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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개성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남북관계가 6.15 이전 냉전의 시기로 회귀하고 있다. 2018년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한껏 부풀려 놓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전의 적대와 불신으로 회귀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스러워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였듯이, 남북관계가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우리 정부가 미국에 발목을 잡힌 채로 남북 간에 합의한 것들을 전혀 이행하지 못한 것에 있다. 판문점을 통해서 북으로 보내려는 타미플루 조차도 운송차량의 제재 위반 여부를 문제 삼은 유엔사에 의해 무산되었고,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마저도 제재 위반 여부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에 시간만 보내면서 변변한 지원과 교류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야만 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앞으로도 교류나 지원은커녕 사사건건 발목만 잡힐 것이 뻔하다 결국은 우리 정부의 미국에 대한 과도한 ‘종속’ 혹은 ‘사대’가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으니, 지금 우리로서는 ‘종속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남북의 군사합의서에 명백하게 밝힌 대북 삐라 살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수수방관하다 북의 문제제기에 부랴부랴 이를 막는 법을 만든다고 설치는 모습은 현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지적하듯, 북의 지령에 허둥대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도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이미 지금의 사태에 대한 문제의 진단과 처방은 나올 만큼 나오고 있다. 남북간 합의 사항의 이행, 워킹그룹의 해체와 우리 정부의 자주적인 정책 등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처음부터 견지해야 할 원칙이었다. 물론, 남북간 합의 사항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주변국 특히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해야 하는 것도 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수행하면서, 남북의 신뢰를 쌓고 이행의 정도를 넓혀가는 것은 그 누가 보더라도 순리일 것이다. 지금 북의 말과 행동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돌이켜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관광의 조건없는 재개 제안, 그러나 이에 대해 제재를 명분으로 실질적인 조치하나 취하지 못한 우리 정부, 그리고 뒤이어 금강산 관광 시설의 철거 지시, 그리고 그때에야 부랴부랴 ‘개별관광’이라는 꼼수로 응수한 것 등등.. 사실,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줄곧 주장했지만, 이를 위한 실제적인 조치하나 취하지 못한 모습에서 이미 지금의 상황은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북관계는 2017년의 상황이 재연될 위기에 처해있다. 북은 이번의 행동이 이제 시작이라고 하니, 앞으로 이 이상의 어떤 행동이 나올지 예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우리만이 아니라 미국을 향한 행동도 나올 수 있어서 위기의 고조는 불 보듯 뻔 하다 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 정부의 태도와 입장에 비추어 마땅히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합의의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한미 워킹그룹과의 결별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전격적인 관광 허용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직은 파괴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채 보전되고 있는 개성공단의 전격적인 재개를 결단할 수 있을까? 과거 타미플루가 유엔사 한마디에 판문점의 벽에 가로막혔던 것처럼, 그 어떤 것도 결단하지 못한 채 흘려보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이 과거 고 정주영 회장이 소 10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갔던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 타미플루를 지게나 손수레에 실어 판문점을 넘어가는 ‘21세기 최초의 전위예술’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왜 발휘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지금의 우리 정부와 관계자들에게는 ‘미국의 벽’이 그 어떤 상상력도 허용하지 않는 철옹벽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따라서 종속의 벽을 넘는 것은 어쩌면 불경스러운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금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시민사회는? 2018년 우리의 시민사회는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평양행 티켓을 꿈꾸었었다. 이후, 인도적 지원 재개에 대한 희망을 안고,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를 고민하였지만, 번번이 제재의 벽에 가로막혔다. 조계종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범국민운동 본부를 만들고 노력했지만, 이 또한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시민사회가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맞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이미 북은 김정은 이후, ‘과거의 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1997년의 북을 생각해왔고, 그에 맞추어 교류와 지원을 말해왔다. 끝없는 혁신이 없다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지금의 시민사회 역시 그러한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상상력의 부재는 관성과 나태와 옛것에의 집착 만을 가져올 뿐이다. 2018년 이후, 우리의 시민사회는 정부를 앞서가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의제를 개발하고, 참신한 실천의 방식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남북관계 위기를 앞에 두고 시민사회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시대를 앞서는 상상력과 실력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위기의 시기에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멋지게 위기를 극복했던 사례로 차고 넘친다. 지금의 코로나19의 위기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의 시기가 바로 시민사회의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과감한 혁신과 상상력, 그리고 실력을 통한 위기의 해결이 시민사회의 과제로 주어졌다. 정부는 정부대로 합의의 이행과 ‘종속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면,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혁신과 용기와 상상력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비온 뒤의 땅이 더 굳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갈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면 역사가 그러했듯이, 더 나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길을 밟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