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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㉚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4-24 (금) 08:50

꼬삼비 비구들의 분쟁
 
깨달음을 이룬 지 9년째 되던 해, 붓다는 꼬삼비(Kosambī)에서 우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꼬삼비 상가 내에서 비구들이 두 패로 갈려 서로를 욕하고 심지어는 주먹질까지 하는 큰 분쟁이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경전을 가르치는 장로가 화장실에 갔다가 쓰고 남은 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남겨두고 나오는 일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마침 그 다음 순서로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계율을 가르치는 장로였다. 남겨진 물을 발견한 계율을 가르치는 장로는 경전을 가르치는 장로를 불러 따지듯이 말했다.
 
“이보시오. 바가지 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남겨 둔 이가 당신이 맞지요?”
“예, 제가 남겨두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사용한 물을 남기면 참회해야 될 허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아,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뭐 허물이랄 것도 없지요.”
 
사실 이 일은 장로들끼리 서로를 낮춤으로써 이 정도에서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후 계율을 가르치는 장로가 경전을 가르치던 장로가 범한 이 작은 허물을 자기의 제자에게 무심코 말하고 말았다. 그 후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대중에게 퍼졌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무리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나약한 이들의 교만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 사실 계율을 공부하는 비구들과 경전을 공부하는 비구들 사이에서는 경쟁심이 작용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계율을 배우던 이들은 이 일을 기회삼아 경전을 배우던 이들을 향해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당신들의 스승은 자기가 저지른 허물조차 모르나 봅니다.”
 
스승을 욕하는 소리에 경전을 배우던 비구들은 발끈했다.
 
“당신들의 스승이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데 이제 와서 허물을 들먹거린단 말이요?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했다가 하는 걸 보니 당신들의 스승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군요.”
 
두 장로 사이에 일어난 사소한 실수는 이내 그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상대편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로 번졌다. 사태는 붓다가 나설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악화되었다. 붓다는 양쪽의 장로를 직접 찾아갔다. 붓다는 계율을 가르치던 장로에게 “계율의 적용에 앞서 교단의 화합을 중시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이어 경전을 가르치던 장로에게 “아무리 사소한 허물이라도 참회하지 않고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간곡하게 타일렀다. 하지만 붓다의 간곡한 타이름에도 불구하고 꼬삼비 상가 내의 소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한 두 무리는 마침내 거처를 달리하더니, 급기야 포살을 비롯한 갖가지 상가의 행사까지 따로 치르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상가가 두 곳에서 따로 포살을 시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사 안과 정사 밖에서 부딪칠 때마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던 그들 사이에는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갈라진 두 상가를 각각 지지하는 재가의 신도들까지 다툼에 합세해 꼬삼비의 상가에서는 고함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싸움을 그만 두라. 다투지 말라. 논쟁하지 말라.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질 수 있다.”
 
나라를 빼앗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한 브라흐마닷따 왕을 용서한 디가우 왕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붓다는 간곡하게 갈라선 비구들을 꾸짖고 타일렀다. 그러나 분노와 교만에 들뜬 양쪽 비구들은 붓다의 간곡한 권유조차도 무시하고, 불경스럽게도 붓다에게 간여하지 말 것을 통보했다.
 
“세존이시여,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걱정 마시고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이 문제는 저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붓다는 물러설 줄 모르는 비구들을 찾아가 다시 한 번 타일렀다.
 
“수족을 자르고, 목숨을 빼앗고, 소와 말과 재산을 훔치고, 나라를 약탈하는 도둑패거리도 뭉칠 줄 아는데 너희들은 어째 그렇지를 못하느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 번에 걸친 붓다의 간곡한 타이름에도 불구하고 꼬삼비 비구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붓다는 아무런 말없이 꼬삼비를 떠났다.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길을 떠난 것이다.
붓다는 꼬삼비 근처의 빨라깔로나까라(소금 굽는) 마을에서 왁꿀라(Vakula))를 만나 홀로 떨어져 수행에 매진하는 공덕을 칭찬했다. 왁꿀라는 붓다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잘 병들지 않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별칭을 가진 수행자였다. 그리고 다시 아니룻다, 낌삘라, 난디야 세 사람이 함께 머무는 쩨띠의 빠찌나왐사다야(동쪽 대나무 숲) 동산으로 갔다. 그곳에 머무는 세 비구의 삶은 청정하고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 가사를 단정히 입고 걸식을 나가고, 걸식에서 먼저 돌아온 사람이 공양할 방을 쓸고, 자리를 펴고, 발 씻을 물과 앉을 자리를 준비했다. 공양이 많으면 깨끗한 그릇에 여분의 밥을 덜어 놓고, 마실 물과 그릇 씻을 물을 준비한 다음 혼자서 조용히 공양하고 방을 나갔다. 다음에 돌아온 비구는 자기 발우의 밥이 적으면 앞 비구가 담아놓은 밥을 덜어먹고, 앉는 자리와 발 씻는 자리를 거두고, 빗자루로 깨끗이 쓸고, 마실 물과 씻을 물과 화장실 물을 채워놓았다. 혼자서 하지 못할 일이 있을 때는 소리 내지 않고 손짓으로 도움을 청하였다. 그들의 숲은 짐승보다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선정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도우며 의지하는 그들은 닷새마다 한자리에 모여 진솔하게 법을 논했다. 그런 세 비구를 보고 붓다는 큰 소리로 칭찬했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깨달음을 이룬 후 10년째 되던 해, 붓다는 세 비구와 헤어진 후 빠릴레이야까(Parileyyaka)라는 외딴 마을로 갔다. 그곳에 있는 깊은 숲속 나무 아래에서 홀로 우기를 보냈다. 붓다가 떠나고 나자 꼬삼비 상가에서는 조금씩 두 편으로 갈려 다투는 비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비구들을 따라 양분되었던 꼬삼비의 우바새와 우바이도 상가를 비난하고 나섰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붓다의 간곡한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아, 붓다가 꼬삼비를 떠나가게 한 이들을 더 이상 스승으로 받들 수 없다며 한 끼의 공양조차 제공하기를 거절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다툼이 공양 거부라는 재가자들이 내린 특단의 조처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사납게 타오르던 분쟁의 불길은 공양거부라는 조처에 신기할 정도로 순식간에 스러졌다. 뒤늦게 자신들의 교만과 독선을 후회하게 된 꼬삼비의 비구들은 백방으로 붓다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붓다를 찾을 수 없었다. 붓다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멀리 사왓티까지 전해졌다. 결국 아난다를 비롯한 사왓티의 비구들이 붓다를 찾아 나섰다.
붓다가 머물고 있는 빠릴레이야까 외딴 숲에 도착한 아난다는 비구들을 입구에 세워두고 혼자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넝쿨이 우거진 오솔길을 헤치던 아난다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다리가 기둥보다 굵고 상아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코끼리가 코를 높이 세우고 당장이라도 아난다를 밟아버릴 듯 앞발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빠릴레이야까, 그 비구를 막지 말라.”
 
그립던 스승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코끼리는 힘차게 코를 흔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코끼리를 따라 숲 가운데로 들어서자 넓은 그늘을 드리운 큰 나무가 나타났다. 그 아래 붓다가 앉아 있었다. 발우와 가사를 내려놓은 아난다는 홀로 거칠어진 붓다의 발아래 예배했다. 코끼리도 그늘 아래에 자리했다. 아난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이 흐르고 붓다가 도리어 위로하듯 먼저 침묵을 깼다.
 
“아난다, 무리를 벗어난 저 코끼리가 안거 동안 나와 함께 했다. 이른 아침이면 나무 아래를 깨끗이 청소하고, 더위가 심할 때면 시원한 물을 뿌려주었다. 크고 작은 과일들을 따다가 나에게 주고, 마을로 걸식을 나갈 때면 숲 입구까지 배웅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난다는 스승을 홀로 안거에 들게 한 것이 죄송스러워 그저 눈물만 흘렸다.
 
“혼자 왔느냐?”
“아닙니다. 비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원치 않으실 거란 생각에 입구에서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런가? 그들을 데리고 오라.”
 
잠시 후 붓다 앞으로 온 비구들도 스승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모든 존재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참으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런 벗을 만나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결박을 벗어난 사슴이 초원을 자유롭게 뛰놀듯,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듯, 상아가 빛나는 힘센 코끼리가 무리를 벗어나 숲을 거닐 듯, 물고기가 힘찬 꼬리로 그물을 찢듯이 모든 장애와 구속을 벗어나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과 진흙이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붓다의 밝은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아난다가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세존이시여, 사왓티의 빠세나디 대왕과 아나타삔디까(수닷따) 장자께서 스승님을 뵙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선업을 키울 수 있도록 사왓티로 와주십시오.”
“아난다, 발우와 가사를 들어라.”
 
“나도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어느 덧 붓다가 대각을 이루고 전법의 수레를 굴리기 시작한 후 11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붓다는 마가다 국을 유행할 때 종종 머물던 라자가하 남쪽에 위치한 바라문 마을 에까날라(Ekanālā) 근처의 닥끼나기리 정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마침 파종기가 되어 까씨 바라드와자라는 이름을 가진 바라문이 밭을 갈기 위해 5백 개 가량의 쟁기를 멍에에 묶고 있었다.
붓다는 탁발 시간이 되자 발우를 들고 까씨 바라드와자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마침 까씨 바라드와자는 일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붓다도 한쪽에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까씨 바라드와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붓다의 위세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며 기존 바라문들의 영역이 축소되어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탁발을 하고자 서 있는 붓다의 모습은 그의 눈에 한낱 게으름뱅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밭을 갈고 씨를 부린 뒤에 먹습니다. 그대 수행자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
 
바라문의 심리를 꿰뚫어 본 붓다가 말했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붓다의 말을 들은 바라문이 따지듯 다시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 고따마의 멍에도, 쟁기도, 쟁기 날도, 몰이막대도, 황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따마여, 그대는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대는 밭을 가는 자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나는 그대가 밭을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밭을 가는 자라면 나의 물음에 대답하십시오. 어떻게 우리가 그대가 경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잘 들으시오. 바라문이여.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수호가 되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새김(알아차림)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 몸을 수호하고 말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 나는 진실을 잡초를 제거하는 낫으로 삼고, 나에게는 온화함이 멍에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이 내게는 짐을 싣는 황소입니다.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가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밭을 갈면 불사(不死)의 열매를 거두며,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합니다.”
붓다의 말을 들으며 까씨 바라드와자는 마음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먼지를 가라앉히는 이슬비처럼 붓다의 게송은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게으르고 볼품없는 사문으로 알았던 붓다의 게송은 너무도 감미로웠고 향기로웠다. 이런 지혜와 재능을 갖춘 수행자라면 굳이 쟁기를 잡지 않더라도 공양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까씨 바라드와자는 커다란 청동 그릇에 유미죽을 하나 가득 담아 붓다에게 건네며 말했다.
 
“고따마께서는 유미죽을 드십시오. 당신은 진실로 밭을 가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 고따마께서는 불사의 과보를 가져다주는 밭을 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 붓다의 게송에 감명해 호의를 베풀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음식을 받지 않았다. 붓다가 말했다.
 
“게송으로 설법한 대가를 나는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정견을 갖춘 이에게 옳지 않은 것입니다. 깨달은 이는 게송을 읊은 대가를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치를 따른다면 그것이 청정한 행위입니다. 번뇌가 부서지고 의심이 소멸된 완전한 님, 위대한 성자에게 다른 음식과 음료수로 달리 봉사하십시오. 공덕을 바라는 자에게 그것은 복밭이 될 것입니다.”
 
호의를 거절당하자 당황한 바라문이 붓다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존자 고따마여, 이 유미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의 후예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의 세계에서 여래와 그의 제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유미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유미죽은 생물이 없는 물에 버리십시오.”
 
바라문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호의를 거절당한 것도 모자라 그런 음식을 먹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끝내 거절하신다면야 할 수 없지요….”
 
볼멘소리로 언짢은 기분을 드러낸 바라문 까씨 바라드와자는 유미죽을 생물이 없는 물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유미죽은 물속에 버려지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끓어올랐다. 마치 온종일 뙤약볕에 달궈진 호미날이 물에 던져진 것처럼 부글부글 엄청난 거품이 끓어올랐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바라문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붓다의 곁으로 다가가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을 갖춘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붓다께서 이끄는 수행승의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따마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바라문 까씨 바라드와자는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위없이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웨란자에서의 안거
 
깨달음을 성취한지 12년째 되는 해, 붓다는 사왓티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사업 관계로 사왓티를 방문했던 웨란자(Verañja)의 바라문 왕 악기닷따가 붓다의 명성을 듣고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야무나 강 인근에 위치한 수라세나(Surasena)의 수도 마두라(Madhura)를 지나 간다라의 탁카실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웨란자는 코살라 국 빠세나디 왕이 바라문 통치자 악기닷따에게 봉토(封土)로 하사한 땅이었다. 황금산과 같은 붓다의 풍모와 불꽃같은 가르침에 감복한 악기닷따는 기원정사를 떠나며 붓다의 발아래 엎드려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과 비구들께서는 부디 다음 우기에 저희 웨란자로 오셔서 안거하시기를 원합니다.”
 
침묵으로써 악기닷따의 요청을 수락한 붓다는 안거 시기가 다가오자 오백 비구와 함께 웨란자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그 땅에 도착하자 악기닷따 왕은 궁전의 문을 닫아걸고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안거 동안의 지원을 약속받고 찾아온 붓다와 붓다의 상가에게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붓다의 명성조차 아직은 생소했던 그곳에는 심한 기근까지 겹쳐 안거를 원만히 마치기가 더욱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마을로 걸식을 나선 비구들이 식은 밥 한 덩이도 얻기가 힘들 정도였다. 온 대중이 굶주림에 허덕이자 목갈라나가 나섰다.
 
“세존이시여, 쌀이 자생하는 웃따라꾸루(Uttarakuru)로 가서 제가 음식을 마련해 오겠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목갈라나여, 그대의 신통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곳의 음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과보가 익어 떨어지는 것은 바꿀 수는 없다. 나는 그대의 요청을 허락할 수 없다.”
 
때마침 바라나시에서 말을 키우는 사람들이 넓은 목초지를 찾아 웨란자로 오게 되었다. 빈 발우를 들고 마을에서 나오던 비구들에게 그들이 물었다.
 
“힘들고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비구들은 곤혹스러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말을 키우는 사람들이 말했다.
 
“사정이 몹시 딱하긴 하지만 어쩌죠. 저희도 가진 양식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사료용 보리뿐인데 이거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말이 먹을 사료를 저희에게 주시면 저 말들은 무엇을 먹고 살겠는지요? 말을 굶주리게 하면서까지 보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마침 풀들이 잘 자라 말들을 먹이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말을 먹이는 사람들은 가져온 사료의 반을 덜어 비구들에게 주었다. 비구들은 쭉정이가 수북한 겉보리를 그대로는 먹을 수가 없어 돌에 갈고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아난다는 붓다와 자신의 몫을 들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저녁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한 아낙네가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아난다가 다가가 그 아낙네에게 말했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어 고통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고,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케 하며, 번뇌를 없애지(滅盡) 못한 이들을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 근심, 슬픔,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게 하는 분이 계십니다. 붓다이신 그분이 지금 이곳에서 안거하고 계십니다. 여인이여, 그대가 붓다를 위해 이 보릿가루로 밥을 지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쌀쌀맞은 목청으로 말했다.
 
“저는 할 일이 많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다가 아난다의 말을 들은 한 여인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훌륭한 분의 공양이라면 제가 짓겠습니다. 힘닿는 대로 다른 분들의 공양도 제가 지어드리겠습니다.”
 
고마운 여인이 지어준 밥을 들고 아난다는 스승이 계신 숲으로 향했다. 착잡했다. 세상 누구보다 귀하게 자라신 분임을 두 눈으로 보아 잘 알고 있는 아난다로서는 사람이 먹지 못할 말 사료로 만든 음식을 공양 올리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러나 붓다는 발우를 받아 평상시와 다름없이 맛있게 잡수셨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난다는 죄스럽고 부끄럽기도 해 목이 메었다. 아난다가 안절부절못하며 눈물까지 그렁거리자 붓다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아난다, 너도 먹어보겠느냐?”
 
붓다는 당신의 바리때에서 한 덩이를 집어 아난다의 입에 넣어주었다. 눈물 반, 음식 반으로 우물거리던 아난다는 깜짝 놀랐다. 부드럽고 맛깔스러운 것이 전혀 거북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서야 아난다가 환히 웃으며 붓다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오늘 한 여인에게 밥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으나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여인이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자원해서 밥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난다의 말을 들은 붓다가 말했다.
 
“밥을 지어주지 않은 여인은 마땅히 얻을 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구나. 밥을 지어준 여인은 그 공덕으로 분명 전륜성왕의 첫째 부인이 될 것이다.”
 
말들의 사료까지 먹으며 힘겹게 보낸 안거가 끝날 무렵이었다. 붓다는 아난다에게 물었다.
 
“자자(自恣)까지 며칠이나 남았느냐?”
“칠 일 남았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너는 성으로 들어가 바라문 악기닷따 왕에게 전하라. 그대의 나라에서 안거를 마쳤으니 이제 다른 나라로 유행을 떠나겠다고.”
 
그러나 스승의 말에 아난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세존이시여, 그 바라문이 붓다와 비구들에게 무슨 은덕을 베풀었다고 그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전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의 초대로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했는데 작별인사를 하시다니요?”
 
붓다가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바라문 왕이 베푼 은덕이 없다고는 하나 세상의 도리가 그게 아니다. 우리는 그의 손님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대접이 시원찮았다고 떠날 때 주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손님의 도리가 아니다.”
 
붓다의 분부를 받들어 아난다가 궁으로 찾아가 작별을 고하자 악기닷따 왕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한 걸음에 붓다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악기닷따 왕은 4개 월 분의 양식을 가져와 붓다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줄 간청하였다. 붓다는 칠일 분만 허락했다. 이레가 지난 후 악기닷따는 한 줌의 곡식이 아까워 성인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을 일이 두려워졌다. 악기닷따는 떠나는 붓다의 발 앞에 남은 양식을 흩뿌리며 말했다.
 
“이 곡식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한꺼번에 받아주소서.”
 
붓다가 그의 행동을 제지하며 말했다.
 
“곡식은 입으로 먹어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어야 할 곡식을 땅에 뿌려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건 곡식을 보시하는 것도 곡식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악기닷따 왕에게 붓다가 연민의 마음으로 일렀다.
 
“외도들의 수행과 제사에서는 불을 공양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학덕을 성취함에 있어서는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우러러 받들 인간들 중에는 전륜성왕이 으뜸입니다. 강과 시내 모든 물에서는 바다의 깊이가 으뜸입니다. 뭇별이 하늘 가득 펼쳐졌어도 해와 달이 광명의 으뜸이듯이 붓다가 세간에 출현하면 그에게 올리는 보시가 가장 으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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