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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㊴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6-26 (금) 09:52

옛 스승 박가와를 만나다
 
붓다가 말라 족의 아누삐아 촌에 머물고 있었다. 이른 아침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던 붓다는 근처에 살고 있던 편력 수행자 박가와를 기억하고 그곳을 찾았다. 박가와는 고행수행의 대가로, 붓다가 처음 출가했을 때, 나름의 가르침을 주었던 고행의 스승이었다. 박가와는 붓다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존자여.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붓다는 그의 권고대로 의자에 앉았다. 박가와는 한 단계 낮은 둥근 의자에 앉은 뒤 화제를 꺼냈다.
 
“존자여,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얼마 전에 릿차위 족 수낙깟따라는 사람이 존자의 상가를 떠나면서 존자를 스승으로 삼지 않겠다고 비난했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지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수낙깟따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낙깟따, 내가 너에게 내 제자로서 내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던가?’ 그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대의 불만은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수낙깟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세존은 다른 종교지도자들처럼 초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까? 그게 불만입니다.’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낙깟따, 내가 너에게 초능력을 보여줄 테니 나를 스승으로 섬기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러자 그는 그런 약속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어리석은 수낙깟따, 나는 초능력을 행사하는 도인이 아니라 그대에게 진리를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나는 네 안에 뒤틀린 악을 근절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기적을 뽐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반복했습니다. ‘세존의 말씀대로 초능력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친다면 왜 세상의 시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렇게 묻기에 나는 다시 되물었습니다. ‘수낙깟따, 세상의 시초를 아는 것이 네 안에 뒤틀린 악을 근절시키는 목적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것이 진리의 근본 바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시초를 아는 것과 악을 근절시키고 바른 진리를 깨닫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간곡히 충고했지만 그는 ‘세상의 시초에 근본 의미가 있다’고 말하며 내 곁을 떠나간 것입니다. 이것이 수낙깟따에 대한 소문의 진상입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박가와는 붓다의 깊은 지혜와 통찰력에 놀라며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품었다. ‘이분은 교세를 넓히기 위해 기적과 신통을 사용하는 사이비 지도자가 아니구나!’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붓다는 박가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양모 고따미와의 이별
 
붓다의 나이가 80에 이르면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하나 둘씩 찾아왔다. 붓다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뜬 어머니를 대신해 양어머니가 되어 자신을 양육해주었으며, 여인의 출가를 관철시키고,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던 고따미가 세연(世緣)이 다해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웨살리에 머물고 있던 붓다를 찾아왔다. 그때 고따미는 웨살리의 한 수행처에서 여러 비구니들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따미는 ‘이 안거가 끝나면 붓다께서 쿠시나라로 가시는데 아무래도 열반에 드실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게 되었다. 고따미는 이 말을 듣고는 지체 없이 웨살리에 머물고 있던 붓다를 찾아갔다. 붓다를 만난 고따미는 늙고 쇠약해진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예배한 후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어떤 청인지 들려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제부터는 비구니가 비구니를 위해 계를 설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앞으로는 비구니가 비구니를 위해 계를 설하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다만 이전에 설해진 계에서 벗어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붓다의 흔쾌한 허락에 감격한 고따미가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쓸쓸한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세존이시여, 아무래도 저는 다시는 세존의 얼굴을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붓다는 고따미가 곧 열반에 들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붓다 역시 슬픈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붓다의 표정을 살핀 고따미가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며 말했다.
 
“세존이시여, 당신께서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신 그 가르침을 따라 저는 출가하였고, 마침내 정신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내면에서 세존께서 일러주신 교리가 성장했고, 제 스스로 진리라는 우유를 마시며 마침내 완성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스승, 세존의 가르침으로 인해 저는 거칠고 힘든 큰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으로 인해 저는 붓다의 어머니로 세상에 알려지는, 더 없이 큰 영광을 얻었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위대한 스승이신 세존이시여.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장로니 고따미는 이어 게송으로 자신의 심경을 드러냈다.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깨달은 님이시여, 영웅이시여,
일체 중생들의 최상자이시여, 귀의하나이다.
 
일체의 괴로움은 완전히 알려졌고
원인인 갈애는 말라버렸고,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은 닦여졌고,
적멸은 나에게 실현되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어머니이자
자식이자 형제이자 자매였으나,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며,
죄를 씻지 못하고 윤회해왔습니다.
 
저 세존을 내가 친견했으니,
이것이 최후의 몸으로,
태어남으로 인한 윤회는 부수어졌으니,
이제 다시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붓다는 자신의 양모이자 첫 비구니 제자이기도 한 고따미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수명이 다한 그녀, 태어난 지 7일 만에 생모와 사별한 자신에게 젖을 물리며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주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더는 이생에서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슬픔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생로병사우비고뇌에서 자유로운 붓다였기에 그의 표정에서 어떤 변화를 읽어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젖을 물려 키워준 양모의 눈에만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스승의 슬픔이 목도될 뿐이었다. 붓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눈빛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양어머니와의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른 고따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번뇌를 소멸시켜 준 고마운 스승이시여. 이제 저는 곧 이생을 마치고자 합니다. 부디 제가 이 늙은 몸을 버리고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마지막 청입니다.”
 
붓다는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양모의 열반을 허락했다. 침묵으로 열반을 허락하는 붓다의 눈빛은 어쩔 수 없이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붓다와 마지막 작별을 나눈 고따미는 비구니의 처소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구니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반에 들었다. 함께 수행하던 다른 여러 비구니들도 고따미의 열반에 맞춰 함께 열반에 들었다.
고따미 등 비구니 장로들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붓다는 아난다를 시켜 장례를 준비시켰다. 아난다는 장례에 필요한 평상과 기름과 꽃과 향과 수레를 마련했다. 그리고 장례절차에 밝은 신자들과 함께 열반에 든 비구니들의 법구(시신)를 수습했다. 다만 장로 고따미의 법구는 붓다의 요청에 따라 붓다가 직접 수습했다. 붓다에 의해 수습된 고따미의 법구를 아난다, 라훌라를 비롯한 비구들이 조심스럽게 평상으로 옮겼다. 붓다는 직접 고따미의 법구를 얹은 평상의 한쪽 다리를 들고 교외의 화장터로 향했다. 제자들이 나서 “세존께서 직접 법구를 이운하는 것을 민망한 일”이라며 말렸지만 붓다는 제자들의 요청을 정중하게 물리쳤다. 
 
“아니다. 비구들이여, 나를 말리지 말라. 고따미 장로니의 법구를 운구하는 것에 나도 함께 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젖을 먹이고 안아주고 길러준 은혜는 매우 큰 것이다. 설사 붓다라고 할지라도 그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고따미의 법구가 놓인 평상을 들고 화장장에 도착한 붓다는 앞서 열반한 비구니들과 사미니(예비 비구니)의 시신에 공양을 올린 뒤 화장의식을 진행하도록 재가자들에게 당부했다. 이어 붓다는 고따미의 법구 위에 직접 꽃과 향을 뿌린 후 게송을 읊었다.
 
일체의 현상은 덧없는 것,
한 번 나면 반드시 다함이 있네.
태어나지 않으면 죽지 않는 것이니,
이 열반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네.
 
붓다가 게송을 마치자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웨살리의 재가자들이 시신을 떠받치고 있던 찬다나 섶나무에 불을 붙였고, 이내 불길이 맹렬하게 솟아오르며 화장의식이 시작됐다. 붓다는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양모의 은혜를 떠올렸다. 붓다의 눈가는 연기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모를 물기가 젖어 있는 듯했다. 화장이 끝나자 의식을 진행한 사람들은 고따미와 다른 비구니들의 사리를 거두었다. 앞으로 그곳에 탑을 세우고, 지극한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야소다라와 마지막 인사
 
붓다가 가장, 아니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야소다라. 그녀는 붓다로부터 직접 비구니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붓다의 최초 비구니 제자인 고따미의 제자가 되어 비구니가 되었다. 고따미가 웨살리에서 첫 비구니가 된 이후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동산에 수행처를 마련하고 정진하고 있을 때 야소다라가 고따미를 찾아와 출가를 허락받고 비구니가 된 것이었다.
이후 조용하게 정진하던 야소다라가 78세가 되던 해, 붓다를 찾아왔다. 그때 붓다의 나이는 80세였다.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라훌라의 아버지이며, 상가의 최고 지도자인 붓다를 찾아온 야소다라는 그날 밤 자신이 입적에 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다른 제자들처럼 붓다에게 열반에 들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만큼 독립적이었다. 비구니가 된 뒤에도 야소다라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성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게 직접 출가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으로부터 계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에 귀의했습니다.”
 
붓다는 부쩍 기력이 쇠해진 야소다라를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출가 전, 아니 출가 후에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세상에서 하나 뿐인 혈육 라훌라를 낳아준 여인, 기꺼이 자신의 출가를 허락해주었고,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주었으며, 마침내 자신도 출가하여 불사(不死)의 경지를 이룬 위대한 여인, 야소다라를 바라보는 붓다의 눈에는 사랑과 연민과 존경이 교차했다. 야소다라가 힘을 모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세존이시여. 당신과의 인연, 당신과 나눈 사랑, 그리고 함께했던 세월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당신께서 제시해 준 위대한 가르침으로 인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사의 길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
 
양모 고따미, 아내 야소다라와 이별을 한 붓다의 마음은 착잡했다.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 열반락을 누리고 있을 것이었지만, 막상 존재가 사라진 것이 가져다주는 공허함과 허전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그에게 혈육은 아들 라훌라가 유일했다. 큰 상가를 이끄는 붓다는 별도로 아들 라훌라에게 시간을 내어 애정을 쏟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기회가 있을 때면 눈물겨운 부정을 담아 아들을 교육하곤 했다. 17살 때 아버지이자 스승인 붓다로부터 따끔한 가르침을 받기도 했던 라훌라는 이후 완전하게 달라진 태도로 수행에 전념해 3년 후인 20살 무렵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라훌라는 선행을 해도 선행을 했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어떤 선행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선행을 한다는 생각을 아예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 승원을 청소하고 선정에 들었다. 어느 날, 라훌라가 승원 청소를 다해놓고 돌아올 때 짓궂은 두 수행자가 라훌라를 놀려주기 위해 마구 어지럽힌 후 “라훌라가 이렇게 더럽혀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승원 전체로 퍼졌다. 뒤늦게 이 말을 전해들은 라훌라는 화를 내기는커녕 바로 다시 청소를 마친 후 두 비구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라훌라는 붓다의 시자 아난다 존자를 존중하고 따랐다. 그는 아난다를 위해 남모르게 뒤에서 보살피고 도움을 주었다. 한번은 출가를 하던 날부터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 사리뿟따와 함께 길을 가다가 괴한을 만나 폭행을 당했다. 라훌라가 머리를 얻어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사리뿟따는 “라훌라야, 자비심으로 성냄을 멸하여야 한다. 인욕 보다 더 큰 힘은 없다.”고 가르쳤다. 라훌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자신을 해한 사람을 연민에 가득 찬 마음으로 불쌍히 여겼다.
어느 날, 수행을 하던 라훌라는 문득 자신이 깨달았다고 느끼고 붓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라훌라가 “세존이시여, 제가 깨달은 것 같습니다”고 말하자 붓다는 “아니다 너는 조금 더 정진해야 한다.”며, “지금부터는 대중과 떨어져 정진만 하지 말고 대중들에게 오온이 거짓 화합된 것임을 즉 오온이 공한 것임을 직접 설하도록 하라.”하고 일러주었다.
홀로 정진해온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도록 공부의 한 방편을 알려준 것이었다. 붓다는 또 다음으로 육근육경에 대해 설하게 하고, 이어 12연기, 무상에 대해 설법하도록 지도했다. 이렇게 해서 라훌라의 마음 안에 있던 아만, 아상, 배움, 욕망 등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이끌었다.
붓다의 이렇게 가르친 것은 라훌라가 깨달음을 이루는데 마지막까지 장애가 된 것이 명예에 대한 미세한 집착이라는 것을 간파한 데서 비롯됐다. 이 집착은 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무의식중에서도 미세하게 남아있어 상과 번뇌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붓다의 지도로 라훌라는 깨닫기 직전 ‘이 세상 일체가 공하다’는 수식관을 하면서, 깊은 선정에 들어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했다. 비로소 라훌라는 자신의 출가 이유이기도 한 붓다의 유산을 상속한 것이었다.
붓다는 자신의 입멸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 79세 때에 라훌라를 불러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당시 붓다는 라훌라에게 이렇게 일렀다.
 
“라훌라야, 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다. 나는 따로 다른 이의 아버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훌라, 너 또한 다른 이의 아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의 궁극적 목표란 이생에서 내 할 일을 다 마치고 열반에 들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어떠한 인연을 짓지 않고 불사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었다. 붓다와 라훌라 역시 궁극의 목적을 성취한 수행자로서 이렇게 부자 사이의 인연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늙은 아버지이자 큰 스승인 세존의 자상한 말씀에 라훌라는 가슴속으로부터 솟구치는 진한 감동과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고따미 장로니가 열반에 들던 날, 라훌라는 아버지 붓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 라훌라는 그 때 모든 것을 다 알고 한 점의 티끌도 없는 위대한 스승 아버지의 눈길에서 쓸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라훌라는 붓다가 입멸에 들기 전, 입멸에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과거 붓다의 제자들도 붓다의 입멸에 앞서 입멸에 들었다는 전례에 따르는 것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라훌라의 결단은 아버지에게 더는 쓸쓸함과 서글픔을 드려서는 안 된다는 마지막 효심의 발로였다. 그가 자신의 입멸을 슬퍼하는 사람이 없도록,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천상계의 천신들이 외호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마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목갈라나의 반열반
 
코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죽은 후 붓다가 머문 곳은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죽림정사)였다. 그러나 노년의 붓다에게 드리운 쓸쓸한 기운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붓다에게 의지하며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두 강대국의 왕 빔비사라와 빠세나디의 비참한 최후, 양모 고따미와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 비구니가 잇따라 입멸, 특히 이복동생 난다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라훌라의 잇따른 열반은 우비고뇌를 벗어난 붓다에게도 쓸쓸한 기운을 던져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느낌은 세존이라고 하더라도 피붙이를 떠나보낸 심경은 애잔하지 않겠느냐는 중생들의 마음이 만든 망상일지도 몰랐다. 붓다라고 하더라도 가족을 떠나보낸 그 마음은 슬프고 허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 무렵, 붓다의 두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도 라자가하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목갈라나는 혼자 걸식하러 한적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 붓다와 제자들을 시기하며 혼쭐을 내주겠다며 벼르던 브라만들이 목갈라나가 혼자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위해를 가하기로 작정했다.
‘저 사람은 고따마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다. 그를 에워싸고 때려죽이자.’
그들은 살인청부를 업으로 삼는 싸마나곡띠까들과 함께 목갈라나를 둘러싸고 기왓장과 돌로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목갈라나는 온몸이 뼈가 드러나고 살이 문드러지는 심한 상해를 입었다. 외도들은 목갈라나가 쓰러지자 그대로 도망쳤다. 한참 뒤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목갈라나는 죽을힘을 다해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목갈라나를 발견한 사리뿟따가 크게 놀라 말을 잇지 못하자 목갈라나가 말했다.
 
“걸식을 나갔다가 싸마나곡띠까들이 돌과 기왓장으로 때려 이렇게 됐다네. 사리뿟따, 나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워 견디기가 힘드네. 아무래도 나는 이대로 입멸에 들어야 할 것 같네. 그래서 자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이렇게 찾아온 것이라네.”
 
입멸에 들겠다는 벗을 사리뿟따가 슬픈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우리 상가에서 신통력이 제일이 아닌가.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사리뿟따, 내가 지은 업보는 매우 깊고 무거운 것이네. 그 갚음은 언젠가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피하지 않았네. 아, 지금 나는 매우 고통스럽네. 자네를 봤으니 이제 세존을 찾아뵙고 허락을 얻어 입멸에 들어야 겠네.”
 
고통을 참으며 잠시 머물던 목갈라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는 붓다를 찾아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가까스로 예를 올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마지막으로 스승께 인사를 올리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저는 곧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저의 고향 날라까(나란다)로 돌아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목갈라나여, 그대는 나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으며, 모든 상가에 모범이 되었던 수행자였다. 이제 그대는 사원에 있는 전체 대중에게 고별법문을 하고 그대가 원하는 바, 갈 길을 가도록 하게.”
 
사랑하는 제자, 그러나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아 스승보다 먼저 열반의 때를 맞이한 제자를 떠나보내는 붓다의 마음은 아렸다. 더구나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열반을 허락해달라는 상수제자의 마지막 요청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스승의 마지막 분부에 따라 목갈라나는 붓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가 대중을 향해 마지막 법문을 마쳤다. 목갈라나는 법문을 마치고 다시 붓다가 계시는 곳으로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한 다음, 다시 붓다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후에 한 걸음 한 걸음, 붓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붓다는 그런 목갈라나를 처연한 표정으로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자신의 업보를 갚고 입멸에 들겠다는 상수제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로부터 열반에 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목갈라나는 라자가하의 이시길리산 깔라실라 암굴에 가서 조용히 입멸에 들었다.
한편 목갈라나가 자객들의 손에 의해 큰 상처를 입고 붓다의 허락을 받아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라자가하와 여타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마가다 국의 아자따삿뚜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분개하여 즉시 진상을 조사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나간타의 제자들이 목갈라나 피습에 관련된 것을 밝혀낸 아자따삿뚜는 배후자와 자객들은 모두 붙잡아 산채로 불태웠다.
그런데 많은 비구들은 목갈라나 존자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면서도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어찌하여 자객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의아해 하며 큰 혼란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비구들의 슬픔과 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붓다는 직접 비구들에게 목갈라나의 비통한 열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비구들이여, 목갈라나가 금생에 아라한과를 이룬 성자로서 고귀한 생을 살아간 것을 생각한다면 그가 당한 것과 같은 비참한 죽음은 당하지 않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 전생에 아내의 사주를 받아 나이 많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숲속으로 유인하여 죽게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런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수많은 생 동안 지옥에 태어났고, 이번에도 그와 같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붓다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그때에 미래세에 고따마 붓다가 출현하면 자기는 그 고따마 붓다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많은 바라밀을 성취했던 수행자였다. 그리하여 목갈라나의 태어남은 이번의 생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자객들에 의해 희생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목갈라나는 이미 아라한이 된 성자이기 때문에 중생으로서 단순히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적멸, 반열반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사리뿟따, 열반에 들다
 
웨살리 근처의 벨루와에서 우기를 보낸 붓다는 안거가 끝나자 그곳을 떠나 몇 군데를 들러 전법을 한 후,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돌아와 머물고 있었다. 사리뿟따 역시 붓다를 따라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었다. 얼마 전 둘도 없는 도반, 목갈라나를 보내고 나서 사리뿟따는 자신도 열반에 들 시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깊은 선정에 들어 있던 사리뿟따는 선정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생각했다. ‘정등정각자들이 먼저 열반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상수제자들이 먼저 열반에 드는 것일까?’ 사리뿟따는 아라한의 선정력으로 곧 상수제자들이 먼저 열반에 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수명이 일주일 정도 남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리뿟따는 이어 자신이 열반에 들 가장 적절한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선정에 들었다.
‘나는 어디서 무여열반에 들게 될 것인가? 라훌라는 삼십삼천의 천신들 사이에서 무여열반에 들었고, 안나 꼰단냐 장로는 히말라야의 찻단따 호수에서 무여열반에 들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열반을 맞을 것인가?’
이렇게 거듭 생각을 정리하던 사리뿟따에게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생모는 자식 일곱 모두 아라한이 되었는데도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붓다를 따르는 상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이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던 사리뿟따는 어머니에게 붓다가 걸어간 길, 붓다께서 제시한 길을 알려 깨달음을 얻게 해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가 태어난 곳, 날라까에서 열반에 들겠다고 생각하고 시자 쭌다에게 곧 사왓티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라고 당부했다.
사리뿟따의 당부에 따라 쭌다와 그의 5백 제자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처소를 깨끗이 청소하고는 붓다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가 경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리뿟따가 일어나 붓다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정각자이시며 일체지자이신 세존이시여, 허락하여 주소서. 제가 무여열반에 들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저의 명이 다하였습니다.”
 
붓다는 열반에 듦을 허락해달라는 상수제자의 요청을 들으며, 침묵했다. 기꺼이 허락해주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상가 최고의 제자이자 온 비구들의 존경을 받는 수행자였던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흔쾌하지만은 않았다. 세존의 심경을 읽은 사리뿟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위대한 대각세존이시여! 저는 곧 이 삶에서 풀려납니다. 다시는 오고 감이 없으리니 세존을 우러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레만 지나면 짐 다 벗고 이 몸을 누이게 될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들어주소서! 세존이시여, 허락하소서! 마침내 제가 열반에 들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삶의 의지를 내려놓았습니다.”
 
상수제자의 간곡한 청을 듣고 있던 붓다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어디에서 무여열반에 들려고 하는가?”
“마가다 국 날라까 마을, 제가 태어났던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사리뿟따여,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바를 행하라. 그리고 상가의 형제들은 그대와 같은 비구를 만날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이니,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도록 하라.”
 
대중설법을 하는 것으로 붓다로부터 열반의 허락을 받은 사리뿟따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비구들을 향해 마지막 설법을 시작했다. 불법의 가장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가 세간적 진리의 경지로 내려오고, 다시 오르기도 하고 또 내려오며 때로는 직설로, 때로는 비유를 구사하여 법을 설했다. 혼신의 법문을 마친 사리뿟따는 천천히 몸을 돌려 붓다에게 예배했다. 그리고는 스승의 다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저는 세존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기까지 무량겁에 걸쳐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아왔습니다. 제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 만날 일도 스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 두텁던 인연도 다하였습니다. 저는 곧 늙음도 죽음도 없이 평화롭고 복되고 번뇌 없이 안온한 곳, 수만의 정각자들께서 들어가셨던 그곳, 열반으로 들어갑니다. 저의 말이나 행동이 세존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있다면, 세존이시여, 용서하소서! 이제 가야할 시간입니다.”
“사리뿟따여, 나는 그대의 청을 허락하겠다. 그리고 그대의 말이나 행동은 단 한 번도 거슬린 적이 없었노라. 사리뿟따여, 이제 그대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행하라.”
 
세존의 허락을 받고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리는 사리뿟따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마치 온 천지가 흔들리는 듯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 사리뿟따는 그를 가까이서 시봉하는 쭌다 비구의 부축을 받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나섰다. 그는 떠나는 동안 몸을 돌리지 않고 붓다를 향해 합장을 한 채 뒷걸음으로 걸었다. 스승의 모습이 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리뿟따의 합장은 내려지지 않았고, 붓다에게 그의 등을 보이지 않았다.
붓다 역시 떠나는 상수제자에게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상수제자의 모습이 점이 되어 아스라이 사라졌을 때, 붓다는 주위에 둘러 앉아 있던 비구들을 향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어서 가보도록 하라. 그대들의 사형을 따라 가보도록 하라.”
 
붓다의 말에 비구들은 물론 사부대중 모두가 기원정사를 떠났고, 붓다 홀로 처소에 남게 되었다. 소문을 들은 사왓티의 시민들도 다투어 사리뿟따를 따랐다. 사왓티가 순식간에 텅 빈 도시가 되었다. 그러자 사리뿟따가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따라오는 비구들과 사부대중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이제 돌아가십시오. 내가 가는 이 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어서 돌아가 스승님을 모시십시오. 한 순간도 스승님 모시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리뿟따는 이렇게 그를 따라온 비구들과 시민들을 다 돌려보내고 나서야 날라까를 향한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7일 간의 여정 끝에 날라까에 도착한 사리뿟따에게 고단한 여독 때문인지, 자신이 태어난 방에 앉자마자 지독한 설사병이 찾아왔다. 양동이가 몇 차례 들락거리자 존자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아닐까 염려하기 시작했다. 사리뿟따가 입멸에 들 것이라는 것을 안 천신들과 범천도 다투어 날라까를 찾아왔다. 천상계의 존재들이 자신의 아들을 찾아와 경배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리뿟따의 어머니가 아들의 건강상태를 궁금해 하며 방으로 찾아왔다. 문밖에 서 있던 쭌다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어머니가 오셨다고 알리자, 사리뿟따가 물었다.
 
“어떻게 이 시간에 오셨습니까?”
“보시게. 나는 그대를 보러왔다네. 그런데 조금 전 천상계 존재들이 찾아온 것 같은데, 제일 먼저 왔던 이들은 누구였는가?”
“사천왕들이었습니다. 우바이여.”
“그렇다면 그대가 그들보다 더 훌륭하단 말인가?”
“그들은 말하자면 승원을 지키는 시자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떠난 후에 온 이는 누구였는가?”
“천신들의 왕인 삭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천신들의 왕보다 더 훌륭하단 말인가?”
“그들은 비구의 의발을 들고 따르는 사미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삭까왕이 돌아간 다음 왔던 이는 누구였는가?”
“우바이여, 그는 당신의 주인이자 스승인 마하브라흐마(범천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이여, 그대가 나의 주인인 마하브라흐마보다 더 훌륭하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바이여.”
 
아들의 설명을 들은 존자의 어머니는 생각했다. ‘내 아들의 권세가 이 정도라면 내 아들의 스승이자 주인이신 분의 위력은 얼마나 크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존자의 어머니에게 갑자기 환희심과 기쁨이 솟구쳤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리뿟따 장로는 바로 이 때가 어머니를 위해 설법할 적기임을 알고 설법을 시작했다. 사리뿟따는 어머니를 위해 붓다의 덕성과 가르침, 그 가르침에 귀의하고 실천하는 공덕의 위대함에 대해 간곡하게 설명했다. 아들의 법문이 끝나자 존자의 어머니는 성자의 흐름에 들어 반야의 지혜를 얻었다. 비로소 참 진리에 눈을 뜬 존자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 사랑하는 내 아들이여. 왜 이제야 말을 해주는 것이오? 불사의 길, 감로지혜를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내게 말해주지 않았단 말이오?”
 
그러나 사리뿟따 존자는 어머니의 그런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자신을 낳고 키워준 은혜에 보답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 존자는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쭌다에게 물었다.
 
“쭌다야,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느냐?”
“존자님, 이른 새벽입니다.”
“비구들을 모이게 하라.”
 
비구들이 모여들자, 쭌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44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냈고 여러분과 함께 행동했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말이나 행동으로 여러분을 불쾌하게 한 적이 있다면 용서해주시오.”
 
비구들이 말했다.
 
“존자님, 비록 저희들이 존자님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지만 존자님께서 저희들을 불쾌하게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존자님, 도리어 저희들이 잘못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을 천천히 살펴본 후 넓은 가사로 몸을 감싸고 얼굴도 덮고 나서 오른쪽을 아래로 하고 누웠다. 그리고는 깊은 선정에 들었고, 다시 초선에서 제4선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올랐다. 사리뿟따 존자가 무여열반에 완전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쭌다로부터 사리뿟따의 열반소식을 전해들은 아난다가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쭌다로부터 사리뿟따 존자의 열반과 그의 가사와 발우를 가져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온 몸에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정신도 아득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러자 붓다가 말했다.
 
“아난다여, 어찌 이러느냐? 사리뿟따가 세상을 떠나며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가져가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지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저를 일깨워주고 격려해주고 기쁘게 해주고 법을 설하는 데 지칠 줄 모르는 조언자이자 스승이고 교화자였으며, 자신을 따르는 비구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이였습니다.”
“아난다여, 사람은 누구나 가깝고 사랑스러운 것과 언젠가는 헤어져야만 하고 갈라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느냐? 태어나서 존재를 이루고 합성되었기에 언젠가는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이니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아난다여, 밖에서 의지처를 찾지 말고 네 자신이 섬이 되어라. 네 스스로가 네 자신의 귀의처가 되어라. 다른 귀의처를 찾지 말고 불법을 너의 섬으로 삼고, 불법을 너의 귀의처로 삼아라.”
 
이윽고 붓다는 사리뿟따의 유골을 싼 천을 두 손으로 받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는 주위에 둘러앉은 비구들을 향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얼마 전에 열반에 드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던 비구의 조개빛깔 유골이다. 이 비구는 내가 처음으로 굴렸던 법륜이 그침 없이 구를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내 옆자리를 늘 지켰던 사람, 지혜를 펴는 데 가장 수승했던 사람, 넓은 지혜와 밝은 지혜,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졌던 사람, 바라는 것 없이 만족할 줄 알았고 은둔하기를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정진력이 넘쳐났고 동료비구들을 계도하여 나쁜 일을 그만두도록 하던 사람, 대지와 같은 인욕심을 지녔고, 뿔을 잘라낸 황소처럼 남을 해칠 줄 몰랐으며 의지할 곳 없는 아이처럼 겸허한 마음을 지녔던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 유골을 보라. 위대한 비구, 위대한 수행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라!”
 
붓다는 위대한 제자의 유골을 소중하게 두 손에 바쳐 든 채 게송을 읊었다.
 
5백 생 동안
출가하여 가슴속에 깊이 지녔던 즐거움을 던져버리고
모든 감관을 잘 다스려
격정에서 벗어났던 사람,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대지처럼 인욕심이 강하여
자기 마음을 완전히 조복하게 했고
자비롭고 다정하며 고요하고 냉정하여
거대한 대지처럼 굳건했던 그 사람,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의지할 곳 없는 아이처럼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한 손에 발우를 든 채 마을에 들어가
이 집 저 집 유유히 갈 길 가던 사람,
사리뿟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마을에서건 숲속에서건 그 무엇도 해치지 않고
뿔 잘라낸 황소처럼 살아가던 사람,
자신을 완전히 다스렸던 그 사람,
사리뿟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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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추담 2020-06-26 14: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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