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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바랑 속의 동화5

정 찬주 | | 2020-06-17 (수) 08:30

죽어서도 자식을 사랑한 어미수달1
-혜통 스님의 바랑  
    
                       

그림 정윤경

 
 혜통은 신라 신문왕 때의 스님이지요. 스님의 별명은 ‘왕스님’이었습니다. 이마에 왕(王)자 무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스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스님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 스승을 찾았습니다. 젊은 혜통이 찾은 스승은 인도 마갈타국 임금이었던 삼장 스님이었습니다. 삼장 스님은 젊은 혜통을 시험했습니다. 공부하겠다는 제자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삼장 스님은 3년 동안이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젊은 혜통을 물리쳤습니다. 어떤 날은 조롱하고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랑캐 나라 신라 사람이 어찌 부처님 진리를 배우겠다고 하시오.”
 혜통은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머리에 불이 든 무쇠항아리를 이고 버텼습니다. 마침내 정수리가 소리를 내며 터졌습니다. 그제야 삼장 스님은 혜통의 강철 같은 의지를 확인하고는 제자로 맞아들였습니다.
 간절하게 결심한 만큼 공부도 크게 이루어지는 법이지요. 혜통은 신라로 돌아와 큰스님이 되었습니다. 왕은 병이 나면 의원을 부르지 않고 혜통 스님을 모셔오게 했습니다. 그만큼 혜통 스님을 존경하였던 것입니다. 혜통 스님은 아무리 왕 앞이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진리만을 말했습니다.
 신문왕이 등창이 나 불렀을 때도 혜통은 왕이 전생에 지은 죄를 지적했습니다. 당시의 등창은 죽음을 부르는 무서운 병이었고, 전생이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를 말하지요. 신문왕은 전생에 재판관을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판관 시절에 죄 없는 양민 신충을 잘못 판결하여 종으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종이 된 신충의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신문왕의 등창은 화병이 나 죽은 신충의 원한이 맺혀서 생긴 고름이었습니다. 혜통은 신문왕에게 말했습니다.
 “원한은 원한을 낳습니다. 신충의 원한을 절을 세워 반드시 풀어주소서.”
 절을 세워 신충의 명복을 빌어주자, 과연 하늘에서 그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께서 절을 세워주시어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다시 태어났으니 원망은 이미 풀렸습니다.”
 
 출가하기 전 혜통의 이름은 낭이었습니다. 낭도 사실은 마을 친구들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짐승을 잡아 죽여 먹곤 했습니다. 그러나 낭은 어미 수달을 잡아 죽인 후에 크게 뉘우치고 출가를 결심했던 젊은이였습니다. 낭의 집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었는데, 집 앞으로는 은빛으로 흐르는 내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청년들에게 냇물은 멱도 감고 고기도 잡는 곳이었습니다. 낭도 여름날에 일하거나 놀다가 땀이 나면 옷을 훌훌 벗고 냇물로 들어가 멱을 감곤 했습니다. 맑은 내에는 수달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너구리처럼 생긴 수달은 잉어나 붕어를 잡아먹고 사는 짐승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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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화엄 2020-06-17 10: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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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서 몸과 마음도 달라짐을 느낀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지고 몸도 그러하니, 자꾸 게으름만 피운다.  "머리에 불이 든 무쇠항아리를 이고 버티셨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든다. 정진하자고 되뇌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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