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발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갈라지고 쭈그러들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이 집적의 몸은 이와 같아졌다.
노쇠했고, 많은 고통의 주처로서
회반죽이 떨어진 낡은 집과 같아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낡은 수레 히말라야를 향하여
 
암바빨리의 망고 숲에 한 동안 머물던 붓다가 어느 날 아난다를 불렀다.
 
“아난다, 이제 벨루바 마을(Beluba gamaka)로 가자.”
 
아난다는 세존의 뜻을 받들어 곧 웨살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붓다 일행이 벨루바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기(雨期)의 시작이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웨살리 부근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각자 우안거에 들어갈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벨루바에서 안거에 들어간 붓다와 많은 제자들은 우안거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벨루바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서 곧바로 붓다는 심각한 병을 얻었다. 붓다는 거의 죽음에 이르는 격심한 통증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붓다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아난다가 밖에서 밤새워 간호하고 있었다.
병에서 회복되고 나서 밖으로 산책을 나온 붓다는 아난다가 나무 그늘 아래에 준비한 자리에 앉았다.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야, 내가 앓고 있는 동안 보살펴줘서 고맙구나. 너의 모습이 몹시 피곤해 보인다. 그동안 나를 간호하느라 전혀 쉬지도 못한 게 아닌가?”
“스승이시여,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세존께서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시도록 살피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존께서 병으로 고통 받을 때면 마치 제 몸이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상가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남기지 않은 채 가시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난다, 상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무엇인가?”
“스승이시여, 세존께서 생존해 계시는 한, 제자들은 어느 때라도 세존께 묻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 가시고 나면 누가 그들을 돕겠습니까?”
“아난다, 나는 이미 어떤 것도 감추거나 비밀로 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교의와 계율을 가르쳤다. 내가 주먹 속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감추는 스승이 아닌 것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대들이 해탈과 행복을 위해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쳤다. 또 나는 상가가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상가를 위해 어떤 식의 포고를 남긴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전처럼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붓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아난다, 무지하고 속이 빈 사람들이 자기가 통치자며, 다른 사람들은 오직 자기를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깨달은 스승, 나 붓다는 다만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 통치자도 법전도 아니다. 그런 권위를 위임받은 바 없으니, 후계자에게 남겨줄 것도 없지 않겠는가? 내 나이 이제 여든 살에 이르렀다. 비유하자면 내 몸은 마치 얼기설기 묶어 겨우 굴러가는 낡은 수레와도 같다. 설사 붓다라고 할지라도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심한 통증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따금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 그것을 피해 멸정(滅定, niroddha)에 들곤 한다. 아난다, 나는 머지않아 가게 될 것이다!”
 
아난다의 안색이 하얘졌다. 붓다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아난다, 깨달음을 이룬 이래 나는 나 자신을 귀의처로 의지해 왔다. 마찬가지로 아난다, 그대 또한 그대 자신을 위한 섬(dipa)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곧 그대의 귀의처니, 다른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법(진리, dhamma)을 그대의 귀의처로 삼고 그 어느 것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내 후계자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에게 가르친 진리와 그대에게 권고한 계율을 그대의 길잡이, 행위의 준거(準據)로 삼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법이 귀의처가 되게 할 수 있습니까?”
“이미 그대에게 가르친 4념처(四念處), 즉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네 가지 수행법이 그대의 귀의처이다. 그대는 언제나 자신의 몸[身]과 감각[受]과 마음[心]과 법(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수행자라면 세상의 탐욕과 슬픔을 극복하고, 늘 깨어 집중된 마음으로 육신을 관조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알아채야 한다. 마찬가지로 감각과 마음과 정신적 대상을 관조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지금이나 내가 가고 난 뒤에도, 그렇게 수행하는 제자는 제 속에 자신의 섬을 만들 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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