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지금의 불일암에는 호반새가 살지 않습니다. 스님이 강원도로 떠나시고 난 뒤부터 호반새도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휘파람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호반새만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변한 것이 또 있습니다. 오동나무 구멍도 어느 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호반새가 날아오지 않는 동안 오동나무가 자신의 새살로 구멍을 메워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이 불일암으로 다시 돌아와 휘파람을 불면 호반새가 예전처럼 돌아올지 모릅니다. 호반새 역시 다시 날아와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지도 모릅니다.

 

 암자 주위에는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은 꿩도 살았습니다. 스님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뜰에 있던 꿩들은 반가운 듯 스님 발밑으로 다가와 종종걸음을 했습니다. 박새는 아예 불일암 처마 밑에 엉성하게나마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새끼가 둥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 스님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어린 박새는 스님의 보살핌으로 보름 만에 살아서 분가해 날아갔지만 말입니다.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사실 때는 쥐와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 암자 뒤꼍에는 조그만 헌식돌이 있었습니다. 헌식이란 스님의 밥과 반찬을 조금씩 떼어 산짐승들과 나누어 먹는 행위를 말합니다. 법정 스님은 암자 뒤꼍에 있는 헌식돌에 끼니때마다 한두 숟가락씩 밥과 반찬을 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새나 다람쥐, 산토끼와 쥐 등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먹곤 했습니다. 쥐는 마지막에 나타나서 헌식돌이 말끔해지도록 설거지하듯 찌꺼기를 먹어치웠습니다. 법정 스님은 반들반들해진 헌식돌을 보면서 쥐를 설거지 담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쥐보다 잘생긴 부모를 만난 것 같은 앙증맞은 다람쥐는 가끔 밥값을 했습니다. 스님이 늦잠을 자면 방문을 다다닥다다닥 긁어 주었던 것입니다. 도회지 잠꾸러기들의 알람시계처럼 말입니다. 스님이 느끼기에는 작은 산짐승들 중에서 쥐가 가장 안쓰러웠습니다. 잿빛의 칙칙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마음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쥐 역시 검정 콩 같은 눈을 반짝이며 늘 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스님은 쥐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쥐의 탈을 벗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렴.”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말을 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또 헌식을 하려고 암자 뒤꼍으로 갔는데, 헌식돌 옆에 쥐가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스님은 ‘쥐의 탈을 벗어라’는 자신의 말을 듣고 쥐가 죽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아! 말귀를 알아듣는 쥐였구나.”
 스님은 쥐를 위해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다음 생에는 쥐의 탈을 벗고 귀한 모습의 생명으로 태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그 쥐는 무슨 몸으로 다시 태어났을까요? 스님의 말귀를 알아듣는 쥐인 것으로 보아 영리한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정확하게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바로 이럴 때 여러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