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삼성암의 가을도 깊어 스산한 바람 소리가 풍경소리와 어울려 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의 바람소리가 잠투정하며 우는 아이 같다면 풍경소리는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처럼 맑고 부드러웠다.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난 윤지호는 주지 스님 심부름으로 건넛마을에 갔다가 수유리 개천가를 지나게 되었다 삼각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해 물속의 작은 물고기와 모래알이 환하게 보였다.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어른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지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는데 일가족인 것 같은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데 한창 열중해 있었다. 벌써 여러 번째 투망질을 했는지 바구니에는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들이 괴로운 듯이 팔딱거리고 있었다.
 지호의 눈엔 물고기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어떤 물고기는 마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지호는 그 물고기들이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고기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저들의 삶을 뺏을 권리가 과연 우리 인간에게 있단 말인가. 더구나 사람들은 저 물고기들을 오늘 밤 반찬으로 쓸 테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지호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나 말인가?"
"잡으신 물고기는 어떻게 하실 참이세요?"
"왜 그게 궁금한가? 그야 뻔하지. 고춧가루 듬뿍 넣고 끓이면‥‥‥ 그 맛이 천하일품이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는다구요?"
"그럼? 끓여먹지 않으면 집에 모셔둘까?"
"그게 아니라…… 아저씨 저 물고기,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이 물고기를 달라고‥‥ 나 참,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구요. 제 고무신을 드릴게요."
지호는 얼른 고무신을 벗어 들었다.
"아니, 그 귀한 고무신을 주겠다고!”
오늘날과는 다르게 고무신이 귀한 시절이다. 사나이는 웬 횡재냐 싶은 눈길로 지호의 검정 고무신을 쳐다보았다.
주지 스님인 월해 스님이 지호를 아끼는 마음에서 사 준 귀한 선물이었다. 어린 지호를 무척이나 총애했던 것이다. 그 마음의 정표가 바로 그 검정 고무신이었다. 말하자면 그 검정 고무신은 지호와 주지 스님의 끈끈한 정을 이어주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지호는 고무신이 소중하기도 했지만 주지 스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져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토록 귀한 물건을 개천의 물고기와 바꾸려는 순간 아까운 마음도 들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남다른 지호라고 하지만 지호도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고개를 쳐들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고무신이 비록 하늘 같은 주지 스님이 내려준 귀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 불살생만 한 자비심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마 주지 스님도 이 고무신으로 물고기의 생명을 구한 사실을 아시면 기뻐하실 거야.'
지호는 그런 결심을 하고 그 소중한 고무신을 벗어주고 대신 바구니에 가득 담긴 물고기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냇가로 내려와 바구니의 고기를 몽땅 놓아주었다. 바구니에서 파닥거리던 물고기들은 신난다는 듯이 모두 물속으로 헤엄쳐갔다.
"그래. 이제는 사람들의 그물에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지호는 멀어져 가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맨발로 절에 들어간 지호는 삼성암 스님에게 호된 꾸중을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호는 꾸중을 들으면서도 자초지종을 스님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고기와 고무신을 바꾼 것을 알면 더 꾸중을 들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의 지호는 역시 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냥 고무신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평소 주지 스님의 총애가 깊은 것을 알고 있는 스님은 지호의 그런 행동에 대해 건방지고 당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스님은 분명히 지호가 좋아하는 엿을 고무신과 바꾸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지호는 주지 스님에게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절을 쫓겨나고 말았다.

 

 월해 스님은 잠시나마 마음을 쏟았던 그 비범한 아이 윤지호가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절을 훌쩍 떠나버린 게 아닌가 하여 몹시 서운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스님은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 조금 아까 지호를 찾으러 갔던 젊은 스님이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돌아왔다. 콧등에 촉촉이 배인 땀방울을 보니 절 안팎을 어지간히 헤매 다니다가 온 것 같았다.
"저, 스님. 그 아이 지호 말씀입니다요."
"그래 그 아이가 어디에 있다더냐?"
"예, 저 원두가 그러는데 그 아이가 채소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걸 분명히 보았다고 합니다 ‥‥"
"아니 그러면 지금은 채소밭에도 없더란 말이냐?"
"예.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는 아니합니다."
"조금 전까지 채소밭에 있었다면 화계사를 떠난 것은 아니니 돌아오거든 나한테 데려오너라."
"예. 스님"
그런데 월해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던 젊은 스님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아유, 스님! 저 녀석, 저어기 오고 있습니다요."
"으음?"
소년 윤지호는 스님들이 애타게 자기를 찾는 줄도 모르고 천천히 오고 있었다. 월해 스님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원 저런 녀석하고는!"
젊은 스님이 큰소리로 지호를 불렀다.
"야, 이 녀석 지호야?"
윤지호는 그때서야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두 스님에게 부리나케 달쳐왔다.
"예, 스님 저를 찾으셨습니까?"
젊은 스님은 대뜸 퉁명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이 녀석아 내가 너를 찾느라구 온 절간을 다 돌아다니고 채소밭까지 한 바퀴 돌고 오지 않았느냐?"
그러자 지호는 월해 스님과 젊은 스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뒤통수를 긁으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구!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저기 풀밭에 갔다 왔는데요. 심부름이라도 시키시려구요, 스님?"
월해 스님이 엄한 표정으로 윤지호에게 물었다.
"채소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구?"
"예, 스님."
"원두가 네게 풀을 뽑으라구 시키더냐?"
"아니 옵니다. 스님."
스님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허면, 어째서 시키지도 않을 일을 자청했더란 말이냐?"
"예, 스님 사람의 성품 가운데 윗사람이 시킨 일을 제대로 시행치 아니하는 것은 하품이요, 윗사람이 시키신 일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맹랑한 소년의 대답에 월해 스님의 눈가에 다시 실낱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그리구 또 옛 어른이 이르시기를 윗사람이 시키시기 전에 마땅히 시행하여야 할 일을 미리 알아 시행하는 것이 상품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옆에서 윤지호의 대답을 듣고 있던 젊은 스님이 기가 차다는 듯 끼어들었다.
"아니, 이 녀석이 정말 청산유순데 이거 !"
그러나 월해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젊은 스님을 제지했다.
"내버려 둬라. 허허허! 그래, 채소밭에서 풀을 뽑은 것은 그렇다 치고, 허면 그 후에는 또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고?"
"예. 저, 채소밭에서 풀을 뽑다 보니 채소에 벌레가 많았사옵니다."
"그래서 그 벌레를 어찌했느냐?"
윤지호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젊은 스님이 참견을 하였다.
"아, 그 벌레를 어찌했느냐고 물으신다. 어서 대답을 해봐라!"
"예 벌레들을 잡아내기는 다 잡아내었는데‥‥"
"그런데?"
"그대로 밭에 버리면 다시 채소에 기어오를 것이고, 발로 밟아 죽이자니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요…."
다시 젊은 스님이 채근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니까?"
"그래서‥‥ 그 벌레들을 저기 상두골 풀밭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상두골까지?"
상두골까지는 보통 먼 거리가 아니었다.
"아니, 이런 미련한!"
윤지호의 대답을 들은 젊은 스님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월해 스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월해 스님은 아무 말 없이 들고 있던 주장자로 땅을 세 번 내리쳤다.
"스님?"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다. 그만 손발 씻고 쉬도록 해라."
"예. 스님 그러면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멀어져 가는 윤지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화계사 주지 월해 스님이 옆에 있던 젊은 스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음… 너도 저 아이 말을 잘 들었으렸다."
"예, 스님."
월해 스님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솜털 같은 하얀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 속에서 월해 스님은 지호 소년의 앞날(고암 큰스님)을 보고 있었다.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