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은 서민처럼, 생각은 귀족처럼
 

 

화엄학의 대가로 탄허 스님을 꼽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그 전란의 상흔이 아직 씻기지 않은 1957년, 식량은 물론이고, 입을 옷, 머무를 집 또한 변변히 없던 시절, 탄허 스님은 월정사 주지로 보임해 있었다.
세속의 경제가 핍박해 말 그대로 중생이 곤궁하니 절 살림살이는 이루 말로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스님들은 옥수수, 감자와 쌀겨로 두 끼 밖에 먹지 못하는 배고픈 생활을 하였으며, 의복은 죽은 사람의 옷을 빌어다 먹물을 들여 입고 지냈다.
법랍이 많은 고참 스님들이야 오랜 출가생활로 어려움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 참고 견뎌냈지만, 갓 출가한 스님들이나 어린 동자승들은 배고픔의 고통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월정사 대중들은 작은 재를 지낼 준비에 바빴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이 불단에 올려졌다. 월정사 대중들은 각자 소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상에 올려질 음식이 마련될 때마다 곧바로 공양간 옆 다락방으로 옮겨졌다.
이윽고 음식  냄새가 전 도량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다락방에서 한 동자승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음식에 손을 대고 있었다. 동자승은 급기야 자제력을 잃고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채공 스님이었다. 동자승은 곧바로 주지스님이신 탄허 스님께 불려갔다.
탄허 스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상좌에게 쓰는 말은 ‘멍청이’였다.
“이 멍청아, 생활은 항상 서민같이 하되 생각만은 항상 귀족같이 해야 된다고 내가 이르지 않았더냐. 중이 돼지같이 살이 찌면 정신적으로 공허해질 수밖에 없어...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선승은 안광만이 빛나고 몸은 야윈 법이야. 그래, 그걸 먹고 배가 부르더냐?”
세속에 살았더라면 아직 부모에게 응석이나 부릴 철부지였건만 어린 동자승은 스님의 큰 가르침을 제대로 가슴에 새겨둘 줄 알아 이후의 행동에 한 점의 팃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로 가난한 절 살림에도 불구하고 월정사에서는 불단이나 재상에 오를 공양물이 의식 전에 축나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