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추모의 물결이 진행되는 가운데,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다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참사 당한 영령들을 극락세계로 천도하여 극락왕생 하기를 기원하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사경으로 써서 영원히 후손들에게 남긴 작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빌미로 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는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신군부의 언론장악과 인권유린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계엄군이 유혈 진압으로 탄압하며 『5·18 광주민주항쟁』의 발단이 됐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한 잔인한 폭행과 무차별 총격, 헬기 사격으로 금남로와 시내 곳곳이 시체로 피바다를 이루고 사망자의 관들은 도청 앞 상무관을 가득 매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었다.

 

한국예술문화 감지금니사경 정향자 명인은 그날의 기억을 “어두운 밤이면 광송간 도로를 막아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길에서 ‘으샤으샤’ 소리와 군중들의 울부짖음 소리로 밤을 짓 세우고 아침이 밝아 오면,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이 즐비하고 그 시체들을 군인 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무서움과 서러움이 복받쳤다. 날마다 이어진 함성과 총성이 귓전을 울려 몸서리를 쳤다. 그 일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고 말한다.

 

그 후 작가는『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하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강박감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2006년 대학원에서 <수행으로서의 사경(寫經)과 그 서법에 나타난 정신성>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고부터 1980년 5월의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5·18 공원묘지’를 답사하고 ‘5·18 공원사무실’과 ‘5·18 기념관’에서 자료와 명단을 입수하여, 책과 자료들을 밤세워 가며 눈물로 읽었으나 작품 구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울하고 처참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일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영혼을 천도하는 책들을 모조리 찾아보았다. 신통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 교수님께 상의 들였더니 소장하시던 책을 두 권을 주셨다. 이 책에서 관경십육관 변상도를 발견하였다. 와ㅡ우 이것이다! 가슴에 와닿았다. 뛸 듯이 기뻤다. 꼭 좋은 작품을 제작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2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5·18 민주항쟁 희생자 추모” 작품은 관경십육관 변상도(觀經十六觀 變相圖, 고려 1323년 제작. 현재 일본 지은원 소장)를 모본을 삼아 순금분(純金粉)과 녹교(鹿膠)를 섞어 감지(紺紙)에 감지금니사경 전통방법으로 극락세계를 표현했다.
가로 2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감지에 그려진 극락세계에는 밝은 해에 삼족오가 살고, 서운(瑞雲)이 드리워져 있으며 수관(樹觀 하늘나라 나무)에는 보석이 매달려 황홀하도록 아름답게 빛나고, 꽃비가 내리고, 항상 음악이 흐르고, 연못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극락조가 한가로이 노닌다.
그림의 가장자리 사방에는 금강저(金剛杵)를 그려 넣어 이 작품이 수백천 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고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지켜 달라는 서원을 담고, 그 안에 『5·18 광주민주항쟁』의 희생자 784명의 이름을 넣었다.

 

정향자 명인은 “감지금니사경의 장점은 탈색이나 변색되지 않고 항균과 병충해에 강하여 금빛 찬란하고, 보존성이 강해 백천 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기도와 수행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작업의 의미를 전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5월의 광주에 부채의식을 무겁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향자 작가처럼 그날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작업이 이어지기에, 우리의 핏줄 속에는 5월의 정신이 영원히 흐르고 고동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